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진우]“태극전사여, 수고했습니다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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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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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 시간)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의 한 음식점. 한국-우루과이의 월드컵 16강전이 끝난 직후였다. 음식점 한 곳에선 우루과이 팬들이 노래를 부르며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 무리의 팬이 다가왔다.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자 디에고 실바 씨(52)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경기가 끝난 뒤 우리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습니다. 누구에게 친 박수였냐고요? 바로 우리를 놀라게 한 한국 선수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죠.” 또 그는 “우루과이가 운 좋게 8강에 올랐지만 오늘 경기의 승자는 양 팀 모두”라며 기자의 손을 들어올렸다.

다혈질로 유명한 남미 축구팬들은 자국 축구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 때로는 거만하게 느껴질 정도다. 많은 우루과이 팬은 경기에 앞서 “우리는 월드컵 우승국이다. 반면 한국은 16강 진출국 가운데 가장 만만한 팀”이라며 태극전사들을 얕잡아봤다. 심지어 “한국을 5-0으로 이기는 데 많은 돈을 걸었다”며 거드름을 피운 팬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들은 한결같이 “결과는 우리가 좋았지만 경기 내용과 정신력, 투지에선 모두 한국이 앞섰다”며 한국 축구에 높은 평가를 내렸다.

놀란 건 우루과이 선수들도 마찬가지. 경기가 끝난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공격수 디에고 포를란(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은 “한국 선수들의 실력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공격, 수비 모두 나무랄 데 없었고 특히 모두 개인기가 뛰어나 우리로선 힘든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감탄했다. 이날 2골을 넣으며 팀에 승리를 안긴 루이스 수아레스(아약스) 역시 “우리가 잘한 건 승리했다는 사실 하나뿐”이라며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게 운이 아니었음을 이번 월드컵에서 증명했다”고 말했다.

취재진의 반응도 비슷했다. 경기 전 “한국을 만나 행운”이라고 말하던 우루과이 취재진은 경기가 끝난 뒤엔 “우루과이가 가장 어려운 팀 가운데 하나를 만났던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들은 한국 취재진을 만날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경기가 끝난 뒤 내리는 빗줄기보다 더 굵게 보인 태극전사들의 눈물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고개 숙인 채 힘없이 믹스트존을 통과하던 그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태극전사여, 당신들 덕분에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포트엘리자베스에서
신진우 스포츠레저부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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