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유재동 부장

동아일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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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현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모두 전해드립니다.

jarrett@donga.com

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칼럼56%
금융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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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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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3%
국제인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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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유재동]‘5000원 원피스’의 한국 공습

    지난주 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워싱턴의 대표적인 친중 유화파다.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 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이롭게 한다고 믿는다.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장 시절 그는 중국에 손을 내밀어 훗날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중국을 글로벌 무대로 불러내면 민주주의의 가치를 받아들여 서방에 동화되고, 미국은 중국의 값싼 상품을 수입해 소비자 후생(厚生)이 증가할 것이란 계산이었다. 그의 전략은 일부 현실이 됐다. 미국의 의도대로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하자, 글로벌 경제는 중국의 저가 상품 덕분에 고성장-저물가의 호황을 누렸다.세계 경제 위협하는 中의 과잉생산 이들의 공생은 영원하지 못했다. 중국의 시장 잠식으로 제조업 기반이 흔들린 미국에서는 세계화가 한창이던 10여 년 동안 수백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파국의 도화선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미국이 비틀거리는 사이 중국은 고부가산업 발전의 사다리를 타며 태평양 건너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위협했다. 그런 위기의식에 탄생한 트럼프 정권은 드높은 관세 장벽을 치며 중국산 제품에 빗장을 걸었고, 뒤이은 바이든 행정부도 대중 압박에 온 힘을 다했다. 옐런 장관은 이번 방중에서 “중국이 과잉 생산을 억제해야 한다. 미국의 신산업이 파괴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놨다. 중국을 세계화로 이끌며 전 세계에 ‘메이드 인 차이나’의 홍수를 일으킨 장본인이 한 말이라고는 믿기가 힘들다. 요즘 ‘알·테·쉬’로 상징되는 초저가 중국산의 공습은 20년 전과 섬뜩한 데자뷔를 이룬다. 중국 기업들은 자국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상품을 헐값에 해외로 쏟아내다시피 하고 있다. 한국이 ‘디플레 수출’의 전초기지로 활용된다는 점도 당시와 비슷하다. 하지만 따져 보면 지금의 양상은 이전과는 차이점이 오히려 더 많다. 우선 원인부터 다르다. 과거엔 ‘은둔의 나라’ 중국의 글로벌 무대 데뷔로 저가 제품들이 자연스럽게 시장에 쏟아졌지만, 지금은 내수 시장과 부동산 침체로 자국에서 안 팔리는 재고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성격이 짙다. 중국의 불황은 우리가 싸구려 중국산의 공습에 대응해 우리 제품을 중국에 내다 팔 여지가 적다는 걸 뜻한다. 실제로 작년 대중 수출이 급감하면서 한국은 1992년 수교 이후 처음 중국에 무역적자를 냈다. 중국의 산업구조도 변했다. 2000년대 초반엔 주로 저숙련·경공업 기반의 중국산이 세상에 풀렸다면, 지금은 전기차 배터리 석유화학 등 한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주요 산업에서 초저가 제품이 범람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지니 ‘2차 차이나 쇼크’의 충격도 배가될 수밖에 없다. 값싼 중국산이 밀려들면 당장 해당 국가의 소비자들은 물가가 낮아져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가격 경쟁에서 밀린 자국 기업의 실적이 추락하고 일자리 감소와 내수 침체, 산업 기반 붕괴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런 뼈아픈 경험이 있는 미국은 “이번에는 당하지 않겠다”며 중국 상품에 대한 고강도 견제에 나설 채비다.값싼 중국산의 홍수, 더는 축복 아냐 주요국의 철벽 방어막에 판로가 막힌 중국은 먹잇감을 다른 주변국에서 찾고 있다. 요즘 한국이 그 타깃이다. 알리나 테무 앱에서는 2000원짜리 무선 이어폰, 5000원짜리 원피스 등이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우리를 현혹하지만, 개중에는 품질도 형편없고 발암물질만 듬뿍 함유된 엉터리 제품들이 무더기로 포함돼 있다. 한때 우리 경제 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중국은 이제 이웃나라의 산업 생태계와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나라로 돌변했다. 값싼 중국산의 홍수에 기업도 정부도 소비자도 바짝 긴장해야 한다.유재동 경제부장 jarrett@donga.com}

    •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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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랗게 질린 동학개미, 美로 ‘주식 이민’

    “제 주식 창을 보세요. 미국은 정확히 빨간색, 한국은 파란색이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누가 미쳤다고 한국 주식을 사겠습니까.” 30대 여성 직장인 최모 씨는 자신이 투자했던 국내 주식만 생각하면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2, 3년 전 매입한 네이버와 삼성전자 같은 국내 대표주의 주가가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깊은 수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최 씨는 “한국 주식은 너무 빠져서 이젠 팔지도 못할 지경”이라며 “앞으로 여윳돈이 생기면 무조건 미국 주식 위주로 투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주식 저평가) 현상이 장기화되고 새해 들어 국내 증시도 깊은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한국 증시를 등지고 미국 등 해외로 방향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이 같은 투자자들의 증시 이탈 현상은 한국 경제와 국내 기업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약해진 결과로 풀이된다. 투자자들이 한국을 떠나게 되면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올라가고 금융 시장 불안이 확산되는 등 경제 전반에 부작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31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올해 첫 달인 1월 2∼30일 국내 개인·기관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에서 2조4171억 원가량을 순매도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증시에서는 8215억 원에 이르는 주식을 사들였다. 국내 투자자들의 이런 투자 양상은 새해 국내 주가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 기간 삼성전자(―5.4%)와 SK하이닉스(―3.3%) LG에너지솔루션(―12.3%) 네이버(―6.5%) 에코프로(―20.9%) 포스코퓨처엠(―29.2%) 카카오(0%) 등 국내 반도체와 이차전지 대형 기술주 7개는 평균 ―11.1%의 수익률을 보였다. 반면 미국 증시에서 일명 ‘매그니피센트(Magnificent) 7’이라고 불리는 대형 기술주 7인방(애플·알파벳·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테슬라)의 한 달 평균 상승률은 5.2%였다. 각 종목에 100만 원씩 총 700만 원을 투자했다면 한국 주식 7개에 투자했을 때보다 미국 주식 7개에 투자했을 때 110만 원 이상의 수익 차이가 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내 증시는 31일도 코스닥이 2.40% 급락하며 두 달여 만에 800 선 아래로 추락하는 등 약세로 마감했다. 코스피도 1월 한 달간 6% 내리며 주요국 가운데 중국에 이어 최하위의 성적을 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증시는 최근 16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수가 거의 정체돼 있을 정도로 수익률이 좋지 않았다”며 “이런 것에 대한 실망이 누적돼 투자자들이 해외에서 대안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수년째 혁신기업 없는 韓 ‘고인물’ 증시, 과도한 규제도 발목 [‘주식 이민’ 가는 동학개미]경제 역동성 저하가 부진 핵심 원인정부 단기정책에 증시신뢰 하락 우려 실제로 국내 증시의 약세는 최근 들어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코스피는 2021년 6월 말 3,300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뒤 2년 7개월 만에 25%가 급락하며 길고 긴 약세장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뉴욕 증시의 대표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같은 기간 15%가 더 오르면서 연일 사상 최고 수준을 경신 중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 부진의 이유로 각국의 고금리 장기화와 국내 대표기업들의 실적 부진, 중국 경기 둔화 등을 주로 꼽는다. 또 낮은 주주환원율과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 같은 제도적 요인들이 동학개미 등 투자자들로 하여금 국내 증시를 외면하게 만든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신기술 혁신과 산업구조 재편이 더디게 진행되는 등 국내 경제의 역동성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증시 장기 부진의 핵심 이유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은 모두 5년 전인 2018년 말에도 증시에서 시총 상위에 속해 있던 기업들이다. 10년 전인 2013년 말로 범위를 넓혀 봐도 이 기간 중 새로 증시에 상장해 ‘톱10’으로 부상한 창업 기업은 셀트리온 하나뿐이었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 혁신기업들이 다수 쏟아지며 증시 판도가 숨 가쁘게 뒤바뀌는 동안 한국은 과도한 규제 등으로 인해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이 지체되면서 기존 대기업 위주의 ‘고인 물’이 증시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평가다. 개인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갈수록 커지자 정부는 지난 연말부터 갖가지 증시 부양책을 시리즈로 쏟아내면서 표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공매도 금지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주식 양도소득세 완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최근 거침없이 증시가 오르고 있는 일본을 벤치마킹해 상장사의 주주 가치를 높이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도입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올해 증시 개장식에 참석하는 등 새해 들어 두 번이나 한국거래소를 찾으며 증시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가 이처럼 다급하게 총선용 증시 대책을 남발하다가는 시장 원칙이 훼손되고 한국 증시의 신뢰도가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오히려 당국이 스스로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매도 금지가 단기적으로는 주가 부양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해 외국인 투자자 이탈 등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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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유재동]끈적한 물가와 험난한 경기… 우리 경제에 놓인 두 가지 덫

