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채은

전채은 기자

동아일보 편집부

구독 1

추천

안녕하세요. 전채은 기자입니다.

chan2@donga.com

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문학/출판64%
문화 일반17%
인사일반7%
사회일반3%
역사3%
경제일반3%
기타3%
  • ‘동서양 영웅전 완역’ 소년의 꿈, 80세에 이루다

    “동서양의 대표 영웅전인 ‘삼국지’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자국어로 완역한 세계 최초의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꿈을 이루고 나니 어언 80세 가까이가 됐군요.”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79·사진)는 “수십 년간 가슴에 품은 꿈을 이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해 2월 ‘삼국지’(집문당)에 이어 이달 1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을유문화사)을 완역 출간했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이자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서기 46∼120)는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한니발 등 역사 인물 52명의 기록을 영웅전에 담았다. 정치학자인 신 전 교수가 고전 번역에 몰두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6일 동아일보 인터뷰 룸에서 그를 만났다. “6·25전쟁 직후 너무 가난해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서울 을지로 구멍가게에서 일했습니다. 고드름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던 그 시절, 두 작품 속 영웅들이 제 꿈과 희망을 지켜줬죠.” 그는 오래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처음 읽은 때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열아홉 살이던 1961년 처음 읽고 그때부터 완역의 꿈을 가졌다”고 말했다. 정치학자가 된 이후에는 틈틈이 13종의 영웅전 판본을 수집해 비교했다. 2007년 번역에 본격적으로 착수해 교수직 정년퇴직까지 5년간 학교에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집에선 삼국지를 번역했다. 미국 하버드대 출판사 영역본과 대만 상무인서국 출판사 출간본을 각각 원문으로 삼았다.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고 출판사를 찾는 데도 수년이 걸렸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그간 국내에 다양한 번역본이 나왔지만 이번 신간에는 기존 번역본에 포함되지 않은 한니발전과 스키피오전 등 7편을 추가했다. 고전 연구자들이 정본으로 간주하는 프랑스 자크 아미요 주교(1513∼1593) 판본에 나오는 분절 번호도 반영했다. 그는 “성경을 몇 장 몇 절이 아닌 페이지로 인용하지 않는 것처럼 영웅전 같은 고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번역본 중에는 분절 번호가 달린 게 없어 연구자들이 특정 문장을 인용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5)와 투키디데스(기원전 460∼400)를 포함한 여러 그리스 역사가들 중에서도 플루타르코스의 역사관에 가장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는 다른 역사가들과 달리 영웅을 신격화하지 않고 인간의 곁으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한 인물이다. 그는 영웅이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도, 땅에서 솟은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다만 역사가 부르는 순간에 옳은 행동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평범한 사람들도 영웅들의 이야기를 접하고서 그들을 닮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가 원래 붙인 책 제목은 ‘영웅전’이 아닌 ‘고결한 삶을 산 사람들(Noble Grecians and Romans)의 생애’입니다. 이들이 보인 충절, 우국심, 신의를 통해 지금을 사는 독자들도 고결한 삶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9-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결혼은 모험… 보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흔히들 결혼을 모험이라고 하잖아요. 현대인들이 모험에 뛰어들기에 앞서 가입하는 게 보험이고요. ‘결혼보험’이라는 아이디어는 이런 발상에서 출발했습니다.”(윤고은) 작품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주목받는 소설가 윤고은(41)이 ‘안심 결혼보험 약관집’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다룬 장편소설 ‘도서관 런웨이’(현대문학)를 최근 펴냈다. 그는 전작 ‘밤의 여행자들’(2013년)에선 재난 여행 프로그램을, ‘1인용 식탁’(2010년)에선 혼자 식사하는 법을 알려주는 학원을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신작에서 윤고은은 영원한 사랑의 서약으로 여겨지는 결혼을 소비상품의 잣대 위에 올려놓고 현대사회에서 결혼이 갖는 의미를 재해석했다. 신작 해설은 2017년 평론으로 등단한 소설가 염승숙(39)이 썼다. 두 사람은 동국대 문예창작과 선후배로 소문난 절친이다. 이들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집필 과정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염승숙은 “해설을 써달라는 말에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윤 선배가 진지하게 부탁해 즐거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윤고은이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을 지켜봐 온 염승숙은 ‘뜻깊은 해설을 써 줄 평론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해설 제의를 받고 나선 평소 애정을 담아 해설을 써 내려갔다. 윤고은은 “학교 후배, 동료 소설가여서가 아니라 평론가로서 염승숙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고민 없이 그를 선택했다”고 했다. 윤고은의 작품들을 염승숙이 줄줄이 꿰고 있는 덕에 해설은 깊이 있고 짜임새 있게 쓰일 수 있었다. 염승숙은 “첫 장편 ‘무중력 증후군’에서부터 드러났던 재기발랄한 화술과 색다른 상상력이 윤고은의 매력”이라며 “곳곳에서 나오는 윤고은만의 서사는 그가 열정을 다해 심어 놓은 표식과도 같다”고 썼다. 염승숙은 “윤고은이라는 작가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문제의식, 이를테면 인간 존재의 가난함이나 인생의 부조리 같은 것들이 이번 소설에도 툭툭 튀어나왔다. 그걸 잘 포착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윤고은은 올 7월 ‘밤의 여행자들’로 영국추리작가협회(CWA)가 주관하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 부문을 아시아 최초로 수상했다. 등장인물들이 멀리 떨어진 재난을 찾아가는 내용의 작품이 팬데믹 와중에 수상한 게 작가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왔다고. 윤고은은 “지금은 반대로 주문하지 않은 재난이 배달된 상황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밤의 여행자들’에 쓴 재난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현재 정말로 추리해내고 싶은 주제일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문법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소설을 쓸 생각이라고 했다. 장르는 출발점일 뿐 어디로 뻗어 나가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얼마든지 다른 장르로 흐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 “장르를 가로지르는 작품들, 그래서 서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어느 분야에 책을 비치해야 할지 고민하는 책들이 궁금해요. 궁극적으로는 모든 작가가 각자 하나의 장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윤고은)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9-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低성장 두려워 말라, 더 살 만한 세상이 온다

    당신이 속도를 계속 높이고 있는 열차 위에서 평생 살았다고 가정해 보자. 갑자기 열차에 제동이 걸리는 걸 느낀다. 열차는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지만 예전처럼 무서운 속도로 달리지는 않는다. 당신은 “열차가 다시 속도를 낼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이 책은 이 같은 기대감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느려진 열차가 훨씬 안전하고 편안할 것”이라고 다독인다. 저자는 세계의 인구, 경제, 기술 등 사회를 구성하는 전반적인 요소들의 성장속도가 더뎌졌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 인구학자들은 세계 인구가 매년 최소 2%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 정도 증가율은 전쟁이 일어났거나 천재지변이 있었던 곳에서나 드물게 발견될 뿐이다. 일본의 경우 연간 인구증가율이 1950년 2%에서 1958년 1%, 1986년 0.5%로 점차 줄다가 2012년부터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2010년 말 미국 주택시장은 회복되는 듯했지만 2011년 붕괴됐다. 2012년과 2013년 미국 주택경기가 소폭 회복됐지만 다시 무너졌다. 2018년 3분기 미국 주택시장 대출액은 9조 달러 선을 회복했지만 이는 2008년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2019년부터 미국의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중개업자들은 향후 집값 폭락에 대비하고 있다. 산업기술 분야의 발전만큼은 눈부시다는 생각도 착각이다. 테크 기업들은 스마트폰이 접히고 노트북이 얇아지며 세탁기 위 건조기가 합체된 것을 엄청난 혁신인 양 발표하지만 이는 전화기, 컴퓨터, 세탁기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에 비하면 작은 변화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저자는 모든 분야에서 성장을 멈춘 세계에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거라고 주장하는 걸까. 사실은 그 반대다. 지난 100여 년간 세계에서 벌어진 폭발적 성장은 인류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인류는 수천 년간 아주 느리게 살아왔고, 수백 년에 걸쳐 비슷한 삶의 방식을 지속했다. 느려진 열차는 디스토피아가 아닌 오히려 ‘정상 상태’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인구 증가 속도가 느려지면 빈부 격차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많은 인구를 기반으로 한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지 못하면 독과점 대기업들이 경제를 좌우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에 밀린 낙오자들은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는 효율성 우선의 논리도 폐기될 것이다. 또 자그마한 변화를 혁신이라 주장하는 제품 대신 더 오래 쓸 수 있는 제품들이 인기를 끌며 폐기물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지면 소비 수준의 향상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속도가 느려져 부모와 자식 세대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게 나쁘기만 할까. 가족이나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라면 이는 분명 축복일 것이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9-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최고가 되는 건 자신을 돌볼 줄 아는 것… 내 이름을 브랜드로”

