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美中 경제는 상호보완적… 지금은 유럽이 가장 취약”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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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 및 중국 경제 석학
달러 브루킹스 선임연구원

미국 내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달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을 향해 미중 슈퍼파워 틈바구니에서 ‘미들 파워’로서의 역할을 해나갈 것을 조언했다. 데이비드 달러 연구원 제공
미국 내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달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을 향해 미중 슈퍼파워 틈바구니에서 ‘미들 파워’로서의 역할을 해나갈 것을 조언했다. 데이비드 달러 연구원 제공
《“세계는 다극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미중 슈퍼파워 외에 유럽 일본 인도 한국 등 ‘미들 파워(middle power)’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슈퍼파워는 미들파워 없이 어젠다를 밀어붙일 수 없다.”

미국 내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인 데이비드 달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달과 이달 두 차례에 걸친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한국의 중간자적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달러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 중에도 지난해 교역량이 사상 최대였다”면서 “양국은 여전히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며 세계화는 끝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올해 세계 경제 판도에 대해서는 “중국은 ‘제로 코로나’를 벗어나며 성장을 가속화하겠지만 미국은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이 50%”라며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과잉 부채에 시달리는 신흥국이 가장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다트머스대에서 중국 역사를 공부한 달러 연구원은 세계은행(WB) 중국·몽골 담당 국장, 미국 재무부 중국 경제금융 특사 등을 지내며 중국 경제 및 미중 관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올해 미국과 전 세계의 경기 침체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미국과 EU 등 선진 경제권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은 둔화하고 있다. 다만 특히 중국 등 개도국에는 일부 밝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성장은 둔화하고 있다. 미국이 경기 침체(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확률은 50 대 50으로 본다. 설령 미국이 침체를 피한다고 해도 성장은 느려지고 경기 침체와 다름없이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 경제는 왜 긍정적으로 보나.

“작년에 중국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경제 평균보다 느리게 성장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른 나라들이 둔화하는 가운데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작년 말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금까지 경제 성장을 방해했던 ‘제로 코로나’ 정책을 갑작스럽게 끝냈다. 그 후 코로나 환자가 즉각적으로 늘었지만 지금은 빨리 회복되고 있다. 가계 소비도 증가 추세다. 1월 춘제 기간 중 국내 여행이 물론 코로나 이전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작년보다는 크게 늘었다. 가계는 제로 코로나 기간에 저축을 쌓았고 소비할 준비가 돼 있다.”

―중국 양회가 폐막했다. 정책 기조의 변화가 있을까.

“중국은 양회를 통해 경제 성장과 민간부문 신뢰 회복에 대한 약속을 했다. 리창(李强) 신임 총리는 시장경제에 힘을 불어넣는 것과 시 주석의 통제와 보안 기조를 존중하는 것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될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잘 대응하고 있나.

“팬데믹이 매우 이례적인 충격이었다. 미국 등 각국 정부는 가계 소득을 보장해줄 비상 조치를 가동했다. 미국은 말 그대로 현금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거나 계좌에 직접 돈을 분배했다. 이런 지원은 필요한 것이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과한 면이 있었다. 미국은 경기부양책이 과했던 것이 수요 과잉을 촉발해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 됐다. 공급 측면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인상시켰다. 팬데믹으로 공장과 항만 물류 시설도 문을 닫아 공급망에 이상이 생겼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번 인플레이션은 무엇보다 과잉 수요의 결과다. 연준이 수요를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는데 이것이 먹히고 있다. 물가상승세는 아직 높은 편이지만 떨어지는 중이고 금리 인상은 더 있을 것이다. 경기 침체 없이 물가가 2%로 내려올 확률은 반반 정도 된다.”

―지금 어느 나라 경제가 가장 취약한가.

“유럽이 가장 취약하다. 올겨울은 따뜻해서 그나마 나았지만 다음 겨울에도 에너지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러시아 원유와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급력이 다른 나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유럽은 자체적인 인플레 문제도 있다. 신흥국 중에는 터키나 아르헨티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소득 국가 중에는 과잉 부채에 시달리는 나라들도 상당수 있다. 중국이 주 채권국이지만 채무 삭감에 부정적이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통해 다른 나라에 인프라 금융 지원을 했는데, 가난한 국가들은 이를 되갚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제에 다른 리스크는 무엇인가.

“각국마다 다르다. 미국은 재정정책을 지속 가능하게 해야 한다. 중국은 지금보다 더 개방하고 국내외 민간 부문을 더 포용해야 한다.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함께 힘을 합쳐 풀어야 할 문제도 있다. 이번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국제기구들은 미래의 팬데믹을 잘 준비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우리 시대에 존재론적인 도전이다. 기온 상승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끝없는 위기들에 직면할 수 있다.”