    요즘 미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것은 이른바 ‘끈적한 물가’(Sticky Inflation)라 불리는 현상이다. 물가가 지난해 최정점 수준에서는 다소 내려왔지만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아무리 기준금리를 올려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물가지표가 마치 높은 곳 어딘가에 달라붙은 듯 쉽사리 내려오지 않는 현상의 배경에는 임금과 주거비 상승, 높은 수요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이미 초고강도 긴축을 단행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는커녕 여전히 추가 긴축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 물가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오랜 기간 만성화되다 보니 미국에서는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라는 경기 슈퍼사이클이 저물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10년 전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강조한 이 개념은 수요·투자 부진에 따라 저물가, 저금리, 저성장이 길어지는 장기 불황을 나타낼 때 쓰였다. 그런데 올해 초 서머스는 자신이 주장했던 장기침체 가설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면서 스스로 이를 철회했다. 팬데믹과 공급망 붕괴라는 초대형 변수가 터지면서 나타난 세계 경제의 고물가-고금리 기조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흐름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경기를 묘사하는 단어 역시 부정적인 형용사들로 가득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경제 분절화, 인플레이션 등의 불안 요인을 거론하며 세계 경제가 ‘험난한 회복 과정’(A Rocky Recovery)에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세계 경제의 개선 흐름이 여전히 ‘취약’(fragile)하다고 진단했다. 경제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는 ‘그레이트 스태그플레이션’(Great Stagflation)이란 개념을 들고나왔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물가 재앙이 닥친다는 뜻이다. 고물가와 경기침체의 ‘이중 덫’에 걸려 있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대 초반으로 거의 2년 만에 가장 낮았지만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4%대에 ‘끈적하게’ 머물고 있다. 경기는 더 험난하다. OECD는 이달 반도체 수요 둔화와 수출 부진 등을 이유로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낮췄다. 세계 평균 성장률은 높이면서도 한국만 4차례 연속으로 전망치를 끌어내린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1%대 성장률을 당연시하면서 별다른 위기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초대형 쇼크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성장률이 2% 아래로 떨어진 것은 역사적 전례가 없고, 심지어 1%대 성장마저 위태롭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금은 세계 각국의 복잡한 지경학적(geoeconomic) 사정으로 인해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취약성이 한꺼번에 부각되는 일촉즉발의 시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식으로 안일하게 대응했다가는 글로벌 무대의 뒤안길로 순식간에 떠내려갈지도 모른다.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 202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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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포퓰리즘史에 길이 남을 제21대 국회 기재위원들[광화문에서/유재동]

    요즘 글로벌 경제를 시끄럽게 하는 미국의 국가부채 한도 협상은 그 기원이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미국 행정부는 나랏빚을 내야 하는 일이 생기면 항목별로 건건이 의회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전쟁비용 지출이 급증하자 의회는 전체 부채한도만 정해놓고 행정부가 그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빚을 낼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 이 한도는 지금까지 전쟁이나 경제위기가 있을 때마다 여야 협상을 통해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올해도 한도 인상 여부를 놓고 정치권의 기싸움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이처럼 본래 정부 지출을 원활히 해주기 위해 시작된 부채 상한제는 지금은 반대로 정부의 과도한 나랏빚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의회가 한도를 늘려주지 않으면 연방 정부는 공무원 월급을 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채 원리금을 지급하지 못해 디폴트에 빠지게 된다. 정부는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평소 예산 편성과 지출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 밖에도 재정 지출이 수반되는 법안을 제출할 때 반드시 재원 조달 방안을 함께 제시하는 페이고(PAYGO) 제도 역시 법으로 명문화했다. 미국 등 선진국은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이처럼 이중 삼중의 ‘방파제’를 쌓아왔다. 미국의 디폴트 위기는 워싱턴 정가의 난맥상과 극심한 정쟁의 상징일 수도 있지만 뒤집어 보면 건전재정의 절실함을 정부와 의회가 얼마나 잘 인식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같은 강대국도 기축통화국도 아닌 한국은 재정 누수를 막을 방파제도, 급증하는 나랏빚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에 대한 위기의식도 없다. 1000조 원을 넘어선 국가채무가 지금도 1분에 1억 원씩 늘어나고 있지만, 국회는 전 세계 100여 개국이 운영하고 있는 재정준칙 도입 법안을 31개월째 뭉개고 있다. 여야 의원들의 최대 관심은 어떻게 하면 나랏빚을 줄일까가 아니라 반대로 어떻게 하면 나랏돈을 더 쓰는가에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들은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지역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기준을 완화하려 했고, 얼마 전에는 건전재정 사례를 공부한다면서 혈세를 들여 유럽에 열흘간 출장을 다녀왔다. 그래 놓고 이들은 귀국 후 처음 열린 법안 심사 회의에서 재정준칙을 가장 마지막 안건으로 배치하며 사실상 고의로 논의를 회피했다. 그러면서 돈을 쓰자는 법안은 무차별적으로 발의한다. 본보가 국회 계류 법안들을 분석해봤더니 정부 재정이 지출되는 법안 497개의 추계 비용은 418조 원으로 집계됐다. 나라 예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규모다. 재정준칙은 연간 재정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줄이자는 것으로 전 세계 모든 선진국이 보편적으로 도입한 원칙이다. 또 경제위기 같은 급박한 상황에는 적용 예외가 되는 만큼 어느 정도 융통성도 갖췄다. 이런 기초적인 장치마저 거부하는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채무에 눈을 감고 나라 살림이 거덜 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누군가가 한국 정치 포퓰리즘의 역사를 주제로 책을 쓴다면 이번 국회 기재위는 당당히 한 챕터를 차지하고도 남을 것이다.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 20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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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요금 결정, 계속 이대로 정치에 휘둘리게 둘 수 없다[광화문에서/유재동]

    유권자의 표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나라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국정과제는 가급적 정권 초기에 단행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현 정부도 인수위 시절부터 연금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재정준칙 마련을 약속하는가 하면, 전기료 원가주의를 강조하며 요금 정상화의 군불을 땠다. 집권을 앞두고 국정 운영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을 때라 가능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이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이행 또는 진전된 것이 없다. 이 정부에 지난 1년은 무엇이 잘못됐던 것일까. 이 과제들의 공통점은 필요성은 거의 누구나 동의를 하지만 정치에 막혀 해법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를 의식해 여론 눈치를 보다가 개혁 시기를 놓치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 전기요금의 사례를 보자. 다른 선진국은 발전 원가를 요금에 그대로 반영하는 데 반해 한국은 민생을 이유로 역대 정부에서 인상을 계속 억제해 왔다. 그러다 보니 한전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발전업체로부터 ‘100원에 전기를 사다가 70원에 파는’ 자해(自害)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한전은 무려 32조 원의 손실을 냈다. 일반 사기업이었으면 진즉에 파산하고 공중 분해됐을 규모다. 공기업 한전의 천문학적 부실은 결국 세금으로 메워야 하고 나중에는 더 큰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전기 과다 소비가 에너지 수입 증가와 무역적자 누증, 환율 상승을 통해 경제에 이중 삼중의 충격을 준다는 점도 명백한 사실이다. 이 정부도 그 점을 인식하고 작년부터 올 초까지 전기요금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왔다. 하지만 인상 폭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올 2분기엔 아예 인상 결정을 보류해 버렸다. 총선이 다가오는 와중에 물가상승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을 걱정했던 것이다. 이런 난제는 강력한 리더십이 정면 돌파하며 풀어야 하는데 그런 기대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동안 대통령은 물론이고 총리나 부총리 누구도 총대를 메고 요금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추경호 부총리는 도리어 “(전기요금은) 당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할 부분”이라면서 ‘경제사령탑’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마저 보였다. 여당은 마치 부실의 주된 원인이 방만 경영에 있는 양 “한전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만을 강조하며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기 바쁘다. 전기료 대응의 패착은 이 문제를 정치에 휘둘리도록 방치했다는 점이다. 정교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결정돼야 할 사안에 정무적 판단이 깊숙이 개입되다 보니 정책 결정은 계속 미뤄지고 아무도 이를 책임지지 않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사람을 탓할 것 없이 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임기가 보장된 독립성 있는 인사들로 매 분기 전기요금을 책정하는 위원회를 꾸려 그 결정을 정부가 구속력 있게 받아들이게 하고, 발전원가의 변화를 요금에 일정 비율 이상 반영하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만일 가파른 요금 인상으로 생계가 곤란해지는 저소득층이 생긴다면 정부가 선별적으로 도우면 된다. 지금은 지난 1년의 시행착오에서 배우고 발상의 전환을 이뤄 나가야 할 때다. 우리나라 최대 공기업이 버틸 여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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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인터뷰]“정부의 공공요금 통제와 금리개입, 반복되면 심각한 부작용”

