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채은

전채은 기자

동아일보 편집부

구독 1

추천

안녕하세요. 전채은 기자입니다.

chan2@donga.com

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문학/출판64%
문화 일반17%
인사일반7%
사회일반3%
역사3%
경제일반3%
기타3%
  • “시장만 강조한 신자유주의… 팬데믹 대응 어려워져”

    《“지난 40년간 신자유주의가 국제사회를 어지럽혔습니다. 시장만 강조하고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할을 경시했죠. 정부의 역할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닥쳤을 때 우리는 준비가 돼 있지 않았습니다.”불평등 연구의 대가이자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78·사진)의 지적이다.》 최근 신간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열린책들)를 펴낸 스티글리츠 교수는 책에서 불평등을 심화시킨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그는 “이번 팬데믹 사태는 시장과 정부 사이의 균형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며 “코로나19 사태의 배경에도 신자유주의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가 경제 선진국의 정부로 하여금 시장의 자율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게 만들어 감염병이 퍼졌을 때를 대비한 사회 안전망을 약화시켰다는 것. 가령 정부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강조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는 팬데믹의 가능성을 우려해 국가안보회의(NSC) 내에 이에 대비하는 조직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 들어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는 이 조직을 없애고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지원되고 있던 감염병 관련 재정도 중단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트럼프 정부 때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유달리 유행했던 신자유주의, 반지성주의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각 나라가 보건 부문에서 먼저 회복돼야 코로나19로 충격을 받은 경제가 살아나길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코로나19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들에 백신이 공급될 수 있도록 국제기구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한시적으로 유예해 하루빨리 백신을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후 경제 회복 단계에서도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5%에 해당하는 자본을 경기 회복에 활용할 수 있고 이런 방식은 충분한 경기 활성화 효과를 낸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은 그만한 자본이 없으므로 국제 프로그램을 통해 빈곤국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마련한 특별 지원금 6500억 달러(약 746조6550억 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경기회복을 위해 시장에 막대한 돈이 풀리면서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해법으로 지방 인프라 구축을 통한 인구 분산을 들었다. 수도권 인구 집중이 부동산 값 상승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 전역에 대학, 병원 등 사회기반시설을 확대해 개인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며 “프랑스는 중소도시(second-tier city)로 이주를 유도했다. 이는 한국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에서 특히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한국의 주식 열풍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개인이 충분한 지식과 이해 없이 주식 투자에 뛰어들면 주식시장은 도박장이 돼 버린다”며 “한 회사의 주식을 5년간 보유했다면 그 회사에 대해 잘 알아보고 투자한 것이겠지만 주식을 산 뒤 일주일 혹은 하루, 1시간 뒤 팔아버린다면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얻는 가치는 없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7-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엘턴 존 “나는 BTS의 곡을 따라 부른다”

    영국 팝스타 엘턴 존(74·사진)이 가사에 자신이 언급된 방탄소년단(BTS)의 곡에 대해 직접 화답했다. 11일(현지 시간) 엘턴 존은 자신의 트위터에 “모든 것이 다 맞는 것 같을 때면 나는 BTS의 곡 ‘Permission to Dance’를 따라 부른다”는 글을 올렸다. BTS가 9일 발매한 신곡 ‘Permission to Dance’를 그가 언급한 건 가사에 자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곡의 초반부에는 “모든 게 다 잘못된 것처럼 보일 때, 엘턴 존을 따라 불러요”라는 가사가 나온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엘턴 존의 노래를 들으면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노랫말이다. 엘턴 존은 이 가사를 살짝 개사해 BTS에게 화답한 것이다. BTS 역시 공식 트위터 계정에 엘턴 존의 이 게시물을 리트윗했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 프로듀서 스티브 맥 등이 참여해 만든 이 곡은 국내 음원 차트 1위, 92개 지역 애플 아이튠스 톱 송 1위에 올랐다.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12일 오후 5시 기준 1억1000만 뷰를 넘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7-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30년 강력계 형사의 노하우, 웹소설에 담았죠”

