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회의 새좌표]경영학

  • 입력 2000년 5월 1일 20시 03분


패러독스 경영, 경영 패러독스의 시대

“수평적 관계, 경험과 지식, 개인의 자율성, 협력적 관계, 비전의 중요성, 지나친 위계시스템의 위험성.”

현 시점에 어울리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1920년대 메리 파커 폴렛(Mary Parker Follett)의 주장이다.

“기업의 미래를 만들어내는 데는 모든 구성원을 참여시켜야 하고 그 미래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직의 정점에 있는 한 사람이 명령을 내리고 그것이 피라미드 계층구조의 아래로 흘러가면서 움직이는 시대는 지나갔다.”

역시 현 상황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20여년전에 앨러스테어 필킹턴 경(Sir Alastair Pilkington)이 한 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7000년전 수메르인들에게서 관리(management)의 기원을 찾고,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축과 로마제국에서 관리와 의사소통과 통제의 역할을 배우듯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원칙들이 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디지털 시대가 정확하게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경향은 속도가 대단히 빨라지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약해지며, 경제의 기본단위가 작아진다는 것 등이다. 실리콘밸리의 인터넷 장비제조기업 시스코(Cisco)는 이틀마다 결산을 한다. 궁극적으로 실시간 결산이 가능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공개된 정보를 기초로 투자를 비롯한 각종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것인데 그 정보의 신뢰성은 누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예전에는 물리적인 시장(market place)에서 거래가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손에는 잡히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시장공간(market space)에서도 거래가 이루어진다. 은행의 경우 예전에는 창구(시장)에서 돈이 실제로 왔다 갔다 했지만 이제는 시공간에서의 전자신호(electron)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기존의 대기업 중심에서 벗어나 분사(分社)와 외주(外注)가 성행하는 것처럼, 전 세계에 펴져 있는 작지만 능력 있는 기업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하나의 조직처럼 신속하게 움직이는 상황이 일반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경제의 기본단위가 궁극적으로 기업이 아닌 개인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와 같이 속도와 유연성이 중요하고 경쟁과 시장의 단위가 점점 작아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대기업은 없어질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기업 내외부에서 가장 뛰어난 역량을 가진 단위들과의 연계를 통해 소규모 기업처럼 움직일 줄 아는 기업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또한 모든 개인이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 회사 일을 내 일처럼 할 수 있는 문화와 보상제도를 만들어 줘야만 할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완전 독립채산이 된다면 우리 기업은, 우리 부서는, 나는, 여전히 필요한가”를 물어 볼 때다.

새 것과 옛 것이 충돌하는 현 시점에서 경영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 가지 공통적인 요소를 ‘패러독스’ 경영으로 부를 수 있겠다. 작으면서도 크게(분화/전문화와 동시에 네트워크화를 통한 집단화/거대화),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이윤성장을 희생시키지 않는 매출성장, 고품질이면서도 싸게, 윤리적이면서도 재무적 성과는 높게, 주문생산을 하되 대량생산의 비용으로(mass customization),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co-opetition), 기업간 거래를 하되 거래비용은 발생치 않게(가상기업). 이제까지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탈피하여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경영학은 어떤가? 경영관리, 회계, 재무, 마케팅, 생산, 경영정보시스템(MIS) 등 경영학의 각 세부영역은 전문화되고 세분화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 다시 정의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지금과 같이 분리되기보다는 한데 합쳐질 수 있다. 서로 겹치는 부분이 너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 디지털화는 어느 특정 영역의 주제가 아니라 경영학 전반을 관통하는 새로운 변화다. 경영현장에서는 1990년대 이미 전통적인 기능간의 경계를 없애라는 메세지가 전달됐다.

이제까지 말로만 돼 오던 학제간 연구 없이는 경영학이 변화하는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과를 올리기 힘들다.

김 언 수(고려대 경영대 교수)

※다음회는 ‘문학’으로 필자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김성곤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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