―미중 관계가 계속 악화되는 것 같다. 대만에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나.

“양국은 신(新)냉전을 피하려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론 협상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만을 둘러싼 실제 전쟁은 (양측의 엄청난 실수가 아니라면) 상상할 수조차 없지만 양측은 점점 ‘수용 가능한 정책’의 끝단으로 가는 것 같다. 중국은 전투기와 전함을 대만 근처에 배치하고 있고 미국은 고위급 인사를 계속 대만으로 보내며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조심스러운 외교만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전 세계에 위협인가, 기회인가

“위협이자 기회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세계 경제의 성장을 추동하고 빈곤을 줄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중국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들에 잠재적인 위협이다. 중국은 군사력을 증강하며 이웃 국가를 도발하고 있다. 또 러시아 이란 등 갈등과 불안을 유발하는 전 세계 권위주의 국가들을 지지하고 있다.”

―탈세계화가 가속화된다는 진단이 많다. 세계화는 끝난 건가.

“세계화가 끝났거나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세계화 흐름이 정체됐을 뿐이다. 지금 상황은 매우 모순적이다. 가령 미국과 중국은 무역 전쟁을 하고 있지만 작년 양국 간 무역액은 사상 최고였다. 반도체나 통신장비 등 첨단 제품의 무역은 2018년 고점 대비 크게 줄었다. 하지만 다른 모든 물품은 무역이 빠르게 늘고 있다. 세계화의 퇴조가 걱정되긴 하지만 아직 이를 목격하진 못했다.”

―미중 무역이 여전히 사상 최대라는 건 무엇을 시사하나.

“양국 경제가 상당한 상호보완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첨단기술과 자원이 풍부하고 중국은 노동력과 중간단계의 기술이 강점이다.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게 효과적인 이유다. 양국 간 갈등은 ‘무역 전쟁’이라기보단 ‘기술 전쟁’이다. 미국의 제재 대상인 반도체, 통신장비 등 기술 분야 무역은 크게 줄었지만 다른 제품군 무역은 증가하고 있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미국의 제재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 중요한 영역에서 두 나라가 갈라서면 양국 경제에 모두 부정적인 영향이 있겠지만 미국보다는 중국이 더 충격이 심할 것이다.”

―향후 국제 정세는 어떻게 될까. 미국은 슈퍼파워 지위를 유지할까.

“지금 우리는 다극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고 본다. 미국과 중국이 슈퍼파워지만 ‘중간 파워(medium-sized powers)’들도 중요한 시대다. 일본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경제 사이에서 중간자적 역할을 한다. 유럽은 기후변화 대처를 주도한다. 인도는 중국을 보완할 만한 고성장 대국이다. 지금 미국이나 중국은 이런 ‘중간 파워’ 국가들의 지원 없이는 글로벌 어젠다를 밀어붙이기 어렵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중간자적 역할은 무엇을 뜻하나.

“한국은 가까운 이웃이자 거대 시장인 중국과는 경제적 관계를 계속 강화하고, 지정학적으로 위험한 위치에 놓인 만큼 미국과는 긴밀한 안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 한국은 두 슈퍼파워를 도발하지 않고 (양측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 잘 해나가야 한다.”

―한국은 ‘칩4 동맹’ 등 대중 반도체 규제 전선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 부분은 한국이 주의 깊게 잘 들여다봐야 한다. 평범한 반도체는 모든 소비자 제품에 사용되기 때문에 중국으로 하여금 이런 범용 기술 접근을 막는 것은 실수일 수 있다. 다만 군사적 목적에 사용되는 하이테크 반도체에 대한 제재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한국 등 선진 민주국가의 과제는 중국의 경제 발전을 지지하면서도 그것이 군사력 확대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 조언을 한다면….

“경제 분야로는 우선 TPP에 가입하고 인도나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주요국들도 동참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미국도 언젠가는 TPP에 참여해야 하고 중국도 요건만 갖춘다면 가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안보 측면에선 한국은 대미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안보 우산 아래에서 현대적 규칙에 입각한 크고 개방적인 아시아 시장을 누리는 것은 한국의 번영을 위해 훌륭한 여건을 제공할 것이다.”

데이비드 달러
△1975년 다트머스대 졸업(중국사 및 중국어 전공)

△1984년 뉴욕대 경제학 박사

△1984∼1989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경제학과 조교수

△2004∼2009년 세계은행(WB) 중국·몽골 담당 국장

△2009∼2013년 미국 재무부 중국 경제금융 특사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달러 브루킹스#미중 경제#상호보완적#유럽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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