    《“정부의 가격 통제나 금리 개입은 한시적이어야 합니다. 자꾸 반복되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올해 2월 53대 한국경제학회장에 취임한 황윤재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전기요금 등 가격 통제와 시중은행에 대한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대해 언급하며 당국의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상황이 긴급한 경우 ‘비상용 카드’로 쓸 수는 있어도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개입은 반드시 시장 왜곡 같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황 교수는 “우리나라는 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어 노동시장 개혁과 유연화가 필요하다”면서 한국 경제 최대 리스크로 1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무역적자와 가계·정부 부채, 고령화 등을 꼽았다. 또 최근 금융 부문의 위기에 대해서는 “비은행 금융기관 중심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위험이 커져 경제의 뇌관이 됐다”면서 “PF 위기는 레고랜드 사태처럼 한 번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황 교수는 국내에서 대표적인 계량경제학자로 꼽힌다. 이달 초 그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무엇인가. “단기적으로는 13개월째 이어지는 무역적자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중심으로 수출이 많이 감소하고 있다. 또 가계부채 측면으로는 자영업자의 채무 상환 능력이 크게 저하되고 있다. 고금리 와중에 변동금리 대출 비중도 높아서 이것이 우리 경제 운용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 부채 역시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때문에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 같은 비(非)기축통화국은 재정 건전성 악화가 거시경제 안정성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무역적자 행진이 외환위기 이후 최장 기간인데, 이를 얼마나 심각하게 봐야 하나. “물론 지금은 금융기관이나 정부 재정이 비교적 건전하기 때문에 무역적자가 이어진다고 해서 1997년 외환위기 같은 사태가 재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나중에 세계 경기가 회복된다고 해서 적자가 줄어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 세계화 시대에는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을 우리가 수출하며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지정학적 위기로 세계가 분절화되고 공급망에 문제가 생긴 상황에서는 경기가 좋아진다고 무역수지가 개선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고령화로 생산연령 인구가 급감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잠재성장률은 앞으로도 계속 하락할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예측에 의하면 노동 공급의 감소로 2050년에는 성장률이 0.5%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 위기에 대처하려면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노동시장 개혁과 유연화가 필요하다. 또 대학 규제 완화 등 교육 혁신을 해야 하고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이민 정책을 통해 고숙련, 고학력 인구도 적극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물가 흐름은 어떻게 보나. 현재 한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인가. “기준금리를 올려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 물가 오르는 속도는 낮아지는 추세다. 지금은 물가상승률이 둔화되고 경제성장률이 내려가는 상황이라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경기침체 국면에 가깝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은 큰 부실이 없었는데도 유동성 문제나 시장의 공포심리로 인해 파산했다. 한국 금융회사들도 이런 위험이 있나. “현재 비은행 금융기관 중심으로 부동산 관련 대출(PF)의 상환 위험이 커지며 뇌관이 되고 있다. 이런 곳의 재무 건전성에 의심이 생길 경우 미국처럼 모바일 뱅킹을 통해 예금보호한도 초과 부문은 신속한 예금 인출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우리나라 부동산 관련 대출은 채권, 주식 등 자본시장과 연계성이 높아서 지난 레고랜드 사태처럼 한 번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다. 또 전기료 인상이 계속 연기되면 한전채 발행이 늘어나 회사채 시장의 자금이 경색될 우려도 있다. 다만 이런 게 전반적 금융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겠다며 당국이 추진하는 각종 방안은 어떻게 보나. “서민이 어려우니 고통 분담을 호소하는 차원에서 나온 듯한데 은행 산업의 경쟁을 유도하는 방향 자체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소규모 은행의 진입이 시중은행 과점 체제에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예대금리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돼야 하고 정부는 자본시장 경색 같은 시장의 실패가 나타났을 때만 개입할 수 있다. 개입은 선별적이고 단기적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자본시장의 왜곡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 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목표와도 상충할 수 있다.” ―KT나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에서 관치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나 정치권의 인사 개입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고 그 결과 전문적이고 유능한 경영진이 구성돼 기업 성과를 높인다면 그 개입은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인사 개입이 관례적으로 이뤄지고 CEO 선임의 투명성에 문제가 생긴다면 경영 효율성이 저하되고 주주도 손해를 볼 것이다. 정부는 민영화된 기업 경영의 주체가 되면 안 된다.” ―정부의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구조 개혁 추진 의지는 어떻게 보나. “개혁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공감하고 있다.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것을 추진할 리더십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도 내년 총선 때문에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완전하게 달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정부에서 시작의 단추는 끼워야 한다. 장단기 목표를 명확히 나눠서 최소한 할 수 있는 것, 최대공약수를 먼저 찾아서 그것부터라도 지금 해야 한다. 정확한 통계와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게 있나. “가령 노동 개혁의 경우 고용이나 근로시간 유연화는 어려울지 몰라도 호봉제를 성과급제로 바꾸는 임금 개혁은 비교적 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연금 개혁도 직역연금 통합 같은 구조 개혁은 장기 과제일지 몰라도 보험료율 인상 같은 모수 개혁은 어느 정도 합의가 되고 있으니 이런 논의는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정부의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이나 생필품 가격 통제는 어떻게 보나. “가격 통제는 인플레이션이 급속히 악화될 경우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도 있다. 시장 실패가 있다면 적절한 개입이 있어야 한다. 다만 가격 통제는 한시적이어야 하고 통제가 반복적이고 지속적일수록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가격 왜곡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가격 통제 논란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인가. “원가 상승 요인을 정기적으로 심사하고 이를 공공요금에 반영하는 독립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공공요금 가격을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정부가) 무시할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된다.” ―미래를 대비해 한국의 산업 구조는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하나. “높은 대외의존도를 감안했을 때 무역 품목이나 대상국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은 한국에 큰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탈세계화 추세 속에서는 무역 대상국을 다변화하고 대체 불가능한 기술력을 보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력 산업도 반도체 등 일부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이래서 기초과학 육성이 중요하다. 기초과학 역량이 있으면 산업 지형이 갑자기 바뀌어도 이에 대응하고 따라가는 게 가능하다. 미국도 기초과학이 튼튼하니까 팬데믹이 터지자마자 새로운 백신을 바로 만들어내지 않았나.” ―향후 5∼10년 뒤 글로벌 경제 향방은 어떻게 될까. “미중 갈등과 세계 경제의 분절화 경향이 심화되면서 과거 세계화 시대 교역을 통해 가능했던 저물가 시대로 복귀하는 것은 어려워질 것 같다. 각국의 기술 장벽이 형성되고 세계 경제 효율성도 상당히 저하될 것이다. 한국은 압도적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이런 환경에서 창출될 수 있는 시장 공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두 거대 진영과 안보 면에서 대립하지 않고 활발한 경제적 교류가 가능한 시장, 특히 아세안 국가들을 무역 파트너로 개척할 필요가 있다.”황윤재 교수 약력△1960년생△198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91년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2003∼2005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2005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2020년 서울대 석좌교수 임명△2023년 53대 한국경제학회장 취임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23-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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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 중심 현지 네트워크 확대… 美 진출 기업의 든든한 동반자

    국내 시중은행들은 선진 금융시장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고군분투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금융당국의 내부 통제 등 규제 기준이 까다롭고 현지 금융업의 수준도 높아서 한국 은행들이 영업 기반을 넓히기가 수월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현지 한국계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 등을 대상으로 폭넓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해외에 진출하는 기업들의 금융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사업 급격히 키우는 시중은행들 국내 은행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도 최근 꾸준히 미국 지역에서 대출 자산과 순이익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우리금융은 미국 내 현지법인 우리아메리카은행을 두고 있다. 이 은행의 총자산은 2020년 23억600만 달러에서 지난해 31억1100만 달러로 2년 만에 34% 급증했다. 당기순이익도 같은 기간 1320만 달러에서 2810만 달러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작년 기준 자기자본이익률(ROE)은 6.69%, 연체율도 0.07%로 안정적이다. 1984년 설립된 우리아메리카은행은 2003년 미 팬아시아뱅크를 인수하는 등 규모를 확대해 현재 21개 지점, 4곳의 여신 전문 취급 출장소를 두고 있다. 현지법인 외에도 우리은행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 두 곳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신한금융의 미국 현지법인 신한아메리카은행도 미국 금융시장에서 한인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커뮤니티 은행으로 로컬 한인은행 등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신한아메리카은행은 1990년 옛 뉴욕조흥은행을 시작으로, 현재 미국 동부(뉴욕·뉴저지주), 남부(텍사스·조지아주), 서부(캘리포니아주) 등 3개 지역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총 15개 영업점을 확보했다. 기존 교민사회에서 개인 고객을 상대로 한 리테일금융뿐 아니라 한국에서 북미권으로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전담 창구인 지상사전담센터(Korea Business Desk)를 설립해 이들 기업의 현지 기업금융을 지원하고 있다. 하나금융은 하나은행 뉴욕지점과 KEB하나뱅크USA 등 총 8개 채널을 미국에 두고 있다. 이들 채널의 총자산은 2020년 36억2000만 달러에서 2022년 91억1300만 달러로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당기순이익도 같은 기간 1440만 달러에서 2690만 달러로 증가했고 지난해 대출금도 전년 대비 3억7400만 달러 늘어나는 등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나은행 측은 향후 미국 사업과 관련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에 따른 한국 대기업의 미국 투자 기회 모색을 돕고 한국계 우량 1, 2차 벤더의 미국 진출 및 투자를 지원할 방침”이라며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시장 투자 기회 발굴을 통한 자산 확대에도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KB금융도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영업 기반을 크게 확충하는 추세다. KB국민은행 뉴욕지점의 대출 자산은 2017년 3억6000만 달러였지만 2022년에는 34억2000만 달러로 5년 만에 10배 가까이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300만 달러에서 3600만 달러로, 직원 수는 18명에서 49명으로 각각 늘었다. KB국민은행 측은 “뉴욕지점은 1999년 설립됐을 때는 한국계 은행 가운데 가장 후발 주자였지만 지금은 독보적 선두 점포의 지위를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KB국민은행 뉴욕지점은 미국에 진출한 한국계 우량 기업에 여신을 제공하고 건설자금 대출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현지 대형은행과의 공동 신디케이션 주선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美 진출 동반자 역할 KDB산업은행은 대출과 보증,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다양한 금융 지원을 통해 국내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적극 돕고 있다. 1969년 뉴욕사무소를 개소한 산업은행은 1997년 뉴욕지점을 열었고 2020년에는 미국 내 법적 지위를 금융지주회사로 전환시켰다. 작년 말 기준 총자산이 33억8000만 달러로 2019년(22억1900만 달러) 대비 50%가량 급증했다. 기업대출과 유가증권 투자, 무역금융 등을 통해 자산을 꾸준히 늘리는 한편 고객과 상품, 지역별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1990년 오픈한 IBK기업은행 뉴욕지점 역시 기업금융에 주력하고 있다. 북미권에 진출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금융 지원을 하는 IBK 뉴욕지점은 최근에는 현지 금융기관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IB 영역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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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유재동]은행 돌면서 사회공헌 닦달… 금감원장의 합당한 책무인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은행 순시가 3일 대구은행을 끝으로 일단락됐다. 이 원장은 2월 말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6개 주요 시중·지방은행 점포를 직접 찾았다. 그때마다 각 은행은 금리 인하나 이자 면제 등 대규모 상생 대책을 발표하며 화답했다. 금감원은 이번 순회 방문 동안 은행들이 내놓은 금융지원책이 연간 3300억 원 규모의 이자 감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산까지 내놨다. 이 원장은 은행의 주요 기능 중 하나를 사회공헌, 자신의 주된 책무는 이를 독려하는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는 얼마 전 “은행 수익의 3분의 1은 국민이나 금융 소비자를 위해 써야 한다”는 지론을 폈고, 은행의 사회공헌 내역을 일일이 평가하겠다는 계획도 밝힌 바 있다. 말로만 하는 게 모자랐다고 봤는지 이젠 몸소 은행들을 찾아다니며 압박하는 방법을 택했다. 금감원 측은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상생 방안을 내놨다고 하지만 실상은 규제 당국의 강요 내지 압력으로 느꼈을 게 뻔하다. 고물가와 경제난에 시달리는 많은 국민은 이자 장사로 떼돈을 번 은행들을 쥐어짜는 금감원장의 행보에 박수를 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잣집 곳간을 털어 서민들에게 나눠주는 의적(義賊)에 그를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상생’을 내세워 금융사에 금리 인하와 사회 환원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적절한 직무 행위였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금감원장의 가장 큰 임무는 적절한 규제·감독으로 금융 부문 리스크가 커지는 것을 막고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관리하는 일이다. 그런데 금감원장의 은행 팔 비틀기는 시장의 금리 체계를 망가뜨리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무력화할 개연성이 크다. 또 은행에 초과 이익의 환수를 강요함으로써 미래의 부실에 대비한 기초 체력을 저하시킨다는 지적도 받는다. 지난해 취임 이후 이 원장의 행보나 화법은 통상적인 관료 출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은행의 과도한 이자마진에 문제가 있다면 보통 같으면 은행의 담당 임원들을 불러다 조용히 얘기하지, 이 원장처럼 공개석상에서 “약탈적 영업”이라고 핏대를 세우진 않는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금융지주 회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릴 때도 세상 다 들으라는 듯 상대에게 비수를 꽂았다. 또 어느 자리건 늘 기자들을 몰고 다니며 당국 간에 조율되지 않은 본인의 메시지를 서슴없이 쏟아낸다. 이 원장은 최근 주변에 내년 총선 출마 계획이 없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한다는데, 실상은 이와 다르게 노골적인 정치 행보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금융권 인사들은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는 당국의 지시나 간섭을 “가장 고약한 관치”라고 말한다. 은행의 성과급 잔치나 CEO ‘셀프 연임’ 같은 모럴 해저드를 막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런 작업도 당국자의 즉흥적 발언이나 정치성 이벤트가 아닌 기존에 정해진 제도, 시스템을 따라 진행돼야 한다. 우리 은행들이 국내에서만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정작 글로벌 무대에선 경쟁력을 상실하고 빌빌거리는 데는 찍어내기식 인사 개입과 비공식 창구 지도에 익숙한 당국의 책임도 적지 않다. 그동안 많은 논란을 불러온 금감원장의 금융회사 순시는 이제 이쯤에서 끝냈으면 좋겠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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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미엄 라이프’ 겨냥 다양한 카드 출시

