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입력 2001년 1월 19일 18시 45분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최재천 지음/267쪽 8500원/효형출판

최재천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에게는 아직도 문학청년의 피가 흐른다. 그의 글은 늘 맛깔스럽다. 그리고 바쁜 와중에 원고를 청탁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이 과학과 관련되는 한.

개미 등 곤충 행동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최 교수가 가욋일에 정력을 쏟는 이유는 뭘까? 본인은 척박한 이 땅에 ‘과학 대중화’의 밀알이 되고 싶다는 사명감을 자주 말한다.

‘동물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사’라는 부제를 붙힐 법한 이번 과학 에세이 역시 이런 소망의 발로다. 동물 행동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통해 또 다른 동물인 인간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남의 자식을 억지로 빼앗아 기르려는 타조의 행태가 아직도 입양아 주요 수출국인 우리 현실과 겹쳐지고, 여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으며 대중의 뜻으로만 움직여진다는 꿀벌의 사회가 어지러운 우리 정치 현실과 대비된다.

가족 친지 이웃 간에 서로 피를 나눠 마시는 흡혈박쥐의 헌혈정신, 작살에 부상당해 숨을 못쉬는 동료를 들어나르듯 물 위로 떠받들고 다니는 고래의 동료애, 자식에게 자기 살을 파 먹이는 염낭거미의 모성애, 적자(嫡子)로 살아남기 위해 형제를 죽여야 하는 하이에나의 생존경쟁은 인간사회 못지 않다.

청사진도 없고 십장도 없이 흙덩이를 쌓아 사람 키 만한 둥지를 만드는 흰개미의 질서정연한 집단행동은 어떤가. 최 교수는 이를 통해 널뛰듯 춤추는 주식시장을 꼬집는다. ‘게임의 법칙이 제대로 서면 증권시장의 개미들도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다.’

때론 인간과 동물의 직접 비교가 거북살스럽기도 할 것이다. 성(性) 보수주의자라면 동물세계에서 동성애가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최 교수의 지적에 발끈할 법하다. 그는 반문한다. ‘자식이 신부나 수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받는 충격과 동성애자라고 밝혔을 때의 충격이 왜 달라야 할까? 아이를 낳지 않겠는다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학생들은 ‘학교가 재미가 없다, 평생 써먹지도 못할 걸 배운다’며 투덜거리지만 최 교수는 따끔하게 충고한다. 동물세계에서도 ‘교육이란 어차피 일방적인 것’이라고. 한 술 더 떠서 ‘더 늦기 전에 꼭 가르쳐야 할 것은 가르치라’면서 부모를 선동(?)하기도 한다. 먹이로 잡은 동물을 산 채로 잡아다 새끼들에게 사냥연습을 시키는 어미 표범이나, 몇 번이고 둥지에서 떨어지는 새끼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어미새처럼.

그렇다고 최 교수가 동물의 관점에서 인간을 훈계하거나, 동물이 인간사의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위선적인 인간이 동물만도 못해 울화가 치민다’고 서슴없이 고백한다. 후기에서 이 책을 ‘인류를 대표해 자연에게 써 올린 반성문’이라고 적은 것도 그런 뜻에서다.

하지만 최 교수의 진짜 소망은 ‘알면 사랑한다’는 믿음을 나누는 것. 그 대상은 동물 뿐 아니라 우리도 스스로도 포함된다. 인간이 서로를 알면 세상의 문제가 사라지리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그는 낭만주의자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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