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이렇게 잘 컸어요”…무료 사진 복원이 만든 기적 [따만사]

  • 동아닷컴
  • 입력 2026년 5월 9일 10시 30분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전 사진 곁에 성인이 된 딸의 모습을 합성한 모습.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전 사진 곁에 성인이 된 딸의 모습을 합성한 모습.
“작가님 덕분에 그동안 바사삭 부서졌던 인류애가 살아나고 있어요.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최근 소셜미디어 스레드에는 한 사진 복원 전문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글들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사람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김병선 씨(39)다. 그는 온라인에 안타까운 사연이 올라오면 자발적으로 나서 아무 조건 없이 오래된 사진을 복원해 주고 있다.

김 씨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무상으로 복원한 사진만 최소 500장이 넘는다. 틈틈이 시간을 내 SNS 속 사연들의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하루에 4~5건, 많게는 10건 이상 복원 작업을 한 적도 있다.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폐렴으로 돌아가셨어요. 6·25 참전용사 이신데 제복을 입은 사진이 없어요. 정복 입고 웃고 계신 사진 하나 간직하고 싶은데…”

스레드에 올라온 참전용사 유족의 사연에 김 씨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사진 속 할아버지는 연로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눈도 힘겹게 뜬 상태였다. 화질 역시 좋지 않았다.

김 씨는 할아버지가 반듯한 자세로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복원했다. 가슴에는 훈장을 달고, ‘6·25 참전 유공자’라고 적힌 모자도 씌워드렸다.

“나라를 지켜주신 할아버지의 고귀한 헌신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담아 가장 사랑스럽고 멋진 영웅의 모습으로 모셔봤습니다” 라는 글도 함께 남겼다.

6·25참전 용사 할아버지에게 제복을 합성한 모습.
6·25참전 용사 할아버지에게 제복을 합성한 모습.

또 다른 의뢰자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어머니의 사진을 부탁했다. 사연자의 어머니는 불과 몇 주 만에 더 이상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고, 가족은 애써 외면하던 영정사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항암 부작용으로 탈모가 진행되고 몸이 심하게 야윈 모습을 자녀는 마지막 사진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김 씨는 사연자의 어머니가 건강한 얼굴로 환하게 웃는 모습의 사진을 만들어 전달했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 곁에 성인이 된 딸의 모습을 합성해서 준 사례도 있다. 아버지 생전에 중학생이던 딸은 제대로 된 사진하나 찍어둔게 없어서 매일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렸다고 한다.



대가 없는 선의였지만 복원 사진을 받은 의뢰자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한 의뢰자는 직접 구운 ‘옛날 과자’를 손편지와 함께 보냈다. 과자 하나하나를 개별 포장하고 제습제까지 넣어 정성을 담았다.

김 씨는 “포장을 여는 순간부터 그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거창한 선물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진심인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복원사진을 받은 사연자가 김병선씨에게 보내온 편지와 선물.
복원사진을 받은 사연자가 김병선씨에게 보내온 편지와 선물.

김 씨는 스레드에서 이미 입소문이 난 인물이다. 그의 조건 없는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재능기부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 스레드 이용자는 “어느날부턴가 김병선님의 지속적인 선한 영향력이 울림으로 다가왔다”며 “그분처럼 대가 없는 나눔을 하고 싶다”고 적었다. 그는 “누군가의 소중한 순간을 마법의 손으로 보정해 주신 덕분에 사진을 보고 혼자 배시시 웃고,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며 “그러다가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졌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부동산뿐인데, 관련 질문이 있으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모든걸 나눠 줄 테니 연락 달라. 기분 좋은 나눔 시작 1일”이라고 전했다.

김병선 씨가 사연을 받아 복원해준 흑백사진.
김병선 씨가 사연을 받아 복원해준 흑백사진.

김 씨는 선행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20년전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을 때”를 떠올렸다.
김 씨의 장인은 IMF를 힘겹게 보내면서 마땅한 사진도 찍어 두질 못했다. 결국 젊었을 때 결혼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사용해야 했고, 이 일을 계기로 김 씨는 사진 복원을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처음엔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오랜 흑백 혼례사진 등을 복원해 주다가,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껴 모르는 사람들에게 까지 재능기부를 확대 하게 됐다.

어느 날은 새벽 3시쯤 우연히 잠에서 깼다가 SNS를 확인했는데, “아버님이 방금 별세하셨는데, 제대로 된 사진이 없어 급하게 영정사진이 필요하다”는 DM이 와 있었다. 그는 서둘러서 복원한 사진을 유족에게 보냈다.

김 씨는 “그날 우연히 눈이 떠진 게 아니라, 유족의 간절함이 날 깨운 건 아닐까 싶다”며 “내 작은 기술이 누군가의 마지막 가는 길에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깊게 새겼다”고 전했다.

사진 복원 작업 중인 김병선 씨.
사진 복원 작업 중인 김병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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