    “해당 직무 경험이 없는 관리자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못하고 직원을 애먹이는 경우가 있어요.”(팟캐스트 활동명 이 과장·39) “이 과장이 한번 부장 돼 봐….”(〃 김 부장·48) ‘김 부장’이 ‘이 과장’에게 던진 한마디에 팟캐스트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언슬조) 출연자들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이 과장이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것보다 차라리 아랫사람한테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상사가 더 믿음직하다”고 하자 김 부장도 “맞다. 관리자도 새로 맡은 직무라 모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 일이 더 잘 풀리더라”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이 부장에게 어떻게 이런 ‘직언’을 할 수 있을까. 다행히(?) 이들은 같은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 2018년 2월부터 언슬조를 진행하고 있는 김 부장과 이 과장(본명 미공개), 박 사원(본명 박주현·31), 박 PD(본명 박성미·42)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나이와 직업, 직급이 모두 다른 이들은 2016년 독서모임에서 만나 서로의 고충을 나누다 친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자는 뜻이 팟캐스트로 이어졌다. “직장 상사의 갑질에 아주 힘들어하던 청취자가 ‘수렁에 빠진 신입사원에게 한 줄기 희망과 같은 방송’이라는 반응을 남긴 적이 있어요. 그런 소감을 들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껴요.”(박 PD) 3년 반을 넘긴 팟캐스트는 어느새 164회를 맞았다. 이쯤 되면 직장인으로서 맞닥뜨리는 거의 모든 문제를 다뤘을 법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작자나 청취자의 고민이 계속 바뀐다고 한다. 여성 시니어 직장인의 경우 팟캐스트 초창기에는 남성 위주 사회에서 소수자로 사는 데서 오는 고민이 컸다면 요즘 고민은 ‘80년대생이 온다’가 주류다. 김 부장은 “여성 관리자로 살며 남성 동료들보다 늘 위기감이 컸는데 이제 80년대생 부장이나 임원이 생기니 위기감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신세대 간부들에게 밀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는 얘기다. 젊은 여성 직장인들의 고민도 바뀌었다. 박 사원은 “또래 20대 후반, 30대 초반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 대신 비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쉽게 선택하지는 못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중간 관리자인 이 과장은 “요즘 신입사원들은 텍스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 그런지 보고서에 구어체가 마구 등장해 당황스럽다.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니 지적하지 말자고 생각하다가도 ‘이러다 보고서를 틱톡 영상으로 받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며 웃었다. 이들은 언슬조가 답을 가진 곳이 아니라, 답을 함께 고민하는 플랫폼이라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한 청취자의 고민을 다른 청취자가 해결해 줄 때 보람을 느낀다. 이들은 팟캐스트에 이어 1일 자기계발서 ‘회사에서 나만 그래?’(콜라주)를 펴냈다. 책은 여성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고민할 만한 26가지 문제에 대해 나름의 답안을 제시했다. 24일 오후 7시에는 독립서점 최인아책방에서 열리는 온라인 저자 북토크를 통해 독자들과 라이브로 만난다. 요새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신세대의 라이프스타일. 기존 주제가 조직 생활에만 쏠려 있었다면 앞으로는 조기 퇴사 이후 삶이나 싱글 직업인의 모습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조직을 이해하고 있는 방식대로 조직과 사회가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젊은 직업인들을 조금 더 이해해 보려는 게 다음 목표입니다.”(박 PD)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9-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서울국제도서전 ‘긋닛’ 주제로 12일까지 열려

    2021 서울국제도서전이 8일 서울 성동구 에스팩토리에서 열려 12일까지 진행된다. 올해로 27회를 맞는 도서전 주제는 ‘긋닛’(끊겼다가 이어졌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전시 규모는 줄었지만 책에 대한 사랑으로 열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전시는 서울국제도서전 역사를 조망하는 ‘긋닛’과 각국의 다양한 책 디자인을 선보이는 ‘BBDWK’, 웹툰과 웹소설 특별전 ‘파동’의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주최 측은 방역수칙에 따라 2개 전시장에서 동 시간대 관람 인원을 최대 300명으로 제한했다. 이날 도서전 주제 강연을 맡은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생태보호 필요성을 발표했다. 이어 9일 공연예술가 이자람, 10일 건축가 노은주, 11일 소설가 정세랑, 12일 영화배우 문소리가 강연에 나선다. 해외 작가들의 온라인 강연도 마련됐다. 8일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을 시작으로 9일 중국 작가 우샤오러(吳曉樂), 11일 독일 작가 유디트 샬란스키, 12일 미국 작가 에릭 와이너 순으로 진행된다. 온라인 강연은 유튜브 서울국제도서전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이번 도서전에서는 작가들과 각 분야 전문가 200여 명이 40여 회에 걸친 강연과 대담에 참여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9-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80년대생 부장-임원에 위기감이…회사에서 나만 그래?