    엽기적인 연쇄 살인 행각으로 충격을 줬던 1993년 ‘지존파 사건’, 디자이너 앙드레 김(1935∼2010)에게 권총과 협박 편지가 배달됐던 2000년 ‘앙드레 김 권총 협박 사건’, 1990년대 중반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어린이 유괴 사건’…. 1990∼200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굵직한 국내 강력 사건들의 수사 과정을 웹소설 플랫폼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게 됐다. 이달 초 카카오페이지에 공개된 논픽션 ‘지존파 강력반장 고병천’에서다. 고병천 전 서울 서초경찰서 강력반장(72)이 직접 수사한 강력 사건 9건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은 그가 과거 수사자료를 토대로 서술하고, 공동 저자인 이수경 작가가 이를 글로 옮기는 방식으로 집필됐다. 고 전 반장은 12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은 웹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시점과 배경, 등장인물 등 모든 디테일이 철저히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경찰 생활 90%를 강력계 형사로 지내다 보니 후배들에게조차도 무섭고 딱딱한 선배로 남았다.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수사 기법이 많아서 이걸 코믹하게 풀어볼 궁리를 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1976년 순경으로 임관해 2009년 은퇴한 고 전 반장은 이 중 30년을 강력계 형사로 지냈다. 퇴직 직전부터 최근까지 10여 년간 허리 수술을 4차례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자신의 수사 테크닉을 후배들에게 하루빨리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고 전 반장은 사건을 조금만 달리 바라보면 범인을 쉽고 빠르게 잡을 수 있는데 현장을 뛰다 보면 경찰들이 이를 종종 놓치는 게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지혜를 과거 어린이 유괴 사건 해결 노하우를 통해 전한다. 돈을 노리는 유괴범은 뒤를 쫓기보다는 앞에서 덫을 놓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가족을 설득해 유괴범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가족이 너무 애태우는 모습을 보이면 불리해질 것 같아 유괴범에게 새아빠라고 거짓말을 하며 애써 여유 있는 척 유괴범을 유인한 끝에 검거에 성공했던 것. 작품 출간 이후 구독자 수는 단기간에 9만 명을 넘겼다. 주변의 반응이 좋아 만족스러우면서도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새삼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며 웃었다. “경찰 생활 30여 년을 돌아보면 20년은 집에 안 들어가고 10년만 간신히 집에서 잘 수 있었던 세월이었어요. 고충이 많았을 가족들과 고생시킨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합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7-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왜 매일 아침 침대서 빠져나와야 하는가?” 그걸 깨닫는 게 철학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을 땅에 떨어뜨려 액정을 산산조각 낸 당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 1. 술 약속을 잡고 일명 ‘홧김비용’을 지출한다. 2. 결점 속에서 위대한 아름다움을 찾아냈던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떠올리며 재미난 해프닝 정도로 여겨보려 노력한다. 2번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당신은 철학의 세계로 떠나는 급행열차인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어크로스)에 탑승할 자격이 충분하다. 미국 저널리스트가 쓴 철학 에세이가 국내에서 화제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철학서라면 철학자가 남긴 말들을 잘 선별했거나 쉬운 말로 풀이한 개론서를 떠올리겠지만 오산이다. 미국공영라디오방송 NPR의 해외통신원을 지낸 저자 에릭 와이너(58)는 오래 빚은 지혜와 특유의 유머로 독자들을 단숨에 매료시켰다. 위의 ‘스마트폰 사고’는 그가 얼마 전 직접 겪어야 했던 고뇌다. 그의 책은 출간 두 달째 교보문고 기준 인문 분야 1위, 종합 베스트셀러 5위를 지키고 있다. 매력적인 글솜씨로 “빌 브라이슨의 유머와 알랭 드 보통의 통찰력이 만났다”는 평가를 받는 그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제 마음을 사로잡은 첫 번째 철학자는 마하트마 간디입니다. 흔히 인도의 정치적, 정신적 지도자로 여겨지지만 저에게는 철학이 추상적이고 쓸모없는 과목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실용적인 과목이라는 점을 가르친 사람이죠.” 실용성이야말로 철학의 최고 미덕이라고 여기는 와이너는 자신의 여행길에 철학자들을 자유롭게 소환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기차 침대칸에서 간신히 깨어난 그는 문득 ‘사람들은 왜 매일 아침 침대에서 빠져나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서는 삶의 원동력은 의무가 아닌 사명에 있다는 통찰을 남긴 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떠올린다. 잠시 들른 호프집에서는 쾌락을 분석해서 욕망의 분류 체계를 세운 에피쿠로스를 불러낸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욕망에는 자연스럽고 반드시 필요한 욕망과 자연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욕망, 자연스럽지도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이 있다. 와이너 식으로 설명하자면 사막 한가운데에서 마시는 물 한 잔과 여행길에 마시는 맥주 한 잔, 만취 상태에서 더 들이붓는 값비싼 샴페인 한 병이 각각의 욕망에 해당한다. 전 세계가 팬데믹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해줄 말이 있는 철학자가 있을까? 저자는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 철학자 에픽테토스를 꼽는다. 에픽테토스는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그들의 판단’이라고 생각한 철학자. 와이너는 “팬데믹은 우리가 통제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할 수 있는 것은 과감히 바꾸고, 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전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철학을 정보가 아닌 지식으로, 더 나아가서는 지혜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그는 “철학을 시작하기 위해 밟아야 할 첫 번째 단계는 ‘멈춤’”이라고 말한다. 철학서를 펼쳐 들고 철학자들의 문장을 달달 외워 나갈 게 아니라 어떤 삶을 살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려는 건지 먼저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일스 킹턴이라는 영국의 음악가가 남긴 이 말이 저의 의견을 잘 함축하고 있습니다. ‘지식은 토마토가 과일이 아니라 채소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지혜는 토마토를 과일 샐러드에 넣지 않는 것이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7-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백석의 詩 사랑하는 우즈베크 남매… 한국서 꽃피울 기회 주면 안되나요”

    “저조차도 은연중에 ‘의사 전달이 서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어요. 자기 존재에 대해 너무 오래 고민해 온 아이들이라 또래보다도 성숙한 표현을 할 줄 아는 친구들이었는데도요.” 지난해 7월부터 약 10개월간 미등록 이주 아동 5명의 이야기를 심층 취재해 신간 ‘있지만 없는 아이들’(창비)로 펴낸 작가 은유(필명·50)가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이 책에는 국내에 2만 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일상에서 어떤 배제와 좌절을 겪는지 생생하게 담겼다. 은유 작가는 산업재해로 인한 죽음을 기록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돌베개),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인터뷰집 ‘폭력과 존엄 사이’(오월의봄)를 출간하는 등 예리한 시선으로 사회의 아픔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내 왔다.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15년을 살았어도 아무 삶의 기반이 없는 아이들이 있어요. 어릴 때 한국으로 이주해 국어나 한국사를 가장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책의 6, 7번째 장(章)에서 다루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남매 카림(22)과 달리아(20)는 각각 네 살, 두 살 때 이주 노동자인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와서 쭉 살았지만 현재 고등학교 2학년, 1학년인 두 동생과 생이별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4월 법무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발표한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한국에서 출생해 15년 이상 체류하고, 국내 중·고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교를 졸업한 이들에 대해서만 국내 체류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카림과 달리아는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아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은유 작가는 “당장 제가 인터뷰한 아이들끼리도 운명이 갈린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며 “카림 남매처럼 백석(본명 백기행·1912∼1996)의 시를 사랑하고 한국어 글쓰기에 재능이 뛰어난 이들에게 꽃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책에는 2017년 동아일보의 미등록 이주 아동 기획 시리즈 ‘그림자 아이들’에 보도됐던 페버(22)의 이야기도 소개됐다. 당시 페버는 불법 체류 사실이 발각돼 추방 명령을 받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구금된 상태였다. 이 보도를 계기로 국민적 관심이 생기면서 페버 씨에 대한 추방 명령이 취소됐고, 그는 현재 취업비자를 받아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다. 은유 작가는 “아직도 미등록 이주자에 대한 기사에 부정적인 댓글이 달리기도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세상을 자꾸 시끄럽게 하는 게 궁극적으로는 미등록 이주자의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한국에 필요하기 때문에 살게 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일견 타당한 논리이지만 은유 작가는 그 너머의 세상을 꿈꾼다. “사람이 다 필요해서 존재하나요? 그냥 살아 있으니까 살아가는 거지요. 언젠가는 한국 사회가 미등록 이주자를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서로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로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7-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적자생존이라는… 통념을 뒤집다

