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채은

전채은 기자

동아일보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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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채은 기자입니다.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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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4~20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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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년간 투고 끝에, 첫 도전에…영예의 9인 “읽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글 쓰겠다”[신춘문예 2022]

    밥 짓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평범한 저녁 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딸의 환호성에 온 가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신춘문예 문을 두드려 온 딸이 꼭 10년 만에 당선 소식을 받아든 것. 취업준비생 딸이 투고 사실을 알리지 않아 부모님의 놀라움과 기쁨은 더 컸다. 오랜 세월 고군분투한 딸을 부둥켜안은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채윤희 씨(27) 이야기다. 이번 신춘문예에서는 중편소설, 단편소설, 시, 시조, 희곡, 동화, 시나리오, 문학평론, 영화평론의 9개 부문에서 이안리(본명 이상훈·36) 김기태(37) 채윤희 김성애(59) 구지수(26) 김란(58) 이슬기(37) 최선교(26) 최철훈 씨(31)가 각각 당선됐다. 작가를 꿈꾸며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닦은 이들이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였다. 직업도, 나이도 각양각색이라 처음에는 서로 어색했지만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로 금세 이야기꽃을 피웠다. 중편소설 당선자 이안리 씨에게 소설은 마치 고백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글쓰기를 동경하던 그는 2018년부터 소설 집필에 몰두했다. 기본 생계를 위해 외국어 강사, 통역사 등 부업을 병행하는 ‘N잡러’의 삶이 그렇게 시작됐다. 그간 이 씨의 고충을 아는 가족과 친구들은 그의 등단 소식에 크게 기뻐했다. “주변에서 진심으로 축하해줘 살짝 눈물도 났습니다.”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김기태 씨는 직장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다. 마음은 뛸 듯이 기뻤지만 당장 주변에 전하지 못하고 숨죽여 ‘소리 없는 환호’를 내질렀다.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성실히 습작한 4년의 세월과 3번의 낙방 경험, 이 과정에서 힘이 돼 준 문우(文友)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떨어질 때마다 ‘예순 살 전에는 당선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여유를 찾고 다음 해를, 또 다음 해를 준비했어요.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시조 부문 당선자 김성애 씨는 전통문학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시조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목욕탕 카운터에 앉아 짬짬이 습작을 하던 중 2019년 4월 암 발병으로 일을 그만둬야 했다. 어려운 와중에 날아든 당선 소식은 그와 가족 모두에게 큰 힘이 됐다. 김 씨는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딸이 자신에게 건넨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고 했다. “딸이 ‘나도 엄마처럼 자랑스러운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만큼 제가 누군가의 엄마이고 할머니인 게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답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달랐던 만큼 준비 기간도 천차만별이다. 수년간 투고 끝에 당선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첫 도전에 당선된 이도 있다. 문학평론 당선자 최선교 씨는 ‘초심자의 행운’을 붙잡은 사례.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지난해 3월부터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그는 첫 신춘문예 도전에서 성공을 거뒀다. 그는 “큰 기대 없이 원고를 보낸 거라 부모님께도 투고했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대학원 과제로 쓴 평론 형식의 글들이 많았고, 동료 학생들과 꾸린 평론 스터디 모임도 당선에 한몫했다. 최 씨는 “같이 공부해 온 문우들 중에는 수차례 신춘문예에 도전한 이도 있어 등단 소식을 알리기가 민망하다”고 말했다. 2017년부터 꾸준히 투고해 온 구지수 씨(희곡)는 지난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본심까지 올랐으나 아깝게 고배를 마셨다. 4년의 노력이 결실의 문턱에서 좌절됐지만, 그에게 희곡은 등단 여부로 흔들릴 수준의 소명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연극 동아리 때부터 희곡을 썼어요. 대학에서도 문예창작학과에서 희곡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도 계속 쓰고 있었습니다.” 인간 중심적인 작품보다는 ‘비인간 동물’에 초점을 맞춘,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쓰는 게 그의 목표다. 동화 부문 당선자 김란 씨는 2005년 한 동화 모임에 참석한 후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짓기 시작했다. 김 씨는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신춘문예에 투고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아마 이번에 등단하지 못했더라도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원고를 보냈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번 등단으로 당선자들은 글쓰기에 날개를 달았다. 이들은 이 날개로 어디를 향해 날아가고 싶을까. 영화평론 당선자 최철훈 씨는 “그냥 책상 앞에 앉아 스스로의 정신적인 만족을 위해 쓰는 평론이 아닌 현실적으로 좀 더 힘을 갖는 평론을 쓰고 싶다”고 했다. 대학 시절부터 철학과 문학, 영화를 공부하며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게 습관이 됐다는 최 씨에게 등단은 그 자체로 목적이기보다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더 성장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8년의 습작기를 보내고 시나리오 부문에서 당선된 이슬기 씨의 각오는 오래 기다린 기회를 잡은 이답게 담백하고도 묵직했다. “사람들이 보고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그뿐입니다. 제 이야기에 매몰되기보다 읽는 이를 즐겁게 하는 글이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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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어린이 책]어둠은 별빛의 친구, 더는 무섭지 않아요

    어둠이 빛을 피해 어린이의 속옷이 들어 있는 서랍장으로 숨어든다. 해가 지고 나서야 서랍장을 빠져나와 슬그머니 외출한 어둠은 집 안의 텔레비전 불빛까지 모두 꺼진 뒤에야 조용히 돌아온다. 어둠은 밤새 깨어 어린이가 푹 잘 수 있도록 돕고, 가끔씩은 몸집을 불려 하늘의 별이 더욱 반짝반짝 빛날 수 있게 한다. 어둠을 좋아하지 않던 아이는 잠들기 전 불을 끄고 어둠에게 말을 건넨다. “안녕!” 어린이들이 무서워하는 어둠을 귀여운 눈동자와 푸근한 몸집, 우스꽝스러운 더벅머리를 가진 인형을 통해 표현했다. 어린이가 어둠이 무서워 도망 다니는 보통의 상황을 전복해 어둠을 어린이를 무서워하는 존재, 빛이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 아름다운 별빛을 지켜주는 존재로 그렸다는 점이 신선하다. 친구를 사귀지 못해 혼자 나무에 매달려 외로이 놀고 있는 어둠이 보인다. 어린이는 이제 어둠에게 먼저 다가가 친구도 돼 줄 수 있을 것 같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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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신중절을 가볍게 여길 여성은 없어요”

    “미국 텍사스주가 시행한 낙태 제한법은 시대를 역행하는, 위험하고 잘못된 법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여성들이 의학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무허가 시술을 받게 될 겁니다.” 장편소설 ‘위험한 관계’(2011년)와 ‘빅 픽처’(2012년) 등 10여 권의 작품을 국내에 번역 출간한 미국 소설가 더글러스 케네디(66)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표적인 영미권 베스트셀러 작가로 국내에서도 두터운 독자층을 거느린 그가 14일 장편소설 ‘빛을 두려워하는’(밝은세상)을 펴냈다. 그는 신간에 56세 우버 기사 ‘브렌던’이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들을 돕는 ‘엘리스’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브렌던은 임신중절 시술을 하려는 여성들을 병원으로 실어주는 일을 하며 이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는다. 올 7월 미국에서 영문판이 출간되고 두 달 후 텍사스주에서 낙태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안이 시행됐다. 이 법에 따르면 여성은 임신한 지 6주가 지나면 성폭행 피해로 인한 임신을 포함해 어떠한 경우에도 임신중절 시술을 받을 수 없다. 임신 6주차가 되면 심장박동을 감지할 수 있어 이 법은 ‘심장 박동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임신 중기(28주)까지는 산모의 낙태권을 보장한 기존 규제가 한층 강화된 것이다. 케네디는 “스스로 임신중절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건 자유지만 다른 여성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임신중절을 할 권리까지 빼앗으려고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일랜드와 멕시코 등의 국가들에서도 임신중절을 더 엄격히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든 상황이 모순투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소설을 쓰기 위해 임신중절 시술을 받은 여성을 비롯해 이들을 돕거나 혹은 반대하는 이들을 두루두루 인터뷰했다. 케네디는 “인터뷰를 해보니 임신중절에 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형제도에는 찬성하는 모순이 발견됐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소설 속 한 여성의 말에 녹여냈다고 한다. “임신중절이 필요한 상황이라도 이를 가볍게 여길 여성은 아무도 없어요. 어떤 경우라도 아주 중대한 일이에요.” 케네디는 새 소설을 발표하는 족족 참신한 소재와 흡입력 있는 전개로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소설이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물었다. “제 작품관은 19세기 소설가의 그것과 같습니다. ‘소설은 재밌으면서도 진지할 수 있다.’ 앞으로도 쉽게 읽히는 책은 심오할 수 없다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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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 전문가가… 나이 50에 ‘부시파일럿’ 자격증 딴 까닭은

