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사 현실도, 법령체계도 무시한 靑의 검경수사권 시행령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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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검경수사권 조정 시행을 위해 지난주 법무부 등 관계기관에 보낸 검찰청법 시행령 잠정안이 수사 현실은 물론 법령체계를 무시한 초법적 내용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시행령은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의 범위와 대상을 정해 이르면 8월 초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가기 위해 세부사항을 마련한 것이다.

청와대 안은 시행령에 규정돼 있지 않은 범죄 중 국가·사회적으로 중대하거나 국민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의 수사 개시 때에는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수사를 할지 말지부터 장관 허락을 받으라는 것이다. 이는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 외에는 검찰 수사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한 검찰청법에 위배되며, 수사 착수 단계부터 권력의 입맛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되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와대 안은 부패 범죄나 공직자 범죄가 칼로 무 베듯이 수사 대상이나 범위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수사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잠정안은 4급 이상 공직자는 검찰이, 5급 이하 공직자는 경찰이 수사하도록 했다. 하지만 실제 공직자 범죄의 경우 상급자의 지시에 의해 하위 실무자가 범죄를 실행하거나, 하위 실무자의 범죄행위를 상급자가 묵인 방조하는 식으로 위아래가 함께 연루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마약범죄에서도 검사가 수사 가능한 범위를 ‘밀수범죄 등’으로 제한해 놓았는데 실제 마약범죄 수사에서는 마약의 밀반입과 유통, 투약혐의 수사가 따로 나눠지지 않는다. 투약자를 수사하다가 유통조직과 밀반입조직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밀반입 수사를 하다가 국내 유통조직과 투약자까지 수사가 확대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수사 대상과 범위를 나눠 놓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입법 형식에 있어서도 모법의 위임범위를 벗어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모법인 개정 검찰청법 제4조1항1호는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범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중요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잠정안은 ‘수사 대상 범죄의 구체적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는 명시적인 위임이 없는데도 부패범죄는 뇌물 3000만 원 이상, 공직자범죄는 4급 이상으로 수사 대상 직급과 범위를 제한해 놓았다. 검찰 힘 빼기에만 골몰하느라 수사 현실도, 법령체계도 무너뜨린 초법적 시행령안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검경수사권#시행령#법령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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