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영수]‘姜교수 수사’에 정치권 개입 안된다

  • 입력 2005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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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법무부 장관과 검찰 사이의 갈등을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강 교수의 맥아더 장군에 대한 비판적 발언이나 6·25전쟁을 북한의 통일전쟁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충분한 논란거리였지만, 이러한 발언이 정치권이나 국가기관 사이에서 소모적인 논쟁으로 확산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강 교수의 발언에 대한 찬반 논쟁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강 교수의 주장 자체에 동의하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사상 및 언론의 자유에 의해 강 교수의 발언이 보호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첨예한 견해의 대립이 있고, 또 이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위한 사실관계의 확인 내지 법적 검토가 충분하지 못한 점도 논쟁을 더 부추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립적인 수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 강 교수의 발언에 대한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대립과 갈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많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무부 장관이 사상 초유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함으로써 법 집행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조차 위협하고 있다.

이미 국보법의 개폐에 관한 정치권의 해묵은 논쟁이 보여 주듯이 국보법은 그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첨예한 견해의 대립이 있다. 따라서 강 교수의 발언에 대한 국보법의 적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검경의 실무선에서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였던 것은 국보법에 대한 찬반과는 별도로 국보법이 일단 실정법으로서 효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불가피한 일이다. 법 집행기관으로서는 실정법의 적용을 임의로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보법의 적용이 부적절하다면 법이 먼저 개정 또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법을 존치한 상태에서 법에 문제가 있으니 그 적용을 자제하라는 식의 요구는 법 집행기관의 기본적 의무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 문제에 관하여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클 우려가 크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 여야 정치인들이 입장을 표명하는 것 자체가 자칫 외압으로 비칠 수 있는 상황인데, 급기야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여 불구속 수사를 명령함으로써 이 사건은 강 교수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기관의 내부적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국민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강 교수의 발언이 실정법에 위배되는 것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왜 이 사건에 대해서 그런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지 납득할 수 있을까? 검찰의 수사 및 법원의 재판에 있어서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 및 객관적이고 공정한 법 적용만을 문제 삼아야 하는데, 다른 고려가 작용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법 적용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을까?

강 교수의 발언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부적절하게 개입함으로써―과거 송두율 교수에 대한 사법처리 과정이 그러했듯이―사건이 확대되고, 강 교수의 개인적 문제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을 보수와 진보의 갈등으로 확산시키는 것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또 과거 군사정권에서 지역감정을 이용하듯이 보-혁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그 폐해는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정치권의 과제는 갈등의 생산과 증폭이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여 국민적 화합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정치의 역할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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