    “해당 직무 경험이 없는 관리자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못하고 부하직원을 애먹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활동명 이 과장·39) “이 과장이 한번 부장 돼 봐….”(김 부장·48) ‘김 부장’이 ‘이 과장’에게 조용히 던진 한 마디에 일순간 멤버들의 박장대소가 터졌다. 이 과장이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것보다 차라리 아랫사람한테 도와 달라, 같이 하자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상사가 더 믿음직하다”고 부연하자 김 부장도 이내 “맞다. 관리자도 새로 맡은 직무라 모를 수 있다는 게 공유되고 나면 일이 더 잘 풀리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이 어떻게 부장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냐고? 같은 회사에 다니는 이들이 아니니 걱정 내려 놓으시라. 이들은 2018년 2월부터 팟캐스트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을 진행하고 있는 ‘언슬조’ 멤버들이다. 2016년 한 독서모임에서 우연히 서로의 고충을 나누다 보니 나이도, 직급도, 고용 형태도 전부 다른 여성 직업인 6명이 모이게 됐다. 김 부장, 신 차장(활동명·40), 이 과장, 문 대리(활동명·35), 박 사원(박주현·31)이 팟캐스트 제작을 맡은 박 PD(박성미·42)의 지휘 아래 그렇게 모였다. 이들은 1일 자기계발서 ‘회사에서 나만 그래?’(콜라주)를 펴냈다. 여성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26가지 문제를 엄선해 현실적인 답을 담았다. 7일 김 부장과 이 과장, 박 사원, 박 PD를 줌 화상회의로 만났다. “직장 상사의 ‘갑질’에 아주 힘들어 하시던 청취자가 ‘수렁에 빠진 신입사원에게 한 줄기 희망과 같은 방송이다’라는 반응을 남겨주신 적이 있어요. 그런 소감을 전해주실 때마다 큰 보람을 느껴요.”(박 PD) 3년 반을 넘긴 팟캐스트는 어느새 164회를 맞았다. 이쯤 되면 직업인으로 살며 맞닥뜨리는 거의 모든 문제를 다뤘을 법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언니들’도, 청취자들도 고민이 계속해서 변한다고 한다. 과거 김 부장과 또래 청취자들은 남성 위주의 계급 사회에서 소수파로 살아가는 데서 오는 고민이 컸다면 지금 이들의 고민은 ‘80년대생이 온다’라고. 김 부장은 “여성 관리자로 살며 남성 동료들보다 늘 위기감이 컸는데, 이제 80년대생 부장, 임원이 슬슬 생기니 그 위기감이 훨씬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고민도 달라졌다. 박 사원은 “제 또래인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 대신 다른 선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만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쉽게 선택을 감행하지는 못하는 단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중간관리자 급인 이 과장은 “신입 사원들은 텍스트보다 영상 매체가 익숙한 세대라 그런지 보고서를 보면 구어체가 마구 등장해 당황스럽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니 지적하지 말까’ 생각하다가도 ‘이러다 보고서를 틱톡으로 받게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며 웃었다. 이들은 ‘언슬조’가 답을 가진 곳이 아니라, 답을 함께 고민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청취자의 고민을 다른 청취자가 해결해 줄 때 보람이 크다고 한다. 이들은 24일 오후 7시 최인아 책방에서 열리는 온라인 저자 북토크를 통해 1년 여 만에 청취자들과 생방송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요새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신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기존의 논의가 조직생활에 쏠려 있었다면 이를 퇴사 이후의 삶, 싱글 직업인의 모습 등 전반적인 삶의 양태로 확장해보자는 것. “지금 젊은 세대들이 조직을 이해하고 있는 방식대로 조직과 사회가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좀더 젊은 직업인들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게 저희의 다음 목표입니다.”(박PD)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9-08
    • 좋아요
    • 코멘트
  • 막말에 성적농담까지… ‘소시오패스’ 상사 밑에서 살아남기

    지난주부터 새로운 부서로 출근하게 된 당신. 그곳에서 만난 상사에게 일주일 만에 질려 아침마다 출근길이 고통스럽다. 상사는 제멋대로 지시를 바꾸고는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듣냐”며 도리어 당신을 탓하기도 하고, “이걸 볼 때마다 지시를 잘 알아들어야 한다는 걸 상기하라”며 요상한 팔찌를 채우기도 한다. 대뜸 다가와 성적 매력을 뽐낸 적도 있다. 지시가 부당하게 느껴져 한번은 “이 팔찌를 차고 싶지 않다”고 저항해 봤지만 “내가 너에게 팔찌를 하고 싶은지 아닌지 물어봤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상사가 싫어서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 책의 저자라면 아마도 “정신 똑바로 차려라”라는 조언을 보낼 것이다. 질타가 아닌 응원과 지지의 의미에서다. 저자는 “소시오패스를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은 착각”이라며 “25명 중 1명이 소시오패스”라는 경고를 보낸다. 책은 교묘하게 남을 조종해 주변 사람들의 정신건강과 심리를 파탄시키는 소시오패스들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숙지해야 할 지침서다. 소시오패스는 ‘양심과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양심은 있는 나르시시스트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소시오패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시오패스를 ‘감별’할 수 있어야 한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가길 원하며 체포되거나 감옥에 가는 걸 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도덕적으로 부정한 행위도 사람들에게 지적받지 않을 범위 내에서 저지른다. 많은 사람들이 소시오패스를 치명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자일 거라 생각하지만 오해다. 그런 폭력적인 소시오패스는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우리의 삶을 가지고 잔인하게 심리적, 정치적 게임을 벌이는 위험한 거짓말쟁이나 심리 조종자일 가능성이 많다. 소시오패스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의 7가지 심리나 행동 중 그가 몇 개에 해당되는지 살펴보자. △타인을 조종하기 위한 조작 △기만 △타인의 문제에 냉담 △빈번한 적대 △의무 및 약속에 대한 무책임 △충동적 행동 △불필요한 위험 감수. 이 중 3개 이상에 해당되는 경우라면 그를 소시오패스로 규정하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야 한다. 누군가가 소시오패스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책은 ‘도망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천성 자체가 다른 소시오패스를 변화시킬 묘안 따위는 일반적인 수준의 양심과 공감능력을 가진 이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 상사나 가족처럼 관계를 끊어버릴 수 없는 사람이 소시오패스인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는 우리의 목적이 소시오패스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표면에 드러난 목표 이외에 또 다른 자신만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 가령 소시오패스 직장 상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하나의 서류가 있다면 그가 고약하게 굴 경우를 대비해 두세 개의 선택지를 만들어두는 식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그와의 싸움은 전투에서 패배해야 승리하는 전쟁과 같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소시오패스한테는 도망치거나 져 주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하는 걸까? 그는 소시오패스에게 단 하나의 가치를 마지막까지 내어주지 않는 방식으로 그를 낙담시키고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자신의 존엄이다. 누군가의 교묘하고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스스로의 판단능력과 인격을 의심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이 책을 통해 훼손된 영혼을 치유하는 건 어떨까.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9-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졸업작품 ‘3초 관람’ 충격에… 붓 내려놓고 美로 ‘애니 유학’

    2013년 말, 미대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최지영 씨(30)는 졸업 전시를 앞두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최 씨와 그의 동기들이 공들여 그린 회화 작품들을 드디어 많은 사람에게 선보이는 날이기 때문. 하지만 전시 당일 최 씨의 기대감은 무너지고 말았다. 길게는 반년씩 걸려 그린 작품들을 관객들이 감상하는 시간은 3초 남짓. 졸업 후 2014년 타 대학 미대생들과 단체전을 열었을 때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최 씨는 3∼6개월씩 걸리는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한 작업물이 많아 더욱 깊이 낙담했다. 고급 갤러리를 찾는 이들은 그림을 보다 촘촘히 뜯어보지만 또 다른 문제점이 보였다. 시간과 돈을 써 가며 미술을 즐기는 계층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던 것. 왜 미술을 배웠는지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으로 학벌이나 계층, 나이, 인종 간 경계를 허물겠다’는 오랜 계획이 떠올랐을 때 그는 붓을 내려놓고 세계 애니메이션의 중심지인 미국 캘리포니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2015년 유학길에 오른 최 씨는 올 7월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배급사인 드림웍스의 시각 개발 아티스트(visual development artist)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새로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언어 장벽 속에 ‘맨땅에 헤딩’하듯 미국에 간 지 6년 만에 얻은 성과다. 지난달 31일 화상통화로 만난 최 씨는 “뼈를 갈아 넣는다는 생각으로 그림만 그리던 세월이었다. 유학 생활을 힘들게 했던 경제적 부담과 추방 위기를 떠올리면 아찔하다”며 웃었다. 최 씨는 당초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리타에 있는 예술전문학교인 캘리포니아예술대(Calarts) 입학을 목표로 미술과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월트 디즈니가 세운 이 ‘꿈의 학교’만 나오면 어디든 애니메이션 디자이너로 취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미국에 가보니 소위 ‘학벌’이 많은 것을 해결해주는 한국과 전혀 달랐다. 유학생 신분이라 돈을 못 버는 상황에서 2억 원에 이르는 캘리포니아예술대의 학비도 부담이었다. 최 씨는 “노력 끝에 캘리포니아예술대에 합격했지만 2018년 캘리포니아주립대에 진학해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쌓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던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모든 인턴십과 취업문이 막혔다. 미국의 팬데믹 상황이 극심해지는 와중에 행정부가 “대면 수업을 받지 않는 유학생은 모두 추방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혀 공포 속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쉬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수많은 회사에 돌렸다. 포트폴리오가 드림웍스 미술감독의 눈에 들어 연락이 올 정도로 긍정적 신호가 이어졌다. 입사 후 그가 참여한 첫 작업물은 영화 ‘트롤’의 TV 버전인 ‘트롤스토피아(TrollsTopia)’. 10월부터는 새로 론칭하는 TV 프로그램에 투입될 예정이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막막했죠. 지금은 순수미술을 전공하며 배웠던 이론과 미술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 제 선택에 후회는 없답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9-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반년 그린 작품, 관객은 3초 감상…낙담 끝 ‘맨땅에 헤딩’ 선택한 MZ세대

