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한 공공기관 홍보실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기관장의 연재 칼럼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간 각종 매체에 실린 기관장의 글을 스크랩해 목차까지 붙인 50쪽짜리 문서와 프로필도 첨부돼 있었다. 절반은 기관의 신규 사업과 성과를 알리는 내용이라 ‘국민소통’ 차원이려니 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외지인 CEO, OO 3년 살기’, ‘스토리 경영’, ‘스몰볼 혁신’ 등 기관장 개인의 경험과 철학을 드러내는 에세이였다. 책상머리 관료 출신이 경영 일선에서 얻는 통찰을 나누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 다만 이는 엄밀히 따져 개인 활동이다. 기관의 자산으로 쌓이지 않을 활동을 왜 공조직이 나서서 하는지 안타까웠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1000조 공룡
공공기관은 정부의 손과 발이다. 도로, 철도, 공항, 토지주택, 전력, 수자원, 가스…. 국민이 삶 속에서 실제 접하는 ‘정부’는 공공기관이다. 한 해 동안 집행하는 돈도 1000조 원 가까이로 국가 예산보다 많다. 여기에는 2024년 기준 국민 세금 128조 원도 들어갔다. 정권과 무관하게 3년 임기를 보장받는 수장이 누구인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공공기관은 부처에 비해 들여다보는 눈이 적다. 경영정보가 공시되지만 관심 있는 사람만 찾아본다. 기관장도 취임한 뒤 노조의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이 벌어져야 누가 됐는지 알게 되는 일이 잦다.
관심이 적다 보니 기관장 인선에 대한 광범위한 오해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대통령이 눈독을 들이지 않으면 시스템에 의해 공정한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착각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제가 집권하면 그냥 놓겠다”고 공언했다. 지금은 의원이 된 당시 기세등등했던 한 대통령실 인사는 “우리는 대선에 뛰어든 지 1년 만에 정권을 잡아 정치권에 빚이 없다”면서 “사실 기관장 자리엔 관심도 없다”고 자랑했다.
총 집권 3년을 보고 나니 사실도 아니었지만, 초반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얘기해 본 적도 없다는 정치권 인사들이 주요 기관장을 꿰찼다.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알 수 없는 낙하산이었다. 낙하산 인선을 방어하는 레토릭인 ‘국정철학을 공유한 인사’라는 말도 내밀 수 없었다. 이는 정권 실세인 누군가 논공행상을 했다는 뜻이다. 실제 “누구를 찾아갔다”, “그게 OOO”이라는 뒷말이 야권에 무성했다.
낙하산만 아니면 된다는, 그러면 전문경영이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도 현실과 어긋난다. 전문성은 있지만 정권과 무관하게 목숨 연명이 더 중요한 내부 출신도 있다. 또 부처 고위 공무원이 산하기관장으로 가 왕 노릇을 하는 경우도 봤다. 무엇보다 전문가가 꼭 경영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2024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를 보면 ‘아주 미흡’과 ‘미흡’ 평가를 받은 13곳 중 7곳이 감독 부처, 관련 기관을 포함한 범(汎)내부 출신 수장을 두고 있었다. ‘낙하산 배제’라는 단순한 기준이 적재적소라는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효능감 높은 정부의 시작과 끝
이재명 정부의 기관장 인사가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12월 부처와 산하기관의 공개 업무보고를 진행하며 이른바 ‘견적’도 낸 듯하다. 어떤 기관은 내부 출신들만 추천했다가 대통령의 질책을 받고 재공모를 했다. 공공기관은 ‘효능감 높은 정부’의 시작이자 끝이다. 장관은 후보자 시절부터 모든 국민이 보고 있다. 9년 전 인턴을 향한 막말 육성까지 공개된다. 반면 기관장 한 명 한 명에게는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결국 ‘1000조 공룡’을 이끈다. 그러니 누가 오는지, 와서 무얼 하는지 꼭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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