    삼성카드가 ‘프리미엄 라이프’ 영역에서 취향에 맞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THE iD. PLATINUM’을 최근 출시했다. ‘THE iD.PLATINUM’은 기프트 연 1회 및 공항 라운지 연 6회의 혜택을 제공한다. 기프트는 신청 조건 충족 시, 15만∼16만 원 상당의 호텔, 골프, 패션, 면세점, 상품권 중 매년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전월 이용금액 충족 시, 연 6회 국내외 공항 라운지 본인 무료 혜택을 제공한다. 또 전월 이용금액을 충족하면 넷플릭스, 유튜브프리미엄, 디즈니+, 웨이브 등 디지털콘텐츠를 정기결제할 때 50% 할인을 제공하며, 스타벅스에서 1만 원 이상 결제하면 3000원 할인도 월 1회 제공한다. 전월 이용금액 및 적립한도 없이 국내 가맹점에서 1%, 온라인쇼핑몰, 할인점, 백화점, 배달앱에서 1.2%가 각각 적립된다. 해외, 면세점, 항공, 호텔, 콘도, 리조트, 인터파크 티켓에서는 1.5%를 적립받을 수 있다. 삼성카드가 글로벌 카드 브랜드 회사인 마스터 카드와 협업해 신설한 ‘프리미엄 다이닝 서비스’도 주목할 만하다. ‘프리미엄 다이닝 서비스’는 호텔 레스토랑 등에서 6만 원 이상을 결제하면 3만 원 할인 또는 호텔 베이커리에서 4만 원 이상 결제하면 2만 원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전월 이용금액을 충족하면 통합 월 1회, 연 3회가 제공된다. ‘THE iD. PLATINUM’은 각각 카드 디자인이 세 가지씩 제공돼 고객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디자인을 선택해 이용할 수 있다. 우선 ‘THE iD. PLATINUM’은 인메탈(메탈카드에 PVC 코팅 처리) 카드 플레이트를 제공한다. 인메탈 카드를 선택하면 5만 원의 별도 수수료가 부과된다. 또한 삼성카드는 프리미엄 카드 최초로 LED와 노치 디자인 카드를 제공한다. ‘LED 디자인’은 비접촉 결제 시 카드에 내장된 LED가 빛나고, ‘노치 디자인’은 플레이트 하단에 홈(노치)을 만들어 카드의 상하 방향을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THE iD. PLATINUM’의 연회비는 해외 겸용(마스터카드) 22만 원으로, 마스터카드 월드 서비스가 제공된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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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를 함께하는 따뜻한 금융’ 선도

    신한카드는 금융으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신한금융그룹의 미션인 ‘미래를 함께하는 따뜻한 금융’을 바탕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전개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회사 ESG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시장 선도적인 ESG 경영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20년 업계 최초로 ‘ESG팀’을 신설했다. 신한카드는 신한금융그룹이 2020년 11월 동아시아 금융그룹 최초로 ‘제로 카본 드라이브(Zero Carbon Drive)’ 추진을 선언한 것에 맞춰 금융을 통해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한 친환경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추진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전기차 충전요금을 최대 50% 할인해주는 ‘신한카드 EV’, 카드 사용에 따라 ECO 기부포인트를 적립해 주는 ‘신한카드 Deep ECO’와 전기차 충전요금을 할인해 주는 ‘신한카드 MY CAR’ 등 친환경 상품을 잇달아 출시했다. 또 환경부가 추진하는 한국형 무공해차 전환 100(K-EV100) 캠페인에 참여해 신한카드 보유 차량 100%를 2030년까지 전기·수소차로 전환하기로 했다. 신한카드는 작년 4월 도심 내 건강한 공원을 가꾸기 위한 ‘신한카드 ECO Zone’ 1호를 서울숲에 열었고, 올해 6월에는 부산 APEC 나루공원에 두 번째 에코존을 조성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산림청과 기후 위기 공동 대응을 위한 친환경 경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신한카드는 상생경영 활동도 다각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신한카드는 취약계층 아동과 청소년이 미래의 주인공으로 커 나가는 것을 돕기 위해 2010년부터 ‘아름인 도서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까지 총 532개 도서관을 개관해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해 왔다. 2020년 11월에는 서울시, LG유플러스와 함께 서울 은평구 소재 복합문화공간인 ‘서울혁신파크’에 디지털도서관을 개관했다. 지난해 10월에는 MZ세대 군장병을 위한 디지털 도서관도 개관했다. 신한카드는 고객과 함께 기부문화를 뿌리내리고자 업계 최초 기부 전용 포털 사이트 ‘아름人’을 운영하고 있다. 또 고객과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아름인 고객봉사단’을 2007년에 출범시켜 사회 취약계층을 지원해 오고 있다. 이 밖에도 신한카드는 중소상공인 가맹점을 육성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빅데이터 분석 보고서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 등을 위해서는 신한카드는 2021년 국내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CDR(기업의 디지털 책임) 경영을 발표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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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혁신 활동과 ESG 실천에 앞장

    우리카드는 우리금융그룹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기조에 맞춰 다양한 방면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영혁신 활동과 ESG 실천에 앞장선 모범기업으로 선정돼 대한상공회의소 주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우리카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ESG 경영의 일환으로 2021년 12월 국내 금융업계 최초로 세계자연기금(WWF)의 플라스틱 감축을 위한 기업 공동 성명 ‘PACT’에 가입했다. 2030년 플라스틱 카드 발급량의 50% 감축을 목표로 플라스틱 카드 대신 친환경 소재 카드로 전환을 추진하고 플라스틱 감축 환경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우리카드는 또 우리금융그룹 공동 사회공헌 특화사업으로 한국메세나협회와 2020년 9월부터 3차례에 걸쳐 ‘우리꿈나무 아트클래스’ 인재육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동복지기관 4∼6학년 60명을 대상으로 총 160회의 아트클래스 교육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미래 세대를 육성하고 있다.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서는 종로구 창신제2동과 1사1동 결연을 맺어 홀몸노인들에게 삼계탕, 연탄, 생필품 꾸러미 등을 매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창신제2동 홀몸노인을 위해 임직원 참여 김장김치 나눔봉사를 진행했다. 우리카드는 작년 12월에는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와 함께 국내 여아 지원사업으로 1억5000만 원 상당의 생리대를 지원했다. 올해 1월에는 밥상공동체연탄은행에 연탄을 지원했고, 금융감독원과 함께 영등포전통시장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활동에 나서고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을 다각적으로 펼치고 있다. 우리카드는 지난해 11월부터 카드사로는 유일하게 ‘광화문One’팀에 참여했다. ‘광화문One’팀은 개별 기업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ESG 과제를 여러 기업의 협업을 통해 진행한다. 광화문광장 나무 기부, 소외계층을 위한 공연 지원, 교통 약자들을 위한 무장애 도시환경 구축 지원 등을 하고 있다. 이 밖에 서울시 주최로 출범한 기후위기 대응 민관 협력 네트워크 ‘제로 서울 실천단’에 업계에서 유일하게 참여했다. 우리카드는 앞으로도 임직원 종이팩 재활용 챌린지, 종이컵 줄이기, 텀블러 사용 의무화 등을 추진해 일회용품 감축 및 재활용 실천을 통한 사내 친환경 ESG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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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인터뷰]“美中 경제는 상호보완적… 지금은 유럽이 가장 취약”