    “제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아무리 험한 오지라도 날아가고 싶었어요.” 폴 김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 겸 최고기술경영자(51)는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어느 순간 대중교통으로 닿지 않는 곳까지 방문하려면 스스로 경비행기를 조종해 이동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교육 전문가인 그는 지천명에 가까운 나이에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야기를 엮어 최근 ‘다시, 배우다’(한빛비즈·사진)를 펴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하늘을 날고 싶어진 걸까. 폴 김은 오랫동안 교육 소외지역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비영리 국제교육재단 ‘시즈 오브 임파워먼트(Seeds of Empowerment)’를 설립하고 르완다, 콜롬비아 등 저소득국 아이들의 성공 스토리를 책으로 엮는 ‘1001 스토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가 개발한 모바일 기반 학습모델 ‘스마일 프로젝트’는 2016년 유엔 미래교육혁신기술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오지의 아이들에게 직접 찾아가 교육봉사를 하기 위해 2018년부터 본격적인 조종사 훈련에 들어갔다. 지형과 대기상황을 육안으로 확인하며 항공기를 조종하는 시계비행 자격증을 이듬해 11월 따냈다. 이것만 있어도 부시 파일럿(bush pilot·북미 관목지대 등 오지를 비행하는 조종사)이 될 수 있지만 올 4월 계기판만 보고 조종할 수 있는 계기비행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는 “무조건 칭찬으로 용기를 불어넣어준 23세 교관부터 따끔한 질책으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한 ‘네거티브 교관’까지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났다. 나이가 들어 학생 역할을 하려니 쉽지 않았다”며 웃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야간 비행 훈련에 나선 첫날 공중에서 갑자기 기내 전원이 나가버린 것. 무전기마저 작동하지 않아 ‘메이데이’를 요청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착륙했지만 그는 “인생은 교과서나 매뉴얼에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말했다. 천신만고 끝에 부시 파일럿이 된 그는 올해 직접 경비행기를 몰고 멕시코 오지를 다녀와 2021년을 ‘부시 파일럿 인생의 원년’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에게 지난 3년은 경비행기 조종술을 배우는 시간인 동시에 인생을 성찰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훈련 과정에서 ‘나는 과연 올바른 곳에 있는가’라는 자문을 하게 됐다는 것. “경비행기 중 ‘세스나’라는 모델이 있어요.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영 힘을 못 쓰지만 고도가 적당한 곳에서는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기에 파일럿들이 가장 애용하는 모델이죠. 사람도 타고난 역량이 모두 다르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가기만 한다면 모두가 큰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앞으로도 저와 학생들의 ‘올바른 곳(right place)’을 찾기 위해 계속 나아갈 생각입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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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00년 전 점토판에 잠든 최초의 문명을 깨우다[책의 향기]

    지난달 개봉한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영화 ‘이터널스’에서 히어로로 등장한 마동석의 역할은 ‘길가메시’였다. 이터널스 멤버들 중 물리적 힘이 가장 강한 전사로 묘사되는 길가메시는 다른 히어로들이 창과 방패, 초능력을 쓸 때 강력한 주먹으로 적들을 쓰러뜨린다. 과연 마동석에게 딱 어울리는 역할이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의 ‘아트박스 사장님’(영화 ‘베테랑’에 카메오로 출연한 마동석의 역할)이 할리우드에서 화려하게 데뷔해 반갑기는 한데 도대체 길가메시는 어디에서 튀어나온 캐릭터일까. 길가메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던 수메르의 도시 ‘우루크’를 다스린 전설의 왕이다. 그의 존재를 모티브로 한 신화들을 엮은 ‘길가메시 서사시’가 유명하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현존 서사시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6500년∼기원전 2004년에 존재한 수메르 문명은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꼽히지만 국내에는 관련 연구자가 별로 없다. 이 책은 영어 등으로 쓰인 해외 연구서를 번역한 게 아니라 수메르어를 한글로 직역한 연구서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저자는 신화와 인류학을 전공하고 30년 넘게 수메르 역사 연구에 매달렸다. 13년간 세계 18개 박물관에 보관된 수백 장의 수메르어 점토판에서 설형문자 기록을 일일이 발췌해 수메르 역사를 짜임새 있게 복원해냈다.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5000여 년 전 작성된 1차 사료에 철저히 근거했다. 저자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점토판 원전을 국내에서 처음 한글로 번역했다. 그가 건져 올린 역사적 진실은 놀랍다. 수메르 연구자들 사이에서 교과서처럼 쓰이는 사료인 ‘수메르 왕명록’에서 중대한 역사 왜곡이 이뤄진 사실을 발견한 것. 저자가 해독한 점토판에서 왕명록에 없는 에덴전쟁과 여기 참가한 수메르 최대 도시 ‘라가쉬’에 대한 기록들이 확인됐다. 기록으로 남겨진 인류 최초의 전쟁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수메르 왕명록을 쓴 이가 정당성 없는 왕조인 ‘이씬’의 사람이었으며 그가 라가쉬 관련 기록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왕명록이 기록될 당시는 이씬이 라가쉬로 인해 위기에 빠진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라가쉬가 일군 통일국가와 태평성대, 노예해방, 사회개혁 등 중요한 역사적 성과들이 모두 지워졌다. 저자는 “최초의 역사 왜곡으로 상실된 모든 ‘최초’는 총 57가지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수메르인의 경제-생활-문화로 나뉘어 이야기 흐름이 툭툭 끊기던 기존의 주제별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역사 맥락을 반영한 전개 방식을 택한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8500년 전에도 인류는 도시를 세우고 문명을 발달시켰으며 자연재해를 입고 쓰러진 도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때로 전쟁을 벌였고 권력 다툼과 부정부패가 이어졌으며 왕조는 계속 바뀌었다. 역사는 도대체 얼마나 반복되는 걸까. 세상 모든 역사의 ‘최초’가 궁금한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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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렉시트 뒤의 추악한 분열정치, ‘바퀴벌레 총리’로 풍자”

