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칼럼]양운덕/삶과 죽음은 '하나'

  • 입력 2000년 6월 16일 18시 50분


▼'인간과 죽음' 에드가 모랭 지음/동문선 펴냄▼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서는 외디푸스왕의 두 아들이 서로 싸우다가 죽는다. 안티고네는 조국을 배반한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매장하지 못하게 하는 국법에 맞서, ‘지하의 법’에 따라서 오빠를 손수 매장하고 자살한다. 안티고네의 (불법적) 매장은 오빠의 시체를 자연으로부터 문화로 편입시켜 ‘인간화’한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피곤에 지친 외무사원 그레고르가 어느 날 아침 흉칙한 벌레로 변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벌레는 가족의 혐오와 거부를 어렵사리 견디다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절망 속에서 조용히 숨쉬기를 그친 이 벌레를 발견한 하녀는 “그것이 뻗었다”고 전한다. 이 벌레는 ‘죽은’ 것이 아니라 ‘뻗었고’, 이것을 하녀가 치워버림으로써 끔찍한 이야기는 끝난다. 그레고르는 아무런 장례식도 없이 인간 세계에서 추방되어 죽음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것이다.

에드가 모랭(Edgar Morin)은 인간의 선조인 네안데르탈인이 죽은 자를 ‘매장’하는 점에서 ‘인간적’이라고 본다. 그들은 죽음을 배려하고 죽음이라는 ‘사실’에 인간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을 무시하고 숨기려고 한다. 인간은 자기가 결코 죽지 않는다는 듯이 ‘죽음에 눈먼’ 상태로 있다. 죽음에 대한 이런 무심함은 인간이 죽음에 적응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비교적 낯선 모랭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이다. 그는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사고를 통해 오늘날의 위기에 대처하고자 한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복잡성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는 대안을 모색한다.

모랭은 그의 ‘기초 인류학’에서 인간을 이성적인 동시에 미친 인간(homo sapiens/ demens)으로 본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이성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을 즐기고, 이미지를 창조하며, 놀이를 하며, 꿈을 꾸고 사랑하는 점에서 미친 인간이다. 인간은 복합적 존재이다. 이런 측면을 무시하고 이성과 비이성을 고립시켜 그 하나를 주장하는 것은 단순화하는 모델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모랭은 죽음을 복잡성의 틀로 이해함으로써 인간과 죽음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모랭은 삶과 죽음을 연결시킨다. 단순한 사고는 삶만 보거나, 죽음만 본다. 삶만 보는 쪽은 죽음을 기피하고 숨기면서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만 보는 쪽은 삶을 허무와 광기에 빠뜨린다. 모랭은 삶과 죽음이 하나로 뒤얽혀 있으며, 인간의 삶과 문화가 얼마나 죽음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지를 추적한다. 그는 인간의 역사 곳곳에서 다양한 시대의 문화와 종교 신화 세계관 등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여준다.

모랭은 ‘죽음의 인류학’을 통해서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 죽음을 무릅쓰는 태도, 인간을 죽이는 인간, 불멸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는 이것을 바탕으로 인간 종의 죽음과 개체의 죽음이 어떤 관련을 갖는지,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틀을 세계에 부여하면서 동시에 세계를 모방하는지, 죽음-부활의 모티브가 어떻게 다양하게 변용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는 죽음의 사회학, 종교학 등을 보여준 뒤에 ‘죽음과 싸우는’ 철학들이란 관점으로 철학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적 지혜로 죽음을 제압하면서 죽음 앞에서 자기 결정을 보여주고, 스토아학파와 에피큐로스 학파는 죽음에 무심하거나 죽음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죽음에 대항한다.

이런 죽음을 거부하는 철학은 근대 합리주의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것은 진보와 계몽을 앞세우는 전투적 삶이며, 아는 기쁨과 아는 자유를 위한 싸움으로 비합리적인 죽음-사고를 억압한다. 이는 헤겔에 이르러 완결된 개념 체계를 마련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죽음의 불안에 힘겹게 대결하는 근대인의 위기를 넘어서지 못한다. 지성이 파악할 수 없는 죽음이 진리를 전복시키면서 근대 문명의 꽃인 개별적 주체가 고독에 휩싸여 허무의 심연으로 추락하고, 불안과 신경증과 허무주의가 개인을 참여로부터 단절시키며 죽음의 강박관념으로 내몬다. 모랭의 발생적 인류학은 이렇게 인간을 통해서 죽음을 알고, 죽음을 통해서 인간을 알고자 한다. 인간의 역사는 삶의 질서와 죽음의 무질서가 맞물려 있다. 422쪽 2만3000원.

양운덕(고려대 철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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