    2013년 말, 미대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최지영 씨(30)는 졸업 전시를 앞두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최 씨와 그의 동기들이 공들여 그린 회화 작품들을 드디어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날이기 때문. 하지만 전시 당일 최 씨의 기대감은 무너지고 말았다. 길게는 반년 씩 걸려 그린 작품들을 관객들이 감상하는 시간은 3초 남짓. 졸업 후 2014년 타 대학 미대생들과 단체전을 열었을 때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최 씨는 3~6개월 씩 걸리는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한 작업물이 많아 더욱 깊이 낙담했다. 고급 갤러리를 찾는 이들은 그림을 보다 촘촘히 뜯어 보지만 또 다른 문제점이 보였다. 시간과 돈을 써 가며 미술을 즐기는 계층이 정해져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던 것. 왜 미술을 배웠는지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으로써 학벌이나 계층, 나이, 인종 간 경계를 허물겠다’는 오랜 계획이 떠올랐을 때 그는 붓을 내려놓고 세계 애니메이션의 중심지인 미국 캘리포니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2015년 유학길에 오른 최 씨는 올 7월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배급사인 드림웍스의 시각 개발 아티스트(visual development artist)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새로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언어 장벽 속에 ‘맨땅에 헤딩’하듯 미국에 간지 6년 만에 얻은 성과다. 지난달 31일 화상통화로 만난 최 씨는 “뼈를 갈아 넣는다는 생각으로 그림만 그리던 세월이었다. 유학 생활을 힘들게 했던 경제적 부담과 추방 위기를 떠올리면 아찔하다”며 웃었다. 최 씨는 당초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리타에 있는 예술전문학교인 캘리포니아예술대학(Calarts) 입학을 목표로 미술과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월트 디즈니가 세운 이 ‘꿈의 학교’만 나오면 어디든 애니메이션 디자이너로 취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미국에 가보니 소위 ‘학벌’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한국과 전혀 달랐다. 유학생 신분이라 돈을 못버는 상황에서 2억 원에 이르는 Calarts의 학비도 부담이었다. 최 씨는 “노력 끝에 Calarts에 합격했지만 2018년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진학해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쌓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던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모든 인턴쉽과 취업문이 막혔다. 미국의 팬데믹 상황이 극심해지는 와중에 행정부가 “대면 수업을 받지 않는 유학생은 모두 추방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혀 공포 속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쉬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수많은 회사에 돌렸다. 포트폴리오가 드림웍스 미술 감독의 눈에 들어 연락이 올 정도로 긍정적 신호가 이어졌다. 입사 후 그가 참여한 첫 작업물은 영화 ‘트롤’의 TV 버전인 ‘트롤스토피아(TrollsTopia)’. 10월부터는 새로 론칭하는 TV프로그램에 투입될 예정이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막막했지요. 지금은 순수미술을 전공하며 배웠던 이론과 미술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서 제 선택에 후회 없답니다.”전채은기자 chan2@donga.com}

    • 2021-09-01
    • 좋아요
    • 코멘트
  • [인사이드&인사이트]쑥쑥 크는 웹소설, 서울도서전 ‘특별 손님’으로… “출판시장 키울것”

    《열림원 출판사에서 2015년 3월 출간한 윤이수 작가의 장편소설 ‘구르미 그린 달빛’ 시리즈(전 5권)는 책일까? 대부분의 독자들이 “당연히 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네이버시리즈에서 2016년 11월부터 유료로 서비스하고 있는 해당 시리즈 5권의 전자책은 책일까? 이름부터가 전자‘책’이니 종이책의 물성을 띠고 있지는 않더라도 콘텐츠의 특성상 책으로 분류해도 무리는 없을 테다. 그렇다면 이 두 버전의 모태라고 볼 수 있는 웹소설은? 네이버웹소설에 연재됐던 이 작품은 2013년 10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총 131화에 걸쳐 서비스됐다. 책일까? 아니면 ‘웹소설’이라는 또 다른 콘텐츠로 분류해야 할까. 대한출판협회(출협)는 다음 달 8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성동구에서 개최되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올해 처음으로 웹소설·웹툰 특별전을 연다. 26년간 개최된 전통 있는 도서전에 처음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콘텐츠가 ‘책’으로 입성한다. 주일우 출협 부회장은 “출판계에서는 최근 수년간 웹 콘텐츠도 출판시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이어졌다”며 “웹소설이 단행본이 되고, 영화나 드라마가 되고, 넷플릭스 등 플랫폼을 통해 국경도 넘어가는 지금은 이야기의 힘이 어느 때보다 더 큰 시대”라고 말했다.》 출협은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인 ‘출판시장 통계’에 올해부터 웹소설과 웹툰을 연재하는 플랫폼 기업을 포함시켰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리디, 디앤씨미디어, 레진엔터테인먼트 등 굵직한 웹소설 출판사와 전자책 플랫폼이 대거 들어갔다. 출판계가 전자책뿐 아니라 웹소설도 책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 모바일 만나 폭발적 성장 바야흐로 ‘웹소설의 시대’다. 2019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2013년 약 100억 원에서 2018년 약 4000억 원으로 껑충 뛰어 40배로 커졌다. 지난해 웹소설 시장 규모는 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출협이 발표한 ‘2020년 출판시장 통계’를 보면 웹소설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 중 영업이익이 가장 컸던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380억 원으로 2019년에 비해 26.3% 증가했다. ‘출판시장 전체가 성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달 ‘2020 출판산업 실태 조사’에서 밝힌 국내 단행본 시장의 매출액은 2015년 7602억 원에서 2019년 7133억 원으로 줄었다. 전체 출판시장이 쪼그라드는 가운데서도 웹소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웹소설에 대한 수요는 국내에 컴퓨터가 도입되던 시절부터 꾸준히 존재했다. 이우혁의 소설 ‘퇴마록’은 1993년 PC통신 하이텔에 연재돼 뜨거운 반응을 얻은 판타지 소설로 2013년까지 외전이 출간될 정도로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았다. 1997년 ‘드래곤 라자’를 쓴 이영도도 이 분야의 대표주자다. 이 장르는 2000년대 들어 ‘인터넷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성장하자 독자층도 낮아져 10대 소녀들이 로맨스 장르의 주요 독자가 됐다.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이상 귀여니), ‘내사랑 싸가지’(이햇님)가 대표적이다. 이들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지며 활발하게 영상화되기 시작했다. 2010년대 포털 사이트가 이 분야 사업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웹소설’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모바일로 웹소설을 읽는 이들이 급증했고 팬픽, 판타지, 무협, 로맨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 출판계 웹소설 간 긍정적 피드백 기대 웹소설이 출판계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을 바라보는 관계자들의 시각은 양가적이다. “오랜 기간 출판의 한 종류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무시하다가 시장 규모가 커지니 이제 와서 ‘인정’해 주는 모양새”라는 토로와 “웹소설이라는 장르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동시에 나온다. 이미 커질 대로 커져 버린 웹소설 시장이 진통 없이 기존의 출판계에 편입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당장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도 발급받지 않는 웹소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일부 회차는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 웹소설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할 수 있을까?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현재 법이나 정부 지원은 전통적인 종이책 중심으로 마련돼 있다. 이를 개편하거나 웹 콘텐츠만을 위한 제도와 지원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기대감이 더 크다. 기존 출판계와 웹소설 시장 간 긍정적인 피드백을 전망하는 시선이 많다. 이를테면 웹소설을 통해 긍정적인 독서 경험을 축적한 독자는 웹소설과 결이 비슷한 장르문학의 독자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그동안 한국은 미국의 스티븐 킹 같은 ‘고급 중간 문학’이 없었다”며 “웹소설 독자들이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의 새로운 독자로 유입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한국에도 중간 문학 작가들이 다수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판계에서 웹소설을 대상으로 한 각종 평론이 활발히 이뤄지며 웹소설 전반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0년대 웹 기반 소설을 향유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가 젊은 평론가로 새롭게 유입되고 있어 탄력을 받기에도 적기다. 웹소설,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의 이문영 편집주간은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소설을 활발히 접했던 젊은 평론가들은 웹소설 같은 장르에 훨씬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며 “이 장르의 변천을 오래 지켜봐 온 입장에서 볼 때 이 시장은 연구자에게도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국내 출판계 저변 확대 전망 웹소설 ‘해를 품은 달’(정은궐), ‘김 비서가 왜 그럴까’(김경미 정경윤),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까페라떼, JINHA)는 각각 2012, 2018, 2021년 드라마화됐다. 이후 원작을 각색한 소설이나 포토에세이 등 단행본 출간까지 이어졌다. 소비자들이 웹소설, 드라마, 단행본 중 한 가지 콘텐츠로만 유입이 돼도 같은 이야기의 다른 버전을 궁금해할 여지가 충분히 생길 수 있는 구조다. 순문학과 그 외의 문학 간 경계가 뚜렷했던 한국 출판계에 웹소설은 분명한 균열을 내고 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나 미국 뉴욕 도서전같이 전통 있는 도서전에서는 순문학뿐 아니라 라이트노벨(라노벨)과 만화책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가 한자리에 모인다. 코스프레 복장을 한 만화책 애독자가 독일 문단에 한 획을 그은 페터 한트케(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책을 뒤적이는 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는 가능하다. 어쩌면 앞으로 국내 도서전에서도 웹소설과 장르문학, 순문학 독자들이 한데 섞여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웹소설과 출판계의 만남은 각종 진통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 출판계의 저변을 넓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전채은 문화부 기자 chan2@donga.com}

