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44등 아들을 서울대에 보낸 아버지의 교육철학

  • 입력 2001년 4월 17일 18시 42분


◇"44등을 서울대에 보냈습니다"

'아들 서울대 작곡과에 합격' 정 송씨의 교육철학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부자(父子)였다. 정송씨(48)와 큰아들 영빈군(19).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피아노반주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들과, 오랜만에 외식하러 나온 아버지를 13일 오후 한 커피숍에서 마주했다.

정씨는 95년 ‘좋은 아버지’상을 받은 자녀교육 전문가. 영빈이는 올해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 입학한 2001학번 새내기. 흔한 서울대생처럼 모범적이고 공부도 잘하는 ‘범생이’는 결코 아니었다.

중 1때는 성적이 반에서 44등(50명 중)까지 떨어졌었다. 고등학교 들어가서도 공부는 뒷전. 한때 동시에 연예인 3명의 팬클럽 회장을 맡기도 했다. 영빈이는 “당구와 스타크래프트만 빼고는 다 해봤다”고 했다.

그런 그가 서울대에 들어갔다. 그래서 부자가 최근 펴낸 책 제목도 ‘44등이 서울대 갔어요’(현대미디어)다. 아버지 정씨가 소개하는 교육철학 몇가지.

▽이불 속 대화〓아이가 이부자리를 펴고 잘 준비를 하면 나란히 누워 시시콜콜한 얘기를 한다.

“오늘 농구는 잘 했어?”부터 “여자친구는 있니?”까지 터놓고 대화를 하다보면 ‘벽’이 눈 녹듯 사라진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 말이 잘 통하는 가정은 별 문제가 없고, 문제가 생겨도 금방 해결할 수 있다.

▽만화로 시작한 독서〓책과 담쌓고 지내는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만화에 재미를 붙였다. 처음엔 만화잡지를 사준 뒤 점점 위인전 등으로 ‘수준’을 높여갔다. 5학년이 되니 “책 좀 그만 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가 됐다.

값비싼 영재교육 세트를 사다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으로 잔소리를 해대면 아이는 책 속에 담긴 즐거움을 깨닫기도 전에 책이 원수처럼 보인다.

▽자식교육은 ‘만만디’〓영빈이가 중 1때. 유학 가고 싶다는 아들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것 같다”며 두 달이 넘도록 설득했지만 아들도 황소고집. 비디오카메라를 메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기유학의 실상을 담아온 뒤 ‘증거자료’로 제시, 결국 항복을 받아냈다.

“무조건 안돼!”라는 말이 입안을 뱅뱅 돌았지만 참고 참고 또 참았다. ‘삼사일행(三思一行·세 번 생각한 뒤 행동한다)’의 원칙이다.

▽원하는 일을 하게 하라〓영빈이는 고 2때 해외무대에 설 실력을 갖췄던 바이올린을 팽개치고 전공을 작곡으로 바꿨다. 모험이었다. 떼논 당상이었던 대학문이 저만치 멀어진 것 같았지만 “정말 해보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선선히 승낙했다.

영빈이가 받은 과외수업은 싸구려 피아노 교습(월 5만∼7만원)에다 한달 20만원짜리 과외 석달이 전부. 아들은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일이라 힘든 줄을 몰라했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