    “그날 아침 영리하지만 전혀 심오하지는 않은 짐 샘스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거대 생물체로 변신해 있었다.”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이 문장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소설 ‘변신’의 첫 문장이 아니다. 여기에서 ‘짐 샘스’는 인간이 아니라 바퀴벌레이며 ‘거대 생물체’가 오히려 인간이다. 대문호의 유명한 첫 문장을 100여 년 만에 오마주한 작가는 바로 영국 소설가 이언 매큐언(73·사진). 지난달 출간된 ‘바퀴벌레’(문학동네)에서 그는 어느 날 인간의 몸, 그것도 영국의 총리로 살게 된 주인공 짐 샘스를 통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영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 풍자했다. 그를 서면 인터뷰로 만나봤다. “2016년 6월 브렉시트를 두고 벌인 국민투표를 지켜보며 추악한 분열의 정신이 영국 정치에 들어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절망 속에서 이 상황을 보았고, 절망 너머에는 풍자와 해학이 있었습니다.” 매큐언은 참신하고 때로는 기괴하기까지 한 발상으로 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 후보에 8차례나 올랐다. 1987년에 ‘차일드 인 타임’으로 영국의 문학상인 휘트브레드상을, 이듬해에는 ‘암스테르담’으로 부커상을 수상했다. ‘속죄’(2003년·문학동네)와 ‘체실비치에서’(2008년·문학동네) 등 국내에 출간된 그의 소설들도 10만 부가량 팔릴 정도로 독자층이 탄탄하다. 그가 이번 작품에서는 하루아침에 사람이 벌레가 되는 이야기인 ‘변신’을 뒤집어, 바퀴벌레가 사람의 탈을 쓴 세상을 상상했다. 영국 의회 각료들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바퀴벌레들은 갖은 술수와 책략을 동원해 의회의 의사결정권을 장악한다. 그러고는 노동자가 일을 하려면 돈을 내게 만들고, 물건을 거래할 때 소비자가 돈을 받게 만드는 기이한 행정으로 영국을 서서히 망가뜨린다. 사회의 엘리트층이 고안한 기만적인 정책에 빈곤층이 가장 열렬히 호응하는 모순적인 모습이 소설에 생생히 그려진다. 이 같은 전개는 자연스레 브렉시트 국면을 맞이한 영국 의회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브렉시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소설에 과감하게 드러낸 매큐언은 인터뷰에서 “정치, 정치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정치와 도덕이 만나는 지점들에 언제나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국이 무역이나 과학, 문화적 친밀감을 보호하면서 EU를 떠날 수 있었음에도 이 방법들은 포퓰리스트들에 의해 버려졌다”며 “영국 정치는 분별없는 민족주의의 열정에 휩싸였다”고 지적했다. 암담한 정치 현실을 담고 있다고 해서 소설이 시종일관 무거운 사회비평서처럼 읽히지는 않는다.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유머가 실소를 유발한다. 이를테면 트위터를 즐겨 활용하는 미국 대통령을 등장시켜 ‘미국 대통령도 어쩌면 우리 바퀴벌레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장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절로 떠오르며 웃음이 터진다. 영국은 지난해 12월 탈퇴 유예 기간도 모두 소진하고 최종적으로 EU를 탈퇴했다. 브렉시트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소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소설은 단합과 분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류는 앞으로도 팬데믹 대유행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불러온 분열과 단합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결정해야 할 겁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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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동아일보 ‘올해의 책’… 팬데믹 시대 위로의 한권

    《코로나에 부동산 급등까지 모두의 어려움이 큰 한 해였습니다. 그래선지 출판인, 학자, 의료인 등 35명이 꼽은 ‘2021년 동아일보 올해의 책’은 유독 공동체나 연대를 다룬 양서들이 많습니다. 선정위원별로 3권씩 추천을 받은 결과, 1표 이상 얻은 책은 총 92권. 이 중 상위 10권을 추려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작은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학술팀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등 지음·이민아 옮김·396쪽·디플롯각계 전문가들은 올해 ‘최고의 책’으로 소통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2권을 택했다. 각 4표로 공동 1위.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혐오를 넘어 연대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집단 무의식이 책 선정에도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진화인류학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을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육체, 정신적 힘이 아닌 친화력이 인류 생존과 진화의 열쇠라고 강조한다. 호모사피엔스가 자신들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셌던 고인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살아남은 게 대표적이다. 연구에 따르면 100명 이상이 함께 모여 산 호모사피엔스와 달리 네안데르탈인은 기껏해야 10∼15명이 한 무리를 이뤄 수적 열세를 보였다. 이는 호모사피엔스가 같은 집단의 동료들과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 사이가 막힌 지금, 소통과 연대의 능력은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추천한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북방고고학)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은 논리와 이성 대신 감성과 친화력으로 향한다. 이 책은 나의 ‘논리’가 아닌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평했다. “최악의 상황에도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꿈꾼다. 이 책은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 기꺼이 다정한 마음 품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북돋운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평도 있었다.작별하지 않는다한강 지음·332쪽·문학동네 2016년 영국 맨부커상 수상 작가이자 2019년 인촌상 수상자인 한강이 5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연대와 사랑을 말한다. 주인공 경하가 제주도에서 태어난 친구를 환영처럼 만나 1948년 4·3사건의 고통을 공유하는 이야기다. 한강은 올 9월 출간 후 인터뷰에서 “사랑이든 애도든 끝까지 끌어안고 나아가겠다는 결의를 제목에 담았다”고 말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소설 속 세 여성은 역사 속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이 전하는 사랑을 잊지 말자고 말한다. ‘내가 올해 잊고 산 것은 무엇일까. 작별할 수 없는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는 평을 남겼다. 작가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악몽에 시달리는 경하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실제로 한강은 5·18 소재의 소설 ‘소년이 온다’(창비·2014년)를 쓰고 악몽을 꿨다고 밝혔다. 비극적 현대사가 남긴 상처는 작가 자신을 뛰어넘어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어둠에 묻힌 상처를 기억하는 자는 폭력에 길들지 않는다. 그들처럼 우리 또한 한순간 어이없이 거기 누울 수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장은수 출판평론가)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마이클 셸런버거 지음·노정태 옮김·664쪽·부키 “지구 환경과 기후위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뒤엎는다. 책을 읽고 나면 환경 문제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환경운동에 30년간 투신한 저자가 기술과 경제발전이 오히려 환경을 지켜줄 수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환경운동이 오히려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것. 권은희 까치글방 편집팀장은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자연보호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집는다. 환경을 위한다고 생각한 재생에너지와 생활 속 실천이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책”이라고 평했다. ■일본의 굴레태가트 머피 지음·윤영수 등 옮김·660쪽·글항아리“일본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이 책을 읽으며 해체되고 재조립됐다.”(김형보 어크로스 대표) 40년간 일본에서 산 미국인 저자가 외부자로서의 시각과 내부자로서의 이해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하며 일본 사회를 연구한다. 굴욕적일 만큼 친절한 서비스, 불평할 만한 일이 생겨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일본인의 모습 뒤에 숨겨진 참모습을 깊게 파고들었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포괄적이면서도 전문적인 내용의 충실함은 말할 것도 없고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며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너무도 유사해 책 속에서 우리 사회의 거울을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지구의 짧은 역사앤드루 H 놀 지음·이한음 옮김·304쪽·다산사이언스“지구 역사를 짧고 쉽게 압축해 설명하는 훌륭한 입문서다. 현재의 지구를 살아가는 인간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남긴다.”(권은희 까치글방 편집팀장) 미국 하버드대 자연사 교수가 장구한 지구 역사를 보기 쉽게 압축한 교양 과학서. 최신 연구 성과를 담고 있으면서도 어려운 개념을 유머로 쉽게 풀어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구과학자들이 어떻게 조사, 연구하는지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올해 이보다 읽기 쉬운 자연사 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 ■한국의 능력주의박권일 지음·344쪽·이데아“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능력주의 문제를 제대로 짚었다. 정치, 경제, 젠더 등 양극화하는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조성웅 유유출판사 대표) 능력주의에 열광하는 한국인의 심리를 파고든 사회과학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시험에 합격하지 않거나 일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이 보상을 받는 데 대해 유독 분개한다.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에 대한 심층 보고서다. ■전국축제자랑김혼비 등 지음·320쪽·민음사충남 예산부터 경남 산청까지 전국 방방곡곡 지역축제들의 이모저모를 한 권에 담았다. “아무도 관심 없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지자체 축제들임에도 하루 빨리 일상이 회복돼 가보고 싶게 만든다.”(조재은 양철북 대표) 전작들을 통해 독자층이 탄탄한 저자들인 만큼 말맛이 좋다. 황혜숙 창비 출판1본부장은 “쏟아져 나오는 에세이 중 절반 이상 읽지 못하는 책이 적지 않은데 이 책만큼 공들여 낄낄대며 읽은 경험이 드물다”고 했다. 현장을 답사한 뒤 쓴 여행기라 생생하다. “유쾌하고 정감 넘치며, 때로 우악스럽기도 했던 축제의 현장으로 우리를 옮겨 놓는 책”(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이라는 평이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조던 스콧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지은 옮김·52쪽·책읽는곰이례적으로 그림책이 선정됐다. 캐나다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말을 더듬는 아이가 쉼 없이 흐르는 강물과 마주하며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렸다. 선정위원들은 어린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책이라고 평했다. “타인과의 다름이 틀림이나 나쁨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함이고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나지막하게 이야기하는 책”(최은영 소설가)이기 때문.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나는 무엇에 갇혀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자신만의 숨겨진 단단한 내면을 발견하게 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림책”이라고 호평했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임지현 지음·640쪽·휴머니스트거의 모든 민족들이 스스로를 희생자로 규정하는 시대다. 예컨대 폴란드인들이 2차대전 당시 예드바브네에서 벌어진 자국민들의 유대인 학살을 외면한 채 자신들이 나치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식. 박윤우 부키 대표는 “자신을 희생자로 포장하는 피해자 간 기억의 전쟁은 21세기 민족주의가 어떤 리스크를 짊어지게 할지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론과 실례를 잘 버무린 책을 요즘 만나기 힘든 탓에 더 귀한 책”(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이라는 평이다.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지음·268쪽·나무옆의자서울 용산구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을 무대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희로애락을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담았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던 남자가 70대 할머니의 지갑을 주워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 남자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뛴다.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는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애환을 다정한 시선으로 다룬 작품이다. 팬데믹으로 힘겨운 나날을 견디고 있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책”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일상… 아픔이 새로운 길이 되길팬데믹 시대, 마음을 위로하는 한 권의 책 장기화된 팬데믹에 대처할 혜안과 위로를 책에서 구할 방법은 없을까.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는 감염병 전문의를 포함한 전문가들로부터 유용한 책들을 별도로 추천받았다. 감염병 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병원의 밥’(세미콜론)을 추천했다. 흉부외과 의사인 저자가 의사와 환자들이 먹는 밥을 소재로 긴박한 의료현장을 생생히 그린 에세이다. 이 이사장은 “미음에서 죽으로, 죽에서 밥으로 회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팬데믹 속에서 고통 받는 우리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고 평했다. ‘바이러스를 이기는 새로운 습관’(프리뷰)은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코로나 시대의 대처법을 담았다. 미국 의학전문기자인 저자는 감염병에 대해 불필요한 공포를 가져오는 가짜뉴스를 구별하는 방법과 운동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당분과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는 식습관을 전한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식이, 운동, 수면 등 신체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담았다”고 말했다. 인간 본성의 따뜻함을 통해 팬데믹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책도 선정됐다. 네덜란드 언론인이 쓴 ‘휴먼카인드’(인플루엔셜)는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건 오해라고 주장하며 타이타닉 침몰, 9·11테러 등 과거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서로 도운 증거들을 제시한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저자의 믿음을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뒷받침한 이 책은 독자에게 희망을 준다”고 평했다. 팬데믹 이후 바뀔 일상공간에 대한 예측을 담은 책도 포함됐다. 건축가 유현준이 쓴 ‘공간의 미래’(을유문화사)는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등으로 공간의 의미가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나 회사로 나가지 않고도 업무를 볼 수 있는 ‘거점 오피스’ 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책은 “미래 우리 사회가 시민 다수를 행복하게 할 공간을 어떻게 기획해야 할 것인지 새로운 담론거리를 제시했다”(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평을 받았다.선정위원(35명·가나다순)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 권은희(까치글방 편집팀장) 김민정(난다 대표) 김영민(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김효형(눌와 대표) 박상준(민음사 대표) 박성열(사이드웨이 대표) 박윤우(부키 대표) 박정재(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설혜심(연세대 사학과 교수) 심채경(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안병현(교보문고 대표) 윤범모(국립현대미술관장) 이구용(KL매니지먼트 대표) 이기진(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왕준(명지병원 이사장) 이종화(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임형주(팝페라 테너) 장강명(소설가) 장은수(출판평론가) 정기석(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조성웅(유유출판사 대표) 조재은(양철북 대표)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최은영(소설가) 표정훈(출판평론가)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황서현(휴머니스트 주간) 황혜숙(창비 출판1본부장)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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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흔 넘으니 나를 색칠한 모든 것 벗기고 싶어져”