    기린의 기다란 목이 적자생존의 결과라는 설명을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은 기린의 긴 목이 높이 달린 잎을 뜯어먹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하며 모든 기린의 목이 길어진 배경에는 경쟁 메커니즘이 있다고 주장했다. 목이 짧은 기린과 긴 기린 사이의 경쟁에서 후자만이 살아남은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이 타당하려면 기린은 나무에 높이 매달린 잎과 열매를 주식으로 하는 동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한 연구팀이 기린을 관찰한 결과, 기린은 주로 고개를 숙여 덤불이나 어깨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있는 잎을 즐겨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기린은 뇌까지 피를 순환시키려면 긴 목을 통과해야 하는 탓에 심장이 기형적으로 크고 뇌를 비롯한 다른 주요 기관들이 불균형적으로 작아졌다. 긴 목은 기린을 살리는 게 아니라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다윈의 진화생물학,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한 유전자의 이기성(利己性) 등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과학적 통념에 반박하는 책들이 잇따라 나왔다. ‘굿 이너프’의 저자는 적자생존이라는 대원칙에 가려진 수많은 ‘최적화되지 않은 개체들의 세상’을 조명했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인 저자는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진화생물학자다. 저자가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 이론이 현대사회에서 무척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자연의 섭리’라는 인식은 도태된 사람들을 방치하고, 강함과 선함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저자가 수집한 관찰 결과에 따르면 자연에는 최적화되지 않은 종이 대다수를 이룬다. 모든 생물은 최적의 형질이어서 자연에 선택된 것이 아니며, 그저 극심하게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우정의 과학’의 저자는 생물의 유전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기성이라는 통념에 반박한다. 미국 과학 저널리스트인 그는 “오히려 이타성과 공존을 전제로 하는 우정(friendship)이야말로 생물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성”이라고 말한다. 지난 수세기 동안 우정은 인간사회에서만 공유되는 문화적인 산물로 여겨져 왔다. 이런 통념과 달리 문화가 아닌 본성과 습성에 따라 행동하는 수많은 동물군에서 우정이 발견된다고 한다. 개코원숭이들은 가족이 아닌 개체와 서로 털을 골라주고 심지어 서로 새끼들을 돌봐준다. 히말라야원숭이 중 무리와 관계가 원만한, 즉 친구 관계가 좋은 개체들은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고 이 성질은 유전된다. 중요한 지점은 개코원숭이와 히말라야원숭이 모두 모계 중심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 저자는 우정의 필수성이 간과돼 왔던 이유가 수컷 위주의 연구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동물 연구자들은 수컷 쥐를 기준으로 연구했고 이 때문에 보살핌이나 어울림보다 투쟁, 도피의 양태가 훨씬 자주 관찰됐다. 기존 연구에 가려져 있던 나머지 반쪽 퍼즐을 맞춘 저자는 “보살피는 본능은 생물의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측면만큼이나 끈질기다”고 설명한다. 수컷과 암컷을 모두 아우르고, 모계 중심의 동물들을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세상을 다시 조명하면 인간은 타인을 보살피는 일을 음식이나 잠자리를 찾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경쟁-승리-성장으로 이어지는 성장제일주의 한국사회가 숨 가쁘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7-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목숨 건 모가디슈 탈출 생생한 구현

    한국 정부가 유엔 가입을 위해 회원국을 상대로 외교 활동을 펼치던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내전이 발발한다.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의 한복판에는 통신마저 끊긴 채 고립된 한국과 북한대사관의 직원들이 있었다. 28일 개봉하는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는 낯선 소말리아 땅에 갇힌 우리 대사관 직원들의 목숨을 건 탈출기를 그렸다. 당초 지난해 여름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올여름 극장가를 찾게 됐다. 류 감독과 주(駐)소말리아 한국대사 역을 맡은 김윤석, 참사관 역의 조인성, 주소말리아 북한대사 역의 허준호 등 배우 8명은 1일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촬영 뒷이야기를 풀어 놨다. 류 감독은 제작사 덱스터스튜디오의 제안으로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게 됐다. 어렴풋이 알고만 있던 사건이었지만 당시 기록물들을 받아 보고는 극적인 상황에 단숨에 매료됐다고 한다. “탈출 과정에서 한국대사관이 보관하고 있던 기록물들은 많이 분실됐다. 천만다행으로 당시 소말리아 국영방송 간부가 직원들의 탈출기를 보관하고 있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내전 상황을 구현할 수 있었다.”(류 감독) 영화는 모두 모로코 에사우이라에서 촬영됐다. 소말리아는 우리 정부가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해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모가디슈를 가장 닮은 지역을 찾았더니 바로 이곳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도 차로 3시간 더 가야 나오는 현장이었다. 촬영장까지 갈 때는 힘들었지만 천국처럼 아름다운 공간이어서 촬영 중의 고통스러운 순간도 잊어버리곤 했다.”(조인성) 3개월간의 촬영 기간 내내 낯선 땅에서 낯선 음식을 먹으며 지내기가 녹록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지친 후배들을 북돋는 역할을 한 건 현지 촬영 경험이 풍부한 허준호였다. “보통 현지 촬영 3주 차에 접어들면 촬영 이외의 생활들이 슬슬 고생스럽게 느껴진다. 최고참 선배로서 해 줄 수 있는 걸 생각해 보니 따뜻한 차 한잔과 얘기 나눌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었다.”(허준호) 모가디슈는 이국적인 화면뿐 아니라 호화로운 캐스팅으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배우들의 개성이 너무 강한 나머지 서로 연기가 충돌하는 일은 없었을까. “겹치는 캐릭터 없이 모두 개성이 강한 배우들이어서 영화가 굉장히 다양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인성, 북한대사관 참사관 역의 구교환 모두 처음 호흡을 맞추는데도 모두의 모습이 영화에 잘 녹아들었다.”(김윤석) “연기는 액션에 리액션이 더해지며 풍부해진다. 선배님들과 연기하니 그들의 액션에 리액션만 얹어도 신(scene)이 술술 풀렸다. 너무 편한 현장이었다.”(조인성)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7-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출협 “서점 판매 정보, 저자와 공유하겠다”

