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기용]중국판 MZ세대의 두 얼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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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링허우’ ‘링링허우’ 등 애국주의 주도
불평등 심화로 한순간에 당국에 등 돌릴 수도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세대는 시대의 특징을 반영한다. 한국에서도 ‘586세대’ ‘MZ세대’라는 세대 분석을 통해 시대를 설명하고 규정한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요즘 가장 주목받는 세대는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생)’와 ‘링링허우(零零後·2000년대생)’다.

주링허우와 링링허우가 중국 공산당 핵심 지지층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20, 30대인 이들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철저히 무장돼 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때 가슴 철렁했던 중국 공산당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을 강화한 첫 세대인 것이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아이들에게 과거 중국이 당한 수모의 역사를 교육해 민족주의의 씨앗을 뿌렸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로 공산당 일당독재의 정당성을 가장 위협받았던 순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대체한 것이다. 이 민족주의가 응집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애국주의가 공고화됐고, 공산당이 통치하는 나라에 대한 애국주의는 자연스럽게 다시 공산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여기에 경제적으로 개혁개방의 성과까지 더해지면서 “공산당이 없다면 신중국은 없다(沒有共産黨 就沒有新中國)”는 말이 젊은층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가 됐다. 경제적 성과가 없었다면 공산당에 대한 지지가 이렇게까지 높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주링허우, 링링허우는 학창 시절 중국 경제성장의 혜택을 고스란히 입은 세대다. 선생님들은 “공산당 덕택에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고 가르쳤다. 이들의 이런 심리를 가장 잘 파고들어간 사람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다. 시 주석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중국몽(中國夢)’이란 말은 주링허우, 링링허우 세대의 피 끓는 가슴을 겨냥한 말이다.

하지만 최근 공산당이 이룬 경제적 성과가 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 주링허우, 링링허우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셋째 아이 출산 허용’이다. 얼마 전 중국 공산당은 당면한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금지해 왔던 셋째 아이 출산을 허용했다. 그런데 이 조치는 경제적 성과가 특정 계층에 집중되고 불평등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아이 출산은 고사하고 취직과 결혼조차도 힘든 현실을 특권 계층인 공산당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면서 공산당에 대한 반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주링허우, 링링허우의 ‘탕핑({平)주의’다. 일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으며 집이나 차를 사지 않고 최소한의 생계비로 가만히 누워 지낸다는 의미다. 중국에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젊은 세대가 있다면 또 다른 젊은 세대들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드러누워 저항하는 탕핑주의가 퍼지는 것이다.

탕핑주의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중국이 경제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장려하고 있는 일과 소비에 대한 태도, 행동양식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링허우, 링링허우 세대에서 나타나는 애국주의와 탕핑주의의 이중성은 급속한 경제성장이 가져온 양면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지금 당장은 주링허우, 링링허우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이들을 보듬어 안을 정도의 실력이 없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반(反)공산당 세력의 선봉이 될 수 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중국판 mz세대#애국주의#불평등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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