    “… 피카소는 아흔이 넘어서도/젊은 여인의 숨소리에 맞춰 붓을 놀렸다/아무나 할 수 있는 손놀림이 아닌데/사람들은 함부로 피카소처럼 살고 싶다고 한다”(시 ‘나도 피카소처럼’ 중)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90대를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90대의 시선을 갖출 때까지 뭉근히 기다린 시인이 있다. 이생진 시인(92)은 수십 년간 피카소의 그림과 시를 읽고 그 감상을 기록하면서도 그가 사망한 나이 92세가 돼서야 이를 엮어냈다. 그가 최근 출간한 마흔 번째 시집 ‘나도 피카소처럼’(우리글)에는 이 시인이 피카소를 주제로 써 온 시들이 수록됐다. 13일 만난 시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아흔 넘어 보니 도덕이니 윤리니 내 몸을 색칠한 모든 것을 벗겨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듭니다.” 이 시인은 등단 이후 5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말년까지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펼친 피카소는 나이가 들수록 더 궁금해지는 예술가였다고 한다. 그는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나이를 먹어가며 피카소의 의중에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 시인은 “젊을 때는 피카소의 그림 속 여인들만 옷을 벗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보니 피카소도 하나씩 옷을 벗고 점점 더 솔직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손과 뇌가 굳지 않도록 매일 몸을 쓴다. 오전 3시에 기상해 시를 한 편 쓴 뒤 해가 뜨자마자 집을 나서 인근 도봉산 자락을 1만5000보씩 걷는다. 매일 5분씩 물구나무를 서고 팔굽혀펴기와 철봉 운동도 한다. 이 시인은 “피카소의 인생이 더 길었다면 그만큼 더 좋은 작품이 나왔을 것 같다. 나도 가능하면 오래 시를 쓰고 싶어서 운동을 철저히 한다”고 했다. ‘이생진’ 하면 섬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의 많은 시가 울릉도를 비롯한 섬에서 탄생했기 때문. 제주도 성산포에서 일출의 감동을 표현한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1978년)는 그의 대표작이다. ‘섬 시인’이라는 수식어를 아낀다는 그는 “평생을 시는 발로 쓰는 것이라 믿고 살아왔다. 섬에서 아침 바람 쐬고 시 쓰다 쓰러져 세상을 떠나는 게 마지막 바람”이라는 말을 남겼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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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참신한 VR-유튜브-넷플릭스 소재 늘어”

    “공동체의 위기를 파고든 진중한 응모작이 많았다. 가상현실(VR)이나 유튜브, 넷플릭스 등을 소재로 한 참신한 작품이 늘었다.” 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22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의 총평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2년 가까이 이어진 가운데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 비대면이 일상화된 영향을 반영하듯 온라인 콘텐츠 관련 내용을 담은 작품도 적지 않았다. 올해 9개 모집 부문에 걸쳐 응모작은 총 6154편. 세부적으로는 중편소설 287편, 단편소설 546편, 시 4491편, 시조 440편, 희곡 57편, 동화 232편, 시나리오 53편, 문학평론 20편, 영화평론 28편이었다. 예심 심사위원은 △중편소설 백가흠 정용준 정한아 소설가 △단편소설 손홍규 김성중 김금희 소설가, 강동호 문학평론가 △시 서효인 박준 시인 △시나리오 정윤수 영화감독,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로 구성됐다. 중편소설 부문에서는 집, 자녀, 부모에 대한 걱정처럼 일상의 고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표현 방식에서도 은유적 문장보다는 일상에서 쓰이는 날것 그대로의 직설적 언어를 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정한아 소설가는 “가족 간 불화가 벌어지거나 친구 사이가 무너지는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며 “가상현실에 머무르는 등장인물을 통해 과연 진실한 인간관계를 찾을 수 있는가를 물어보는 작품도 있었다”고 했다. 단편소설 부문에서는 개인정보를 인터넷에 무차별 공개하는 이른바 ‘신상 털기’나 타인을 혐오하는 ‘낙인찍기’ 등 최근 논란이 된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늘었다. 학교, 군대,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다룬 작품도 많았다. 김성중 소설가는 “아기, 치매노인, 고양이 등을 잃은 뒤 찾으러 가는 이야기들이 눈에 띄었다”며 “대부분 상실한 것을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세태에 대한 은유처럼 읽힌다”고 설명했다. 시 부문에서는 공동체의 고통을 다룬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시인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보다 주거불안, 정치 양극화, 환경위기 등 우리 사회에 닥친 어려움을 고찰하는 작품이 늘어난 것.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내용을 담은 시들도 눈에 띄었다. 서효인 시인은 “코로나19라는 재앙을 맞아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내몰리게 됐는지를 고민하는 작품들이 늘었다”며 “우리에게 다가온 난해한 현실의 문제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응모작이 많았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부문에서는 여성 중심의 서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주인공이거나 위기에 처한 여성들이 연대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있었다. 정윤수 영화감독은 “젠더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다룰 때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다는 확신이 창작자들 사이에서 퍼진 것 같다”며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난 영향인지 로맨스 작품은 확 줄었다”고 말했다. 예심 결과 중편소설 9편(9명)을 비롯해 단편소설 11편(11명), 시 65편(13명), 시나리오 10편(9명)이 본심에 올랐다. 시조 희곡 동화 문학평론 영화평론은 예심 없이 본심으로 당선작을 정한다. 당선자에게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며, 당선작은 동아일보 내년 1월 1일자 지면에 소개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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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딩 밖 새 한 마리 통해서도 자연과 교감”