    출판계 대표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인세 누락 문제와 관련해 일부 대형 서점의 판매 정보를 저자도 볼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윤철호 출협 회장은 30일 서울 종로구 출협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월 1일부터 저자가 출판사에서 계정을 받아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영풍문고, 인터파크까지 5개 대형 서점에서 매일 제공하는 책 판매 부수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가 사용하는 서점별 판매 확인 시스템을 저자도 부분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저자는 출협이 자체적으로 만든 ‘저자 출판사 도서 판매 정보 공유 시스템’을 통해 대형 서점의 판매 정보를 볼 수 있다. 저자, 출판사로 나뉘어 있으며 저자 카테고리를 클릭하면 된다. 윤 회장은 “일단 주요 서점의 판매 정보만 알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소 서점의 판매 부수, 물류 창고의 재고 정보까지 저자와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출판사와 저자 간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자가 출판사로부터 계정을 전달받아야 하는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도서 생산 및 유통 정보를 통합해 관리하는 출판유통 통합전산망을 올해 9월 출범시킬 계획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엇박자를 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윤 회장은 “통합전산망이 자리를 잡으면 출판사가 사용하는 서점별 판매량 확인 시스템과 합칠 수 있겠지만 당장 저자와 출판사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인세와 판매 부수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해온 출판사들이 판매 정보를 작가와 공유하는 데 적극 참여하면 이를 이용하는 작가들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7-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극한환경 속 생명체 찾아 화성 찍고 태양으로 간다”

    “저는 모든 생명체에게 액체 상태의 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가정이 늘 의심스러웠어요. 누가 그런 규칙을 만든 거죠? 다른 행성의 생명체는 완전히 다른 화학적 반응에 기초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2014년 ‘마션’(알에이치코리아)에서 ‘화성에서 농사짓는 남자’를 상상했던 공상과학(SF) 소설가 앤디 위어(49)의 착점은 남달랐다. 그는 어느 날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물을 필요로 하지만 다른 행성의 생명체라면 얘기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물 없이도 살 수 있는 생명체가 태양에 살기 시작한다면? 이 생명체들이 무수히 많아진 나머지 태양의 표면을 뒤덮어 버리기 시작했다면? 그래서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광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급격히 줄어든다면? 위어 작가의 신작 ‘프로젝트 헤일메리’(알에이치코리아) 속 주인공은 꼬리에 꼬리를 문 그의 상상력 끝자락에서 탄생했다. 지난달 출간된 그의 신작은 평범한 과학 교사이던 주인공이 태양을 점령한 외계 생명체 ‘아스트로파지’를 물리치기 위해 우주선 ‘헤일메리호’에 올라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헤일메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적진 깊숙이 내지르는 롱패스를 뜻하는 미식축구 용어에서 따왔다.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아르테미스’ 이후 4년 만의 신작으로 돌아온 그를 21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일반 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한 상대론적 우주론, 천체물리학, 시간 팽창, 우주선 연료 소비에 깔려 있는 계산 같은 것들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제게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경험이었죠.”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외의 평범한 공대생 출신인 그는 소설 집필에 앞서 방대한 양의 자료를 수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첫 작품인 ‘마션’도 참신한 상상력과 정교한 과학적 사실들이 한데 어우러져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후 내놓은 두 번째 소설에서도 과학적 정밀함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운행하는 우주선은 심우주에 존재하는 소수의 수소 원자로부터도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 헤일메리호를 설계하는 것은 복잡하고 흥미로운 고찰을 요했다”고 했다. 이번 신작에서 그는 인간과 외계 지적 생명체와 만남을 그리며 자신의 세계관을 한층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션’은 주인공이 화성에서 홀로 분투하는 모습을, ‘아르테미스’는 달에 건설된 인구 2000여 명의 도시를 그리고 있지만 인간과 외계 생명체와 만남은 발생하지 않는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작가는 인간과 외계 생명체가 같은 우주시민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교감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는 “우주인으로서의 인류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관심을 갖고 있다”며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이 몰려 있는 소행성 벨트 혹은 금성에 만들어진 도시 등이 차기작들의 배경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그의 작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소설 속 이야기가 이제는 먼 훗날에나 벌어질 일이 아닌 가까운 미래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중국 등 일부 우주과학 선진국들은 이미 화성 탐사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누구보다 우주라는 공간을 깊이 사랑하는 작가가 이런 상황에 던지는 통찰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이미 우주 탐사가 어떤 모습일지 그 모델을 보았습니다. 바로 바다입니다. 모든 사람이 바다는 인류 전체의 소유라는 것을 알고 있고, 우주 역시 다르지 않을 겁니다. 우주 탐사가 한 국가나 개인이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이뤄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쿠팡, 온라인서점 시장서도 세력 확장 “베스트셀러 위주… 시장 왜곡 가능성”

    쿠팡이 온라인 서점 시장에서도 조용히 세력을 확장하면서 출판 시장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송인서적에 이어 최근 서울문고까지 서점이 잇따라 부도 처리되며 쿠팡이 출판 시장을 점유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쿠팡은 지난해 주요 출판사들에 직거래 사업 제안서를 보내고 도서 로켓배송을 위한 직매입을 확대했다. 도서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배송할 수 있도록 대형 출판사들의 인기 서적들을 미리 쿠팡의 물류창고에 쌓아 두겠다는 것이다. 현재 쿠팡은 일부 베스트셀러는 직매입해 판매하고, 나머지 도서들은 교보문고나 예스24 등 인터넷 서점과의 연계를 통해 배송하고 있다. 지난해 도서 부문에서 약 2500억 원의 매출을 올린 쿠팡은 올해는 매출을 6000억 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은 출판사에도, 독자들에게도 양날의 검이 될 것이라는 게 출판계의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이점이 많아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왜곡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책을 노출시키는 게 중요한 출판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판매처가 생겼다는 사실은 반길 일이다. 자본력을 갖춘 쿠팡은 출판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어음 결제가 아닌 현금 결제를 택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출판사가 서점에 공급하는 책값을 정가 대비로 표시한 비율인 공급률도 약 60%로, 교보문고나 예스24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쿠팡이 중소 출판사에는 그리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쿠팡의 서적 판매 웹페이지 첫 화면은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장식하고 있다. 당일이나 다음 날 새벽에 받아 볼 수 있는 배송 서비스도 이들 책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5인 규모의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최모 대표는 “서점이 늘어난다고 했을 때 출판사들에 중요한 것은 신규 독자가 늘어나는지 여부”라며 “쿠팡의 서적 판매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중소 출판사 입장에서는 별로 신규 독자가 늘어난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쿠팡의 경쟁력은 책과 함께 다른 상품들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쿠팡 도서 주문량 중 약 60%가 어린이책, 유아·초등 참고서, 수험서다. 30, 40대 소비자들이 생필품이 담긴 장바구니에 아이들의 책을 함께 담는 것이다. 쿠팡의 장악력이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대형 출판사, 베스트셀러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 독자 역시 다양한 책을 받아 볼 기회가 줄어든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게 기존의 서점 문화인 반면 책이 주력이 아닌 쿠팡은 팔릴 만한 상품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경향이 생긴다”며 “쿠팡의 등장이 단기적으로는 인터넷 서점 서비스를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겠지만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면 콘텐츠가 아닌 마케팅 중심의 경쟁을 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팬데믹 시대, 인간다움을 금하다