    • 2021-08-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나는 거식증 베테랑”… 정신질환 고백 에세이 잇단 출간

    “지금의 나는 베테랑이다. 처음에는 물을 마시지 않고 자연스레 올라오는 것을 게워낸다. 왼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기는 하지만 구토가 가능한 위장의 상태를 느낌으로 알고 있다. 그 상태로 위장을 준비시키고, 곧바로 토해낸다.” 20년간 거식증을 겪어 온 박지니 씨는 23일 펴낸 에세이 ‘삼키기 연습’(글항아리)에 기나긴 투병 기간 동안 탐구했던 ‘질병과의 공생법’을 풀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거식증 환자 중 절반은 완치되지만 30%는 부분적으로만 회복되고 20%는 고질적인 환자로 남는다. 30%에 속하는 저자는 “그것(거식증)은 병이지만 내 존재 방식이기도 했다. 그것을 버리고도 살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다”고 고백한다. 정신질환 투병기를 고백한 에세이들이 줄줄이 출간되고 있다. 그동안 정신질환을 주제로 한 책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전문가의 시각에서 정보를 전달하거나 해당 질병을 완치한 이들의 극복기가 주를 이뤘다. 최근 서점가에 쏟아지는 책들은 여전히 질병을 앓고 있는 저자들이 쓴 경우가 많은 데다 질병을 극복이 아닌 공생의 대상으로 다룬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요즘 독자들은 가르치는 필자보다 소통, 공감하는 필자에게 더 큰 호응을 보낸다. 일반인들의 직업 에세이가 인기를 끄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라고 분석했다. 개인적인 맥락에서의 정신질환 투병 경험을 담다 보니 질병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달 출간된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휴머니스트)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 임상심리학자인 신지수 씨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은 경험을 풀어놓은 에세이다. 신 씨는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검사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ADHD 환자라는 것을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던 이유를 젠더화된 질병 이미지에서 찾았다. 그는 책에서 “ADHD 환자가 흔히 ‘정신없는 남자아이’로 묘사되어 왔기 때문에 여아, 성인 여성은 진단에서 소외돼 치료 시기를 놓쳐 왔다”고 지적한다. 같은 질병을 다룬 ‘젊은 ADHD의 슬픔’(민음사)의 저자 정지음 씨는 10대부터 ADHD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질병에 대한 편견 탓에 26세에 이르러서야 ADHD 진단을 받게 된 경험을 털어놓으며 “10대의 내가 껌 대신 처방전을 뗐더라면 인생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이 남는다”고 썼다. 5월 출간된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가나)의 저자 김세경 씨는 공황장애 투병기를 정리했다. 공황장애는 ‘연예인병’, ‘나약하고 한가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는 대기업에 근무하며 5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김 씨는 하루하루 바쁘고 치열하게 살던 중 퇴근길 지하철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킨 경험을 시작으로 질병에 대한 편견을 벗기고 “공황장애를 돌볼 줄 아는 법을 터득하면 발병 전보다 불안과 스트레스를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된다”고 조언한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8-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생의 마지막 순간을 선택할 수 있을까

    먼 옛날 금발머리 소녀 골디락스가 숲속을 헤매다 오두막을 발견했다. 빈 오두막에서 소녀는 죽 세 그릇이 놓인 식탁을 발견하고 이 중 온도가 가장 알맞은 세 번째 그릇을 맛있게 먹어 치운다. 식사를 마치고 피로가 몰려오자 세 개의 의자 중 가장 편안한 의자에서 휴식을 취한다. 이어 세 개의 침대 중 가장 잘 맞는 침대에서 잠이 든다. 잠에서 깬 골디락스를 맞은 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집 주인 ‘세 마리 곰’. 골디락스는 곧바로 멀리 도망친 뒤 오두막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 짧은 이야기는 서구권에서 ‘세 마리 곰’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설화다. 철학을 주제로 한 소설 ‘소피의 세계’의 저자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요슈타인 가아더는 이번 신작 소설에서 골디락스 이야기를 모티브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다룬다. 주인공인 알버트는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 난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추억이 깃든 오두막으로 향한다. 오두막은 그가 아내 에이린과 연애하던 시절 우연히 발견해 주방을 쓰고 하룻밤을 묵은 곳. 책은 그가 오두막에서 이틀에 걸쳐 쓴 유서로 이뤄져 있다. 알버트는 오두막에서 가족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며 삶과 죽음, 질병과 공포에 대해 사유한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은 결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오두막을 둘러싸고 풍기던 퀴퀴하고 달짝지근한 냄새는 오랜 생명이 썩어 들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우는 냄새였다. 책의 해설을 쓴 철학자 강신주는 “가아더의 이 묘한 소설은 두 번 읽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적었다. 알버트의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독자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에 빠지게 된다. 소설에서 알버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이제 독자들을 향한다. “중요한 질문을 할 때가 왔다. 나는 이제 몇 달 남지 않은 불명예스러운 시간을 살아내야 할까? 아니면 내 손으로 모든 것을 끝내 버리는 게 더 나을까?”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8-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그림책엔 독자가 해석할 공간 많아 삶에 지친 어른에게도 필요하지요”