    《“세계는 다극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미중 슈퍼파워 외에 유럽 일본 인도 한국 등 ‘미들 파워(middle power)’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슈퍼파워는 미들파워 없이 어젠다를 밀어붙일 수 없다.” 미국 내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인 데이비드 달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달과 이달 두 차례에 걸친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한국의 중간자적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달러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 중에도 지난해 교역량이 사상 최대였다”면서 “양국은 여전히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며 세계화는 끝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올해 세계 경제 판도에 대해서는 “중국은 ‘제로 코로나’를 벗어나며 성장을 가속화하겠지만 미국은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이 50%”라며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과잉 부채에 시달리는 신흥국이 가장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다트머스대에서 중국 역사를 공부한 달러 연구원은 세계은행(WB) 중국·몽골 담당 국장, 미국 재무부 중국 경제금융 특사 등을 지내며 중국 경제 및 미중 관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 미국과 전 세계의 경기 침체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미국과 EU 등 선진 경제권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은 둔화하고 있다. 다만 특히 중국 등 개도국에는 일부 밝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성장은 둔화하고 있다. 미국이 경기 침체(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확률은 50 대 50으로 본다. 설령 미국이 침체를 피한다고 해도 성장은 느려지고 경기 침체와 다름없이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 경제는 왜 긍정적으로 보나. “작년에 중국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경제 평균보다 느리게 성장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른 나라들이 둔화하는 가운데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작년 말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금까지 경제 성장을 방해했던 ‘제로 코로나’ 정책을 갑작스럽게 끝냈다. 그 후 코로나 환자가 즉각적으로 늘었지만 지금은 빨리 회복되고 있다. 가계 소비도 증가 추세다. 1월 춘제 기간 중 국내 여행이 물론 코로나 이전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작년보다는 크게 늘었다. 가계는 제로 코로나 기간에 저축을 쌓았고 소비할 준비가 돼 있다.” ―중국 양회가 폐막했다. 정책 기조의 변화가 있을까. “중국은 양회를 통해 경제 성장과 민간부문 신뢰 회복에 대한 약속을 했다. 리창(李强) 신임 총리는 시장경제에 힘을 불어넣는 것과 시 주석의 통제와 보안 기조를 존중하는 것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될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잘 대응하고 있나. “팬데믹이 매우 이례적인 충격이었다. 미국 등 각국 정부는 가계 소득을 보장해줄 비상 조치를 가동했다. 미국은 말 그대로 현금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거나 계좌에 직접 돈을 분배했다. 이런 지원은 필요한 것이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과한 면이 있었다. 미국은 경기부양책이 과했던 것이 수요 과잉을 촉발해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 됐다. 공급 측면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인상시켰다. 팬데믹으로 공장과 항만 물류 시설도 문을 닫아 공급망에 이상이 생겼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번 인플레이션은 무엇보다 과잉 수요의 결과다. 연준이 수요를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는데 이것이 먹히고 있다. 물가상승세는 아직 높은 편이지만 떨어지는 중이고 금리 인상은 더 있을 것이다. 경기 침체 없이 물가가 2%로 내려올 확률은 반반 정도 된다.” ―지금 어느 나라 경제가 가장 취약한가. “유럽이 가장 취약하다. 올겨울은 따뜻해서 그나마 나았지만 다음 겨울에도 에너지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러시아 원유와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급력이 다른 나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유럽은 자체적인 인플레 문제도 있다. 신흥국 중에는 터키나 아르헨티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소득 국가 중에는 과잉 부채에 시달리는 나라들도 상당수 있다. 중국이 주 채권국이지만 채무 삭감에 부정적이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통해 다른 나라에 인프라 금융 지원을 했는데, 가난한 국가들은 이를 되갚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제에 다른 리스크는 무엇인가. “각국마다 다르다. 미국은 재정정책을 지속 가능하게 해야 한다. 중국은 지금보다 더 개방하고 국내외 민간 부문을 더 포용해야 한다.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함께 힘을 합쳐 풀어야 할 문제도 있다. 이번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국제기구들은 미래의 팬데믹을 잘 준비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우리 시대에 존재론적인 도전이다. 기온 상승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끝없는 위기들에 직면할 수 있다.” ―미중 관계가 계속 악화되는 것 같다. 대만에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나. “양국은 신(新)냉전을 피하려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론 협상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만을 둘러싼 실제 전쟁은 (양측의 엄청난 실수가 아니라면) 상상할 수조차 없지만 양측은 점점 ‘수용 가능한 정책’의 끝단으로 가는 것 같다. 중국은 전투기와 전함을 대만 근처에 배치하고 있고 미국은 고위급 인사를 계속 대만으로 보내며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조심스러운 외교만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전 세계에 위협인가, 기회인가 “위협이자 기회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세계 경제의 성장을 추동하고 빈곤을 줄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중국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들에 잠재적인 위협이다. 중국은 군사력을 증강하며 이웃 국가를 도발하고 있다. 또 러시아 이란 등 갈등과 불안을 유발하는 전 세계 권위주의 국가들을 지지하고 있다.” ―탈세계화가 가속화된다는 진단이 많다. 세계화는 끝난 건가. “세계화가 끝났거나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세계화 흐름이 정체됐을 뿐이다. 지금 상황은 매우 모순적이다. 가령 미국과 중국은 무역 전쟁을 하고 있지만 작년 양국 간 무역액은 사상 최고였다. 반도체나 통신장비 등 첨단 제품의 무역은 2018년 고점 대비 크게 줄었다. 하지만 다른 모든 물품은 무역이 빠르게 늘고 있다. 세계화의 퇴조가 걱정되긴 하지만 아직 이를 목격하진 못했다.” ―미중 무역이 여전히 사상 최대라는 건 무엇을 시사하나. “양국 경제가 상당한 상호보완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첨단기술과 자원이 풍부하고 중국은 노동력과 중간단계의 기술이 강점이다.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게 효과적인 이유다. 양국 간 갈등은 ‘무역 전쟁’이라기보단 ‘기술 전쟁’이다. 미국의 제재 대상인 반도체, 통신장비 등 기술 분야 무역은 크게 줄었지만 다른 제품군 무역은 증가하고 있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미국의 제재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 중요한 영역에서 두 나라가 갈라서면 양국 경제에 모두 부정적인 영향이 있겠지만 미국보다는 중국이 더 충격이 심할 것이다.” ―향후 국제 정세는 어떻게 될까. 미국은 슈퍼파워 지위를 유지할까. “지금 우리는 다극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고 본다. 미국과 중국이 슈퍼파워지만 ‘중간 파워(medium-sized powers)’들도 중요한 시대다. 일본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경제 사이에서 중간자적 역할을 한다. 유럽은 기후변화 대처를 주도한다. 인도는 중국을 보완할 만한 고성장 대국이다. 지금 미국이나 중국은 이런 ‘중간 파워’ 국가들의 지원 없이는 글로벌 어젠다를 밀어붙이기 어렵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중간자적 역할은 무엇을 뜻하나. “한국은 가까운 이웃이자 거대 시장인 중국과는 경제적 관계를 계속 강화하고, 지정학적으로 위험한 위치에 놓인 만큼 미국과는 긴밀한 안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 한국은 두 슈퍼파워를 도발하지 않고 (양측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 잘 해나가야 한다.” ―한국은 ‘칩4 동맹’ 등 대중 반도체 규제 전선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 부분은 한국이 주의 깊게 잘 들여다봐야 한다. 평범한 반도체는 모든 소비자 제품에 사용되기 때문에 중국으로 하여금 이런 범용 기술 접근을 막는 것은 실수일 수 있다. 다만 군사적 목적에 사용되는 하이테크 반도체에 대한 제재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한국 등 선진 민주국가의 과제는 중국의 경제 발전을 지지하면서도 그것이 군사력 확대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 조언을 한다면…. “경제 분야로는 우선 TPP에 가입하고 인도나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주요국들도 동참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미국도 언젠가는 TPP에 참여해야 하고 중국도 요건만 갖춘다면 가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안보 측면에선 한국은 대미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안보 우산 아래에서 현대적 규칙에 입각한 크고 개방적인 아시아 시장을 누리는 것은 한국의 번영을 위해 훌륭한 여건을 제공할 것이다.”데이비드 달러△1975년 다트머스대 졸업(중국사 및 중국어 전공)△1984년 뉴욕대 경제학 박사△1984∼1989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경제학과 조교수△2004∼2009년 세계은행(WB) 중국·몽골 담당 국장△2009∼2013년 미국 재무부 중국 경제금융 특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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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 오명 씻을 때가 됐다[광화문에서/유재동]

