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기로에 선 미래 에너지 ‘수소’
글로벌 수소 행사 최근 잇단 개최… 신형 트럭-버스-군용차량 공개해
우주 구성 물질의 75% 차지하나… 아직 경제성 낮은 게 수소 ‘단점’
친환경 ‘그린 수소’는 가격 비싸… 초고속 충전-긴 주행거리 등 장점
한시적 진흥법으로 정부지원 확대… 친환경 비중은 단계적으로 높여야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FCEV) 차종 유니버스 수소전기버스(사진 맨 위),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가운데), 수소전기 SUV ‘디 올 뉴 넥쏘’(아래). 현대차그룹 제공
“중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는 일관성.”
4일부터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월드 하이드로젠(수소) 엑스포 2025’ 행사에 참석한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수소 산업과 관련해 취재진에게 한 말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2022 카타르 월드컵 때 등장했던 응원 구호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가 한국에서 수소 산업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말에는 수소생태계 조성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겪고 있는 현재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가야 할 길”이라는 전망이 동시에 포함돼 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탄소 순수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달성하는 것과 전기에너지의 단점을 극복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수소이기 때문이다.
● 수소 기술에 쏠리는 관심
최근 한국에서 글로벌 수소 기업들이 총출동하는 행사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2∼4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100여 개 수소 관련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200여 명이 참석하는 ‘수소위원회 CEO 서밋’이 열렸다. 이어 4일부터는 킨텍스 전시장에서 26개국 279개 수소 관련 기업이 참가한 월드 하이드로젠 엑스포 2025가 진행됐다.
행사에서는 수소 에너지 관련 첨단 기술과 제품이 다양하게 전시됐다. 현대차그룹은 7개 계열사를 총동원해 행사장 전체 면적의 20% 가까운 공간에 통합 홍보관을 차렸다.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과 유니버스 수소전기버스 등 상용차량들과 수소 승용차 넥쏘 등 실물차 5대를 전시했다.
특히 수소 트럭과 수소 버스는 아직 일반에 제원(스펙) 공개도 되지 않은 최신형이 전시됐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수소 모빌리티 기업들은 상용차량이 수소에너지 차량 시장을 견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행거리가 짧은 전기차의 단점을 수소차가 내연기관에 가깝게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탱크를 완전히 충전하면 수소 버스는 약 960km를, 수소 트럭은 500km가량을 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산 분야도 수소에너지 활용이 검토되는 분야다. 행사장에는 기아가 제작한 수소연료전지 경전술차량(ATV)이 공개됐다. 유사한 크기의 디젤 군용차량 대비 압도적 성능에다 동력원 소음이 없기 때문에 기도비닉(企圖秘匿·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은밀히 움직이는 것)에 유리하다. 회사 측이 설명한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최소 시간)은 3초대다. 행사장 관계자는 “강원도 군부대에서 이미 실증시험을 마치고 성능 개량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HD현대도 최근 개발한 수소엔진을 들고 나왔다. HD건설기계가 제작한 22L급 발전용 수소엔진 ‘HX22’와 차량 및 발전 공용 11L급 수소엔진 ‘HX12’가 행사장에 전시됐다. 현대차그룹이 수소를 다시 전기에너지로 변환해 활용하는 수소연료전지 방식에 주력하는 것과 달리 HD현대는 휘발유나 경유를 태우는 내연기관 엔진처럼 수소를 엔진에 직접 공급해 그 폭발력으로 엔진을 돌리는 직분사 방식을 적용했다. 수소를 다시 물로 합성해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줄여 경제성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는 것이다.
● 경제성 확보가 가장 큰 난관
사실 한국이 가진 수소 기술력만 보면 이미 수소 에너지를 이용하는 경제 생태계가 가동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한국의 전 산업계 수소연료전지 보급 용량은 1129MW 수준으로 미국(551MW) 일본(363MW)보다 2∼3배 높다. 2020년 2500여 개 수준이었던 수소 관련 기업 수는 2023년 2800여 개로, 종사자 수는 같은 기간 2만여 명에서 3만4000여 명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산업계가 성장하고 있는데도 수소에너지가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수소는 바다 질량 중 10%를, 우주 전체 구성 물질 중 75%를 차지할 정도로 풍부한 물질이다. 하지만 석유를 정제해서 석유제품으로 만들어야 쓸 수 있듯, 수소도 화학적 처리를 거쳐 순도 높은 수소를 뽑아내야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다.
문제는 수소 추출 과정에서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탄소가 배출되는 공정을 거쳐야 하고, 무탄소 추출을 하려면 비용이 급격히 높아지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수소 추출 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석탄 및 석유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소의 순도를 높여 만든 ‘부생수소’와 천연가스를 전기분해해 만드는 ‘개질수소’, 그리고 중고교 과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물 전기분해 방식으로 만드는 ‘수전해 수소’ 등이다.
