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사격훈련

  • 입력 2005년 10월 25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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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Top Gun)’은 원래 미국 해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전투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 과정의 명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명사수 조종사를 일컫는 용어로 굳어졌다. 우리나라 공군의 경우 10년차 베테랑 F-16 조종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 약 87억 원이 든다고 한다. 탑건은 이처럼 많은 돈을 들여 양성한 조종사 중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조종사이니 보통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니다.

▷요즘 주한 미 공군에 배속된 전투기 조종사들이 전출을 요구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경기 화성시 매향리 사격장이 8월 폐쇄된 후 규정된 사격훈련 시간을 채우지 못해 탑건은커녕 진급에서조차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국방부에선 전북 군산 앞바다의 직도라는 작은 섬을 대체 사격장으로 제공하자는 의견들이 나오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러다간 한국이 미군 조종사들에게 ‘근무 기피 지역’으로 찍힐지도 모르겠다.

▷군 사격훈련장 부족은 주한미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군도 사정은 절박하다. 육군의 경우 훈련장 확보 수준은 몇 년째 소요 대비 60% 선을 맴돌고 있고, 그나마 확보된 부지도 갈수록 거세지는 주민들의 저항 때문에 마음 놓고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올해 초 육군에서 “러시아군의 훈련장을 임차해 사용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왔을까. 우리 군이 러시아에 가서 훈련을 하려면 병력과 장비 수송에 드는 비용도 문제려니와 북한 중국 등 주변국과의 미묘한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병가백년불용, 불가일일무비(兵可百年不用, 不可一日無備·군대는 100년 동안 사용하지 않을 수 있으나 단 하루라도 준비돼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이 한 말이다. 사격훈련 한 번 하려고 해도 온갖 눈치를 봐야 하는 우리 군은 과연 완벽한 임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훈련장 확보를 군 당국과 지역사회 간의 협의 사안으로 놓아 둘 일이 아니다. 국가전략 차원에서 정부가 조정에 나서서 조속히 매듭을 지어야 한다. 거창한 국방개혁보다 이런 일이 더 급하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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