    “생태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제대로 기록해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영국 생태작가 헬렌 맥도널드(51)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불행히도 우리는 환경문제에 있어 끔찍한 시대에 살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2014년 발간한 ‘메이블 이야기’로 논픽션계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새뮤얼존슨상과 영국 문학상 코스타상을 동시 수상한 그는 최근 에세이 ‘저녁의 비행’(판미동)을 출간했다. ‘메이블 이야기’는 작가가 야생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로, 국내에서 2만 부 이상 팔렸다. 그는 신간에서도 우연히 자연과 맺은 교감의 순간들을 섬세한 필치로 담았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들을 구하기 위해 싸우지도 않습니다.” 그는 얼마 전 집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작은 소나무 숲이 도시와 이어지는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파괴됐다고 전했다. 최근에 본인이 겪은 일들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도시에서도 자연이 주는 경이와 통찰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데 관심이 많다고 했다. 아무래도 도시인들은 자연과 교감할 기회가 드물어서다. 그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야생의 풍경만이 깨달음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직장에서 일을 하다 창밖으로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를 보고도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 새의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거나, 인간이 모두 새가 된 세상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세속적 삶의 무게를 덜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건 일종의 마법과도 같은 힘을 발휘합니다.” 가끔 도시를 벗어나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싶다면 무얼 준비해야할까. 작은 야생동물 도감과 중고 쌍안경이면 충분하다는 게 그의 조언. “쌍안경을 다루는 게 처음에는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이를 들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수줍음이 많아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생명체들이 특별한 접근을 허락해 줄 겁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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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자연의 우연적 교감…참매의 시선으로 세상 이야기 쓴 헬렌 맥도널드

    “불운하게도 우리는 환경 문제에 있어서는 끔찍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생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잘 기록해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2014년 저서 ‘메이블 이야기’로 논픽션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새뮤얼존슨상과 영국 문학상 코스타상을 수상한 있는 영국의 생태 작가 헬렌 맥도널드(51)가 신간 에세이 ‘저녁의 비행’(판미동) 한국어판을 최근 출간했다. ‘메이블 이야기’는 그가 야생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로 국내에서도 2만 부 이상 판매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신간에서도 그는 자신과 자연 사이의 우연적인 교감의 순간들을 섬세한 문장들로 담아냈다. 그의 이야기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들어 봤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들을 구하기 위해서 싸우지도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도시 속에서도 자연이 주는 경이와 통찰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자연 파괴에 나서는 이들은 대부분 도시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에도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작은 소나무 숲이 도시와 이어지는 도로 확장 공사로 파괴됐다. 이것이 최근에 겪은 일 중 가장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야생의 풍경만이 깨달음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일을 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새 한 마리를 통해서도 자연과의 교감을 할 수 있다. 세상을 인간이 아닌 새의 시선으로 내려다 보고, 인간이 모두 새가 된 세상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새삼 세속적인 걱정의 무게가 줄어듦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 그는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은 일종의 마법과도 같은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가끔씩은 도시를 벗어나 야생 동물을 관찰하고 싶다면 어떤 것부터 준비하면 좋을까? 작은 야생 동물 도감과 중고 쌍안경이면 충분하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쌍안경 다루는 게 처음에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면 수줍음이 많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생명체에게 특별한 접근을 허락해 줄 거예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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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밤, 쇠퇴한 도시의 빈집이 타올랐다[책의 향기]

    이상한 밤이었다. 2012년 11월 12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소도시 애커맥 카운티. 주택가 빈집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2층 높이에서 시작된 화염은 이내 마당까지 번졌다. 하룻밤에 불이 여러 건 나는 일이 몹시 드문 작은 도시였지만, 애커맥의 소방대원들은 이날 밤 두 차례 더 출동했다. 그 후 5개월 동안 이들은 총 86번의 출동 명령을 받는다. 책은 이 연쇄 방화를 예사롭지 않게 여긴 워싱턴포스트(WP) 기자의 심층 취재기다. 저자는 몇 달씩 애커맥에 머무르며 주민과 수사관, 의용소방대원들을 인터뷰했다. 이런 사건들은 흥미진진한 소설의 모티프가 되거나 범죄 수사물로 재구성되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이 같은 방식을 쓰지 않았다. 그저 그가 총 2년간 수집한 경찰 조사 결과와 재판 기록, 방화에 대한 전문가의 정신분석학적 견해 등을 건조한 어조로 나열했다. 그러나 이 자료들이 정밀하게 직조된 한 권의 책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건조하지 않다. 연쇄 방화의 범인은 애커맥의 주민인 찰리 스미스와 토냐 번딕. 이들은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혼 경험이 있는 데다 최근 어머니를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어 깊이 사랑에 빠졌다. 마약 중독자였던 찰리는 토냐를 만나 마약을 끊었다. 토냐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면 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처음 불을 지른 건 토냐였지만 그가 체포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때부터는 찰리가 불을 질렀다. 저자는 이들 방화범의 정체를 첫 번째 챕터에서 밝힌다. 범인의 뒤를 쫓는 게 이 책의 목적은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 그는 선량한 시민이던 두 사람이 왜 ‘불 지르는 사람’이 됐는지 과거를 추적한다. 토냐는 지독한 가정 폭력과 가난에 시달리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싱글맘으로 두 아들을 홀로 키우다 찰리를 만나 새로운 삶을 꿈꿨지만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활활 타는 불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고 희열에 빠졌다. 토냐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처한 곤경을 들키고 싶지 않아 화려한 옷을 입고 다녔다. 마약 중독에서 갓 벗어난 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들은 낮에는 호화로운 결혼식을 상상했지만 밤에는 드라이브를 나가 빈 건물에 불을 질렀다. 저자는 여기에서 시야를 한 번 더 확장한다. 연쇄 방화가 발생한 곳이 왜 애커맥이었을까? 그는 ‘자본 집중화가 낳은 지방 고유 개성의 박탈’을 근본적인 문제로 꼽는다. 지방의 소도시는 한때 낭만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자본이 대도시로 몰리며 소도시의 주민들은 돈을 벌기 위해 대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애커맥에 빈집이 그토록 많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소도시에 남은 주민들은 폐허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국이자 정치적으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조차 지방 소멸의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이 책은 실감나게 보여준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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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토리 탄탄 - 상상력 톡톡 K웹툰, 드라마로 세계 홀렸다

