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감시자도 불꽃 차단벽도 없이… 우레탄폼 작업하며 용접

고도예 기자 , 전채은 기자 , 이천=한성희 기자 입력 2020-05-01 03:00수정 2020-05-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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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센터 화재참사, 현장 작업자 증언으로 본 안전불감증
경기 이천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30일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벌였다. 이천=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현장에서 화재 감시자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용접을 할 때도 방화벽이나 덮개를 쓴 적이 없었습니다.”(현장 직원 A 씨)

지난달 29일 경기 이천시에서 발생한 물류센터 화재 참사 현장에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증언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한 현장감식 관계자는 “기본 수칙만 지켰더라도 이렇게까지 많은 희생자가 나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물류센터 화재는 크게 3가지 측면에서 규정 위반으로 볼 수 있다. △화재 위험을 감시할 전담 인력이 없었고 △용접 때 덮개나 방화벽 등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았으며 △사고에 대비한 대피로 확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 “화재 감시자도, 안전관리자도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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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원인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특별수사본부 등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일부 직원들은 “공사하는 내내 화재 감시자는 물론이고 안전관리자도 본 적이 없다”며 “이따금 감리 책임자가 왔다 간 것이 전부다”라고 진술했다.

이천 물류센터처럼 화재에 취약한 공사 현장에선 화재 감시자는 필수 배치 인력이다. 화재 감시자는 불이 날 위험을 사전에 점검하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현장 인원을 대피시키는 일을 맡는다. 현행법에 따르면 불이 나기 쉬운 작업을 할 때는 시공사 등이 현장에 반드시 화재 감시자를 상주시켜야 한다.

최초 발화지로 알려진 지하 2층에 소화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진술도 나왔다. 현장에서 3개월 넘게 일했다는 B 씨(52)는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쯤 화재가 발생한 지하 2층에서 일한 적이 있다”며 “당시에도 용접 작업을 했었는데 주변에서 소화기를 본 적은 없다”고 했다. 현장감식 관계자는 “건물 각 층마다 소화기가 있긴 했다. 하지만 화염이 급격하게 번져 소화기로 끌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덮개 방화벽 없었고, 환기도 안 했다”

경찰 조사에서 하청업체 직원들은 사고 당시 지하 2층에서 엘리베이터 설치를 하고 있었다. 이때 용접 작업을 하면서 주위로 불꽃이 튀었다. 소방당국 등은 최초 발화지로 추정되는 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용접에 쓰이는 절단기와 전동공구를 여러 개 발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용접 불꽃을 막아줄 철제 방화벽이나 덮개가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서 일한 한 직원은 “공사 기간에 우레탄폼 작업을 하는 주변에서 용접을 여러 번 했다”며 “이때 덮개 등을 설치한 기억은 없다”고 진술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등은 용접 작업장 반경 10m 안에 인화성 물질을 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부득이하게 인화성 물질이 있는 공간에서 용접을 할 때는 덮개를 씌우거나 방호벽을 세워야 한다.

당초 폭발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유증기(油蒸氣·oil mist)의 존재도 확인됐다. 소방당국은 인화성 가스가 지하 2층의 1822m² 남짓한 공간에 가득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층에서 벽면과 천장 곳곳을 우레탄폼으로 메우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합동감식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용접을 하며 튄 불꽃이 인화성 가스나 우레탄폼에 옮겨 붙어 불길이 치솟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불이 나도 대피하기 어려운 구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공사 전부터 물류센터 현장에서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지적해 왔다. 공단은 지난해 3월 시공사인 ㈜건우가 작성한 ‘유해위험 방지 계획서’를 검토한 뒤 “우레탄폼 작업의 안전 계획을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보완 계획서를 받아본 공단은 “용접 작업 때 화재나 폭발 방지 계획을 구체적으로 보완하라”며 조건부 적정 의견을 냈다.

공단은 이후에도 수시로 현장을 방문해 화재 위험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지난해 5월과 올해 1월, 올해 3월 등 3번이나 방문해 매번 시공사에 불이 날 위험이 있다며 ‘조건부 적정’ 판정을 했다. ‘조건부 적정’ 의견을 받은 업체는 문제를 시정하지 않아도 공사 중지 등 강제 처분을 받지 않는다. 시공사는 행정조치 요청을 포함해 모두 6번의 경고를 받았다.

공사 현장에 대피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던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물류센터 건물은 비상구가 하나뿐인 데다 복도 폭이 매우 좁았다. 사실상 불이 나도 쉽게 대피하기 어려운 구조였다고 한다.

고도예 yea@donga.com·전채은 / 이천=한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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