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주차 차량에 소방차 발묶여… ‘진화 골든타임’ 놓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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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아파트 화재]
서민주택 제도 허점 드러나… 안전의식 제자리걸음

대한민국 안전 수준의 맨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낸 화재였다. 10일 경기 의정부시에서 발생한 화재는 지난해 발생한 수많은 재난의 ‘복사판’이었다. 제도의 허점이 고스란히 노출됐고 시민들의 안전의식 수준도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와 사회가 수없이 ‘안전 강화’를 외쳤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① 없어도 되는 스프링클러

인근 오피스텔, 주차타워, 단독주택 등 건물 6개 동을 삼킨 대형 화재는 10일 오전 9시 15분경 대봉그린아파트 1층 주차장에 있던 4륜 오토바이 안장에서 시작됐다. 문제는 초기 진화에 효과적인 스프링클러가 발화 지점인 대봉그린아파트에 단 한 대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봉그린아파트와 1.7m 간격으로 붙어 있는 드림타운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11층 이상인 특정소방대상물에는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두 건물은 모두 10층이라 법적으로는 설치 의무가 없다. 92가구가 모여 사는 공간이란 점을 법규정이 무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② 방화벽 없는 건물 사이

좁은 건물 간격은 불길을 키운 원인이다. 이번에 불이 붙은 주요 건물 간격은 2m가 채 되지 않았다. 불길을 피해 옥상으로 대피한 거주민들이 쉽게 옆 건물로 옮겨갈 수 있을 정도였다. 대봉그린아파트와 드림타운아파트의 간격은 1.7m, 드림타운아파트와 해뜨는마을아파트 주차센터의 간격은 1.8m였다. 사고 발생 지역은 상업 지역이라 건물 간격이 최소 0.5m 이상만 되면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다. 윤용균 세명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건물 자체의 미관이나 편의성만 고려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건물 간격은 좁은데 방화벽이나 방염처리 의무는 없어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 시공을 한 것도 악재였다. 건물 외벽에 스티로폼 단열재를 붙이다 보니 불길이 쉽게 위층으로, 옆 건물로 번졌다. 주거 공간과 분리되는 지하주차장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것도 화재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지상 1층 주차장에서 난 불이 아파트 입구를 막아 버려 대피와 화재 진압을 어렵게 만들었다. 자동차엔 연료가 있는 데다 페인트 성분이 칠해져 있어 유독가스가 많이 발생하고 불을 끄기도 어렵다.

③ 화재 경보에도 태연


부족한 안전의식 문제도 되풀이됐다. 화재 발생 당시 건물 내에서는 화재경보기가 울렸지만 이를 무시한 주민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봉그린아파트 주민 강명숙 씨(43·여)는 “화재경보기가 10∼15분 울렸는데 상당수가 대피하지 않았다”며 “최근 몇 차례 경보기가 오작동한 적이 있어 주민 대부분이 별일 아닌 걸로 오판했다. 그 때문에 피해가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건물에 사는 A 씨는 “집 밖에서 ‘불이야’ ‘살려 달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장난인 줄로만 알고 넘기려다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④ 소방차 가로막는 불법주차

이번에도 불법주차가 소방차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취재팀이 당시 화재 현장에 있었던 주민들에게 확인한 결과 진입로 입구에는 승용차 여러 대가 불법주차 중이었다. 이 때문에 견인차가 차를 빼고 주민들이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이동시킨 후에야 소방차가 화재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주민 김모 씨(59)는 “1초가 아까운데 차들을 옮기느라 적어도 10분은 허비했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소방차 진로를 가로막거나 소방도로에 불법주차하면 2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실제 화재 현장에서 별 효과가 없었다.

⑤ 건물 내 하나뿐인 대피 계단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의 계단이 하나다 보니 화재 진압 및 주민들의 대피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계단을 통해 유독가스가 건물 위쪽으로 급속하게 이동하는 결과만 불러왔다. 화재 당시 4층 집에서 자고 있던 송태환 씨(23)는 “연기가 자욱해 앞을 볼 수 없었고 계단 손잡이가 뜨거워 쉽게 나아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송 씨는 소방관의 도움으로 몸에 밧줄을 묶은 뒤 가스 배관을 붙잡고 밖으로 탈출했다. 내부 대피로가 막힌 상태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건물 밖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상 사다리, 완강기, 방독면, 비상 플래시 등을 추가 설치할 필요가 있다.

의정부=강홍구 windup@donga.com·김재형 / 이건혁 기자
#의정부#아파트#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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