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사람들/中윈난성모쒀族]모녀상속-어머니姓 따라

  • 입력 1997년 5월 8일 07시 55분


누군가는 과테말라의 아티룔란호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감히 투구후라고 말한다. 그 호수는 중국대륙의 남서부 변방인 쓰촨(四川)성 아래의 시짱(西藏)자치주 옆에 있는 윈난(雲南)성에 있다. 한국면적의 네배나 되는 이곳의 성도는 쿤밍(昆明). 「봄의 도시」라 불리는 이곳에서 중국민항기를 타고 북서쪽으로 한시간 가량 날아가면 이름도 고운 리장(麗江)현이 나온다. 여기서 다시 자동차로 갈아 타고 동북방으로 에누리없이 아홉시간을 달려야 투구후에 당도한다. 호수면의 해발고도는 2천6백85m로 백두산 천지보다 위에 있다. 이곳으로 오는 해발 2천m의 산길은 흙보다 돌이 더 많은 험로. 경치는 좋지만 터덜대는 자동차에 실려 오다보면 엉덩이에 웬만큼 살이 붙은 사람마저도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가 된다. 두번 다시는 올 길이 아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지고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 졸음이 엄습해 올 그때쯤에 운전사가 『칸(看)』하고 지르는 소리(중국어로 「보라」)에 정신을 차렸다. 차창 밖에 투구후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낙조의 붉은 햇살에 반사되는 호수면의 오묘한 빛깔, 그것을 밑그림 삼아 자태를 뽐내는 눈 덮인 스쯔산(獅子山)의 위용은 장관이었다. 모쒀족은 이 호수 주변에 살고 있다. 주민수는 1만명 정도. 모계사회인 이곳에는 아예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다. 모든 게 여자 중심이다. 아이가 태어나도 어머니 성을 따르고 유산도 모녀간에 상속된다. 남자는 무력한 존재다. 그러면 남녀간에 어떻게 지낼까. 「아쑤혼」이라는 프리섹스 타입의 관습이 있다. 남(아쭈)과 여(아샤)가 적당히 연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도 여자가 중심이다. 약속한 날 밤이 되면 아쭈가 아샤의 집을 찾아가 방문을 두드린다. 그때 아쭈는 아샤가 정표로 준 모자를 쓴다. 아샤는 차와 술, 담배를 준비해두고 기다린다. 재미있는 것은 젊은 아쭈가 먼저 왔더라도 고참 아쭈가 나타나면 말없이 자리를 내주고 나가는 관습. 긴 밤을 보낸 아쭈는 동트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간다. 그 집 역시 아버지는 없고 대신 가장인 어머니와 누이만 사는 여인천하의 가정이다. 참으로 기이한 연애요 애정생활이다. 이 아쑤혼은 여자에게만 유리하게 되어 있다. 인기 있는 여자는 평생 수십명의 아쭈와 성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묵은 마을의 촌장 여동생 츠라무는 나이가 스물네살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아쭈가 여덟이나 된다고 했다. 모쒀족 여자가 아쑤혼을 치를 수 있는 나이는 13세. 「치마입기 축제」라는 재미있는 성년식을 치르고 나면 그때부터 여인 대접을 받고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다. 남자 볼 권리가 부여되는 셈이다. 이들도 우리만큼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하다. 밥 지을 때도, 고기잡이 나갈 때도 틈만 나면 노래를 부른다. 모두가 라마교도라서 한달 한차례 투구후 근처 사원에 참배 드리러 갈 때도 모쒀족 여인들은 지칠줄 모르고 노래를 부른다. 화창한 봄날 숲속에서 피리와 노래소리가 흘러 나오면 이건 틀림없이 남녀간의 사랑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징표다.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는 종족. 이들의 생활은 소박하나 아름답다. 나를 말등에 태우고 마을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준 18세의 파라마초가 그러하다. 여물통 모양의 나룻배를 타고 투구후 유람을 하면서도 그녀는 자못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런 삶을 배우고 싶었다. <연호택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