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 사내커플 늘고 있다…근무시간 늘며 「눈」맞아

  • 입력 1998년 7월 5일 19시 42분


‘파랑새는 가까이 있다.’

H투자신탁 영업부의 여사원 김모씨(28). 오랜 ‘싱글’ 생활을 청산하고 3월 연애에 돌입했다. 상대는 2년째 김씨가 마음을 열어줄 날만 하염없이 기다려온 같은 부서의 양모씨(30). 요즘 시대에 무슨 ‘배짱’으로 사내연애를 시작하느냐고? 김씨의 명쾌한 논리.

“올해초 멀쩡한 직장을 가진 남자들이 순식간에 정리해고되는 모습을 봤잖아요. 남자 말만 믿고 그 사람의 능력을 알 수 있나요. 내 눈으로 봐온 사람을 고르는 게 훨씬 낫지요.”

지난 겨울 IMF한파 뒤 ‘사내커플 중 한명은 감원대상 1호’라는 루머가 나돌았다. 사내연애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도 확산되는 듯했다.

정말 IMF시대는 사내커플을 줄어들게 했는가? 정답은 ‘사내커플은 줄지 않았다. 단지 IMF터널의 끝을 기다리며 숨죽일 뿐.’일반적 생각과는 달리 사내커플은 오히려 늘고 있다. 단지 ‘발각’되지 않도록 납작 엎으려 있을 뿐.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1일 2백명의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내연애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지난해 같은 시기의 56%에서 67%로 11%포인트 상승. 반대하는 사람은 17%에서 10%로 줄었다.

사내커플로 지난해 10월 결혼한 교보생명 홍보부의 탁용원씨(31). “올들어 회사내 커플이 50%가량 는 것 같습니다. 결혼은 미루고 있지만 숨겨진 커플의 숫자는 많아졌습니다.”

왜일까. 사랑은 국경도 넘고,경제난도 넘고, 정리해고도 넘기 때문에? 사내커플 본인들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여성의 경우 ‘경쟁력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식의 팽배가 주요원인인 듯.

1년전부터 사내커플인 삼성에버랜드 박모씨(22). “남자가 조직사회에서 상위 몇%에 속하는가, 즉 IMF시대의 ‘생존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습니다. 사내커플이 이 시대에 유리한 점이죠.”

남성의 경우 상대의 ‘생존가능성’ 예측보다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졌다는 것이 설득력있는 이유. 최근 사내연애를 시작한 K광고기획사 최영훈대리(32). “근무시간은 길어졌지, 월급은 줄었지, ‘새사람찾기’에 의욕을 잃었습니다. 새 여자에게 ‘초기투자’할 여력도 없었고요. 매일 야근하며 ‘그녀’를 차로 바래다주다가 정이 들었습니다.”

늘어난 사내연애가 ‘사내결혼’으로 골인하려면 올 여름과 가을의 ‘구조조정기’라는 막강한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할 듯. 사내커플 1년차라는 사실을 숨겨왔다는 L그룹 기획실의 유정은씨(25). “사내결혼의 최대 단점은 ‘포트폴리오’가 안된다는 점입니다. 올 가을에 두명이 동시에 잘리기라도 하면 어쩌겠어요. 또 남자쪽이 퇴사하고 여자가 남을 경우에도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겠죠.”

사회학자들은 사회구조가 고도화된 선진국일수록 사내커플의 비율은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96년 일본생명보험이 회사원 2천5백명을 조사한 결과 금융 보험 부동산업체 근무자 중 45%가 사내결혼으로 나타났을 정도.

LG커뮤니카토피아 연구소 김은미연구원(가족학박사).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 배우자의 선택조건도 ‘합리화’합니다. 배우자를 보는 시각에서도 거품이 빠지는거죠. 결혼적령기의 남녀가 보다 ‘검증된’ 상대를 찾다보니 가장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겁니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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