    ‘의료 종교’ ‘기술·보건적 독재주의’ ‘상시화한 긴급 상황’ ‘생명 정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팬데믹 사태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이들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가 이해하기에 팬데믹 상황에서 의료는 종교화됐다. 현대 기술과 보건이 사회를 장악하는 힘은 독재 수준이다. 정부의 행정권은 긴급 상황이라는 명분하에 입법권을 넘어선 지 오래. 정치는 인류의 생존 외에 다른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뤄진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인 저자의 주장은 일견 이상하고 위험하다. 그는 팬데믹 사태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해 2월부터 현재까지 이탈리아 정치·문화 비평 웹사이트 ‘쿠오드리베트’에 팬데믹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남겼다. 유럽에서 날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방역이라는 명분하에 인간성이 상실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무시와 조롱을 당하기 일쑤였다. 저자는 근대 국가의 정치가 생물학적인 생명만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질적으로 나은 생명, 삶에 대한 고찰 같은 부분은 사소하게 취급해왔다고 주장한다. 죽은 사람의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는 삶, 사랑하는 사람과도 4.5m의 거리를 둬야 하는 삶, 가차 없이 학교의 문을 닫는 삶, 이웃이 지워진 삶…. 그가 보기에 코로나 시대의 인간은 스스로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야 하는 생물학적 존재라고만 여기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저자는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표정으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고, 얼굴로 진실을 드러낸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얼굴은 정치적 공간이다. 팬데믹이 몰고 온 마스크와 함께 사람들은 얼굴을 잃었다. “시민의 얼굴을 가리기로 결정한 국가는 정치를 스스로 없애 버린 셈”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의 주장은 지금보다도 더 촘촘하고 정교한 방역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가 보기에 다소 이상한 시각이다. 그가 강조하는 인간성이나 삶에 대한 고찰이 정말 생명보다 더 중요한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다만 접촉을 멈추고 얼굴을 가리는 삶을 이어가더라도 우리가 그 대가로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 알아두는 것은 무척 중요해 보인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기후위기 원인과 해법 놓고… 신간 ‘백가쟁명’

    최근 출판계에서는 기후 위기 원인과 해법을 다룬 다양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환경 관련 책이라고 해서 다 같은 논지를 펼치지는 않는다는 것. 같은 목표를 두고도 다른 방식을 제시하기도 하고, 기후 위기 자체를 부정하는 시각도 있다. 기후 위기 문제에서 자주 나오는 개념 중 하나가 ‘탄소중립’이다. 이산화탄소를 아예 배출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대신 배출한 만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들자는 개념이다. 이를테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적절한 용매를 이용해 포집하는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에 투자해 기술 상용화를 앞당기는 식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기업인들은 이 개념을 앞장서서 지지하고 있다. 그는 올해 초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에 1억 달러(약 1118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 논리에 따르면 탄소 상쇄를 통해 순제로를 달성하자는 주장은 합리적인 것 같다. 하지만 반대 주장도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까지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얘기”라는 주장이다. 10여 년간 직접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며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고 여행하는 법을 탐구 중인 미국 여행 칼럼니스트 홀리 터펜은 “‘탄소 상쇄론’은 당장 직접 행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배출된 탄소를 처리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여겨질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저서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한스미디어)에서 탄소 상쇄 산업의 맹점을 짚었다. 그에 따르면 탄소 상쇄 산업이 거두는 수입은 1년에 5억 달러(약 5592억 원)에 이르지만 제대로 된 규제가 없다. 2017년 유럽연합(EU) 집행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 상쇄 사업을 맡은 업체의 85%가 제대로 계획을 진행하지 않는다. 탄소 배출량 계산법부터가 가지각색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은 ‘탄소 상쇄’라는 개념이 사람들로 하여금 당장 습관을 바꾸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죄책감만 덜어주는 식이다.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은 비행기 26만5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세 번째 활주로를 건설하면서 대외적으로는 203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할 계획이라고 광고하고 있다. 탄소 상쇄라는 이론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는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탄소 순제로화에 나서고 있는지 면밀한 감시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환경을 위해 당장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행동 수칙을 알려주는 책도 있다. 독일 물리학자 볼프강 헤클은 저서 ‘리페어 컬처’(양철북)에서 물건을 고쳐 쓰는 습관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건이 고장 나면 새 것을 사 버리는 요즈음의 게으른 소비자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현명한 사용자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장 난 변기를 살펴보며 물이 내려가는 원리를 알아내고, 벼룩시장에서 만난 한 장인에게 자전거 엔진 수리법을 배운다. 이미 단종돼 제조업체에도 부품이 남아 있지 않은 물건도 물어물어 부품을 구해 갈아 끼운다. 이 같은 행위는 단순히 폐기물 쓰레기산을 줄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수리하고 수선하는 행위가 개개인에게 주는 정서적인 풍만함이 있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수많은 가치들을 회복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기후 위기 문제 자체가 허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 환경 연구소인 브레이크스루의 설립자 마이클 셸런버거는 저서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부키)에서 기술발전과 플라스틱, 석유가 오히려 환경을 지키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에 따르면 바다거북과 코끼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최악의 쓰레기로 지탄받는 플라스틱이다. 예전엔 공산품들의 원료로 거북 껍데기나 상아가 많이 쓰였지만 플라스틱이 발명된 이후 이를 대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친환경적 발전 방식이라는 풍력 발전은 도리어 박쥐와 대형 조류, 곤충 등의 생태계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천연 소재를 사용하자는 환경주의자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자연을 지키려면 인공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후 위기설을 뒷받침하는 각종 수치들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지난 30여 년간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 줄어왔다. 유럽의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보다 23% 낮고 미국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15% 감소했다. 이에 따라 지구 평균 온도의 상승분도 임계점인 4도가 아닌 2∼3도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천주교 ‘연옥약설’ 최초 현대 한글본 나왔다

