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정훈]‘제2의 싸이’도 군대 보낼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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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두 번 다녀온 싸이(본명 박재상·35)는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강남스타일’로 조용필도 못 이룬 ‘세계 최고 인기가수’가 됐지만, 2007년 산업기능요원으로 부실 복무한 게 적발됐을 때만 해도 그의 재기를 점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의 노랫말처럼 ‘완전히 새’ 됐었다. 그해 12월 나이 서른에 ‘악몽’처럼 두 번째 입대하면서 싸이는 연예인 병역비리 역사에 한 페이지를 썼다.

제대 3년 만에 내놓은 ‘싸이6甲’ 앨범은 그를 가신(歌神) 반열에 올려놓았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공개 52일 만인 4일 밤 유튜브 조회수 1억 건을 돌파했다. 발표 이후 3년 3개월간 8400만 번 조회(케이팝 기준 2위)된 소녀시대의 ‘Gee’와 비교하면 경이적인 숫자다. 레이디 가가의 ‘포커페이스’가 2년 9개월 만에 1억3000만 건이다. 돈도 100억 원 넘게 벌었다고 한다. 말춤 한 번 값이 5000만 원은 되는 셈이다.

배 아플 일도 아니다. 싸이는 제 배뿐 아니라 대한민국 배도 불리고 위상도 높였다. 싸이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춤을 췄다면 좀 더 피부에 와 닿았을까.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의 뜻을 알려고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이가 각국에 넘쳐난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밋 롬니의 대역(代役)은 NBC 제이 레노 쇼에 나와 싸이 춤을 췄다. 태극문양 바탕에 ‘Gangnam Style’이라고 적힌 티셔츠는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교육원 교수는 “강남스타일이 케이팝 시장 전체에 끼칠 영향을 고려하면 경제적 파급 효과는 1조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했다.

강남스타일은 케이팝 붐에 확실한 도장을 찍었다. 한국 노래에 매료돼 유학 오는 외국인 교환학생이 최근 3년 새 2.4배(국내 유명 8개 대학 통계 기준)로 늘었다. 케이팝 덕에 한국 제품에 프리미엄이 붙는다니 10년 전엔 누가 이런 일을 상상이나 했던가. 국익으로 치면 올림픽 메달보다 수천 배 가치가 있다고 해도 돌 맞을 일은 아닌 듯싶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법은 여전히 체육인과 예술인에게만 병역 혜택을 주고 있다. 병역법 26조 1항 3호는 ‘문화창달과 국위선양을 한 예술 체육인’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병역법 시행령 47조 1항은 ‘국제대회에서 2위 이상으로 입상한 예술인’과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아경기 1위 이상’에게 혜택을 주게 했다. 메달을 따거나 입상하면 공익근무요원 자격으로 해당 분야에서 34개월간 일하며 사실상 면제 혜택을 받게 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 ‘딴따라’는 해당되지 않는다. 바이올린을 잘 켜면 국위선양이고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건 내 알 바 아니라는 논리다. 올림픽 축구에서 4분을 뛴 김기희 선수와 말춤 추며 세계를 누비는 싸이를 차별할 수 있는 근거도 바로 이 조항이다.

박정훈 사회부 차장
박정훈 사회부 차장
연예인이라고 아니꼽게 볼 필요는 없다. 한 일만큼 대접해주면 된다. 면제 혜택을 주자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정상적으로 무대에 서면서도 일정 기간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길을 터주자는 거다. 공대생에게 산업기능요원 특례 혜택을 주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기준이 필요하다면 사회적 합의로 만들면 된다.

세상이 바뀌면 법도 달라져야 한다. 행정에도 창의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춤으로 세상을 뒤흔들 제2, 제3의 싸이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게 국익에도 도움 되지 않을까. 노래 가사처럼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그런 반전 있는 병무행정이 필요한 때다.

[채널A 영상]전세계가 아는 ‘강남스타일’, 인기비결은 엉덩이?

박정훈 사회부 차장 sunshade@donga.com
#싸이#군대#케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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