부생수소와 개질수소는 값이 싸다. 수소 1kg을 생산하는 데 부생수소는 1.3달러, 개질수소는 8.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든다. 문제는 이 두 방식은 수소를 생산할 때 필연적으로 탄소가 나온다는 점이다. 두 방식 모두 수소 1kg 생산에 10kg 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친환경 에너지원을 만들기 위해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생산된 수소를 ‘그레이(회색) 수소’라고 부른다.
위의 두 방식과 달리 수전해 수소는 태양광, 풍력, 조력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생산된 전기로 물을 튀겨 수소와 산소를 분리해낸다. 확실한 무탄소 친환경 수소를 만드는 방식이다. 문제는 값이 비싸다. 수소 1kg 원가가 12달러가량이다. 이런 수소는 ‘그린 수소’라고 불린다.
친환경 에너지원으로서의 수소는 대부분 그린 수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 보니 가격이 비싸다. 현재 차량용 수소충전소에서 판매되는 소비자가격은 수소 1kg당 약 1만 원이다. 현대차의 수소전기차(FCEV)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디 올 뉴 넥쏘’에는 6.69kg 크기의 연료탱크가 장착돼 있다. 한 대를 완전히 충전하는 데 6만∼7만 원이 든다. 최대 주행거리가 720km인 점을 감안하면 비용 면에서 내연기관 차량과 큰 차이가 나지 않게 된다. 반면 비슷한 거리를 가는 전기차 충전 비용은 절반 이하 수준이다.
여기에 수소 생산 과정에서 가장 많이 투입되는 에너지가 전기에너지라는 점도 논란의 대상이다. 전기를 써서 수소를 만든 뒤 다시 전기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이중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느니, 차라리 그 전기를 그냥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다.
● “그래도 미래 청정에너지는 수소”
그럼에도 수소 기업들이 수소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보관과 이동이 용이한 점’과 ‘빠른 충전 속도’가 현재의 전기에너지와 비교할 수 없는 수소의 강점이다. 현대차가 제주 등에서 운용하는 중압형 이동 수소충전소는 한 번에 넥쏘 차량을 한 시간에 5대, 최대 20대까지 충전할 수 있다. 반면 전기차를 이 정도로 충전하기 위한 이동형 충전소를 상용화하는 건 현재 기술로는 어렵다.
빠른 충전 속도도 강점이다. 960km를 달릴 수 있는 FCEV 버스에 수소를 완전히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론상 10분 이내다. 이는 현재 법률로 수소 충전 속도를 초당 90g으로 제한해 놓았기 때문이다. 규제가 완화되면 대형 버스나 트럭은 기름을 넣는 속도보다 수소 충전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 에너지의 경제성을 높이는 방법도 다양하게 연구 중이다. 암모니아를 화학적으로 처리해 수소를 발생시키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암모니아를 처리해 수소를 얻는 방식은 생산 단가가 1kg에 약 3∼5달러로 그린 수소보다 저렴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0.91kg으로 그레이 수소보다 현저히 낮다. 이처럼 온실가스 발생을 최대한 줄인 생산 방식을 ‘블루 수소’라 부른다.
암모니아 수소 생산 방식의 단가를 낮추기 위한 연구도 국내 기업에서 진행 중이다. 수소엑스포에 참가한 기업 AES테크는 암모니아를 실시간에 가깝게 수소로 전환하는 컨테이너 크기의 수소 추출 시스템을 만드는 곳이다.
● “수소 경제 생태계 구축이 우선”
수소 경제 활성화를 꿈꾸는 국내 기업과 학계의 눈은 정부로 쏠린다. 정부가 2029년까지 4조4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는 그린 수소 생산 등에 대한 지원책만 일부 포함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소 경제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인 경제성 확보를 위해 그레이 수소 생산과 활용에도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선 수소 경제 생태계가 잘 돌아가도록 만든 뒤 수소의 친환경 비중을 단계적으로 높이자는 주장이다. 문일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한시적으로 진흥법을 제정하고 규제 정비, 기술 표준화 등 수소 선진국 도약을 위한 제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기업과 기관, 정부의 ‘폭탄 돌리기’가 수소 경제 활성화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수소 제품 생산 기업 관계자는 “기업은 인프라가 없어 제품을 늘리기 어렵다고 하고, 기관은 정부의 정책이 없어 인프라를 늘리기 어렵다고 한다”며 “여기에 정부는 ‘수소 관련 제품이 시장에 더 확산하는 게 먼저’라고 주장하는 등 서로가 책임 전가를 하다가 수소경제 주도권을 중국 등에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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