    《‘지옥’부터 ‘Dr. 브레인’ ‘유미의 세포들’ ‘D.P.’에 이르기까지 웹툰 원작의 국내 드라마들이 세계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웹툰과 웹소설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공략할 원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이들의 인기 비결을 알아봤다. 》K콘텐츠의 힘 ‘K웹툰’프랑스, 인도,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필리핀, 폴란드, 태국, 베트남, 대만…. 지난달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이 1위를 차지한 36개국(지난달 23일 기준) 중 일부다. 지옥은 공개 하루 만에 전 세계 종합순위 1위에 올랐다. 지난달 28일까지 총 시청 시간만 1억1100만 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옥은 10년 이상 회자될 만큼 진심으로 예외적인 드라마”라고 극찬했다. 미국 CNN은 “올해 한국 드라마들은 끝내 준다. 지옥은 새로운 ‘오징어게임’”이라고 호평했다. ‘지옥’의 세계적인 성공 요인 중 하나는 탄탄한 원작 웹툰이다. 2019∼2020년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데, 드라마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직접 스토리를 짰다. 드라마의 서사가 대부분 웹툰에 바탕을 두고 있어 드라마 못지않게 웹툰의 작품성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웹툰을 만든 감독이 직접 연출한 만큼 웹툰의 기획의도와 주제의식이 드라마에 잘 녹아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세계적으로 유행한 웹툰 원작 드라마는 지옥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14일 공개된 드라마 ‘Dr.브레인’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를 통해 100개국 이상에 선보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충격적 반전과 더불어 고급스러우면서도 흡인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올 9월 티빙을 통해 공개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해외 플랫폼사와의 콘텐츠 유통 계약을 통해 유럽, 북미, 동남아시아 등 세계 160여 개국에 방영됐다. 올 8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국내에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태국, 베트남에서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그간 축적된 웹툰, 웹소설 기반의 지식재산권(IP)이 뛰어난 드라마로 재탄생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웹툰, 웹소설이 ‘원소스 멀티유스(OSMU)’의 콘텐츠 소비 방식과 맞물려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OTT와 함께 세계로웹툰 원작의 영상 작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게 최근 일은 아니다. 2014년 웹툰 원작의 tvN 드라마 ‘미생’이 최고 시청률 8.2%를 달성하면서 국내에 웹툰 드라마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카카오TV ‘며느라기’(2020년)도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화제가 된 드라마다. 1, 2편을 합쳐 국내에서 관객 2700만 명 가까이를 동원한 영화 ‘신과 함께’(2017년)도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최근 웹툰 원작 드라마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흥행하는 배경에는 글로벌 OTT의 성장세가 자리 잡고 있다. 넷플릭스, 애플TV, 디즈니플러스 등 세계 각국에 서비스되는 OTT를 통해 작품이 동시에 공개돼 해외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희윤 네이버웹툰 IP비즈니스팀 리더는 “과거에는 웹툰 원작 영상 작품이 해외에 진출하려면 해외 제작사나 투자사와 협의하는 게 필수였지만 이제는 복수의 글로벌 OTT들이 있어 상황이 달라졌다”며 “국내에서 영상 작품을 제작한 뒤 곧바로 해외를 공략할 기회가 많아진 만큼 세계적 흥행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들의 성공은 웹툰의 세계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옥’의 원작 웹툰이 연재되고 있는 네이버웹툰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등 10개 언어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웹툰을 종이 만화책으로 만들 수 있는 판권이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등 11개국으로 팔려 나가기도 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넷플릭스 콘텐츠를 시청한 후 웹툰 등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가 전체의 42%에 달한다”며 “영상 콘텐츠의 인기는 연계된 콘텐츠 산업에까지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왜 웹툰 원작인가드라마 시장에서 웹툰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얼까. 무엇보다 웹툰의 어마어마한 성장세가 직접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교보증권이 올 2월 발간한 ‘웹툰이 곧 글로벌 흥행 IP’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210억 원에 불과했던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 원으로 급성장했다. 6년 만에 50배 가까이 성장한 덕에 많은 콘텐츠 창작자가 웹툰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그만큼 탄탄한 이야기가 웹툰 시장에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한송이 카카오웹툰스튜디오 센터장은 “웹툰 플랫폼에서 소비자가 돈을 주고 웹툰을 봤다는 건 작품성과 흥행성이 보장된 작품이라는 뜻”이라며 “인기 웹툰이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면 원작 팬을 시청자로 확보할 수 있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웹툰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드라마 시청자를 만족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예를 들어 ‘유미의 세포들’의 원작 웹툰은 주인공 유미의 감정을 세포들로 표현하는 참신한 발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제작진도 이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에 도전해 호평을 받았다. 황혜정 티빙 콘텐츠사업국장은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3차원(3D)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세포의 모습을 실사와 결합해 기존 드라마와 차별화했다”며 “처음 시도하는 형식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좋았던 게 성공 원인”이라고 말했다. 국내 영상 제작 기술이 최근 급속도로 발전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올 2월 공개된 웹툰 원작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처럼 만화로만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2092년 우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컴퓨터그래픽(CG) 역량을 확보했다는 것.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국내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제작비와 인력이 확충되고 CG 수준도 향상됐다”며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대작에 밀리지 않을 정도의 영상 수준 덕에 해외 시청자들도 한국 영상 작품에 빠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웹툰이 지닌 시의성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오늘날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이야기를 만들어내 드라마나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희윤 리더는 “우리가 지금 고민하거나 좋아하는 것들을 가장 잘 반영한 콘텐츠가 웹툰”이라며 “트렌드가 잘 반영돼 있어 웹툰이 영상 작품의 원작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웹툰 IP 전쟁에 웹소설도 가세 웹툰 원작의 영상 작품이 연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콘텐츠 업계에서는 웹툰의 IP를 확보하려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드라마의 부가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다. 웹툰 IP 확보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드라마나 영화 제작사들. 스튜디오드래곤은 올 3월 웹툰 스튜디오 와이랩과 협력계약을 체결했다. 와이랩이 보유한 웹툰 IP를 이용할 수 있는 우선 협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 스튜디오드래곤은 영상화에 적합한 웹툰을 발굴하기 위해 콘텐츠전략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기혁 스튜디오드래곤 사업전략담당 및 기획개발 담당은 “내년에 공개되는 웹툰 원작 드라마 ‘아일랜드’도 다양한 웹툰 IP를 발굴하려는 노력의 성과”라며 “원작 웹툰의 매력을 살리면서 영상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야 영상화에 성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웹툰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영상화에 나서기도 한다. 네이버웹툰은 자회사인 스튜디오N을 통해 영상화에 적합한 웹툰을 고르고, 다른 영상 제작사에 이를 소개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자체 웹툰 플랫폼인 카카오웹툰에 연재된 작품들을 카카오TV를 통해 영상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웹소설도 영상화에 적합한 IP로 주목받고 있다. 웹툰만큼 참신하고 작품성이 탄탄한 웹소설이 잇달아 발굴되고 있기 때문. 웹소설 시장 규모가 지난해 6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커질 만큼 이야기꾼들이 웹소설에 몰리고 있다. 글로만 구성된 웹소설은 그림까지 그려야 하는 웹툰보다 제작 속도가 평균 20배 정도 빠른 만큼 시의성을 갖춘 작품이 많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북미 웹소설 플랫폼 래디시를 인수한 데 이어 네이버웹툰이 세계 1위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사들이며 웹소설 IP 사냥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올 4월 공개된 웹소설 원작 드라마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는 아마존 프라임 저팬 등 해외 OTT를 통해 세계 190개국에 소개됐다. 누적 조회수 1억5000만 회를 달성한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 역시 영상화가 진행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웹소설 창작 전공)는 “웹툰이 영상 작품으로 많이 만들어지면서 이미 IP를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국내 산업 기반이 갖춰진 상태”라며 “최근 웹소설이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하고 있어 영상화를 통한 성공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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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번째 ‘작은도서관’… “행복은 책을 타고∼”[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25일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운산 작은도서관’. 손을 맞잡은 노부부가 출입구 근처에 붙은 특강 안내문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 도서관은 이날 개관을 기념해 성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만들기 강의를 준비했다. 인근 주민 신순분 씨(68·여)는 “책을 좋아하는데 주변에 도서관이 없어서 매번 사다 보니 집에 책이 1000권 넘게 쌓여 있다. 우리 동네에 책을 보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니 황홀하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문화체육관광부와 KB국민은행 후원을 받아 전국 각지에 짓고 있는 ‘작은 도서관’이 100번째 개관을 맞았다. 2008년 경기 부천시 도란도란도서관으로 시작한 작은 도서관이 전국 곳곳을 채워온 것이다. 운산 작은도서관은 서산소방서 의용소방대가 사무실로 쓰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1층에 3600여 권의 책이 비치됐고 2층에는 열람실이 들어섰다. 강연 등 각종 문화행사를 여는 프로그램실과 어린이들을 위한 전용 공간도 마련됐다. 도서관을 찾은 윤효림 양(8)은 “그동안 아빠가 사주신 책만 볼 수 있어서 아쉬웠는데 여기는 만화책뿐 아니라 역사책, 동화책까지 볼 수 있어 너무 좋다”며 웃었다. 윤빛나 양(8)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엄마, 아빠가 책을 읽으라고 하면 귀찮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이실에서 친구, 동생들과 놀면서 책을 읽으니 이제는 재밌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곳은 학교 도서관을 빼면 운산면에서 유일한 도서관이다. 그동안 학생이 아닌 일반 주민들은 책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날 작은도서관을 둘러본 장찬순 씨(55)는 “운산면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는데 도서관이 들어선 건 처음 본다”며 “아이들이 책을 보려면 30분 이상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역에 새로운 문화공간이 생겼다는 데 만족해했다. 조무성 씨(53)는 “50, 60대 이웃들이 일을 마치고 함께 어울릴 만한 곳이 식당, 술집밖에 없어 나처럼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을 보낼 곳이 없었다. 앞으로 퇴근 후 도서관에 자주 들를 생각”이라며 반겼다. 운산 작은도서관 주변에는 초등학교 2곳, 중고교 각 1곳이 자리 잡고 있어 학생들에게도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운산초교 학생들과 도서관에 온 장명숙 운산초 돌봄전담사는 “앞으로 돌봄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종종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는 “처음 작은도서관을 짓기 시작할 때는 100번째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는데 소중한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책이야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매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국민들의 독서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작은도서관 사업을 담당하는 김진영 국민은행 브랜드 ESG그룹 대표는 “101호 도서관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1000호까지 달리겠다”고 말했다.서산=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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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0권의 꿈이 생겼어요…서산에 100번째 작은도서관 개관