    일본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가 30대 초반이던 1953년 처음 독일로 해외 출장을 갔을 때다. 식당 종업원이 디저트를 내오면서 아이스크림에 장식으로 꽂힌 종이 파라솔을 가리켜 일본산(産)이라고 소개했다. 환영하는 뜻에서 건넨 인사였지만 이는 모리타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냈다. ‘글로벌 무대에서 일본은 고작 이 정도로 알려져 있구나. 갈 길이 멀다.’ 이후 절치부심한 소니와 일본의 발전상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1980년대 일본의 경제력은 미국마저 추월하며 세계 1등을 넘보는 나라가 됐다. 그 핵심 동력은 정부와 기업, 학계가 총력을 기울여 육성한 반도체 산업이었다. 모리타가 당시 일본의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와 함께 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에는 “일본의 반도체 기술 없이 미국의 군사력은 유지될 수 없다. 미국에 고개 숙일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일본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 베스트셀러 ‘칩워(Chip War·반도체 전쟁)’를 쓴 경제사학자 크리스 밀러에 따르면 미국이 반도체를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후발주자 일본의 급부상으로 궁지에 몰리자 그동안 정부의 간섭도 지원도 마다했던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이 워싱턴을 제 발로 찾아갔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세금 지원, 지식재산권 보호 같은 카드를 내밀었지만 산업계의 위기감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온 게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 일본이 자국 내 미국산 점유율을 높이고 일본산의 미국 수출은 제한하는 굴욕적인 협정을 계기로 일본 반도체 산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동맹국의 주력 산업을 완력으로 뭉개버린 미국의 다음 타깃은 적성국인 중국으로 옮겨갔다. 첨단 반도체 기술을 확보해 군사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굴기에 대응해 미국은 이른바 ‘숨통 끊기’(Chip Choke) 전략을 취한다. 핵심 반도체 기술·부품의 공급을 차단해 고부가 산업 발전의 사다리를 끊고 중국을 미국에 범접 못 하는 중진국으로 눌러 앉힌다는 계산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반도체 공급망의 한 축씩을 담당하고 있는 각국의 협조가 절대적이었다. 미국은 ‘칩4 동맹’을 만들어 동맹국들로 하여금 중국을 배제하도록 압박하더니, 최근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이 보조금을 받으려면 기업 비밀과 초과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고 엄포를 놨다. ‘안보 우산’을 무기 삼아 우방국들을 쥐어짜고 패권을 수호하겠다는 것이다. 칩워는 ‘영원한 내 편’이 없는 각자도생 혈투다. 상대에게 얕보이지 않을 초격차 기술이 없으면 아무리 혈맹이라도 힘에 의해 휘둘리고 탈탈 털리는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정부가 미국을 붙잡고 반도체지원법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하지만 요청이나 부탁의 차원을 넘진 못할 것 같다. 협상의 지렛대를 얻으려면 본연의 힘을 키워야 하는데 그동안 우리에게 그럴 의지나 전략이 있었나. 마침 반도체 투자에 세제 지원을 확대하는 ‘K칩스법’이 여야와 정부의 공감대 속에 늦었지만 곧 처리될 수 있다고 한다. 설령 그게 된다고 해도 우린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멀다. ‘3류 관료, 4류 정치’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다는 오명도 떨칠 때가 됐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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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로 금리, 버블-인플레 불러 경제위기 되레 키웠다”[파워인터뷰]

    《“제로금리는 경제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위기만 키웠다.”영국의 금융사(史) 전문가인 에드워드 챈슬러(61)가 최근 세계 경제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최근 저서인 ‘금리의 역습(The Price of Time)’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제로금리 등 경기부양책이 자산 버블과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면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등의 통화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금리가 너무 낮으면 무분별한 투기 열풍이 불어 금융시장이 취약해지고, 좀비 기업이 창궐하면서 결국 건실한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는 주장이다.챈슬러는 케임브리지대,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투자회사 라자드브러더스와 GMO에서 일한 금융인 출신이다. 정통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금융 투기의 역사’ 등 많은 저서가 화제가 되고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경제 칼럼을 쓰면서 ‘스타 저술가’로 인정받았다. 미 경제지 포천은 “생존한 최고의 금융사가 중 한 사람”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14일 그를 줌 화면을 통해 만났다.》―새 책 ‘금리의 역습’에서 저금리의 부작용을 경고했다. “역사적으로 금리가 지나치게 낮거나 갑자기 떨어졌을 때는 항상 투기성 버블이 있었다. 이자율이 낮으면 투자자들은 더 많은 위험을 짊어지면서 보상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어떤 사례가 있나. “그 유명한 ‘튤립 버블’(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 과열 투기 현상)은 네덜란드의 통화 정책이 느슨했을 때 발생했다. 1700년대 ‘미시시피 버블’ 때도 이자율이 내리자 주가가 폭등했다. 현대에 와서는 미국, 일본 등의 금리가 낮을 때 신흥국이 싼값에 달러화나 엔화를 차입했다가 나중에 부채 규모가 늘어나 통화가치가 폭락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미시시피 버블’은 스코틀랜드 출신 존 로가 일으킨 투기 광풍을 말한다. 로는 프랑스에서 은행을 설립한 뒤 돈을 마구 찍어내 금리를 낮추고,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지역에 대한 독점거래권을 가진 ‘미시시피 회사’를 인수했다. 그러자 이 회사에 대한 투기가 시작돼 주가가 무려 20배 폭등했지만 이내 주식시장의 붕괴로 이어졌다. ―저금리의 폐해를 더 설명해 달라. “금리는 자본이 어디로 배분되는지를 결정한다. 금리에 따라 사람들이 투자처를 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낮은 금리는 자본의 올바른 배분을 어렵게 하고 나쁜 투자를 일으킨다. 그다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좀비 기업에 자금이 흘러가게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비효율이 생긴다. 새로운 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새로운 기업들이 줄어들게 된다. 이는 저성장, 저생산성의 원인이 된다. 금리는 저축에 대한 보상이다. 금리가 없다면 가치평가를 할 수 없고 자본을 배분하거나 투자할 수도 없다. 어느 체제이든, 특히 자본주의는 금리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고금리가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 엄청난 고금리도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 만일 금리가 10%에 달한다면 건실한 기업들도 망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고금리의 폐해는 모두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저금리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려 한 것이다.” ―중앙은행들의 대응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 “지금까지 중앙은행들은 버블 붕괴나 금융위기를 금리 인하 및 돈 풀기로 서둘러 진정시키려고만 했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러시아 국채에 투자했다가 파산한 미 헤지펀드) 사태나 그 이후 닷컴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문제 해결을 자꾸 뒤로 미루면서 단기 대응에 급급하다 보니 그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지기만 했다. 어떤 이들은 양적완화(QE)를 ‘수익을 미래에서 당겨오고, 위험은 미래로 보내는 행위’라고 표현한다.” ―그래도 금융위기 같은 큰 위기가 오면 금리를 내리고 시장을 진정시키는 게 우선 아닌가. “금리를 제로로 낮춘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서 그랬다지만 그들은 이 시스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에겐 아이슬란드라는 대안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아이슬란드는 부채 위기가 너무나 심각했지만 외국에서 달러화 지원을 받지도 않았고 은행을 억지로 구제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에 고통스러운 긴축을 받아들이고 저축을 늘렸다. 그런 기간을 보내고 난 뒤 아이슬란드는 위기를 극복하고 한때 금융에 과잉 의존하던 나라에서 기술과 관광산업으로 발전하는 나라로 변모했다. 또 부채는 줄었고 생산성은 늘었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그런 결단을 쉽게 할 수 있느냐다.” ―지금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원인은 무엇인가. “2008년 금융위기 때 연준은 채권을 매입하면서 유동성 공급을 하려 했지만 이 돈은 시중에 풀리지 않고 금융 시스템 안에서 계속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최근 팬데믹으로 양적완화가 다시 시작됐을 때 그 돈은 과거와 달리 실업급여나 재난지원금으로 시중에 풀리며 소비가 실제로 늘었다. 물론 동시에 공급망이 붕괴되며 공급 쪽에 충격이 생긴 것도 인플레이션에 일조했다.” ―중앙은행들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 건가. “중앙은행은 지금 선택의 여지가 없고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쉽게 말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중앙은행은 너무 많은 돈을 뿌려 왔고 인플레이션이 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래도 어찌 됐든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긴 했다. 하지만 장기간의 저금리는 경제에 엄청난 취약성을 키웠다. 이럴 때 긴축을 하면 주식시장, 채권시장이 위험해지고 기업들도 위기가 찾아온다. 자본이 잘못 배분되면 이들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작년에 이미 그런 현상을 우린 경험했다.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이 조금 둔화하면서 연착륙에 대한 기대도 커지긴 했지만, 금융 시스템과 경제가 초저금리에 너무 익숙해져서 정상 수준의 금리를 받아들이기엔 힘이 들 것이다. 영어에 ‘weaning’(아이가 엄마 젖을 떼는 것)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는 저금리 시기에서 젖을 떼야 한다.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충격은) 이제 초기 단계일 뿐이다.” ―당신이 중앙은행장이라면 뭘 할 것인가. “(한숨) 정말 어렵다. 이게 나한테 닥친 일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다. 그래도 금융시장 리스크가 있으니 지금은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를 택하겠다. 인플레이션을 당장 꺾으려 하다 보면 금융 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 고물가를 당분간은 받아들이는 쪽으로 (통화정책을) 해야 하지 않을까. 만일 금리를 올린다면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주택담보대출자를 위해 세제 혜택을 주는 식으로 ‘쿠션’을 줘야 한다.” ―금리 인상이 계속된다면 좀비 기업들의 파산이 이어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좋은 일이다.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노동력, 자본, 토지를 (더 생산적인 쪽으로) 재배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좀비 기업은 혁신을 억누르고 있다. 기업들의 파산은 물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창조적 파괴를 하는 것은 우리 시스템의 본질이다.” ―금리가 오르면서 정부 부채는 어떤 영향을 받나. “저금리와 양적완화 시기에 정부는 싼 금리에 돈을 조달할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 부채가 상당히 늘어 미국 유럽, 영국 등에서는 국가부채 비율이 국내총생산(GDP)의 100% 이상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지금 금리가 오르면서 정부 재정도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사라지나. “인플레이션은 적어도 향후 10년간은 계속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물가가 올랐다가 다시 잠잠해지고, 그래서 또 돈을 풀면 다시 물가가 뛰는 현상이 마치 1970년대처럼 반복될 것이다. 지금의 에너지 위기는 화석연료 전환기가 겹쳐서 그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같은 상황이 다시 올 것이라고 보나. “그건 아니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미 부동산 버블과 규제되지 않은 파생상품 등에서 비롯됐다. 각각의 위기는 저마다 성격이 다르다고 본다. 그보다는 인플레이션으로 사람들이 궁핍해지는 것, 중국 경제의 고성장이 끝나가는 것이 우려된다.” ―어쩌다 경제사에 관심을 가졌나. “내 타고난 성향이다. 금융의 역사를 잘 알면 현재 벌어지는 일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좋은 투자자는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 ―저자로서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인플레이션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쓸 것이다. 매우 복잡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물가 현상을 잘 이해하도록 도울 것이다.” 에드워드 챈슬러△ 1962년 영국 출생△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 졸업△ 옥스퍼드대 석사(근대사 전공)△ 투자기업 라자드브러더스, GMO 근무△ 1999년 ‘금융 투기의 역사(Devil Take the Hindmost)’ 발간△ 2005년 ‘신용 크런치 타임(Crunch Time for Credit?)’ 발간△ 2008년 미국 언론상 ‘조지 포크상’ 수상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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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유재동]팔 비틀기와 줄 세우기로는 은행 ‘돈잔치’ 못 막는다

