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문]통진당, 부정 시인…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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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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黨 진상조사위 “비례경선 총체적 부실-부정”
당권파 “동의 못해”… 사퇴 등 후속조치 안해

조준호 위원장 “부정선거 드러났다” 통합진보당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이 2일 국회 정론관에서 “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에서 부실, 부정 선거가 있었다”고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조준호 위원장 “부정선거 드러났다” 통합진보당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이 2일 국회 정론관에서 “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에서 부실, 부정 선거가 있었다”고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선거관리 능력 부실에 의한 총체적 부실·부정선거임이 드러났다.”

19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 선정 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돼 자체 조사를 벌여온 통합진보당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은 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선거는 정당성과 신뢰성을 잃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 위원장은 “적정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업체와 계약하고 당 선거관리위원이 아닌 임의적 (인물의) 지시에 따라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수정하는 등 공정성을 보장할 수 없는 선거”라며 부정선거 실상을 낱낱이 공개했다.

총선 과정에서 서울 관악을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 여론조사를 조작한 데 이어 다시 당내 경선 부정이 확인되면서 통진당은 지난해 12월 창당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충격적인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당선자 사퇴’ 등 후속 조치는 이날 취해지지 않았다. 4명의 공동대표와 고위 당직자 중 누구도 “내 탓”이라며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민족해방계열(NL계)인 당권파는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를 두고 민주주의의 생명인 절차적 정당성을 경시하는 NL계 특유의 인식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평소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진보정당’을 자임해온 통진당이 막상 자신의 허물 앞에선 “부정은 있었지만 선거 결과는 유효하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선거부정은 NL계가 장악한 옛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관행처럼 있어 왔지만 지난해 12월 통진당 출범 때 국민참여당 출신들이 수혈되면서 비로소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 당권파 “조사 못 믿겠다”

NL계 당권파인 이의엽 공동정책위의장은 이정희 공동대표와 상의한 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의혹이 부풀려지고 불필요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조사위의 객관성과 공정성 자체도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등 되레 당 진상조사위를 공격했다. 부정선거의 진상과 후폭풍을 최소화하려는 당권파 전체의 인식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당권파는 이 문제가 검찰로 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 의장은 “어떤 경우라도 당이 수습 능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당 정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검찰로 넘어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도 고소 고발이 없으면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 시계 제로 통진당

당권파의 이 같은 태도는 통진당의 거센 내부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핵심은 비례대표 당선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다. 현재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인물은 NL계인 비례대표 1, 2, 3번(윤금순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이지만 부정선거가 광범위하고 총체적이었다는 점에서 통진당 비례대표 당선자 6명 전체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 여론조사 조작 이어 도덕성에 치명타… 黨 쪼개질 수도 ▼

향후 수습 과정에서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사퇴 문제를 놓고 당권파와 국민참여당 등 비당권파가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당 공동대표단은 3일 조 위원장으로부터 조사 결과를 공식 보고 받은 뒤 향후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정선거 사태는 다음 달 3일 지도부 선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이정희 공동대표를 단일대표로 옹립하려는 당권파의 구상은 일단 좌절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다시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부정선거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이청호 부산 금정위원장은 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정희 대표가 직접 그런(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한다면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당대표 사퇴가 아니라 정계은퇴를 요구할 것”이라고 압박 강도를 높였다. 그는 “비례대표 1∼3번 당선자가 사퇴하지 않는다면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엔 창당 5개월 만에 당이 공중 분해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 진보진영도 단호한 조치 요구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독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각종 부정선거 행태가 기성 정당의 구시대적 정당 운영에 비판적 목소리를 높였던 진보정당에서 일어났다는 것에 분노와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옛 민노당 출신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이정희 씨 사퇴하고 비례대표 다시 뽑아야죠”라고 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진보당 일부의 의식과 행태가 ‘현대화’ 이전에 ‘근대화’가 안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확실히 정리하지 않으면 원내교섭단체는 없다”고 경고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조준호#통합진보당#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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