러시아출신 국비 장학생 엘레나 1박2일 參禪체험

  • 입력 2001년 4월 26일 18시 53분


◇들숨…날숨 …"마음이 차분해 지네요"

"숭늉물-김치쪽으로 그릇씻기 잊을수 없는 소중한 경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법학도 출신인 마트비바 엘레나(23·여). 지난해 8월부터 경희대 국제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그는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을 위한 참선(參禪) 교실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주한 러시아 대사관을 통해 참가를 신청했다.

엘레나와 마찬가지로 선을 통해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체험해보고 싶어하는 외국인 석박사과정 학생 40여명이 21일 충북 괴산 속리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다보수련원에 함께 모였다. 일반인들에게 선을 지도해온 우곡선원이 국제교육진흥원의 위탁을 받아 실시한 선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선은 서양에서도 유행이예요. 그러나 제가 살던 러시아는 공산주의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 많은 세월이 흐르지 않아서인지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선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지요.”

선사(禪師)의 지도에 따라 엘레나는 방석의 뒷면 일부를 접어 엉덩이 끝을 살짝 받친다. 가슴은 활짝 열고 허리는 똑바로 세운다. 앉은 상태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좌우로 시계의 추처럼 몸을 가볍게 흔들고 점점 진폭을 작게 해 자연스럽게 정지한다. 턱은 앞으로 살짝 당기고 시선은 콧등을 지나 약 1m 앞의 바닥을 향하게 한다. 양 손바닥은 하늘을 향해 펼친 채 가볍게 무릎에 올려놓는다.

“몸의 자세를 바로 하니까 흥분된 마음도 가라앉는 것 같아요. 물론 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 조금 불편하지만요.”

호흡은 들숨을 가능한 한 생각하지 않고 날숨만 생각한다. 들숨은 의식적으로 들이쉬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놔둔다. 날숨은 의식적으로 길게 내쉬면서 낙엽이 떨어지듯 배꼽 밑으로 가볍게 내려놓는다. 무념(無念)은 커녕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선사는 ‘억지로 생각을 끊으려 하지 말고 과거생각 미래생각 현재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게 하되 생각을 뒤쫓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준다.

“살아가는데 끊이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가 있다면 호흡과 생각인 것 같아요. 무념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선은 이 두 가지를 잘 콘트롤할 때 도달하는 상태라는 생각이 드네요.”

엘레나는 발우 공양이라는 절의 고유한 식사법도 체험했다. 식사를 끝내고 숭늉물을 큰 발우(그릇)에 담아서 국발우 반찬발우 순으로 씻어 마셨다. 이어 식사 전에 받아 놓았던 청수(淸水)를 큰 그릇에 부어, 하나 남긴 김치쪽으로 차례대로 발우를 씻는다. 모든 이의 청수는 모아 다시 한 곳에 담는다.

“모은 청수에 고춧가루 하나라도 남아있어 선사가 ‘노’라고 하면 그 물을 모두 나눠 마셔야 한다는 게 가벼운 충격을 줬어요. 선사가 ‘노’라고 하지는 않아 다행이었지만 여러 사람의 그릇을 씻은 물을 나눠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의 위생 관념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1박2일은 금방 지나갔다. 그러나 엘레나에게는 이 짧은 시간이 지난 6개월 간의 한국생활과도 맞바꾸고 싶지 않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괴산〓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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