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들이여 이젠 집으로』…IMF한파, 아내와 『한잔』

  • 입력 1997년 12월 11일 19시 59분


「IMF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올 겨울엔 밤이 이슥해져도 술집에 「꾼」들이 별로 없다. 밤 10시쯤이면 거리가 한산하다. 그러나 고급술집 대신 집에서 친구나 아내와 술자리를 벌이는 이들은 늘고 있다. 송년회에서도 흥청망청 술을 마시는 모습은 보기 힘들 것 같다. 간소하게 식사로 끝내거나 부서장 집에서 갖는 모임이 주종을 이룬다. 서울 G백화점 판촉기획팀의 이모계장(32·서울 수유동)은 요즘 퇴근하면 곧바로 집으로 간다. 이씨는 『동료들과 술을 마셔도 흥이 나지 않고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대신 아내와 자주 술자리를 갖는다』고 말했다. 가계비를 줄이느라 등골이 휘는 아내, 살얼음 같은 직장생활을 견뎌가는 남편, 서로가 위로와 격려의 대상이다. 같은 사무실의 이모과장(38·경기 남양주시)은 친구들을 데리고 집으로 간다. 카드대금을 줄일 요량으로 부인이 제안한 것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 B제과 국제사업본부 김모과장(39·서울 상계동)은 한정식집에서 외국 바이어를 접대해오다 최근에는 집으로 초대한다. 그는 『최소 40만원은 들던 비용이 10만원대로 줄었고 손님들도 정성을 느낄 수 있다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가정 술자리」가 늘어나자 술자리용 식품류 매상이 오르고 있다. 서울 백화점들의 전체매출은 불경기 탓으로 격감하고 있지만 횟감이나 냉동해물탕 즉석탕수육 등 안주감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30∼50% 늘고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송년회를 점심이나 저녁식사 만으로 때우거나 구내식당에서 열고 있다. 친목 모임이나 각종 단체도 마찬가지. 호텔 예약을 취소하고 작은 카페나 대중식당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 H호텔연회장의 경우 지난해 12월 15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올 12월에는 행사예약이 줄고 예약취소가 늘어 9억원으로 목표를 낮췄다. 한국실내건축가협회는 서울 R호텔에서 송년회를 갖기로 했다가 예술의 전당 홀로 장소를 바꿨다. 남은 돈은 불우이웃돕기성금으로 기탁할 예정. 연세대보건대학원 고위정책과정 이수자들도 S호텔에서 사은회를 열기로 했다가 교내 시설을 빌리기로 했다. 수출회사인 성한물산은 송년회 장소를 용평스키장에서 회사 근처 음식점을 바꿨다. 이 회사 이용우이사는 『형편이 예년보다 어렵지는 않지만 모두들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우리만 흥청거릴 수 없다는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송년회를 안 여는 곳도 있다. 매년 호텔에서 송년회를 가져온 경기 수원시 삼성전자 비디오미디어사업부도 그 가운데 하나. 회사 지원금도 끊겼고 회사를 그만둔 직원이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 서울 그레이스백화점은 노사협의회에서 송년회를 열지 않기로 결의했다. 송년회를 집들이나 아이 백일잔치 등과 겸해 열기도 한다. D보험사 서울중부지점은 최근 이사한 K지점장집에서 송년회를 갖기로 했다. 롯데백화점 홍보팀의 김홍철씨는 지난 토요일 친구들을 부부동반으로 집으로 초대해 백일잔치 겸 송년회를 열었다. 손님들은 술과 간단한 안주를 사왔고 떠날 때는 「자리값」으로 2만원씩을 냈다. 〈김진경·이성주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