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2007년경 평양역 앞에 설치된 한국 휘파람 승용차 광고판. 이때만 해도 북한에선 개인이 자가용을 보유할 수 없었다. 동아일보 DB
2025년은 북한 ‘마이카(My Car) 시대’ 원년이다. 북한은 지난해 초 개인의 자가용 소유를 전격 허용했다. 또 ‘자가용승용차 이용법’이라는 것도 만들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평양 시내에서 자가용 승용차가 달리는 사진도 많이 공개됐다. 북한은 노동당 창건 80주년인 지난해 10월 10일을 맞아 ‘평양 가을철 국제상품전람회’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관광객 입국을 공식 허용했다. 이 관광객들이 찍은 평양 시내 차량 사진들이 외부 사이트에 공개된 것이다.
북한의 자가용 승용차 번호판은 노란색이서 국가 소유 승용차와 뚜렷하게 구별된다.
평양 화성신도시 ‘아미산 자동차 기술 봉사소’. 북한에서 제일 큰 차량 및 오토바이 판매점이다. 노동신문 뉴스1
● 당국도 예상 못한 판매량
이달 초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자가용이 평양에서만 8000여 대 팔렸다고 한다. 평양을 제외한 지역은 다 합쳐도 1000대 정도 팔렸다. 당국이 전격적으로 자가용 보유를 허용했지만, 과연 그런 건지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많고 구매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평양 자가용은 ‘평양·1234’ 같은 식으로 네 자리 숫자 번호판이 사용된다. 이미 8000대 넘게 팔렸다면, 조만간 다른 방식의 번호판이 나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숫자를 네 자리만 활용했다는 것은 북한 당국도 1년 만에 자가용이 1만 대 가까이 팔릴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에 비해 많은 차량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밀수되는 정황도 다수 확인된다. 지난달 압록강을 끼고 있는 양강도에서만 차량이 건너갈 수 있는 임시 도강로(渡江路·강바닥에 흙더미를 쌓아 만든 비공식 통로) 32개가 위성을 통해 확인됐다. 중국에서 건너다보이는 혜산 시내에도 택시 간판을 단 차량이 급격하게 늘었다.
새로 개장한 ‘아미산 자동차 기술 봉사소’에선 새 차량 판매와 함께 임대 서비스도 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올해에 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평양을 따라 지방에서 승용차 구매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승용차 판매가 활성화하면서 여러 명이 돈을 모아 할부로 차량을 구매하는 방법이 일반화하고 있으며 외상으로 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도 북한에서 개인의 자가용 보유가 불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개인 소유의 성격과 원천’을 규정한 북한 민법 58조는 ‘개인 소유는 노동에 의한 사회주의 분배, 국가 및 사회의 추가적 혜택, 터밭(텃밭) 경리를 비롯한 개인 부업 경리에서 나오는 생산물, 공민이 샀거나 상속 또는 증여받은 재산, 그 밖의 법적 근거에 의하여 생겨난 재산으로 이루어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차량을 살 수 있는 큰돈은 ‘그 밖의 법적 근거에 의하여 생겨난 재산’ 말고는 만질 수가 없는데, 지금까지 이 ‘재산’은 일본에서 송금이 오는 총련 귀국자들이나 인정받을 수 있었다.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번 돈이나 장마당에서 번 돈은 모두 비사회주의적 재산 축적으로 간주해 언제든 몰수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올해 민법 적용을 느슨하게 해 자산 축적 과정을 증명하지 않고도 차량을 살 수 있게 허용했다. 또 자가용 상속도 인정해 주고 있다.
평양 시내에서 운행되는 다양한 종류의 자가용들. 인스타그램 계정 ‘DPRK360’ 캡처
● 자가용 시대의 풍경
북한의 이 같은 정책 변화는 단순히 경제난 때문에 내부에 숨어 있는 외화를 빨아들이려는 의도로만 해석할 순 없다.
차량 소유뿐만 아니라 주택과 기업 소유, 의료 분야 등에서 사회주의적 시책을 폐기하고 중국식 시장경제 비슷한 모델로 바뀌는 징후가 최근 몇 년 새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가장 대표적인 사회주의 정책인 배급제도 점점 대상이 축소되고 있다.
김정은은 외부에 떠들지 않고 획기적인 내부 개혁을 진행하는 중이다. 자가용 허용은 그런 정책 변화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김정은의 지시 한마디로 언제든 정책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당국을 신뢰하진 않는다. 그래서 막대한 돈이 드는 자가용을 서슴없이 사지는 않는다.
