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시인選」2백번째 시집 펴내

  • 입력 1997년 5월 8일 09시 01분


「혼자 몰래 마신 고량주 냄새를 조금 몰아내려/거실 창을 여니 바로 봄밤/(…)/비릿한 비 냄새/겨울 난 화초들이 심호흡하며/냄새 맡기 분주하다/형광등 불빛이 슬쩍 어두워진다/화초들 모두 식물 그만두고/훌쩍 동물로 뛰어들려는 찰나!」시인 황동규의 「몰운대 행」중 「봄 밤」의 일부. 지난 78년 황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로 대장정을 시작한 「문학과 지성 시인선」이 90년 「몰운대 행」을 1백1번째로 펴낸지 7년. 다음주 문학과지성사는 모든 1백번대 시집에서 1편씩의 시들을 모아 2백권 기념 시선집을 펴낸다. 문지 시인선이 태동한지 20년만의 일. 4.19세대의 시민의식부터 각종의 실험시들을 거쳐 최근의 신세대 서정까지도 쓸어안아 왔다. 문지 시인선은 그간 김수영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을 휩쓸었다. 독자들로부터도 많게는 10만∼20만부까지 큰 호응을 받았다. 여기에는 오규원 시인이 디자인한 시집의 외장, 김영태 이제하 시인이 그려온 각 시인의 캐리커처 등 문지 시인선만의 개성도 큰 몫을 했다. 90년대와 동반한 1백번대의 시집들은 지나온 우리 시대 정신의 거대한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다. 비감한 눈으로 바라보는 생명과 경외감의 소멸, 근엄한 권위의 표정을 야유하는 육체의 시학, 물질문명을 굽어보는 신성한 초월의지, 자연에의 신뢰와 삼라만상의 화합을 투시하는 원형의 세계관 등이 그것이다. 기념 시선집과 함께 나올 김혜순의 1백99번째 시집 「불쌍한 사랑기계」는 절망과도 완벽하게 대면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비속화를 음각하고 있다.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일본과 구미의 경우 시들의 소멸 시대를 맞고 있다』며 『절판 없는 문지 시인선의 전진은 우리 독자들 시심의 뒷심을 받고 있다. 우리는 「시의 공화국」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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