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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직장인은 지하철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입력 2021-11-27 03:00업데이트 2021-11-2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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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김현 지음/236쪽·1만4000원·창비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직장인의 고달픔을 절절하게 노래한 시를 읽고 가슴을 움켜쥔 적이 있다. 하지만 ‘고상한 시인께서 뭘 알겠어. 누구한테 전해들은 이야기로 썼겠지’ 하며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구태여 포털 사이트로 시인 이름을 검색해보고 그가 전업 작가임을 확인한 후에는 시를 읽기 전보다 더 쓸쓸한 표정을 지어봤다. 그 냉소적 직장인의 얼어붙은 마음은 이 책에서 풀렸다. 체지방을 걱정하는 척하다 어느새 막걸리에 손을 뻗는 모양새에서 먼저 동질감이 느껴졌다. ‘집값’ ‘비규제 주담대’ ‘중도금 대출 무이자’ 등 어깨가 무거워지는 어휘도 자주 나온다. 알고 보니 저자는 10년 넘게 회사에 다니고 있는 성실한 직장인. 이 책은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잘 알려진 저자가 직장인의 마음으로 쓴 에세이다.

‘먹고사니즘’(먹고 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면서도 낭만과 예술을 그리워하는 게 평범한 이들의 모습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범인이 어떤 순간 시인이 되는지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저자는 살이 찐 동료들과 “팬데믹만 지나면 운동을 시작해 지방을 빼겠다”는 대화를 나누다 문득 인생에도 빼야 할 지방이 있다면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죄가 인생의 찌꺼기라면 이를 덜어냈을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그렇지 않다면 인생에서 무얼 빼야 할까. 누구든 한번쯤 품었을 법한 고민이다.

때로는 내 고통을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어느 날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저자는 은퇴와 인생 2막에 대한 상상에 빠진 후 부동산 시세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서울은 꿈도 못 꿔 산간벽지의 분양 정보부터 알아보는 상황,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매매’가 싱거운 상상에 그치는 모습은 남일 같지 않다. “가족끼리 단란하게 살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는 건 하나도 평범하지 않으며, 모두가 무언가를 애원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말은 그 어떤 절절한 시보다도 깊은 위로로 다가온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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