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대기업 공장… 中企 폐업-지역상권 붕괴로 이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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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조업의 심장’ 울산, 불황에 휘청]
울산지역 전체가 “위기감 느껴”

울산 남구 SK유화가 테레프탈산(TPA) 공장 가동을 중지하면서 꺼져버린 냉각탑. 수증기가 나오는 오른쪽 냉각탑과 대비된다(위쪽 
사진). 울산 경제를 떠받치는 석유화학, 조선 산업의 위기로 금요일인 9일 저녁 울산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남구 삼산동 거리가 
썰렁하다(아래쪽 
사진). 울산=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울산 남구 SK유화가 테레프탈산(TPA) 공장 가동을 중지하면서 꺼져버린 냉각탑. 수증기가 나오는 오른쪽 냉각탑과 대비된다(위쪽 사진). 울산 경제를 떠받치는 석유화학, 조선 산업의 위기로 금요일인 9일 저녁 울산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남구 삼산동 거리가 썰렁하다(아래쪽 사진). 울산=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9일 울산 남구 SK 울산컴플렉스(CLX) 스틸렌모노머(SM) 공장. 정제탑에선 수증기가 피어나오고 있었다. 냉각탑이 아닌 정제탑에서 수증기가 나오면 둘 중 하나다. 사고가 났거나 공장이 멈췄거나.

지난해 7월 가동을 중단한 SM 공장은 설비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내부를 청소하고 산화되지 않도록 질소를 채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장이 돌아가는 ‘웽∼’ 소리 대신 수증기가 나오는 ‘쉭∼’ 소리만 들렸다.

SM은 스티로폼이나 요구르트병을 만드는 석유화학 소재다. 5년간 멈춰있던 이 공장은 지난해 4월 재가동을 시작했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문을 닫았다. 국제유가 하락에 중국산 저가 제품이 밀려들면서 국제 시세가 2013년 t당 1500∼2000달러에서 최근 900달러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직원 32명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다른 부서로 흩어졌다.

○ 대기업 위기가 중소기업까지 번져

9일 울산 남구 SK케미칼 공장에서는 2차선 도로 중 1개 차로에 자루가 줄지어 쌓여 있었다. 수출이 안 된 화학제품을 야적해놓은 것이다. SK케미칼의 자회사 SK유화의 테레프탈산(TPA·폴리에스테르 섬유의 원료) 공장은 지난해 7월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중국이 TPA 자급률을 2013년 60%에서 올해 95% 안팎까지 올렸기 때문이다. 제품의 60% 가까이를 중국에 수출해온 SK유화는 판로가 끊겨 공장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1989년부터 한 번도 쉬지 않던 공장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53억 달러를 수주해 목표치(250억 달러)의 61.2%밖에 채우지 못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해양플랜트 수주 건수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울산지역 대기업의 어려움은 인근 중소기업들로 번져가고 있다. 플랜트 생산·보수업체 A사는 두 달 전 울산 남구 2공장을 철수하기로 했다. 지난해 매출이 급감했는데 한 달에 5000만 원씩 하는 임차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A사 사장은 “공장들이 가동을 해야 보수하는 물량이 우리에게 오는데 가동 중단하는 곳들이 많아 지난해 매출이 30% 줄었다”고 말했다.

전체 매출의 20%를 현대중공업 납품에 의지하고 있는 B사 사장은 “현대중공업에서 나오는 매출이 최근 매년 5∼10%씩 줄어 초과 근로도 없앴고 직원들 월급도 깎았다”며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중 법정관리에 들어간 곳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울산 현대중공업 직원은 2만8000명이지만 사내 협력업체 직원까지 합치면 6만8000명이다.

○ 무너지는 지역 경제


자동차와 함께 울산 경제를 떠받들던 주력 3대 업종인 석유·화학과 조선·해양 산업이 위기를 겪으면서 울산 지역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2012년 울산 광업·제조업 생산액은 총 230조6010억 원. 이 중 석유·화학 분야 생산액은 전체의 58.6%나 된다. 조선·해양 부문 생산액은 9.4%다. 울산석유화학단지는 SK이노베이션,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는 현대중공업, 온산국가산업단지는 에쓰오일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 위기가 중소기업에 파급된 뒤 지역상권 붕괴로까지 이어진다.

사실 울산은 외환위기도 비켜갔던 곳이다. 울산지역 한 석유화학업체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국내 경제는 어려웠지만 글로벌 경기는 좋았고, 환율이 달러당 1600원대로 올라가면서 수출에 대부분을 의존하던 울산 경제는 호재를 맞았다”며 “당시 울산 지역민들은 표정 관리하기 바빴지만 지금은 다함께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은 2011년 광역지자체 최초로 수출 1000억 달러를 돌파(1015억 달러)했다. 그러나 이후 수출액은 2012년 972억 달러, 2013년 915억 달러로 2년 연속 감소했다.

기업들이 어려우니 기부금도 줄었다. 지난해 울산 지역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모금액은 63억1200만 원으로 17개 시도 중 5위였다. 그러나 9일 현재 울산 지역 모금 실적은 34억1500만 원에 불과하다. 아직 22일이 더 남았지만 목표액의 68.8%밖에 채우지 못했다. 17개 시도 중 16위다.

○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올해도 희소식은 없다. 지난해 4분기(10∼12월) 두바이유 가격 하락폭이 배럴당 41달러나 되는 등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정유업계는 재고 손실이 급증했다. 중국과 중동은 저가 원료를 발판삼아 설비를 확장하고 있다. 오일 메이저들이 유가 하락으로 해양 플랜트 발주를 줄이면서 조선업계도 불황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사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미국 화학전문지 C&EN이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톱50 화학기업들의 2013년 영업이익률은 10.3%였다. 임지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럽과 화학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과 솔루션 전략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도 “한국 조선업계의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받고 있다”며 “고부가가치 선박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최예나 yena@donga.com·강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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