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두 문화]이철승씨가 말하는 이영애와 'JSA'

  • 입력 2000년 10월 15일 18시 37분


나는 한국 영화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영화를 봐왔으나 최근에는 뜸하다가 ‘쉬리’ 이후 ‘공동경비구역 JSA’가 남북 문제를 소재로 했다 해서 짬을 냈다.

스위스의 소피 소령으로 나오는 이영애는 미인인지 모르겠으나 얼굴 전체가 짜임새가 있어 친근감을 느꼈다. 하긴 우리 때와 달리 요즘 젊은이들이 가진 미인의 기준이 많이 달라지긴 했을 법하지만.

영화에서 예민한 후각과 강한 의지를 지닌 여인으로 나오는 이영애는 향기를 짙게 풍기는 국화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히치코크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수사반장처럼 냉철하게 조사에 착수하고 있다. 그 예리하고 긴장된 표정이 청순하고 순수한 인상과 대조를 이뤄 과연 배역을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관심을 가졌다.

◇ '소피' 중립국시각 공감 못해

소피는 여성이어서 그런지 수사관이라는 전문직의 분위기를 주지 못했다. 중립국 여성으로 사건을 진지하고 열성을 가지고 해결하려 하지만 가냘픈 얼굴 선이나 몸이 그런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인간적인 면에서 좋은 인상을 줘 아마 남북 문제를 포용하려는 여성상을 부각시키려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소피는 중립국 시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나로서는 그의 역할에 공감하지 못했다. 인민군 장교로 제3국을 선택한 포로의 딸이라는 배경이 그렇다. 20여년전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6·25 전쟁 포로 출신들을 만났는데 이들이 거의 다 반공사상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북한 출신인 이들은 당시 북한의 가족과 후일이 두려워 남도 북도 아닌 제 3국을 택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영애가 그런 사람의 딸로 나와 중립국 시각으로 사건을 덮어버리는 것은 또다른 문제점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사실 요즘 젊은 스타를 잘 모르는 내가 이영애의 연기 등에 대해 언급한다는 게 분에 넘치는 일이다. 그래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나는 전쟁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전쟁을 모르는 젊은이들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 건국의 선봉에 섰던 이로 38선과 분단, 6·25 급습을 겪었고 6·25중 학도의용군을 총지휘했다. 워커라인(낙동강 전선)에서 밀고 밀리기를 거듭하며 생사를 넘나들었다. 적의 총탄에 희생된 동지도 많이 봤다.

9·28 서울 수복후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할 때는 학련(전국학생총연맹) 선무공작대를 파견하고 평양까지 진출해 1·4후퇴 전까지 민간 정부의 간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즉 휴전이 되고 ‘공동경비구역 JSA’의 배경이 된 판문점이 생겨나는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6·25발발 50년인 올해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제주도에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리는 등 화해무드가 높아가고 있어 이 영화가 더욱 궁금했다.

◇ 분단현상-역사적 경험 외면

영화는 한마디로 휴머니즘의 측면에서 보편가치를 추구하고 있으나 대한민국의 역사와 분단 현실을 외면하는 등 역사 의식이 결여됐고 문제를 보는 시각이 낭만적이었다. 영화는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는 체제의 위선을 들춰내 분단의 비극과 아이러니를 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남북 적대를 초래한 원인은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가 추구하는 휴머니즘 정신은 높이 평가할만하지만 구체적 현실과 역사적 경험을 외면하고서야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즉 영화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우발적이거나 무정부 상태의 평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정통성에 비춰 위험한 일이다.

전쟁은 우발적인 게 아니다. 6·25는 북에서 도발한 것으로 남북이 인본주의 정신에서 서로 얼싸안으려면 그들의 사과가 앞서야 한다. 또 KAL기 폭파와 미얀마 아웅산 테러 등에 대한 시인과 사과가 선결되지 않는 남북 화해는 모래위의 성이 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특히 북한의 오경필(송강호)중사를 옆집의 형같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감독의 의도는 황석영씨의 말처럼 “북에도 사람이 있었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 같다.

‘북에도 사람이 있었네’라는 말은 맞다. 오 중사같은 사람이 북에 얼마든지 있겠지만 권력의 상층부가 바뀌어야 한다. 북의 최고 통치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행정수반도, 의회 지도자도 아닌 군의 최고 권력자인 것이다.

◇ 北인권 다룬 영화도 나와야

이산가족이 1000만이 넘는데 분단 55년만에 서로 생사 확인도 못하고 서신 왕래도 없이 불과 100명의 이산 가족을 상봉시킨 정도로 ‘인도적’이라고 말하긴 이르다. 이같은 현실 속에서 이 영화는 막연히 휴머니즘에 기대고 있는 인상이다.

물론 이런 영화가 나온다고 해서 남한의 젊은층이 북한에 무조건 경도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한의 젊은층은 자본주의와 자유의 단맛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무정부적인 영화’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곤란하다.

더불어 ‘공동경비구역’이라는 영화가 있으면 문화적 이념적 밸런스를 위해 황장엽씨의 의견이나 북한의 인권문제를 다룬 영화도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

■ 이영애의 말

먼저 ‘좋은’ 영화를 보시고 의견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인의 기준은 연령이나 성별에 따라 다른 게 아니라 ‘개인적 취향’이기 때문에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소피 소령의 역할과 저의 가냘픈 얼굴 선 등이 안 어울린다고 하신 점은 납득이 됩니다. 저는 그 때문에 멜로물에 자주 캐스팅됐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외모의 한계를 내면의 연기로 탈피해보고 싶었습니다. 의장님의 말씀은 저한테 큰 공부가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남북문제를 휴머니즘의 시각에서 다룬 영화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공동경비구역JSA’는 그 가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의장님 말씀대로 사회 문제를 보는 시각은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전후세대는 통일의 당위성은 인정하나 통일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영화에서 ‘사상’을 떠나 ‘사람’을 생각하니까 다시한번 통일의 당위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젊은층이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합니다.

이의장님이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이런 다양한 의견이 회자되는 것부터 진정한 남북화해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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