    25일 충남 서산시 운산면의 ‘운산작은도서관’. 손을 꼭 붙잡고 이곳을 찾은 한 노부부가 출입구 인근에 세워진 도서관 특강 안내문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날 문을 연 운산작은도서관은 개관을 기념해 성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만들기 강의를 마련했다. 인문학 강의에 참석할 생각이라는 주민 신순분 씨(68·여) “책을 좋아하지만 주변에 도서관이 없어서 매번 구매하다 보니 책이 집에 1000권 넘게 쌓였다. 우리면에 책도 보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니 황홀하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100번째 작은도서관을 개관했다. 운산작은도서관은 이 법인과 운산면이 주관하고 KB국민은행과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김 대표는 “처음 작은도서관을 짓기 시작할 때는 100호 정도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는데 소중한 일을 오랫동안 하게 돼 기쁘다”며 “책이야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매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국민 독서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은도서관 건립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진영 KB국민은행 브랜드 ESG그룹 대표는 “물질과 정신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게 우리의 포부”라며 “101호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1000호점까지 달리겠다”고 했다. 도서관은 과거 서산소방서 의용소방대 사무실로 이용되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단장했다. 1층에 3600여 권의 책이 비치됐고 2층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이 있다. 2층에는 강연 등 각종 문화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실과, 어린이들만을 위한 독서와 놀이공간도 마련됐다. 개관을 맞아 이곳을 찾은 윤효림 양(8)은 “그동안 아빠가 집에 사 오신 책만 봐야 해서 아쉬웠는데 여기에는 만화책뿐 아니라 역사책과 동화책까지 다양한 책을 볼 수 있어서 좋다”며 웃었다. 윤빛나 양(8)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엄마, 아빠가 책을 읽으라고 하시면 귀찮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린이실에서 친구, 동생들과 놀며 책을 읽다 보니 책이 재밌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 곳은 학교 도서관을 빼면 운산면의 유일한 도서관이다. 그동안 학생이 아닌 일반 주민들이 책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날 도서관을 찾은 주민 장찬순 씨(55)는 “운산면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는데 도서관이 들어선 것은 처음 본다”며 “자녀들도 책을 보려면 30분 이상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 책을 사야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점에서도 도서관을 반겼다. 주민 조무성 씨(53)는 “그 동안 50, 60대들이 퇴근하고 함께 어울릴만한 곳이 식당이나 술집 밖에 없어서 나처럼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시간을 보낼 곳이 없었다. 앞으로 퇴근 후에 자주 들를 생각”이라고 했다. 운산작은도서관 인근에는 초등학교 2곳,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각각 1곳씩 위치해 학생들에게도 좋은 놀이터가 될 전망이다. 운산초 학생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장명숙 운산초 돌봄전담사는 “둘러보니 공간이 안전하고 알차게 단장돼 있어 돌봄 시간에 종종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서산=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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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식사 대접 대신 함께 요리 해보세요”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대신 함께 요리를 하세요. 완성된 음식이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훨씬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행동과학을 바탕으로 개인, 기업의 영향력 증대와 친밀감 형성 방법을 컨설팅하는 존 리비 인플루언서스 대표(41)는 “우리가 친밀감을 형성하는 방법이라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반대로 하면 누군가와 깊이 친해질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왜 밥을 사거나 선물을 주는 등 호의를 베푸는 게 친밀감 형성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하는 걸까? 저서 ‘당신을 초대합니다’ 한국어판 출간(천그루숲)을 기념해 방한한 그를 26일 만났다. “13년 전 우연히 서로 모르는 4명의 친구를 저희 집에 초대해 식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만 모두를 알고 있을 뿐 각각은 처음 만나는 사이였는데도 식사를 마칠 때쯤엔 마치 서로 몇 년간 알았던 사이처럼 친해졌죠.” ‘당신을…’은 그가 무엇이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기업을 연결하는지에 대해 쓴 책이다. 이 식사 이후 사람이 친밀감을 느끼는 방식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당시 상황에 기반을 두고 단시간에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만남 방식을 고안했다. 그가 세운 원칙은 초대자들이 서로의 직업을 모를 것, 그리고 그들에게 새롭고 참신한 무언가를 제안할 것. 영국 작가 맬컴 글래드웰부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미국 밴드 ‘마룬5’의 제스 카마이클까지 각계각층의 인사가 찾는 ‘인플루언서 디너’가 이렇게 시작됐다. 인플루언서 디너는 현재까지 240회 이상 진행됐다. 그는 인플루언서들을 불러놓고 훌륭한 식사를 제공하는 대신에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고 뒷정리까지 마쳐 달라는 제안을 했다. 초대받은 이들은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호스트의 집에서 식사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동의 ‘미션’을 공유하며 자연스레 친밀감이 형성된다. 그는 “친밀감, 소속감 형성의 중요한 원천은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에 마케팅, 세일즈 컨설팅을 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고객에게 금전적인 혜택을 주고 제품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방식으로는 고객이 소비자로서 기업과 함께한다고 느끼게 만들 수 없다. 그는 “마케팅 담당자와 고객이 만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는 팬데믹 상황과 관련해 “친밀감 형성에는 대면 상황이 훨씬 유리하지만 비대면 시대에도 친밀감 형성의 원칙을 잊지 않으면 충분히 소통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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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해지고 싶다면 식사대접 대신 ‘이것’ 함께 하라”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대신 함께 요리를 하세요. 완성된 음식이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훨씬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행동과학을 바탕으로 개인, 기업의 영향력 증대와 친밀감 형성 방법을 컨설팅하는 존 리비 인플루언서스 대표(41)가 “우리가 친밀감을 형성하는 방법이라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반대로 하면 누군가와 깊이 친해질 수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왜 밥을 사거나 선물을 주는 등 호의를 베푸는 게 친밀감 형성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까? 저서 ‘당신을 초대합니다’(천그루숲)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그를 26일 동아일보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13년 전 우연히 서로 알지 못하는 4명의 친구들을 저희 집에 초대해 식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만 모두를 알고 있을 뿐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였는데도 식사를 마칠 때쯤엔 마치 서로 몇 년 간 알았던 사이처럼 친해졌죠.” ‘당신을…’은 그가 무엇이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기업을 연결하는지에 대해 쓴 자기계발서다. 이 식사 이후 사람이 친밀감을 느끼는 방식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당시 상황에 기반을 두고 단시간에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만남 방식을 고안했다. 그가 세운 원칙은 초대자들이 서로의 직업을 모를 것, 그리고 그들에게 새롭고 참신한 무언가를 제안할 것. 영국 작가 말콤 글래드웰부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미국 밴드 마룬5의 제스 카마이클까지 각계 각층의 인사가 찾는 ‘인플루언서 디너’가 이렇게 시작됐다. 인플루언서 디너는 현재까지 240회 이상 진행됐다. 그는 이 인플루언서들을 불러 놓고 훌륭한 식사를 제공하는 대신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고 뒷정리까지 마쳐달라는 제안을 했다. 초대받은 이들은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호스트의 집에서 식사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동의 ‘미션’을 공유하며 자연스레 친밀감이 형성된다. 그는 “친밀감, 소속감 형성의 중요한 원천은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삼성 등 글로벌 기업에 마케팅, 세일즈 컨설팅을 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고객에게 금전적인 혜택을 주고 제품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으로는 고객이 소비자로서 기업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그는 “마케팅 담당자와 고객이 서로 만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팬데믹 사태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친밀감 형성에 활용할 수 있다. 화상회의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은 취하되, 이 가운데에서도 팀을 나눠 공동의 목표를 준다면 팀원들끼리의 친밀감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 “친밀감을 형성하기에는 대면 상황이 훨씬 유리하지만 비대면 시대인 지금도 우리에게는 소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친밀감 형성의 원칙을 잊지 않는다면 충분히 연대와 소통의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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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직장인은 지하철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직장인의 고달픔을 절절하게 노래한 시를 읽고 가슴을 움켜쥔 적이 있다. 하지만 ‘고상한 시인께서 뭘 알겠어. 누구한테 전해들은 이야기로 썼겠지’ 하며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구태여 포털 사이트로 시인 이름을 검색해보고 그가 전업 작가임을 확인한 후에는 시를 읽기 전보다 더 쓸쓸한 표정을 지어봤다. 그 냉소적 직장인의 얼어붙은 마음은 이 책에서 풀렸다. 체지방을 걱정하는 척하다 어느새 막걸리에 손을 뻗는 모양새에서 먼저 동질감이 느껴졌다. ‘집값’ ‘비규제 주담대’ ‘중도금 대출 무이자’ 등 어깨가 무거워지는 어휘도 자주 나온다. 알고 보니 저자는 10년 넘게 회사에 다니고 있는 성실한 직장인. 이 책은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잘 알려진 저자가 직장인의 마음으로 쓴 에세이다. ‘먹고사니즘’(먹고 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면서도 낭만과 예술을 그리워하는 게 평범한 이들의 모습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범인이 어떤 순간 시인이 되는지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저자는 살이 찐 동료들과 “팬데믹만 지나면 운동을 시작해 지방을 빼겠다”는 대화를 나누다 문득 인생에도 빼야 할 지방이 있다면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죄가 인생의 찌꺼기라면 이를 덜어냈을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그렇지 않다면 인생에서 무얼 빼야 할까. 누구든 한번쯤 품었을 법한 고민이다. 때로는 내 고통을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어느 날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저자는 은퇴와 인생 2막에 대한 상상에 빠진 후 부동산 시세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서울은 꿈도 못 꿔 산간벽지의 분양 정보부터 알아보는 상황,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매매’가 싱거운 상상에 그치는 모습은 남일 같지 않다. “가족끼리 단란하게 살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는 건 하나도 평범하지 않으며, 모두가 무언가를 애원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말은 그 어떤 절절한 시보다도 깊은 위로로 다가온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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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매환자 적대적 행동엔 우울증 등 깔려”