    “연옥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는 이 책을 조선 천주교도 유익하다고 판단해 번역 필사본을 만든 것 같다.”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과거 가톨릭에서는 연옥을 지하세계에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공간으로 가르쳤다”며 최근 출간한 ‘연옥약설(煉獄(략,약)說)’ 현대 한글 번역본의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구한말 전래된 가톨릭 서적 필사본이 현대 한국어로 번역된 건 처음이다. 한국문학 연구자인 임 교수가 전반적인 번역을, 한중연에서 종교학을 연구하는 조현범 교수가 천주교리 관련 개념 정리를 맡았다. 연옥은 천주교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 있는 동안 지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는 장소다. 연옥약설은 19세기 중국 천주교 책으로, 가톨릭의 연옥 교리를 집대성했다. 중국인 예수회 신부 이문어(李問漁·1840∼1911)가 1871년 상하이에서 썼고 구한말 한반도로 유입돼 한글 필사본이 만들어졌다. 책에는 연옥 교리의 핵심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함께 서술돼 있다. 가령 연옥에 머무는 영혼들이 천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남아 있는 신자들의 기도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생전에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아 연옥을 떠나지 못하는 수도사 이야기가 담겼다. 정교하게 짜인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승천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선행을 채우기 위해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세상으로 보내진 80세 노인 안매빈의 이야기에서는 심판을 맡은 미카엘 천사가 그날의 ‘당직 천사’를 불러내는 대목이 나온다. 임 교수는 “당시 신자들에게 교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구한말 필사본은 당시 조선인들의 어문 생활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국어학적 가치도 있다. 저자들은 책 후반부에 구한말 조선인들이 사용한 문장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임 교수는 “가톨릭 교리서는 서양을 무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연옥약설은 동양인 신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몇 안 되는 사료”라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대형서점 부도에 중소출판사 울상 왜?

    21일 오전 서울 광진구 반디앤루니스 롯데스타시티점. 한 20대 커플이 굳게 닫힌 서점 문 앞에서 ‘16일부터 한시적으로 영업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보고 있었다.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근처에 사는 윤모 씨(24)는 “가까운 대형서점이 이곳밖에 없어 책을 둘러보고 싶을 때 늘 오던 서점이었다”며 “새 책을 한꺼번에 구경하기에는 오프라인 서점이 온라인보다 편리하다”며 아쉬워했다. 교보·영풍문고와 더불어 3대 대형서점이던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한 서울문고가 16일 부도 처리된 데 따른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디앤루니스가 자리 잡은 지역에 이를 대체할 만한 오프라인 서점이 마땅치 않은 데다 중소 출판사의 마케팅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이번에 문을 닫은 반디앤루니스 지점은 롯데스타시티점, 신세계강남점, 목동점 등 3곳이다. 이 중 목동점을 제외한 나머지 2곳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이를 대신할 서점이 없다. 특히 고속터미널역 근처에 있는 신세계강남점 폐점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접근성이 좋은 이곳은 여행객의 쉼터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직장인 박모 씨(30·여)는 “퇴근길에 들르면 여행객뿐 아니라 노인들도 책을 구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의 불편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계 전반에도 악재다. 온라인 도서시장이 급성장했지만, 대형 오프라인 서점은 여전히 출판사들이 신간을 선보이는 주요 통로로 기능해 왔다. 모바일로 책을 읽는 독자가 늘고 있지만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책을 살펴보기는 한계가 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수십∼수백 권의 책을 볼 수 있는 경험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프라인 서점이 문을 닫으면 대형 출판사가 마케팅하는 책이나 베스트셀러 위주로 도서 시장이 양극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본력이 풍부한 대형 출판사들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해 다양한 마케팅 수단을 갖고 있지만 소규모 출판사들은 그렇지 못해서다. 오프라인 서점을 찾지 못하는 독자들은 한 번이라도 들어본 책이나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위주로 사기 쉽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오프라인 매장에 신간을 한 권이라도 더 노출시켜야 하는 중소 출판사들이 반디앤루니스와의 거래를 신속히 끊지 못해 손해를 많이 입었다”며 “대형 출판사는 책을 미리 빼거나 거래 조건을 유리하게 바꿔 위험을 줄였다”고 말했다. 중소 출판사들의 마케팅 부담은 출판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오프라인 서점이 사라지면 출판사들이 콘텐츠 생산에 쏟아야 하는 노력을 마케팅으로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독자 입장에서도 손해”라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프라인 서점 3위’ 부도… 설 곳 잃은 중소형 출판사들