    대학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사서로 일하며 접한 그림책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결혼 후 유치원생 아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다 가사노동과 육아에 지친 자신의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꼈다. 이후 4년간 그림책 낭독 모임에 참석하며 그림책 애독자가 됐지만 그뿐이었다. 상담심리학을 깊이 배우고 싶어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던 찰나 갑상샘에 문제가 생겨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그때 두 가지 생각이 스쳤다. ‘글을 써야겠다.’ 그리고 ‘책방을 내야겠다, 그림책방으로.’ 2017년 서울 성동구에 ‘카모메 그림책방’을 연 정해심 씨(45)가 그림책 ‘덕후’로 거듭난 과정이다. 그는 최근 출간한 에세이 ‘오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삽니다’(호호아)에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파는 책방지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그를 25일 카모메 그림책방에서 만났다. ―문학작품과 그림책의 매력이 어떤 점에서 차별화되나. “그림책은 ‘빈 공간이 많다’고 표현하고 싶다. 서사를 그림으로 전달하는 부분이 많아 독자가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 활자화된 글을 읽다 보면 내 생각의 저변을 확대하기보다 저자의 생각을 흡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림책은 하나의 이야기로 독자들이 느끼는 점이 매우 다양하다.” ―무엇을 기준으로 그림책을 고르나. “그림책도 서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림이 얼마나 예쁜지를 살피지는 않는다. 그림책을 오랫동안 보면 ‘우정’ ‘용기’ 등 어린이 책에 자주 나오는 소재들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는지 경향을 알게 된다. 같은 소재를 갖고 책을 엮더라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 그림책이라면 고르게 된다.” ―그림책에도 트렌드가 있나. “물론 있다. 15년 전에는 일본이나 영국, 미국 책들이 그림책 코너의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지금은 유럽 작가들의 책이 인기를 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우정에 대해 다루더라도 모든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결론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친했던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생겨도 상처받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런 책들이 어른에게도 위로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어린이를 타깃 독자로 둔 그림책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요즘은 아예 성인 독자를 염두에 둔 책도 많이 나온다. 만화책도 성인용이 있지 않나. 지금의 추세라면 어른을 위한 그림책도 좀 더 다양하게 출간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최근 나온 그림책 중에서는 라트비아 작가 아네테 멜레세의 ‘키오스크’(미래아이)를 2030세대에 추천한다. 자신의 한계나 상처가 오히려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의 책이다.”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을 한 권 꼽는다면….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 화가 와다 마코토가 1976년에 펴낸 그림책 ‘구덩이’(북뱅크)를 꼽고 싶다. 인간에게 자기만의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8-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간이 주제-인물 정하고… AI가 소설문장 직접 썼다

    “수학적 도전인 동시에 문학적 도전이었다.”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서점에서 열린 신간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파람북) 언론간담회에서 소설가 김태연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이 쓴 이번 장편소설에서 소설가가 아닌 ‘소설 감독’이라는 생소한 역할로 참여했다. 이날 그는 “AI 소설은 인간에 비하면 아직 결코 완전하지 않은 단계”라면서도 “AI가 보여준 구조적 판단과 은유는 충분히 놀라웠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 AI가 쓴 단편소설이 발표된 적은 있지만 장편소설은 처음이다. 신간은 김태연의 기획과 연출 아래 AI 소설가 ‘비람풍(毘嵐風·불교신화에서 우주의 최초와 최후에 부는 거대한 폭풍)’이 559쪽에 걸쳐 쓴 장편소설이다. 비람풍은 김태연이 2015년 세운 AI 스타트업 ‘다품다’가 자연어 처리(NLP) 스타트업과 손잡고 개발한 AI 소설가다. 일반인이 쓰는 자연어를 컴퓨터로 분석하고, 이를 소설 작법에 특화시킨 결과물이다. 김태연은 “비람풍은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을 뜻한다. AI 장편소설의 신기원을 연다는 의미를 담아 명명했다”고 말했다. 신간은 지체장애인 아마추어 수학자와 벤처사업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수학에 일가견이 있는 5명이 각자에게 주어진 수학적 수수께끼들을 풀어 나가는 이야기다. 수학과 컴퓨터공학 전문가인 김태연의 커리어가 강하게 반영된 서사다. 소설 집필 과정에서는 김태연과 비람풍은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 우선 김태연이 소설의 주제와 배경, 등장인물을 정했다. 전체 서사 구조와 첫 번째 장도 그가 썼다. 이를 바탕으로 비람풍은 내용을 구체화한 뒤 소설 문장을 직접 썼다. 예컨대 김태연이 ‘이미지라는 이름의 여성 정신과 전문의가 할아버지 연락을 받고 서울 삼성동의 할아버지 집을 방문한다’는 상황을 주면 비람풍은 ‘이미지가 대학병원 주차빌딩에서 3개동이 삼각형인 삼성동 아파트까지 계속 신호를 위반하며 흰색 독일제 승용차를 힘껏 몰았다’는 문장을 만드는 식이다. 김태연은 “저작권이 이미 만료된 문학작품 등 단행본 약 1000권과 수많은 신문기사들이 비람풍의 학습재료가 됐다”고 설명했다. 비람풍이 쓴 부분을 편집하는 과정에선 사전에 예상치 못한 상황도 발생했다. 총 81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소설 앞뒤로 아무 문장 없이 정육면체 도형 1개만 그려진 ‘에피소드 0’이 비람풍에 의해 삽입된 것. 비람풍 개발업체 관계자는 “비람풍은 집필에 앞서 소설 전반에 걸쳐 활용되는 폰 노이만(1903∼1957)의 ‘집합론’을 학습했다. 그에 따르면 0은 공집합(空集合)이고 현대수학의 배경에는 공집합이 있는데 비람풍이 이를 소설 구성에 반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AI 소설가가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분야는 자료 검색이다. 이 때문에 소설에 지나치게 자세한 내용이 들어가기도 했단다. 김태연은 “나조차 모르고 있는 수학 지식을 비람풍이 지나치게 길게 늘어놓아 많이 삭제해야 했다”고 했다. 기대 이상의 결과물이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도 적지 않다. 특히 소설 중 운문 형식으로 이끌어 나가는 부분은 김태연이 새로 썼다. 개발과 더불어 소설 속의 작은 상황들을 AI에 입력해야 했기에 집필 기간도 거의 7년이나 걸렸다. 김태연은 “기술이 발전하면 앞으로 창의적인 작품 구상에 소질이 있는 작가들은 집필보다 구상에 더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8-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류를 구할 것 같지않은 존재가 인류 구하는… ‘더 나은 세상’에 늘 관심”