    “대학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고 정신건강의학 전문인 저희 병원으로 오신 할머니가 있었어요. 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등 여러 유형 중 어떤 치매 진단을 받으셨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시더라고요. ‘꽃 같은 치매’라고.” 10년째 치매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장기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41)는 몇 년 전 이 환자를 처음 만난 날을 잊지 못한다. 할머니의 대답은 치매라는 질병을 대하는 장 씨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 놨다고 한다.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는 우울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질병을 대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장 씨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평생을 긍정적이고 유쾌한 태도로 살아온 분이었다. 치매라는 진단 너머에 있는 할머니의 인생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8일 출간한 에세이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웅진지식하우스·사진)에 그간의 치매 환자 치료기를 담았다. 그를 2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치매의 증상을 흔히 ‘착한 치매’와 ‘나쁜 치매’로 분류하곤 합니다. 저희 정신의학과에서는 주로 나쁜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착한 치매로 유도하는 것을 1차적 목표로 두죠.” 기억을 잃어갈 뿐 가족들이 돌볼 수 있는 수준의 치매를 착한 치매라고 한다면 망상과 우울로 주변인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를 나쁜 치매라고 부른다. 정신의학과는 치매 환자의 적대적 행동 기저에 우울증, 불안증 등 정신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고 보고 이를 치료하는 데 주력한다. 기억력이나 언어능력 저하 같은 인지 증상을 다루는 신경외과 외에 정신의학적 측면의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장 씨는 “한국은 치매 치료 선진국에 비해 정신의학적 접근이 더 활성화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치매 환자의 정신적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가 보다 치매 친화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모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치매에 걸리면 그때부터는 그저 ‘치매 환자’가 된다. 이들을 개별적인 인간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환자가 자꾸 집 밖으로 나가 배회한다”며 힘들어하지만, 고민이 많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산책을 나서는 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배회가 아니라 환자의 심리적 불안감이라는 것. 이 불안감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치매와 사회의 화해가 시작된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실시됐지만 아직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료 시스템 구축에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치매 환자를 좀 더 자주 마주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했으면 합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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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같은 치매’라는 할머니…‘치매환자’가 아닌 그의 인생을 보게됐죠”

    “대학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고 정신건강의학 전문 병원인 저희 병원으로 오신 할머니 환자가 있었어요. 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등 여러 유형 중 어떤 치매 진단을 받으셨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시더라고요. ‘꽃 같은 치매’라고.” 10년 째 치매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장기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41)는 몇 년 전 이 환자를 처음 만난 날을 잊지 못한다. 할머니의 대답은 장 전문의가 치매라는 질병을 대하는 태도를 영원히 바꿔 놨다고 한다. 평생을 긍정적이고 유쾌한 태도로 살아온 환자의 지난 인생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신의 질병이 꽃 같다는 할머니의 답이 이해가 갔다. 그는 “치매라는 진단 너머에 있는 할머니의 인생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8일 출간한 에세이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웅진지식하우스)에 그간의 치매 환자 치료기를 담았다. 그를 2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치매의 증상을 흔히 ‘착한 치매’와 ‘나쁜 치매’로 분류하곤 합니다. 저희 정신의학과에서는 주로 나쁜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착한 치매로 유도하는 것을 1차적 목표로 두죠.” 기억을 잃어갈 뿐 가족들이 돌볼 수 있는 수준의 치매를 착한 치매라고 한다면 망상과 우울로 주변인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를 나쁜 치매라고 부른다. 정신의학과는 적대적인 행동의 기저에 우울증, 불안증 등 정신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고 보고 이를 치료하는데 주력한다. 기억력 저하, 언어 능력 저하 등 인지 증상의 완화를 다루는 신경외과 외에 정신의학적 측면의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한국은 아직 치매 치료 선진국에 비해 정신의학적 접근이 더 활성화 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신적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환자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가 보다 치매 친화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그는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치매에 걸리면 그때부터는 그저 ‘치매 환자’가 된다. 이들을 모두 개별적인 인간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환자가 자꾸 집 밖을 나서 배회한다”는 토로를 하지만, 고민이 많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산책을 나서는 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배회가 아니라 환자의 심리적 불안감이라는 것. 이 불안감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치매와 사회의 화해가 시작된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실시됐지만 아직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료 시스템 구축에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치매 환자를 좀더 자주 마주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했으면 합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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