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유재동]그들의 헌신을 기억하는 방법

유재동 뉴욕 특파원 입력 2021-07-06 03:00수정 2021-07-0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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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20주년’ 美의 공직자들 희생 추모 우리는 영웅들에 충분히 보답하고 있나
유재동 뉴욕 특파원
지난달 동네를 걷다가 제복 입은 사람들이 100여 명 모인 어떤 행사장을 마주쳤다. 도착하니 마침 식순이 끝나고 참석자들이 일제히 대로변으로 향했다. 그곳의 전신주 한 곳을 감싸던 가림막이 벗겨지자 ‘루이스 알바레스 웨이(Way·길)’라는 표지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연찮게 가까운 곳에서 도로명 제막식을 보게 됐다.

알바레스가 어떤 사람인지 바로 검색해 봤다. 뉴욕의 거리 이름을 당당히 차지한 그는 유력 정치인이나 성공한 사업가가 아닌 경찰관이었다. 쿠바 이민자 출신으로 젊어서부터 그 고되고 험하다는 뉴욕경찰(NYPD)에 합류해 마약단속반, 폭발물전담반 등을 거쳤다. 그러다 2001년 9·11테러가 터지자 그라운드제로에 파견돼 수많은 시신과 뿌연 먼지, 각종 유해물질이 가득한 그곳에서 석 달을 생존자 구조에 바쳤다. 그로부터 15년 뒤 그는 당시 구조 작업의 후유증으로 직장암 진단을 받았고 투병 끝에 2년 전 사망했다.

그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순직 경관의 이야기 그 이상이었다. 알바레스는 죽기 불과 3주 전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워싱턴 의회에 출석했다. 정부가 9·11로 건강이 악화된 피해자에게 의료비 지원을 줄이려 하자, 자신과 같은 처지의 후배 경관들을 위해 기금 존속을 호소하고 나섰다. 그는 “곧 69번째 항암치료를 받는다. 나는 운이 좋아 지원을 받았지만 나 같은 사람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그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걸 두고 보지 않겠다”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결국 알바레스의 사망 한 달 뒤 기금 운용을 2090년까지 연장하는 법이 그의 이름을 따서 제정됐다.

9·11 당시 현장에서 403명의 소방관과 경찰이 희생됐다. 또 훨씬 더 많은 수가 알바레스처럼 각종 후유증으로 피해를 입었다. 그만큼 위험한 곳이었지만 이들은 그저 자신의 일상적인 임무라고 생각하고 불구덩이에 몸을 던졌다. 알바레스는 생전에 “그라운드제로에 도착했을 때 세상에 거기 말고는 아무 곳도 가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얼마 전 쿠팡 물류센터에서 숨진 김동식 소방령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인류애나 이타심이 아니라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겠다는 우직한 책임감과 성실함이 이들로 하여금 죽음마저 무릅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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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들의 이런 헌신은 나라의 극진한 대우와 존중이 있기에 가능한 측면이 있다. 미국에서 선거 유세장이나 스포츠 경기장에 가면 참전 군인이나 소방관이 대중 앞에 소개되고, 이들이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박수 받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하물며 순직자에 대한 예우는 상상을 초월한다. 올해 초 의회 난입 사태로 목숨을 잃은 40대 경관 브라이언 시크닉은 의회 로턴다홀에 1박 2일간 안치됐다. 그의 유해 앞에 대통령과 부통령 부부는 물론이고 의회와 군 지도부가 모두 나와 고개를 숙였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9·11 20주년을 맞는 올해 더 무르익고 있다. 팬데믹으로 행사가 대폭 축소됐던 지난해와 달리 미 전역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수많은 추모 이벤트가 예고돼 있다.

최근 마이애미 해변의 아파트 붕괴 현장을 찾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구조대원들의 희생을 높이 평가하며 이런 속담을 소개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약간의 소방관을 더 만들었다.’ 자신을 내던져 사회에 헌신하는 공직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제복 입은 영웅들’의 희생에 우린 충분히 보답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모든 순직자들의 명복을 빈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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