    “인류를 구할 것 같지 않은 존재가 인류를 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소설가 김초엽(28·사진)은 20일 동아일보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 인터뷰에서 “인간에게 잘 포착되진 않지만 세계를 구성하는 너무 중요한 요소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청각장애가 있어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지 않으면 소통이 어려운 작가의 채팅 답변은 부드러우면서도 선명했다. 2017년 공상과학(SF) 단편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관내분실’로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한 그는 등단 4년 만에 첫 장편소설을 최근 펴냈다. 신작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은 공기 중 떠다니며 살아있는 존재라면 무엇이든 순식간에 죽게 만드는 물질 ‘더스트’가 지구를 뒤덮은 시대를 특수한 식물이 구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느 날 박물관에서 ‘구원자 식물’ 전시가 열리는 장면을 상상하게 됐어요. 이 장면을 먼저 소설로 써 두고 ‘만약 수십 년 뒤 식물이 세상을 구했다면 그건 어떻게 일어난 일일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고 역추적 해본 결과가 이번 작품이랍니다.” 전작들에서 다양한 SF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 그는 신작에서도 신비로운, 그러나 있을 법한 일들이 펼쳐지는 근미래로 초대한다. 더스트에 내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실험체 사냥꾼들에게 쫓기는 ‘나오미’ ‘아마라’ 자매와 살인과 약탈을 서슴지 않는 시대에 선량한 이들을 보호하려고 ‘프림 빌리지’를 세운 ‘지수’, 프림 빌리지 끄트머리에 세워진 온실에서 정체 모를 식물을 연구하는 식물학자 ‘레이첼’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김초엽은 “언젠가는 유리벽으로 막힌 어떤 공간에 한 사람이 갇혀 실험을 하고, 그 바깥의 사람들이 그 공간을 지키는 장면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에서 더스트의 시대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작가의 기존 단편들에 비해선 한층 밝아진 인상을 준다. 이전 작품들이 인간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드러내는 데 그쳤다면 신작은 인간 군상에서 발견되는 희망을 보여주기 때문. 리더 지수는 옳은 일과 마을을 보존하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레이첼은 유능하지만 신체 대부분이 기계로 이뤄져 매번 보수를 해야 하는 처지. 결함을 안고 있는 인물들이 결국 일궈내는 ‘더 나은 세상’에서 독자들은 희망을 본다. 김초엽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결함을 지닌 인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늘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작품 속 디스토피아는 현재의 팬데믹 사태와도 닮아 있다. 김초엽은 “재난 자체의 양상은 서로 다르지만 재난에 대응하는 인간의 마음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안전한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김초엽의 소설에는 여성이나 장애인처럼 작가 자신의 정체성이 반영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은 향후 작품에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과학도 100%의 완전한 진실이 아니라 언제나 실패와 오류의 여지를 남겨두는, 잠정적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런 태도가 과학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8-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위기관리 천재’ 세종은 팬데믹을 어떻게 다스렸을까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는 사람이 어찌할 수 없지만 그에 대한 조치를 잘하고 못하고는 사람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재위 1418∼1450)이 신하들에게 한 말이다. 그는 피해 예방과 구휼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큰비가 내리면 수재 발생이 우려되는 곳을 신속히 점검했다. 예컨대 여러 날에 걸쳐 비가 내릴 때는 수문을 열어 배수를 원활히 한 뒤 밤새 관원들이 현장을 순시하도록 했다. 겨울에 갑자기 날씨가 따뜻해지면 “강의 얼음이 얇아져 사람이 빠질까 염려된다”며 각 나루터에 얼음을 깨라는 지시를 내렸다. 흉년이 든 지방의 수령에게는 구휼미를 사용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했다.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느라 백성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되 비상시에는 현장 지휘관에게 결정권을 위임한 것. 세종의 통치 행태는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상황에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이 책은 조선 왕들의 성공과 실패를 복기하는 일종의 ‘기출 문제집’을 표방하고 있다. 역사 사례를 현대의 경영학 관점으로 재구성해 위기관리에 관한 통찰을 준다. 이를테면 세종이 토지 조세제도인 공법을 개혁하기에 앞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사실을 미국의 품질관리 전문가 에드워즈 데밍(1900∼1993)의 ‘PDCA 사이클(계획-실행-점검-조치)’ 이론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조세제도 개선에 반영한 세종의 정책 추진이 지속적인 업무 피드백을 통해 성과를 개선하는 PDCA 방식과 닮았다는 얘기다. 제7대 왕인 세조(재위 1455∼1468)는 외교 분야의 위기관리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 그는 당시 국경지역에서 조선을 위협해 오던 여진족을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조선에 우호적인 부족은 확실히 보상하고 위협적인 부족은 정벌에 나서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했다. 또 1460년 신숙주를 필두로 한 정벌에 성공한 후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지속적인 평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방어체계 확립에 만전을 기한 것. 반면 제16대 왕인 인조(재위 1623∼1649)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우를 범했다. 그는 외부 환경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이른바 ‘통제 환상(illusion of control)’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인조는 쇠락해 가는 명나라와 부상하는 청나라 사이에서 명의 편을 들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비극을 겪었다. 전쟁 후에는 피해를 복구하고 대응체계를 정비하기는커녕 누구 잘못으로 전쟁이 일어나게 됐는지를 따지는 데만 급급했다. 현실에서의 지혜를 얻기 위해 조선시대 역사를 뒤적이는 게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이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지나간 것을 살펴 다가오는 것을 밝힌다’는 한(漢)대 학자 동중서(董仲舒)의 말에 공감한다. 생활양식과 과학기술의 수준과 관계없이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 원리는 변함이 없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8-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女배구 김연경 열풍, 출판계도 강타

    “코트 위에서는 딱 하나만 생각한다. ‘무조건 이긴다.’” 배구선수 김연경(33)의 의지는 한결같았다. 김 선수가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배구 경기에서 보여줬던 투지는 2017년 출간한 그의 에세이 ‘아직 끝이 아니다’(가연·사진)에 적었던 각오와 다짐 그대로였다. 올림픽이 끝난 뒤 이 책을 읽은 한 독자는 “김 선수가 중학교 시절 키가 작아 고민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떤 각오로 당시의 난관을 헤쳐 나갔는지는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올림픽에서 극적인 순간을 여러 번 연출하며 배구 팬들의 사랑을 받은 여자 배구 경기 이후 출판계에 배구 열풍이 불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김 선수의 에세이 판매 부수는 빠르게 역주행해 출간 4년 만에 8월 둘째 주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 4위에 올랐다. 올림픽 개막일 전후 25일간을 비교해 보면 판매 부수가 61.7배로 늘었다.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기본실력을 탄탄하게 해서 선수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코트 위에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내가 어떻게 훈련을 해왔고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지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처럼 김 선수의 덤덤하면서도 진심 어린 고백에 독자들은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 김성용 가연 대표는 “4년간 모두 5000권이 팔렸는데 올림픽 이후 2주 만에 1만 권 이상 나갔다”며 “올림픽 경기를 시청한 후 김 선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선수의 인기는 다른 배구 콘텐츠의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출간된 일본 배구 만화 ‘하이큐 파이널 가이드북 배구극’(대원씨아이)은 만화 ‘하이큐’의 일반 시리즈가 아닌 번외로 나온 이 만화 시리즈 관련 가이드북임에도 출간과 동시에 교보문고 8월 둘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13위에 올랐다. 하이큐는 고정팬층이 있지만 김 선수가 지난해 유튜브에서 이 만화를 리뷰한 영상이 회자되며 더욱 인기를 끌게 됐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유튜브 영상을 본 김 선수의 팬들이 이 만화의 팬으로 새롭게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구선수 양효진(32)의 인터뷰가 담긴 ‘내일을 위한 내 일’(창비)도 출간 7개월 만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작가 정세랑,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등 여성 7명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다. 양 선수는 인터뷰에서 또래 선수들에 비해 성적을 내지 못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른 선수들의 역량에 못 미칠 때는 그 사실을 인정해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주에서 최선을 다하며 그 시간을 버텼다”고 고백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8-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조선족 고려인 탈북민이 다 이웃인 시대… 한국도 디아스포라적 사유 확장시켜야”

