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으로 세상이 달라지나[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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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대타협 반대하는 민주노총 강경파
합의 깬 이후 노동자들 위한 대안은 있나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자본가 하수인 김명환 사퇴.’

지난주 민주노총 강경파가 노사정 합의를 반대한다며 김명환 위원장 앞에서 든 피켓이 인상적이었다. 일부 노조 간부들은 그날의 사건을 승리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에겐 민주노총의 ‘싸움꾼’ 이미지만 선명하게 각인됐다.

코로나19와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민주노총 일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경영자단체와 노동자단체들이 모두 참여해 만든 합의안이었다. 5개 장, 64개 실천방안으로 구성된 합의문은 1장 고용유지를 위한 노사정의 역할, 2장 기업 살리기 및 산업생태계 보전, 3장 사회안전망 확충 방안 등이 담겼다. 선언적인 내용뿐 아니라 ‘사내근로복지기금 활용을 통한 협력업체 근로자 지원’이나 ‘고용보험 확대를 위한 보험료 인상’ 같은 실질적인 내용도 많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강경파는 ‘해고금지’ 없이 ‘고용유지에 노력한다’는 애매한 문구만 넣었다고 반대했다. 실직자 보호와 사회안전망 확대가 부실하다는 것도 반대 이유다.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이 고용유지를 위해 근로시간 단축, 휴업 등을 하면 적극 협력한다는 조항은 ‘투항 선언’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대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부족함을 문제 삼아 합의를 걷어차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임시 일용직이 일상화된 플랫폼 경제 시대에 전면적인 해고금지는 가능하지도 않다. 일감이 떨어져 몇 달 후를 기약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의 근로자들은 무급휴직보다 차라리 해고로 실업수당 받기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도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이 100만 명을 넘는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규모 사업장과 비정규직 노조까지 포괄하는 대표적인 노동자단체다. 자본과 노동은 서로 상대방 없이 존재할 수 없는데, 자본가를 적대시하며 자신들의 대표를 ‘하수인’이라고 비난하는 일은 이젠 그만둬야 한다. 불황에 살아남으려는 기업들의 노력과 노동자들의 생존 위기는 투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사실 민주노총이 합의를 안 해도 정부와 국회가 그 내용을 법과 제도로 만들면 된다. 오히려 ‘뭘 이런 것까지 노사정 합의에 넣나’ 싶은 대목들도 있다. 4장의 공공병원을 늘린다는 내용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사회의 이해당사자들이 주요 사안에 합의하는 것은 정책을 힘 있고 내실 있게 추진하는 동력이 된다. 노사의 협력이 필요한 사항이 많기에 더 그렇다. 코로나로 인해 기업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합의가 공중에 떠버리면 정부는 노동자들을 위해 합의문에 있는 내용만큼도 지켜주기 힘들 것이다.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변론을 도맡았던 인권변호사 출신이고,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이보다 더 노조를 존중하는 정부는 나오기 힘들다. 경영계와 사회 일각에서는 정부가 노동 편향적이라는 비판이 높다. 이런 여건에서 합의를 거부한다면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질 것이다. 노동 3권을 탄압하는 독재 시절도 아니니 대책 없는 투쟁은 그만하고 제도 안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대다수 조합원들의 뜻도 그럴 것이다.

김 위원장은 애초에 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조합원들의 직접 투표로 당선된 사람이다. 그는 이번 합의문에 대해 조합원들의 뜻을 다시 묻는 절차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사정 합의 과정에서 민주노총 내부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설득하기 바란다. 민주노총이 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책임 있는 주체가 되느냐, 아니면 메아리 없는 투쟁만 하는 아웃사이더로 남느냐 갈림길에 섰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민주노총 강경파#합의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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