    21일 오전 서울 광진구 반디앤루니스 롯데스타시티점. 한 20대 커플이 굳게 닫힌 서점 문 앞에서 ‘16일부터 한시적으로 영업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보고 있었다.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근처에 사는 윤모 씨(24)는 “가까운 대형서점이 이곳밖에 없어 책을 둘러보고 싶을 때 늘 오던 서점이었다”며 “새 책을 한꺼번에 구경하기에는 오프라인 서점이 온라인보다 편리하다”며 아쉬워했다. 교보·영풍문고와 더불어 3대 대형서점이던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한 서울문고가 16일 부도 처리된 데 따른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디앤루니스가 자리 잡은 지역에 이를 대체할 만한 오프라인 서점이 마땅치 않은데다 중소 출판사의 마케팅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이번에 문을 닫은 반디앤루니스 지점은 롯데스타시티점, 신세계강남점, 목동점 3곳이다. 이 중 목동점을 제외한 나머지 2곳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이를 대신할 서점이 없다. 특히 고속터미널역 근처에 있는 신세계강남점 폐점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접근성이 좋은 이곳은 여행객의 쉼터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직장인 박모 씨(30·여)는 “퇴근길에 들르면 여행객뿐 아니라 노인들도 책을 구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의 불편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계 전반에도 악재다. 온라인 도서시장이 급성장했지만, 대형 오프라인 서점은 여전히 출판사들이 신간을 선보이는 주요 통로로 기능해왔다. 모바일로 책을 읽는 독자가 늘고 있지만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책을 살펴보기는 한계가 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수십~수백 권의 책을 볼 수 있는 경험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프라인 서점이 문을 닫으면 대형 출판사가 마케팅하는 책이나 베스트셀러 위주로 도서시장이 양극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본력이 풍부한 대형 출판사들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해 다양한 마케팅 수단을 갖고 있지만 소규모 출판사들은 그렇지 못해서다. 오프라인 서점을 찾지 못하는 독자들은 한 번이라도 들어본 책이나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위주로 사기 쉽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오프라인 매장에 신간을 한 권이라도 더 노출시켜야하는 중소 출판사들이 반디앤루니스와의 거래를 신속히 끊지 못해 손해를 많이 입었다”며 “대형 출판사는 책을 미리 빼거나 거래조건을 유리하게 바꿔 위험을 줄였다”고 말했다. 중소 출판사들의 마케팅 부담은 출판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오프라인 서점이 사라지면 출판사들이 콘텐츠 생산에 쏟아야하는 노력을 마케팅으로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독자 입장에서도 손해”라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22
    • 좋아요
    • 코멘트
  • [단독]‘90년생이 온다’ 작가 “인세 못받았다” 소송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해 화제가 된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의 임홍택 작가(39)가 이 책의 인세 누락 문제로 출판사와 소송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장강명 작가가 출판사에 인세 누락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출판계에서 인세 관련 논란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출판계의 불투명한 유통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 작가는 CJ그룹에서 일하던 2018년 11월 웨일북 출판사를 통해 자신의 두 번째 저서인 ‘90년생이 온다’를 펴냈다. 1990년 이후 태어난 신입사원과 기성세대가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실질적 인사관리 방법을 담았다. 2019년 8월 문 대통령이 이 책을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하면서 여러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지금까지 종이책이 약 36만 부 팔렸다. 신인 작가와 중소 출판사가 출간한 책으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뒀다. 출판계 관행상 판매부수는 출판사가 관리하고,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이 수치를 통보받는다. 임 작가는 올 1월 출판사로부터 통보받은 종이책 판매부수를 검토하다 인쇄부수보다 10만 부가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쇄됐지만 팔리지 않은 재고라기엔 큰 수치였다. 임 작가는 출판사에 판매부수를 다시 확인해 인세를 제대로 지급해 달라고 수차례 항의했고, 2개월 뒤인 3월 출판사로부터 뒤늦게 1억5000만 원을 받았다. 장 작가에 대한 아작 출판사의 인세 누락 사례처럼 출판사가 자료를 안 주면 작가가 판매부수를 파악할 수 없는 구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임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출판사가 인세를 무단으로 지급하지 않으려 했고 이후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다”며 “출판사가 의도적으로 판매부수를 속이면 작가는 정확한 인세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출판사는 단순한 계산 착오였다는 입장이다. 권미경 웨일북 대표는 “전산 시스템이 미비한 중소 출판사 여건상 판매부수와 인세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며 “잘못한 부분도 있고 (작가에게) 죄송하지만 미지급된 인세를 드린 뒤에도 반발하니 속상하다”고 말했다.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임 작가와 출판사는 ‘90년생이 온다’의 전자책 인세를 두고 소송전까지 벌이고 있다. 양측은 2018년 3월 전자책 인세를 ‘수익금의 15%’로 정한 A계약서를 작성했다. 6개월 뒤 문화체육관광부의 출간 지원 사업에 응모하기 위해 문체부 표준계약서에 따라 전자책 인세를 ‘전송 1회당 1400원’으로 정한 B계약서를 다시 작성했다. 임 작가는 3월 말 “B계약서에 따라 미지급된 전자책 인세 1억30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라”며 웨일북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계약서를 복수로 작성하는 출판계의 기형적 구조와 관행이 갈등을 부른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책 판매량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현 출판유통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작가는 출판유통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사업을 지지하지만, 출판계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사업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출판계가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참여를 거부하는 건 정부 주도 시스템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이라며 “민간 주도로 전산망을 만든 해외 사례를 참고해 합리적인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 2021-06-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보여주는 동물원?… 이제는 보호하는 동물원 돼야죠”

    “날지 못하도록 날개가 잘린 채 해외 동물원에서 들어온 흑고니가 있었어요. 이 흑고니가 낳은 새끼들이 자라서 날기 시작했죠. 당연한건데 놀랍기도 하고 마음도 많이 아팠습니다.” 2001년부터 충북 청주동물원 수의사로 일하고 있는 김정호 씨(47)는 어느 순간 자신의 직업이 딜레마로 다가왔다. 동물을 사랑해 수의사가 됐지만 일터인 동물원이 과연 동물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20년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을 다음 달 1일 출간하는 에세이 ‘코끼리 없는 동물원’(MID)에 담았다. 그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사람들은 동물권을 위해 동물원을 없애자고 해요. 하지만 해외에서 온 동물들을 당장 방사했다간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죽고 말 겁니다. 전문가 보호가 필요한 멸종 위기종도 많습니다.” 그가 내놓은 결론은 보호소로서의 동물원이다. 기존 동물원이 동물을 선보이는 데 방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자연에서 자생하기 어려운 동물들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데 치중해야 한다는 것. 그의 제안에 따라 청주동물원은 차츰 바뀌고 있다. 야생에서 서식할 수 있는 동물을 방사하면 해당 동물이 차지해온 공간을 확장해 우리 안 동물들의 생활공간을 넓혔다. 수직으로 이동하는 걸 좋아하는 동물에게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구조물을, 독자적인 공간이 필요한 동물에게는 숨을 곳을 충분히 만들어줬다. 김 씨는 “본래 습성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이른바 ‘동물 행동풍부화’는 동물을 행복하게 한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동물의 특성을 더 생생히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동물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동물원을 즐기는 방법을 귀띔했다. 동물원들이 운영하는 여러 프로그램의 이면을 들여다보라는 것. 새 모이주기 체험처럼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프로그램은 보통 시작 전 동물을 굶긴다. 묘기를 부린 후 사육사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 프로그램도 비슷하다. 반면 동물들의 건강검진을 지켜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동물에 무해하고 특히 이들이 사람과 비슷한 신체기관을 가진 생명임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동물권을 존중하는 동물원을 방문하면 동물들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셈이다. 김 씨는 언젠가 모든 동물원이 찾아오는 손님보다 그곳에 사는 동물들을 위한 공간으로 변화되기를 꿈꾼다. “먼 미래에 모든 야생동물들이 사람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면 그땐 동물원이 모두 사라져도 괜찮을 거예요. 그때까지는 ‘동물들이 살기 좋은 동물원’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생물의 진화에도 물리학 원리가 있다

