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매출 1000위권을 유지한 750개 기업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297개 기업이 9만7539개의 일자리를 줄였다. 이 기업들 중 2005년보다 2009년 매출 규모가 줄거나 5년간 순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기업은 모두 106곳. 이런 기업이 일자리를 줄이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매출 규모가 늘고 순이익을 나타낸 191개 기업도 직원 규모를 줄였다.
성장했지만 고용을 줄인 기업에는 KT, 포스코, LG전자, 삼성전기, 한국전력공사, 한국공항공사 등 국내 최고 수준의 대기업과 공기업이 대거 포함됐다.
가장 많은 일자리를 감축한 기업은 KT. KT는 2005년 3만7904명이던 종업원을 2009년 3만841명으로 줄였다. 고용 감소율이 18.6%나 된다. KT는 2009년 실시한 특별명예퇴직을 대규모 인력 감축의 원인으로 꼽았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조직을 슬림화하고 유무선 통합에 맞는 조직 재편을 위해 근속기간 15년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5992명의 명퇴 신청을 받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KT에 이어 포스코도 같은 기간 일자리 2488개를 줄였다. 포스코 측은 “제철소 현장의 장기 근속자가 많다 보니 매년 많게는 400∼500명씩 정년퇴직자가 나온다”며 “글로벌 경기침체로 창사 이래 첫 감산을 단행한 지난해에도 400명 이상을 신규 채용했고 최근에는 그 수를 600명 이상으로 늘렸다”고 전했다. KT와 포스코는 평균 근속연수가 18∼19년으로 매출 100대 기업 중 근속연수가 가장 긴 기업으로 꼽히는 곳이다.
성장에도 불구하고 인력을 줄인 기업 상위 3, 4, 5위에 각각 오른 LG전자, 삼성전기, LG화학은 사업 분사로 종업원 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79개 일자리가 줄어든 LG전자는 2008년에 전자회로기판(PCB) 사업을 LG마이크론에 넘겼다. 삼성전기는 2009년에 발광다이오드(LED) 부문을 떼내 삼성전자와 삼성LED 법인을 출범시켰다. LG화학 역시 2009년에 산업재 사업본부를 LG하우시스로 분사했다.
이 밖에 눈에 띄는 기업은 롯데그룹으로, 소속 계열사 8곳이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줄였다. 호텔롯데, 롯데제과, 롯데알루미늄, 롯데삼강, 케이피케미칼, 부산롯데호텔, 롯데미도파, 롯데역사 등이다. 호텔롯데 관계자는 “사업부를 조정하면서 인적 효율을 도모했고 여기에 자연 퇴직분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 미래 투자 늘려 일자리 창출해야
이처럼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임금에 비해 노동 생산성이 낮아 기업의 노동절약적 투자가 심화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임금 수준이 높아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는 대신에 자동화 설비 등에 투자를 늘려 노동절약적 투자를 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2008년 기준 국내 1인당 GDP 대비 임금 수준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보다 높다. 임금이 전체 경제가 감당할 만한 수준보다 높아 신규 채용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기업들이 강성 노조와의 갈등으로 고용 조정을 하지 못해 경기 회복 국면에도 고용을 크게 늘리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노조의 지나친 기득권 보호가 신규 채용을 확대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성장 없는 고용은 산업구조의 변화로도 설명된다. 자동화 설비 등 인력이 필요 없는 고도화 라인 때문에 생산성이 늘어 기업으로서는 고용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회복세가 두드러진 지난해부터 ‘고용 없는 회복’에 대한 우려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0 한국경제 회복의 6대 불안 요인’이라는 보고서에서 “경기 회복세가 뚜렷했던 2009년 9월 신규 취업자가 7만1000명으로 나타났는데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 규모 32만6000명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일자리는 25만 명 이상 감소했다”며 고용 없는 성장의 심화를 경제 성장의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박종남 대한상공회의소 상무는 “기업이 미래 신수종을 개발하고 설비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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