    “탈북민, 이주민 등 디아스포라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 이미 한국에서도 일상에서 늘 마주치는 존재들입니다. 이들과 공존을 모색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네 살 때 한국에 와 어린 시절을 보내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의 정체성은 한국인일까, 미국인일까? 서류상 국적은 미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계 미국인과는 또 다르다. “나는 어떤 한인일까”라는 물음을 품고 지낸 이는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2019년)를 연출한 전후석 감독(37)이다. 최근 에세이 ‘당신의 수식어’(창비)를 펴낸 그는 다른 디아스포라를 만나며 키운 사유를 풍성하게 풀어 놨다. 16일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미국에서 로스쿨에 다닐 때 백인 일색인 학교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어요. 저도 3년 내내 선거에 나갔지만 매번 꼴찌만 했죠.” 그는 로스쿨에 다니던 2000년대 후반을 회상하며 말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뒤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고 싶어 로스쿨에 진학했다. 그러나 사회 이슈에 대해 발언하려 해도 백인 사회가 자신을 동등한 미국인으로 여기지 않는 한 소수 민족의 일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느꼈다. 그런 그의 인생에 ‘헤로니모 임’(임은조·1926∼2006)이라는 존재가 나타나며 가치관은 완전히 달라졌다. 2015년 쿠바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한인의 조부. 쿠바에서 태어나 사회주의 혁명가로 살다 쿠바 한인 후손의 한국어 및 민족문화 교육에 헌신한 인물이다. 그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헤로니모’는 그렇게 탄생했다. 쿠바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한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헤로니모에게서 전 감독은 자신의 정체성도 선명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디아스포라적 사유’의 시작이었다. 민족의 개념을 국경에 얽매이지 않고 상상하는 것, 그래서 누군가의 정체성은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그가 말하는 디아스포라적 사유다. 이를테면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하는 대신 카자흐스탄에 두는 게 한민족에게 이로울 수도 있다는 것. 그는 “세계 각국의 한인 선조들이 있던 곳에 존재해야 ‘우리’라는 범주를 한반도 너머로 넓힐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단순히 자신이 디아스포라여서가 아니라 자신과 다른 국적, 정체성을 가진 디아스포라를 만난 경험 덕분이라고 했다. 달리 말하면 디아스포라가 아니더라도 디아스포라적 시각을 갖출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디아스포라적 사유를 확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조선족, 고려인, 탈북자, 이주 노동자 등을 이웃으로 두고 있으니까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8-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 첫 근대식 호텔에 서면 소름이 돋는 까닭은…

    “원한을 품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그런 건 선택하는 게 아니야.” “어차피 원한은 나를 찾아와.” 고풍스러운 침대와 옷장, 방 한편에 놓인 커다란 축음기, 방을 밝히는 샹들리에와 아기자기한 벽등….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글로리 호텔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이면서도 안락한 풍경이었건만, 인천 중구 대불호텔 전시관에 들어선 기자의 귀에는 호텔에 떠도는 악령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니, 이건 마음 깊은 곳의 악의(惡意)일 뿐 악령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호텔을 찾아 놓고 왜 이런 생각을 하냐고? 이곳까지 타고 온 1호선 지하철 안에서 강화길(35)의 소설 ‘대불호텔의 유령’(문학동네)을 막 읽은 참이어서다. 지난해 제11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강화길이 두번째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대불…’은 1950년대 인천항 인근의 대불호텔에 이끌리듯 모여든 네 사람이 겪는 공포스러운 경험을 다룬 이야기다. 6·25전쟁으로 부모를 잃거나 이념 갈등으로 마을 전체가 풍비박산 나버린 일 등 각자의 사연을 안고 호텔로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서 악령의 소행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사망 사건과 미스터리가 이어진다. 대불호텔은 1888년 일본인 해운업자인 호리 히사타로가 인천항을 통해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 외교관 등 외국인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문을 연 3층 벽돌조의 서양식 호텔이다. 처음 호텔이 열렸을 때는 외교관들의 숙박 문의와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성행했다. 그러나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여행자들이 인천에서 하루를 묵을 필요가 없어지자 경영난에 빠졌다. 1918년 한 중국인이 인수해 북경요리 전문점 ‘중화루’를 열었지만 1970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강화길은 2018년 초 현재는 전시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을 찾았다가 이번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 평소 사람의 마음과 한국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악의, 원한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이 호텔의 사연과 풍기는 분위기가 이 같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강화길은 “대불호텔은 이방인에 의해 세워진 이후 주인도, 오가는 사람들도 수없이 바뀐 장소다. 침략의 형태로 근대사를 열었던 한국이 격동의 한가운데서 느꼈을 고립감을 이 호텔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도 어느새 내년이면 등단 10년째에 접어든다. 지난해 출간한 단편집 ‘화이트호스’(문학동네)에서 음산한 분위기의 소설로 눈길을 끌었던 강화길은 이번 소설로 ‘강화길식 고딕 호러의 또 한 번의 도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세 고딕 양식 건축물처럼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의 고딕 소설을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 그는 “호러 소설을 딱히 고집하지는 않는다. 독자가 읽는 데 시간 아깝다고 느껴지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아서 제가 지극히 좋아하는 장르를 써낸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8-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전문 작가가 아니면 어때… 일반인 사이 글쓰기 열풍

    “많이 쓰시면 언젠가 길이 보일 겁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지난달 20일 선보인 글쓰기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강 대상은 전업 작가가 아닌, 집필 경험이 별로 없는 평범한 이들. 글을 쓰고는 싶지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 탓에 섣불리 문장을 써내려가기 어려운 이들이 펜을 들도록 하겠다는 게 강의 목표다. 최근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이 늘면서 소설가나 에세이 작가들의 작문 강의나 글쓰기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작가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과 일상의 이야기를 다룬 일반인들의 에세이가 속속 출간되고 있다. 한 문학전문 출판사의 에세이 담당 편집자는 “전업 작가의 글이 아니라도 독자들이 보통 사람들의 인생과 이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직접 글을 써 자신의 사연을 나누려는 욕구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하는 교육 콘텐츠 기업 패스트캠퍼스에서 진행 중인 온라인 강의를 통해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부터 눈길을 끄는 스토리텔링 기법까지 구체적인 작문 팁을 알려주고 있다. 장르도 에세이와 소설을 두루 다룬다. 인기 ‘북튜버(북+유튜버)’이자 작가인 김겨울도 이 강의에 참여해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해법을 함께 논한다. 김영하는 “25년간 글을 쓰며 고민한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쓰는 법’을 담았다”고 말했다. 소설가 장강명도 지난해 11월 글쓰기 책 ‘책 한번 써봅시다’(한겨레출판사)를 내놓으며 관련 강연을 유튜브에 올렸다. 이 영상에서 장강명은 “당신도 책을 쓸 수 있으니 도전하라”고 격려한다. 박연준 시인은 지난달 출간한 산문집 ‘쓰는 기분’을 소개하면서 “에세이지만 실용서로 읽힐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썼다”고 밝혔다. 책은 시와 산문을 쓰는 작가의 마음과 더불어 평범한 사람들이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떤 연습을 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작가들의 글쓰기 강의를 들은 일반인이 자신의 책을 낸 사례도 있다. 최훈 씨는 장강명의 유튜브 강연을 보고 올 6월 에세이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정미소)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3년간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한 온갖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교열 전문가가 쓴 글쓰기 책도 주목받고 있다. 출판사에서 20년 넘게 단행본 교열 업무를 담당한 김정선 씨가 2016년 출간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유유)는 10만 부 이상 팔려 지난달 기념 리커버판이 나왔다. 김 씨는 이 책에서 ‘∼적’ ‘∼의’ ‘것’ ‘들’과 같은 군더더기를 최대한 덜어내라는 식의 구체적인 지침을 준다. 문장 끝에 붙이는 ‘∼있다’로 인해 어색해지는 사례들도 정리했다. 독자들은 “긴 글이 아니라도 간단한 보고서를 작성할 때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실용 팁이 유용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8-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