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인해]김정일에게 던진 후진타오의 訓手

  • 입력 2005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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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자랑하는 아리랑 공연이 끝나자 모든 관람자가 발을 구르면서 기립 박수를 친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활짝 웃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고, 흐뭇한 표정의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은 넌지시 그를 바라본다. 중국 CCTV가 매시간 보도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열렬한 환영에 익숙한 김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하는 형식의 남북정상회담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북한을 방문한 후 주석과 김 위원장은 ‘조-중 친선 강화’라는 선물을 서로에게 안겼다. 후 주석은 환영만찬 연설에서 개혁 개방으로 얻은 중국의 경제발전 성과를 수치를 들어가며 맘껏 과시했다. 1978년부터 2004년까지 26년 동안 중국의 국내총생산액이 1473억 달러에서 1조6494억 달러로 늘어난 눈부신 발전 경과를 언급하며 은근히 북한에 ‘신사고’를 촉구한 것이다.

중국과 북한의 발전 전략은 확연한 차이점을 보인다. 먼저 목표와 수단이 다르다. 중국은 경제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혁 개방을 수단으로 삼아 발전의 도약을 이뤄 왔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향후 100년까지도 이러한 체제 목표를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유훈’이 있다. 따라서 중국은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 그리고 후세대로 권력이 이양되더라도 경제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준다. 이것은 세계 제조업의 블랙홀 역할을 하는 중국에 대한 외국 자본의 투자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게 하는 기반이 된다.

반면 북한의 당면 목표는 김정일 체제 유지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원을 확보하고자 한다. 경제발전보다 선군(先軍)정치를 앞세우며, 세습체제를 이어가라는 김일성(金日成)의 ‘유훈’을 받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체제 보장을 확실히 담보할 수 없다면 핵무기 보유가 생존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4차 6자회담을 통해 공동성명에 합의했지만 경수로 제공이 우선되지 않으면 핵 포기는 불가하다는 북한의 주장은 그만큼 절박하다.

더구나 북한은 7·1경제관리개선조치(2002년)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물자 부족과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침체돼 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외부로부터의 지속적인 물자 공급과 외자 유치를 통한 경제 활성화가 급선무다.

김 위원장은 다음 주에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예정인 5차 6자회담에의 참석을 확인했다.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의 안정적인 관리는 후 주석의 입지를 강화하게 될 것이다. ‘조-중 친선 강화’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시점과 맞물려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 중국 기업의 북한 진출 선점은 북한의 경제 회복에 기여하는 동시에 북한의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를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중국은 이를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확대의 지렛대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북한 경제가 되살아나려면 중국 경제성장의 동력이 된 막대한 외자 도입과 안정된 투자환경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의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하지만 6·15남북공동선언에서 ‘적절한 시기’로 합의한 김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9·19공동성명은 자칫 북-미 간의 불신만 조장할 수 있다. 북한이 국제적 신뢰를 회복하고 싶다면 경제정책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개혁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체제 보장 수단이라는 후 주석의 훈수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베이징에서>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베이징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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