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메카로 가는 길」,조직적 불의맞선 여성의 우정

  • 입력 1998년 7월 5일 19시 54분


15년 동안 침묵을 지키며 낙타나 올빼미 아니면 반은 수탉이고 반은 남자인 기괴한 조각들을 만드는 일에만 몰두해온 늙은 과부. 게다가 그곳은 백인의 흑인 차별이 ‘하느님의 뜻’으로 인정되는 남아프리카의 사막지대였으니….

극단 독립극장이 무대에 올린 연극 ‘메카로 가는 길’(아돌 후가드 원작)은 이렇게 지도상의 메카로부터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웃으로부터 ‘정신나간 늙은 여자’로 조롱받는 노파 헬렌(전경자 분)에게 어느날 밤 도시의 친구가 찾아온다.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는데 난 암흑 속에 홀로 있어. 남은 빛이 없어’라는 그녀의 편지에 열두시간동안 차를 몰아 달려온 엘사(예수정). 헬렌에게는 딸이라고 해도 좋을 나이인 이십대후반의 여교사다.

헬렌의 고통은 이웃들이 자신을 양로원으로 보내려 한다는 것. 가장 가까운 친구인 마리우스목사(이현우) 조차 양로원행 서류에 그녀의 마지막 사인을 재촉하고 있다. 그래도 싸울줄 모르는 헬렌은 “메카가 끝나면 그땐 내 인생도 끝”이라며 절망에 빠진다. 메카는 그녀가 15년동안 조각을 만들며 꿈꾸어온 마음속 이상향.

용수철처럼 팽팽한 엘사는 헬렌에게 “싸워서 자신의 삶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사람들은 헬렌을 두려워만 하는 게 아니예요.아름답고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찬 당신 인생에다 돌을 던졌던 거예요. 너무나, 너무나 질투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던 거예요.”

한 인간의 존귀한 ‘예외적 삶’을 인정하지 못하는 집단의 비루한 획일성. 그 앞에 허물어지는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깊고 강인한 우정의 승리. 작품 ‘아일랜드’로 널리 알려진 남아프리카의 작가 후가드는 두 여성의 특별한 사랑을 통해 ‘어떤 조직적 불의에도 굴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그려낸다.

92년 국내 초연됐던 작품. 당시 헬렌을 맡았던 전경자교수(하버드대 동아시아문명 및 한국어 겸임교수)가 작품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해 번역 제작비지원 배우의 세 역을 도맡아 다시 무대에 올렸다. 엘사역의 예수정(한국공연예술아카데미) 마리우스목사역의 이현우(가톨릭대)도 모두 ‘교수님’들. 박철완 연출로 8월2일까지 성좌소극장. 화∼목 오후7시반 금∼일 오후3시반 7시반 02―745―3966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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