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팔레비 왕조 마지막 국왕의 장남
팔레비家, 망명 생활 속 불행한 결말
레자 “이란에 민주주의 도입” 주장
이란에서 반(反)정부 시위가 보름째 이어지는 가운데 시위대 일각에서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왕조의 부활을 구호로 외치고 있다. 극심한 경제난과 독재에 대한 염증으로 알리 하메네이 이란 국가 최고지도자와 신정일치 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움직임이다. 이 과정에서 팔레비 왕조 마지막 샤(국왕)의 장남으로 왕세자였던 레자 팔레비(66)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960년 10월 31일 테헤란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팔레비 전 왕세자는 1979년 이슬람 혁명 발발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친(親)미 성향이었고, 세속주의를 지향했던 팔레비 왕조는 미국과의 관계를 위해 레자를 미국으로 보냈다. 당시 레자는 텍사스주 러벅 리스 공군 기지에서 전투기 조종사 훈련을 받아왔다.
그러나 1979년 시아파 성직자 루홀라 호메이니를 중심으로한 반정부, 혁명세력이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키자 50년에 이르는 팔레비 가문의 험난한 망명 생활이 시작됐다. 레자의 부친이자 팔레비 왕조 마지막 샤였던 모하마드는 1980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희귀 혈액암으로 숨졌다. 여동생 레일라는 2001년 약물중독으로, 남동생 알리는 2011년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부친의 사망 뒤 레자는 “왕세자로서 즉위를 선포한다”고 밝혔지만 미국 등 우방은 사실상 이를 모른척 했다. 그는 남캘리포니아대(USC)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미국에 정착했다. 이후 하메네이의 독재를 고발하는 활동에 적극 나섰다. 민주주의와 친서방 노선 도입을 주장하는 그는 8일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이란의 절대 왕정 복귀를 원하지 않고 민주화를 이끌겠다”며 과도 지도자로 나설 의향을 밝혔다.
그러나 이란 내 기반이 없어 지속적인 영향력 행사 및 집권은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더타임스는 “1979년 뒤 이란에 발을 디뎌본 적이 없는 팔레비 전 왕세자는 상징성에 비해 실제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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