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치영]11위 교역국 외환시장 이렇게 취약해서야

  • 입력 2008년 6월 4일 03시 01분


돈에도 값이 있다. 돈의 값은 두 가지 방법으로 측정한다. ‘실물에 대한 교환비율’과 ‘외환에 대한 교환비율’이 그것이다. 줄여 말해 물가와 환율이다.

돈값은 안정돼 있어야 한다. 물가, 환율의 안정이다. 경제교과서들은 통화신용 정책의 3대 목표 중 하나는 ‘환율안정을 통한 통화가치의 신뢰성 확보’라고 가르친다.

원화의 돈값은 국내적으로는 꽤 안정됐다. 최근 물가 때문에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5% 이내의 상승률이다. 10∼2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환율 부분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2월 말 936.50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거침없이 올라(원화 약세) 지난달 21일 장중에 1057.30원까지 올랐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환율당국이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높은 환율을 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나타난 이른바 ‘강만수 환율’이었다.

그러다가 지난달 말 재정부에서 “물가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이 말을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환율 하락을 유도할 것으로 해석했다. 환율그래프는 꺾어져 3일 원-달러 환율은 1016.90원에 거래를 마쳤다. 열흘 남짓한 기간에 4% 이상 떨어진 것이다.

외환당국의 태도에 따라 환율이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어제 급등을 걱정하고 오늘은 급락을 우려하는 롤러코스터 시장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3일 원-달러 환율이 급락한 것은 최중경 재정부 차관이 물가대책회의에서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한 데 따른 것이다. 사실 이날은 환율이 올라야 정상적인 시장 상황이었다. 국제 유가가 올라 경상수지 악화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투자은행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신용경색 우려도 커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에 비춰보면 환율이 오를 요인들이다. 그러나 국내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이런 실증지표들보다 외환당국의 말 한마디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시장의 큰 골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잡혀야 한다. 당국의 의지나 개입은 부차적 요소로 기능해야 건강한 시장이다. 서울 외환시장은 세계 11위 교역대국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취약한 구조인 셈이다.

한 민간 전문가는 “정부 메시지가 잘 반영되는 시장이라고 평가할 일만은 아니다. 이런 시장으로 금융산업 도약 및 동북아 금융허브의 꿈이 이뤄질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신치영 경제부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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