    얼마 전에 한 시중은행 임원을 지내고 퇴임한 A 씨를 만났다. 30년 직장 생활을 찬찬히 회고하던 그는 대뜸 자녀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를 따라 은행원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 법조인에 도전할지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다고 했다. 그러자 A 씨는 자신처럼 은행에 들어갔으면 높은 연봉 받으면서 비교적 평탄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아이가 굳이 고생스러운 길을 골랐다며 내심 아쉬워했다고 한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직업이 가장 좋은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그의 얘길 듣고 보니 여기에 은행도 포함되는구나 싶었다. 예전엔 공기업이나 대학 교직원이 ‘신의 직장’ 계열의 선두 주자였지만 지금은 지방 이전과 임금 정체 때문에 인기가 이전 같지 못하다. 그 자리를 치고 들어온 게 은행이다. 외환위기 기억이 생생한 지금 40, 50대 이상 세대는 당시 정리해고 칼바람을 맞은 은행원을 화이트칼라의 눈물과 애환이 농축된 이미지로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들을 보는 세상의 눈이 다시 달라진 것 같다. 은행이 소위 ‘만고땡’ 직장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물론 직원들은 쉽게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주변에 은행 다니는 친구들도 이런 지적을 하면 거품을 문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은행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남들이 하지 못하거나 가치 있는 결과물을 내는 쪽이 높은 보상을 받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우리 은행들이 내놓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다들 고만고만하고 차별성이 없다. 억대 평균 연봉과 낮은 생산성, 뒤처진 경쟁력과 높은 수익이 기이하게 공존한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지난해 줄줄이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반도체 등 다른 주력 산업이 죄다 죽 쑤는 와중에도 유독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은행만 역대급 이익을 얻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은행들은 엄청난 혁신으로 금융업의 신기원을 열거나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뚫고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온 게 아니다. 정부가 설정한 높은 진입장벽 안에서 금리 상승의 과실을 나눠 먹으며 안전한 독과점 이익을 챙겼을 뿐이다. 은행들은 그것도 ‘성과’라면서 기본급의 300∼400%에 이르는 성과급 파티를 벌이고 어차피 은퇴가 몇 년 안 남은 직원들에게 1인당 6억∼7억 원의 퇴직금을 뿌렸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평생 모아도 마련하기 힘든 액수를 한 번에 받은 임원도 여럿이다. 대통령이 요즘 연일 은행 때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사실 ‘열심히 민생을 챙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행보 이상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부가 할 일은 은행의 팔을 비틀어 대출금리 인하나 기부금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혁신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 즉 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시대착오적인 급여 시스템을 바꾸고 경영 효율화에 나서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라. “공적자금 받아놓고 염치가 없다”며 도덕성을 훈계하거나 사회공헌 액수로 순위를 매기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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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유재동]‘월가의 황제’도 울고 갈 한국 금융의 인사 구태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모건스탠리의 제임스 고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브라이언 모이니핸은 미국 월가를 호령하는 트로이카(삼두마차)다. 모두 60대 중반의 나이에 수천만 달러의 고연봉을 받으며 직원 10만∼20만 명의 글로벌 금융회사를 이끌고 있다.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최고의 자리에서 벌써 15년 안팎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후계자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유력 후보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 못해 다른 회사로 떠났거나 너무 나이가 들며 탈락했다. 이들의 임기는 요즘도 언론의 큰 관심사다. 고먼은 최근 다보스포럼에서 이에 대한 질문에 “(언젠가는) 물러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진 않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 ‘언젠가’가 언제가 될지는 아직 기약이 없다. 당연히 논란과 뒷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매년 천문학적 연봉과 보너스를 챙겨간다는 대중의 비판과 함께, 막강한 금융 권력으로 시장은 물론이고 워싱턴 정가에까지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에 이사회 의장까지 겸직하는 이들은 회사 내부에서도 존재감이 너무 커져 마땅히 견제할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같았으면 당장에 금융당국이 뛰어들어 이들을 몇 번이고 자리에서 끌어내렸겠지만 미국에선 그런 종류의 인사 개입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나 월가의 인사 관행은 애초에 우리나라와 수평 비교하긴 어려운 측면이 많다. 미국은 철저히 성과와 실적을 바탕으로 이사회가 CEO의 진퇴를 결정하고 회사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한 사람에게 10년, 20년을 맡긴다 한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이먼과 고먼, 모이니핸은 모두 CEO 취임 이후 탄탄한 실적 상승을 발판으로 회사 주가를 2, 3배 이상 높였다. 선제적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으로 금융위기 같은 거대한 위협을 기회로 바꿔낸 것도 이들의 몫이었다. 한국은 다르다. 당국이 만들어낸 규제와 독과점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한 이자 장사로 수익을 내는 우리 금융사들의 경우 이사회나 주주는 허수아비에 가깝고 사실상 당국이 인사 실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선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을 저지하고 낙하산을 내려보내려 한다는 의혹으로 또다시 관치 논란이 불붙고 있다. 은행 간판만 바꿔서 거의 매년 반복되는 이런 인사 구태는 우리 금융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치유하는 게 얼마나 요원한지를 일깨워 준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실적 쌓기를 내세워 주인 없는 회사에서 장기 집권을 하려는 개인의 욕심과 그 자리를 놓고 서로를 물고 뜯는 파벌 싸움, 막강한 규제 권한을 무기로 입맛에 맞는 인사를 내리꽂으려는 당국 및 정치권이 합작한 이 저질 드라마는 시대가 변해도 도무지 막을 내릴 줄을 모른다. 지금처럼 본연의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지 않고 극한의 권력 투쟁과 자리다툼만 일삼는다면 우리 금융은 혁신은커녕 앞으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할 것이다. 제아무리 ‘월가의 황제’라 불리는 다이먼이라도 만약 이런 한국에서 금융업을 했다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상상을 가끔 해본다.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 202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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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경제에 1%대 성장률이 의미하는 것 [광화문에서/유재동]

    올해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경제학자 A 씨는 그 근거로 대뜸 한국은행의 최근 통계 지표 하나를 내밀었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있는 집은 전체 소득의 평균 60%를 빚 원리금을 갚는 데 쓴다는 내용이었다. A 씨는 이 가구들이 대출 상환을 하고 나면 거의 최저생계비만 남는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경제의 한 축인 민간소비가 어떤 충격을 받을지 상상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경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야기했던 서브프라임 사태에 준하는 현상이 한국에도 불어닥칠 수 있다고 했다. 평소 워낙 비관적인 전망으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이번엔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집값과 금리, 소비의 함수 관계가 명확한 우리 경제에서 거의 모든 시그널이 침체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의 90% 이상은 새해에도 집값이 추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자산 가격의 하락은 가계의 소비 여력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누구나 집을 사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고금리, 저성장 시대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 경제가 올해 기록적인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경제계에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다. 민간 연구기관들은 물론이고, 항상 ‘희망이 듬뿍 섞인’ 전망을 내놓는 정부마저 1.6%라는 비교적 ‘담백한’ 수치를 제시했다. 한국 경제 역사상 성장률이 2%에 미치지 못한 적은 외환위기, 오일쇼크, 코로나 등 심각한 경제 위기가 찾아왔을 때 말고는 없었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상황은 더 심각하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0%대,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을 경고하고 있다. 별다른 외부 충격이 없었는데도 성장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기본 실력이 이제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사실 이런 성적표는 우리에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9년에도 연간 성장률은 원래 1%대가 유력했다. 통계를 유난히 중시했던 당시 정부가 막판에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겨우 2.0%를 맞췄다. 그해 정부의 성장 기여도가 1.5%포인트로 4분의 3을 차지했다. 가만히 놔뒀으면 사실상 성장의 맥이 끊겼을 것을 세금을 퍼부으면서 숫자를 억지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런 일들이 수시로 생기는 것만 봐도 우리에겐 잠깐의 성장 쇼크가 아닌 일본식 상시 불황이 이미 도래한 것인지 모른다. 이대로는 20여 년 뒤 경제 규모가 나이지리아에 추월당한다는 골드만삭스의 경고도 그다지 허튼소리가 아니다. 집권 2년 차를 맞은 정부는 올해 대규모 ‘빅배스’(부실 털어내기)를 할 모양이다. 고금리 기조 속에 “빚내서 경기부양은 안 한다”고 일찌감치 선언했고, 전기·가스요금의 정상화, 더 내고 덜 받는 식의 연금개혁도 추진한다. 모두가 당장에 필요하고 해묵은 과제이긴 하지만 그에 비해 성장을 촉진하고 기업가의 야성을 깨우는 노력은 미진하다는 평가가 많다. 상처가 나면 환부를 깨끗이 닦아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새살이 돋아나도록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다. 1%대 성장률의 의미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 202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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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유재동]빚 무서운 줄 모르다가는 패가망신하는 시대가 왔다

