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은지]‘비닐 재포장 없애기’도 훌륭한 마케팅 수단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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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강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10일부터 일주일 동안 서울시내 마트 4곳과 백화점 2곳을 둘러봤다. 올 1월부터 시행된 재포장 금지가 얼마나 정착됐는지, 7월부터 지금의 2개 이상 제품에서 3개 이상으로 확대되는 재포장 금지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재포장은 이미 포장되어 나온 제품을 플라스틱 포장재로 다시 감싸는 것을 뜻한다. 띠지나 고리로 2, 3개 상품을 묶기만 하는 것은 재포장 규제 대상이 아니다.

올해 들어 성공적으로 ‘재포장 퇴출’을 한 품목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유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유를 ‘1+1’ 판매를 할 때 2개씩 가방 형태의 비닐로 포장해 판매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찾아간 마트에선 900mL, 1000mL 우유를 판매하면서 손잡이까지 달린 비닐 포장재들은 모두 띠지로 바뀌어 있었다. 동행한 환경운동 활동가조차 “깔끔해졌다”며 감탄했다.

할인은 그대로 진행하되 묶음 포장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한 대형마트는 매대 위 노란색 표지판에 ‘1+1’ 표시를 크게 붙인 뒤 햄 제품을 낱개로 비치했다. 띠지나 고리도 없이 소비자가 알아서 추가로 가져가도록 할인 판매를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그동안 편의점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대형 마트에서는 이제야 등장했다. 소비자들도 2개 이상 행사 상품을 낱개로 구매할 경우 집에 가져가 붙어 있는 테이프를 잘라내 나누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달라진 소비문화 덕분에 제조사들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농심은 이달 말부터 생산하는 우동 제품 4개들이 포장을 전체를 감싸는 비닐 재포장에서 띠지 형태로 바꾼다. 4개 들이 제품은 재포장 금지 규제 적용을 받지 않지만 먼저 바꾸는 것이다. 그동안 라면업계는 운송 편의 등의 이유로 재포장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왔다. 3개씩 비닐로 꽁꽁 묶어서 팔던 통조림햄은 종이 띠지로, 3개씩 모아 비닐 포장으로 판매하던 식용유는 낱개로 팔고 있었다.

최근 들어 재포장을 불필요한 ‘껍데기’로 보는 인식이 늘고 있다. 과거엔 “포장재를 버릴 수 없다”던 기업들도 최근 경쟁적으로 “포장재를 줄였다”고 홍보하고 있다. 다시 포장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할인 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시장이 보여 주는 것이다. 불필요한 포장재를 줄이는 행동에 정부와 기업, 시민이 모두 나서고 있다. 이제 ‘껍데기’와의 이별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재포장 금지#재포장 퇴출#환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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