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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브렉시트 뒤의 추악한 분열정치, ‘바퀴벌레 총리’로 풍자”

입력 2021-12-20 03:00업데이트 2021-12-20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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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인터뷰]
“친밀감 속 EU 떠날 수 있었는데 바퀴벌레 같은 포퓰리스트들이
분별없는 민족주의로 몰고가…
코로나로 난관 직면한 인류, 단합-분열 선택의 기로에 서”
카프카의 소설 ‘변신’ 오마주…정치가 준 절망 무겁지 않게 풀어
문학동네 제공
“그날 아침 영리하지만 전혀 심오하지는 않은 짐 샘스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거대 생물체로 변신해 있었다.”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이 문장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소설 ‘변신’의 첫 문장이 아니다. 여기에서 ‘짐 샘스’는 인간이 아니라 바퀴벌레이며 ‘거대 생물체’가 오히려 인간이다.

대문호의 유명한 첫 문장을 100여 년 만에 오마주한 작가는 바로 영국 소설가 이언 매큐언(73·사진). 지난달 출간된 ‘바퀴벌레’(문학동네)에서 그는 어느 날 인간의 몸, 그것도 영국의 총리로 살게 된 주인공 짐 샘스를 통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영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 풍자했다. 그를 서면 인터뷰로 만나봤다.

“2016년 6월 브렉시트를 두고 벌인 국민투표를 지켜보며 추악한 분열의 정신이 영국 정치에 들어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절망 속에서 이 상황을 보았고, 절망 너머에는 풍자와 해학이 있었습니다.”

매큐언은 참신하고 때로는 기괴하기까지 한 발상으로 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 후보에 8차례나 올랐다. 1987년에 ‘차일드 인 타임’으로 영국의 문학상인 휘트브레드상을, 이듬해에는 ‘암스테르담’으로 부커상을 수상했다. ‘속죄’(2003년·문학동네)와 ‘체실비치에서’(2008년·문학동네) 등 국내에 출간된 그의 소설들도 10만 부가량 팔릴 정도로 독자층이 탄탄하다.

그가 이번 작품에서는 하루아침에 사람이 벌레가 되는 이야기인 ‘변신’을 뒤집어, 바퀴벌레가 사람의 탈을 쓴 세상을 상상했다. 영국 의회 각료들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바퀴벌레들은 갖은 술수와 책략을 동원해 의회의 의사결정권을 장악한다. 그러고는 노동자가 일을 하려면 돈을 내게 만들고, 물건을 거래할 때 소비자가 돈을 받게 만드는 기이한 행정으로 영국을 서서히 망가뜨린다. 사회의 엘리트층이 고안한 기만적인 정책에 빈곤층이 가장 열렬히 호응하는 모순적인 모습이 소설에 생생히 그려진다.

이 같은 전개는 자연스레 브렉시트 국면을 맞이한 영국 의회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브렉시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소설에 과감하게 드러낸 매큐언은 인터뷰에서 “정치, 정치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정치와 도덕이 만나는 지점들에 언제나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국이 무역이나 과학, 문화적 친밀감을 보호하면서 EU를 떠날 수 있었음에도 이 방법들은 포퓰리스트들에 의해 버려졌다”며 “영국 정치는 분별없는 민족주의의 열정에 휩싸였다”고 지적했다.

암담한 정치 현실을 담고 있다고 해서 소설이 시종일관 무거운 사회비평서처럼 읽히지는 않는다.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유머가 실소를 유발한다. 이를테면 트위터를 즐겨 활용하는 미국 대통령을 등장시켜 ‘미국 대통령도 어쩌면 우리 바퀴벌레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장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절로 떠오르며 웃음이 터진다.

영국은 지난해 12월 탈퇴 유예 기간도 모두 소진하고 최종적으로 EU를 탈퇴했다. 브렉시트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소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소설은 단합과 분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류는 앞으로도 팬데믹 대유행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불러온 분열과 단합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결정해야 할 겁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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