    이달 초 KB금융이 출간한 보고서에는 ‘역시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절로 들게 하는 부분이 나온다. 금융자산만 10억 원이 넘는 자산가들의 특징을 분석해 봤더니 이들은 코로나 사태 때 새로운 자산에 적극 투자하기보다는 빚을 먼저 줄이는 전략을 썼다고 한다. 흔히들 빚을 지렛대 삼아 자산을 불려 나가는 것을 ‘투자의 정석’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와 반대로 부자들은 60% 이상이 ‘부채는 자산이 아니다’라면서 빚내는 것에 거리를 뒀다. 심층면접에 응한 자산가들은 “꼭 필요하면 대출을 받더라도 현금이 생기면 빚을 우선적으로 갚는 데 주력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같은 시기 청년, 서민들의 대응은 부자들의 이런 태도와 많이 달랐다. 코로나 이후 저금리가 길어지고 유동성으로 자산가격이 폭등하자 20, 30대 투자자들은 자기 돈, 남의 돈을 가리지 않고 끌어모아 주식과 부동산을 사들였다. 외환위기 때 20%를 넘나드는 고금리를 경험한 장·노년층과 달리 대출의 무서움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과감한 투자에 나선 것이다. 무모한 ‘빚투’의 청구서는 지금 10%에 육박하는 대출 이자로 돌아오고 있다. 올겨울이 이들에게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 상황만 보면 마치 고금리 시대가 어느 날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왔고, 이를 예견한 부자들이 빚을 미리 줄여 나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금리가 빠르게 오를 것이라는 경고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에서는 이미 작년 봄부터 인플레이션을 차단하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아마존 테슬라 등 빅테크 기업 주가와 가상화폐 가격이 폭등하면서 각국 투자자들이 ‘유동성 파티’를 벌일 때였다. 그즈음 한국에서도 물가가 들썩이는 신호가 여러 곳에서 감지됐다. 한국은행 총재 역시 일찌감치 투자자들의 ‘빚투’ 열풍에 우려의 메시지를 냈다. 지금 ‘영끌족’의 고통은 이런 경제 흐름을 읽지 못하고 분에 넘치는 위험을 짊어진 대가라는 지적도 무리가 아니다. 빚의 복수극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내년부터 더 본격화된다. 연준이 금리를 올릴 만큼 올린 것 같지만 아직도 최소 1%포인트는 추가로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연 5%에 이르는 금리 수준이 미국에서 한동안 이어지면 전 세계에 충격파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 기간 민간부문 부채 증가폭이 주요국 중 최상위권이었던 한국은 더 심각하다. 올해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는 시중은행들은 내년엔 대규모 대출 부실에 대비해 상당한 충당금을 쌓아놨다고 한다. 이자 폭탄을 더는 못 버티고 쓰러지는 가계, 기업이 마구 쏟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도 영끌족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기업의 흑자도산을 막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는 ‘누가 대신 해주겠거니’ 바라면서 팔짱만 끼고 있으면 안 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제로금리와 저성장에 적응하려 노력해 왔듯이 각자가 고금리·고인플레 시대에 맞는 생존법을 익혀야 한다. 시대가 어떻게 바뀌든 항상 분명한 것은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점이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 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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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은행들이 혁신을 못 하는 이유[광화문에서/유재동]

    우리나라의 시중은행들은 ‘금융회사’일까, ‘금융기관’일까. 금융권을 취재해 본 기자라면 누구나 가끔은 고민해 봤을 문제다. 경영 성과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금융회사’, 금융 시스템 안정이나 소비자 보호 같은 은행의 공공성을 중시한다면 ‘금융기관’이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아직도 마땅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두 용어를 혼용한다. 은행들을 오래 취재해 왔지만 이렇게 성격이 묘하고 뭐라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조직은 찾지 못했다. 겉모습만 보면 은행도 멀쩡한 민간기업이다.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영업 활동을 통한 수익 창출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증시에 상장돼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주주에게 배당도 한다. 가장 다른 점은 정부가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과점(寡占) 회사라는 점이다. 덕분에 소수의 은행들은 국내외 시장에서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안정적인 이자 마진을 나눠 가지면서 생존을 보장받고 있다. 정부는 은행들이 망하지 않게, 그렇다고 과도한 폭리를 취하지도 않게 밀착 관리한다. 정부는 은행들에 이런 특혜를 주는 대가로 각종 규제를 가한다. 말이 규제지 실제로는 은행들의 모든 영업행위를 조종, 통제한다. 예대마진이나 각종 수수료에 대한 간섭이 대표적이다. 은행들은 국정과제나 정책 목적을 위해서도 수시로 동원된다. 금융당국은 최근 주요 은행장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자금시장 안정을 위한 90조 원의 채권 매입을 지시했다. 은행은 자영업자나 취약계층의 채무를 탕감하고 이자를 감면하는 일에도 자주 호출된다. 손실이 뻔하지만 군말 없이 따라야 한다. 은행은 인사도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 얼마 전 금융감독원장은 라임 사태로 중징계를 받은 우리금융 회장에게 “현명한 판단”을 언급하며 사실상 사임을 압박하는 듯한 말을 했다. 경영진 선임을 담당하는 이사회가 뻔히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간여한 것으로 해석됐다. 우리은행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누가 권력의 ‘점지’를 받아 차기 회장이 될지 뒷말이 무성하다. 정상적인 민간기업이라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당연하다는 듯이 진행된다. 금융당국의 관치(官治)는 은행의 공공성을 감안했을 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은행이 부실에 빠졌을 때 경제 전체에 어떤 충격이 생기는지도 우리는 뼈저리게 경험했다. 하지만 당국의 숨 막히는 간섭 속에서 우리 은행의 경쟁력이 수십 년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따뜻한 보호막 안에서 망할 걱정 안 하고 편하게 돈을 버는 동안, 은행은 대단한 경영 혁신도 없이 임직원들이 국내 최상위 수준의 연봉을 받는 꿈의 직장이 됐다. 그 피해는 오롯이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은행이 혁신을 못하는 데는 스스로의 책임도 크다. 은행들이 겉으로는 “규제 완화”를 외치면서도 실상은 당국의 뒤에 숨어서 더 세밀한 지침을 요구하는 사례를 지금까지 많이 봤다. 정부가 은행을 말 잘 듣는 하청업체쯤으로 길들이려 하고, 은행도 자신들의 편안한 생존을 위해 기꺼이 길들여지기를 바라는 규제 환경이 바뀌지 않고서는 진정한 금융 혁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 20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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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 [광화문에서/유재동]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가 한국의 야간 골프 열풍을 기사로 다뤘다. NYT는 “한국인들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 심지어 오전 1시까지도 골프를 친다”면서 대낮처럼 환하게 불빛을 켜고 즐긴다는 뜻으로 ‘백야(白夜) 골프’라고 이름 지었다. 미국에서도 ‘트와일라잇 티타임’이라고 해서 오후 늦게부터 해 질 녘까지 칠 수 있는 옵션이 있지만 한국처럼 달빛 아래에서 라운딩을 이어 나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의 명물로 자리 잡은 밤 골프 문화에 최근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잇달아 한마디씩 쓴소리를 했다. 에너지 절약이 절실한 시점에 적절치 않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야간 골프 자제령은 공공기관 온도 조절, 난방시간 단축 등과 함께 에너지 부족에 시달릴 때마다 정부가 꺼내 드는 ‘단골 카드’다. 정부는 “지금은 오일쇼크에 준하는 비상 상황”이라며 에너지 사용량 10% 감축을 목표로 대대적인 캠페인에 나서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가 급등으로 에너지 공급이 꽉 막힌 요즘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전시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 에펠탑 점등 시간을 줄인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셔츠 대신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대중 앞에 나타났다. 올겨울 에너지 대란에 대비하려면 국민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에 에너지 절약이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6개월째 무역적자와 고물가, 고환율 악재가 겹쳐 있는 우리는 더욱 절실하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환율 상승으로 수입 비용은 훨씬 늘었는데 가계나 기업의 에너지 소비량은 그다지 변한 게 없다. 공공기관이 아무리 앞장서서 노력해도 민간 부문이 움직이지 않으니 만성 적자 구조는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마냥 에너지를 아끼자는 구호를 외치고 야간 골프의 자제를 읍소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 위기를 키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정부의 에너지 대책이었다. 대표적인 게 전기료 인상 억제와 유류세 인하다. 에너지 수입 가격이 오르며 전기 생산·구매 비용도 폭증했지만 지지율 관리에 급급했던 역대 정권은 전기료를 낮은 수준에 계속 묶어뒀다.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기름값이 오를 기미를 보이자 이번엔 휘발유에 붙는 세금을 줄여 가격 상승을 막았다. 에너지 값이 오르면 그에 맞춰 소비를 줄이는 노력으로 극복해야 정상인데, 정부는 국민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오히려 무리한 가격 통제를 남발했다. 이는 올해 한전의 30조 원 적자와 정부의 세수 감소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국민들의 위기의식만 둔감하게 만들었다. 지금 같은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 시대에 에너지 과소비는 불에 기름을 안고 뛰어드는 꼴이다. 또 막대한 무역적자를 키우고 미래 세대에게 짐을 떠넘기는 행위이기도 하다.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유럽 국가들은 대국민 절약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전기료와 난방비 인상도 병행해 자연스러운 수요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달콤한 포퓰리즘 정책을 내세우는 대신 고통을 감내하며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고 국민들을 설득할 용기 있는 지도자가 우리에겐 있을까. 노동개혁, 연금개혁 못지않게 시급한 개혁이 여기 또 있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 202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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