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CES 2026에 등장한 현대자동차의 피지컬AI 로봇. 현대자동차 유튜브 캡쳐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CES에서 올해 가장 큰 화두는 ‘피지컬 AI(Physical AI)’였다. 피지컬 AI란 소프트웨어로서의 인공지능이 로봇·기계·센서 같은 물리적 몸을 갖고 현실 공간에서 움직이며 판단하고 작동하는 기술을 말한다. 화면 속에서 답을 내놓던 AI가 공장과 병원, 물류창고와 가정으로 내려와 실제 노동을 대신하거나 보조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대통령도 최근 “우리의 미래 먹거리는 피지컬 AI”라고 공언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저출산·고령화 이슈도 AI라는 화두를 입고 탈바꿈했다. 청년의 감소와 고령 인구의 증가로 생긴 노동 공백을 AI가 메울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저출생수석실이 사라지고 AI수석실이 신설되며 인구비서관이 그 아래 놓인 조직 개편 역시 이런 인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초저출산 사회를 피할 수 없는 한국에서 AI는 이제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구조적 위기를 돌파할 유력한 해법이 됐다.
이런 변화를 지켜보며 많은 부모들은 불안감과 초조함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애들도 AI 기술이나 코딩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냐? 다른 거 배워선 진학도, 취업도 안 될 것 같은데.” 최근 만난 두 아들의 어머니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과연 AI의 발전은 AI 기술자들을 대거 필요로 하게 될까?
CES를 하루 앞두고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열린 LG전자 사전 부스투어에서 AI 홈로봇 ‘LG 클로이드’가 세탁된 수건을 접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뉴스1 ● WEF “AI와 노동, 네 갈림길의 미래”
각국 정상과 글로벌 기업, 국제기구 수장들이 모여 경제·기술·사회 변화의 방향을 논의하는 국제 민간 싱크탱크 세계경제포럼(WEF)은 이달 7일 ‘AI와 함께 일하는 시대, 2030년 일자리의 네 가지 미래(Four Futures for Jobs in the New Economy: AI and Talent in 2030)’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AI와 노동력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네 가지 갈림길을 제시한 보고서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초가속 진보(Supercharged Progress)’다. AI가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노동시장도 그 속도를 따라가며 ‘AI 중심 경제’로 급전환하는 경우다. 유통회사 본사에서는 사람이 엑셀을 붙잡고 계산하는 대신 여러 AI 에이전트에게 “이번 주 전국 매장 발주·가격·프로모션을 통합 설계하라”고 지시하고, 사람은 결과를 조정·감독하는 ‘에이전트 지휘자(orchestrator)’ 역할로 이동한다. 생산성과 혁신은 크게 뛰지만 변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안전망과 윤리, 거버넌스가 뒤처질 수 있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와 새 직무가 생겨나는 속도가 맞물리지 않으면 사회적 충격이 커질 수 있다고 WEF는 경고한다.
두 번째는 ‘대체의 시대(The Age of Displacement)’다. AI는 초고속으로 진화하는데 교육과 재훈련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현장이 ‘자동화로 도주’하는 경우다. 콜센터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과거에는 상담원이 민원과 해지, 요금제를 처리했지만 이 시나리오에서는 에이전트형 AI가 고객 응대부터 환불 규정 적용, 서류 작성까지 맡고 사람은 일부 예외 상황만 처리한다. 기업은 인력 부족을 이유로 자동화를 더 서두르고, 그 결과 실업이 늘고 소비 심리가 위축되며 사회 불안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사람과 AI, 팀이 되는 노동
세 번째는 ‘코파일럿 경제(Co-Pilot Economy)’다. AI 발전은 비교적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대신 ‘AI를 다루는 기본기’가 넓게 퍼져 대규모 해고가 이뤄지진 않지만 많은 업무가 재구성되는 미래다. WEF는 AI 거품 붕괴와 같은 국면을 거치며 기업들이 환상을 내려놓고, 전면 자동화가 아니라 업무별·과제별로 실용적인 AI 도입에 나설 가능성을 언급한다. 병원 행정에서는 간호사가 차트 요약과 보험 서류, 환자 안내를 AI에 맡기고 환자 돌봄과 판단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제조업 현장에서는 작업자가 AI 코파일럿의 도움을 받아 점검과 분석을 수행하며 숙련을 빠르게 쌓는다. 사람의 자리가 사라진다기보다, 사람과 기계가 팀을 이루는 구조가 일반화되는 모습이다.
