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 사이트 관평기]"응모자 모두를 위한 문학축제"

  • 입력 2000년 12월 25일 19시 10분


스물 네 살이 끝나갈 무렵, 나는 어느 술집에 있었다. 건배를 하고 안주를 뒤적거리는 사이사이, 주머니 속에 있는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하도 여러 번 접었다 폈다를 반복한 탓에 가운데가 열십자 모양으로 찢어진 종이였다.

종이에는 각 신문사의 주소와 신춘문예 마감일이 적혀 있었다. 아무도 말은 안 했지만 그 자리에 모인 친구들의 주머니에도 그런 종이가 하나씩은 있었으리라. 부적처럼 꼭 지니고 다녔으리라.

나는 옆에 앉은 친구에게서 위로를 받았고, 또 옆자리 친구는 내게서 위로를 받았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둥그렇게 모여 앉아, 서로를 위로하고 또 위로받았다.

◇ 접수-심사 전과정 인터넷 공개

내가 보낸 원고가 제대로 도착했는지에 대한 의심이 자꾸만 내 발목을 붙잡았고, 뒤늦게 발견한 오자 하나에 가슴이 덜컥 했다. 상처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원고를 신문사에 보내고 당선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그 사이, 상처는 그 때 생기는 것이었다.

올해 동아일보는 인터넷(www.donga.com/docs/sinchoon2001·사진)으로 2001년 신춘문예의 전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다른 신문사에서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신춘문예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예심 전과정을 공개하고 심사위원들과의 대담을 실었다. 심지어 본심에 오른 작품들의 명단도 공개를 했다. 본심에 오른 작품을 공개한 것은, 심사의 투명함을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그들에게 좀더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시판에는 ‘저는 다섯 번째 떨어졌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떨어진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자고’ 제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이 곳에서 단지 기다리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상처를 입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작품이 제대로 접수되었는지를 알고 싶어했고, 혹시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작품을 단 두어 줄만 읽고 쓰레기통으로 버리지는 않았는지를 걱정했다. 스물 다섯 살 무렵, 내가 친구들과 술집에 둘러앉아 걱정했듯이.

◇ 당선이 안되도 즐거운 기다림

지금까지 신춘문예는 늘 한 사람만의 당선자를 생각했다. 하지만 ‘동아신춘문예 2001’ 사이트는 신춘문예는 한 사람의 당선자를 위한 축제가 아니라, 응모자 모두를 위한 축제임을 역설하고 있다.

당선을 기다리는 사이,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조차 들릴 것처럼 예민해진 자신을 발견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순간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서로를 위로해 줄 누군가가, 자신의 열정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일깨워주는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곳을 기웃거리는 사람들만큼 문학에 우호적인 이들이 또 있을까. 그들 틈에 섞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까.

‘동아신춘문예 2001’ 사이트는 응모자들에게 ‘즐겁게 기다리라고’ 말하는 듯하다. 신춘문예라는 축제에 참가했다면, 좀더 즐겁게 즐기라고.

윤성희(소설가·1999 동아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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