    생물의 진화를 탐구할 때 우리는 흔히 진화생물학의 관점을 채택한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시각을 빌려 적자생존의 생태계에서 선택의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식이다. 그런데 이 책은 독특하게도 물리학의 관점에서 생물을 관찰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무당벌레에게는 왜 바퀴가 아니라 다리가 달렸는가. 왜 생물마다 세포의 크기가 비슷한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미 항공우주국(NASA) 에임스연구센터에서 미생물을 연구한 우주생물학자다. 타행성의 극단적 생태환경에서 생명의 존재 가능성을 탐구해온 그에게 생명을 물리학 시각으로 접근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지구에서 진화해 온 여러 생물을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 규모까지 추적하며 물리법칙이 작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무당벌레의 모든 다리에는 각기 움직일 수 있는 마디가 3개씩 있다. 이는 무당벌레가 수직 벽을 타거나 안전하게 착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당벌레의 발바닥에 난 가시 털에서는 끈끈한 유체 막이 분비된다. 유체 막으로 다리를 바닥에 밀착시키면 이동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세포가 미세한 데에도 이유가 있다. 세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영양소를 섭취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것이다. 표면적이 넓을수록 영양소의 교환과 노폐물 배출이 용이하다. 그런데 구형인 세포의 크기가 커지면 표면적이 제곱으로 증가할 때 부피는 세제곱으로 늘어난다. 다시 말해 단위 부피당 영양소와 노폐물이 오갈 면적이 줄어드는 것. 따라서 세포의 크기가 작을수록 물질 교환에 유리한 셈이다. 저자는 생물을 물리학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한다는 데 의미를 둔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진화가 순전히 예측 가능한 물리학의 산물임을 입증하려는 무익한 시도가 아니다. 역사적 변칙과 우연은 실제로 작용하며 이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이 다양한 진화의 실험 속에는 물리학의 확고한 원리가 숨어 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에서 받은 영감, 선과 색으로 나타내다

    한복을 입은 여성이 거대한 나무뿌리가 우거진 정글 숲을 거닐고 있다. 흔히 떠올리는 초록색이 아닌 붉은색 정글이다. 화가 천지수(45·여)가 그린 이 그림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1896∼1948)의 문집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민음사)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천지수는 “나혜석이 헤쳐 나가야 했던 척박한 환경을 강렬한 붉은색으로, 그의 담대한 도전 정신을 당당한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6∼2020년 작업한 ‘페인팅 북리뷰’ 53점을 엮어 신간 ‘책 읽는 아틀리에’(천년의상상)를 14일 펴냈다. 이탈리아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천지수는 2003년 ‘조반니 페리코네’ 이탈리아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에서 주목받았다. 페인팅 북리뷰란 작가가 책을 읽으며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그린 작품을 말한다. 그는 “그림으로 표현한 서평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책으로부터 출발한 또 하나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강조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죽음을 인식하고 사는 삶에 대해 쓴 에세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어크로스)를 읽고선 삶의 회귀성을 떠올렸다. 그는 이를 눈송이가 자신이 태어난 바다 위로 떨어지는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책에는 이 밖에 황선도의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서해문집), 쓰노 가이타로의 ‘100세까지의 독서술’(북바이북) 등 53권의 독서 감상문이 그림과 함께 실렸다. 이 책에 수록된 그림 53점은 경기 파주시 지혜의숲 2관 갤러리 지지향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달 17일부터 8월 17일까지. 무료.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판매부수는 비밀, 퇴직금 지급 꼼수… 내부서도 책잡힌 출판계

    A출판사의 신간 담당 편집자는 출간 이후 판매량을 모른다. 새 책의 디자인부터 구성까지 일일이 그의 손을 거치는데도 정작 독자들의 반응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너무 답답해 사장에게 판매량을 물었지만 “그런 걸 왜 묻느냐”는 핀잔만 돌아왔다. 사장은 판매량을 체크하는 사내 부서에 편집자들에게 수치를 알려주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해외 번역서를 국내에 소개하는 B출판사 편집자는 사장으로부터 “출판담당 기자들이 묻거든 해외 현지 에이전시에 통보한 판매량으로 답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실제보다 적은 판매량 숫자를 에이전시에 보고했기 때문. 출판사 관계자는 “에이전시를 통해 저자와 소통하는 번역서의 경우 판매량을 속이기가 더 수월하다”고 말했다. 최근 작가 장강명과 아작 출판사 사이에 인세 누락 논란이 벌어진 가운데 출판계 내부에서도 불투명한 유통구조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편집자와 마케터, 디자이너 등 출판계 종사자 570여 명이 모여 있는 한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서다. 이 채팅방은 20년 이상 출판계의 온라인 커뮤니티 역할을 한 웹사이트 ‘북에디터’를 대체하며 새로운 정보 공유의 장으로 떠올랐다. 이직을 준비하는 편집자들이 다른 출판사의 분위기를 가늠하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채팅방에서 출판사 직원들은 신간 판매량은 편집자가 시장 반응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수치인데도 일부 출판사들이 이를 쉬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편집자는 “그동안 재직한 출판사 중 절반은 판매부수를 편집자와 공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유가 뭘까. 출판계에서는 편집자를 통해 판매량 수치가 저자에게 전달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한 편집자는 “제대로 된 출판사라면 판매량을 편집자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며 “인세 누락 논란에서 보듯 저자와의 출판 계약에 문제가 있는 출판사들은 판매량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매출 정보와 직결된 판매량을 숨기는 건 탈루 목적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강명 등 일부 작가들은 출판유통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사업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출판계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일부 출판사의 문제를 전체 출판계의 문제로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며 사업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일부 출판사의 ‘내부 갑질’ 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평소 직원들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기로 유명한 한 출판사 대표는 판매 부진 책임을 묻겠다며 책 재고를 불태우는 ‘분서갱유’ 퍼포먼스를 촬영해 직원들에게 보여줬다. 다른 출판사에서는 사장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직원들에게 강요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갓 입사한 사장 2, 3세에게 특혜를 줘 입방아에 오른 출판사들도 있다. 인문서 전문 출판사의 김모 대표는 “최근 한 출판사 대표가 자신의 자녀를 입사시키자마자 팀장급 연봉을 지급해 막내 편집자가 퇴사한 일도 있다”고 말했다. 사장 2, 3세와 달리 상당수 출판사 직원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다. 연봉에 퇴직금을 포함시켜 계약하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출판계는 다른 업종에 비해 초봉 등 급여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한 편집자는 “연봉의 13분의 1 혹은 14분의 1을 따로 쪼개 퇴직금과 상여금으로 지급하는 출판사들이 많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