마지막은 ‘정체된 진보(Stalled Progress)’다. AI도 천천히 발전하고 노동자의 역량도 이를 따라가기엔 부족해 업무방식의 대전환 대신 기존 방식에 AI를 조금씩 덧대는 미래다. 비용 압박과 단기 성과 경쟁 탓에 기업과 조직이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부와 기업은 보수적으로 AI를 활용한다. 사무직에서 문서 작성이나 번역 일부만 AI가 맡을 뿐, 의사결정 구조와 업무 흐름은 그대로여서 혁신이 크게 체감되지 않는다. 대신 자동화가 덜 미치는 숙련 기술직과 현장직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가고, AI 역량을 가진 기업과 지역만 성장하며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네 가지 시나리오는 나라마다 다르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산업과 직군에 따라 서로 다른 시나리오가 동시에 펼쳐질 수 있다. 그 차이를 가르는 것은? AI의 발전 속도와 그 변화에 노동·교육·정책이 얼마나 준비돼 있느냐다.
이 말인즉 어떤 경우든 미래에 필요한 것은 AI 기술자만이 아니라 근로자의 교육과 재훈련, 기업의 도입 방식을 시행·결정하고, 안전망과 거버넌스에 따라 이를 관리할 기존 직군, 그리고 새로운 직군이라는 점이다.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맥킨지 “AI 확산이 곧 일자리 소멸은 아니다”
물론 단순노동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는 상당부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앤컴퍼니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보고서 ‘AI 시대의 협업: 에이전트·로봇·인간(Agents, Robots, and Us: Skill Partnerships in the Age of AI)’은 AI와 로봇의 확산이 곧 인간 노동의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한다.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오히려 판단과 의사소통, 조정과 창의, 책임 있는 결정 같은 인간 고유의 역량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고객 응대, 공급망 관리, 의료 행정 등에서 AI가 자료 분석과 초안을 맡고, 사람은 결정의 맥락을 해석하며 이해관계자 간 충돌을 조정하는 역할로 이동할 것이라 설명한다. 기업 콜센터에서 AI가 상담 이력을 요약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고객의 감정 상태를 읽고 예외 상황을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 상담원의 몫인 식이다. 제조업과 물류에서도 로봇과 AI가 작업을 수행하되 공정 변경이나 안전 판단, 예상치 못한 오류 대응은 사람이 담당하는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
핵심은 AI를 만드는 소수의 개발자보다, AI를 이해하고 함께 일할 줄 아는 다수의 노동자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해진다는 점이다. 맥킨지는 이를 ‘AI 유창성(AI fluency)’이라 부른다. 코딩 능력이 아니라 AI의 강점과 한계를 이해하고 언제 맡기고 언제 개입할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WEF가 말한 ‘코파일럿 경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종로학원 ‘2026 정시 합격 가능성 예측 및 지원 전략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입시 설명을 듣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모두를 기술자로 키울 필요는 없다
‘문송합니다’에 이어 AI 충격이 현실화되면서 학생들의 이공계 쏠림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최근 만난 취재원은 “현재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은 다른 건 몰라도 공대나 이학계열에 진학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싱크탱크들은 AI 시대에 우리 모두가 AI 전문가나 이공계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AI가 뜬다며 코딩 학원에 보내고 이공계 대학에 진학시키겠다는 발상은, 사법권이 힘이 세니 법대를 보내고 의사가 돈을 잘 버니 의대에 보내자는 식의 단기적 계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AI가 인간의 단순 노동을 대체할수록, 교육은 인간에게 더 높은 창의성과 더 깊은 판단,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능력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교육과 진학 구조로 충분하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의 맥락을 이해하고 스스로 해법을 찾으며, 사회적으로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고력과 판단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수능에 맞춰 문제를 외우고 반복 학습에 익숙해진 교육,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스펙 쌓기에 몰입하는 대학 생활이 그런 인재를 충분히 길러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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