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버냉키 효과’와 ‘박승 효과’

  • 입력 2005년 10월 26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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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시가 ‘버냉키 효과’로 많이 올랐다. 벤 버냉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앨런 그린스펀의 후임으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 내정된 데 따른 것이다. 흔히 특정인이 어떤 자리에 임명됐을 때 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이를 ‘○○○ 효과’라고 부른다.

‘버냉키 효과’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연일 빠져나가고 있는 한국 증시에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내 증시에 투자한 외국인들은 지난달 22일 이후 25일까지 연일 ‘팔자’ 행진을 벌이고 있다. 영업일 기준 23일 연속 순매도는 외환위기 시절인 1997년 10월 4일부터 11월 1일까지 25일 연속 순매도 이후 두 번째 기록이다. 누적 순매도금액도 연일 사상 최대치를 갈아 치워 현재 3조2349억 원에 이른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는 1차적 원인은 1,240선까지 올랐던 한국 증시에서 차익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구조적인 자금 이탈 조짐이 엿보인다. 미국의 잇단 금리인상과 이에 따른 달러화 강세가 한국에서의 차익 실현 욕구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현재 양국의 기준금리는 미국이 연 3.75%, 한국은 연 3.5%로 역전된 상태다. 여기에 미국은 내달 1일 다시 0.25%포인트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돈은 금리가 높은 쪽으로 옮겨 가기 마련이다. 여기에 금리인상의 부수효과로 달러화가 강세다. 원화가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면 외국인 투자자금은 환차손을 입지 않기 위해 한국에서 빠져나간다.

외국인이 셀(sell) 코리아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만 우려는 남는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향후 연 5%까지 꾸준히 오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다행히 간접투자 열풍으로 자금력이 생긴 기관투자가들이 외국인의 팔자 물량을 소화해 주가를 떠받치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자금의 대거 이탈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시장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한국은행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가 경제를 전망하면서 나쁜 쪽을 외면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서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 없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단적인 예다. 당시 정부는 동남아를 휩쓴 금융 위기가 한국까지 오리라고 믿지 않았다. 실상을 정확히 알아보고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희망을 말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최근 세수 부족도 마찬가지다. 경제를 너무 낙관적으로 전망해 성장률을 높게 잡고 여기에 맞춰 세수를 추정하기 때문에 매년 재정이 바닥난다. 해마다 반복되는 추경 편성과 국채 발행 논란은 그 후유증이다. 정부가 과학적 근거에 따라 경제를 전망하지 않고 희망사항을 섞어 정책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경제 현상은 항상 양면성을 갖는다. 미 달러화 강세만 해도 한국에는 자금 이탈이라는 부정적 측면과 함께 수출 증가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문제는 공직자들이 좋은 쪽만 보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예측이 빗나가고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한국 경제에도 ‘한덕수 효과’나 ‘박승 효과’라는 말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일까.

김상영 경제부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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