현재 자가용은 사적 소유보다는 영업 서비스 분야에서 급격히 확산하는 추세다. 개인 또는 여러 명이 차량을 사서 운송업을 하거나 택시 영업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엔 차량이 소유가 아닌 투자 개념이 되기 때문에 당국도 생계수단을 함부로 뺏기 어려워진다. 재산을 강탈하면, 빼앗긴 사람은 당국에 반감을 품은 ‘반동’이 될 수밖에 없다. 빼앗긴 사람이 많을수록 반동이 증가하면 북한 체제가 위태로워진다.
차량 임대 서비스도 퍼지고 있다. 당국에서 인정받은 공인 ‘륜전기재(바퀴 달린 운송 및 중장비) 봉사소’에서 시간제로 차량을 임대해 준다. 평양의 경우 승용차를 24시간 빌리는 비용은 100달러 정도이며, 장기 임대는 기간에 따라 10% 이상 할인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당국에서 차량을 구매해 봉사소에 제공하진 않는다. 봉사소 차량은 외화 벌이 기관이나 돈 많은 개인이 사서 봉사소에 운영하게 한다. 실질적으로는 개인 소유 차량이다.
북한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가용은 중국제 중고 전기자동차다. BYD가 가장 많다고 한다. 전기자동차 시장이 포화 상태인 중국은 값싼 중고 승용차를 얼마든지 북한에 넘길 수 있다. 중국 업자들이 할부금을 못 내 압류된 승용차들을 북한에 대거 넘기고 있다는 뉴스도 나온다.
차량이 증가하면서 주유 서비스 및 중고차 수리 업체도 많아지고 있다. 만성적인 전력난과 연료난을 겪고 있지만, 차량용 연료는 중국에서 많이 밀수되고 있다. 또 태양광 충전을 위한 패널과 충전기도 함께 북한으로 들어간다.
마이카 시대를 맞아 해결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는 면허증 발급이다. 과거 북한은 운전사 양성소에서 1년 이상 운전을 배운 사람에게만 면허를 발급해 주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3개월 속성 교육을 통해 면허를 받을 수 있는 제도도 등장했다.
교육비는 300~500위안(한화 약 6만~10만 원)이다. 북한 당국은 차량 등록 비용은 물론 면허 장사로도 외화를 거둬들인다. 1200위안(약 25만 원) 정도 뇌물을 주면 3개월을 배우지 않고도 더 빨리 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2019년 12월 북한 측 강원도 마식령스키장에서 포착된 아우디 Q7. 이 차량은 한국에서도 1억 원대에 팔리는 차량이다. 번호판으로 보아 김여정이나 다른 김 씨 일가 차량으로 추정된다. 출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중간보고서
● ‘마이카’가 바꿀 북한 미래
북한 당국이 자가용 소유를 허용했을 때 주민들은 아무래도 ‘갑자기 법이 바뀌어 차를 빼앗아 가면 어떡하지’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쓴다.
자가용승용차 이용법에는 몰수 규정이 명시돼 있다. 제41조는 ‘자가용 승용차 이용 질서를 어긴 자에게는 도로교통법의 해당 조항에 따라 벌금, 운전 자격 박탈 처벌을 준다. 자가용 승용차를 범죄 행위에 이용하였을 경우에는 몰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한 북한에서, 특히 장사조차 불법인 북한에서 당국이 ‘차를 이용해 범죄 행위를 했다’고 걸면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앞으로 자가용을 많이 판매하려면 당국이 웬만하면 몰수하지 않아야 한다. 당국에 대한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에도 북한에서 마이카 시대가 시작된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도 1970년대 이후 마이카 바람이 시작된 이후 1인당 국내총생산(GDP) 상승과 1980년대 ‘3저 호황’ 덕분에 1980년대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를 맞았다. 마이카는 중산층의 상징이자 성공의 보편적인 목표였다.
현시점에서 북한 마이카는 중상층이 아닌 상류층의 상징이다. 마이카 시대는 교통 환경, 외식과 쇼핑 문화 확대 같은 사회 변화를 수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욕망의 분출’이다.
마이카는 사적 소유를 인정받지 못하던 북한 사람들 마음속에 탐욕을 심어 놓고, 경쟁 심리를 자극하게 된다. “우리 집은 왜 차가 없느냐”는 자녀 투정에 초연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다.
북한 마이카 시대는 당국에 충성해야 인정받던 시대에서 돈을 벌어야 인정받는 시대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이카는 거리 풍경을 바꾸는 것에서 더 나아가 북한 주민의 ‘혁명적’ 두뇌도 ‘자본주의’로 물들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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