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재윤]스포츠 외교 ‘멀티플레이어’가 아쉽다

  • 입력 2005년 9월 7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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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은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선거에서 3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이집트 카이로 국제회의장은 박 회장과 마리우스 비저(오스트리아) 유럽유도연맹 회장을 각각 지지하는 국가들 간의 설전으로 들끓었다.

중남미 등 현장투표 불참 국가의 투표 위임권 문제를 놓고 비저 후보를 지지하는 유럽 대표들은 “회비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국가들이 어떻게 위임권을 행사하느냐”고 딴죽을 걸었다. 위임권이 예정대로 행사되면 중남미 국가들이 지지하는 박 회장의 당선이 유력하다고 판단한 유럽 국가들이 위임권 행사 자격을 놓고 시비를 건 것이다.

이에 회의에 참석한 중남미 국가들은 “중남미를 모독하지 마라. 엄연히 연맹 정관에 명시된 권리 행사”라고 맞섰다.

회장 선거 뒤에는 2009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 유치를 놓고 한판 승부가 벌어졌다.

치열한 ‘외교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유창한 외국어 능력이다. 스포츠 외교도 마찬가지다.

이날 회의에서 사용된 언어는 주로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였다. 동시통역 서비스가 되지 않았던 러시아어밖에 할 수 없는 한 대표는 다른 국가 대표를 옆에 세워 놓고 듣거나 말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비록 3선에 성공했지만 박 회장은 “한국의 국제스포츠 외교 능력은 솔직히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한국의 가장 큰 약점으로 외국어 구사 능력을 꼽았다.

박 회장은 영어 구사 능력은 뛰어나지만 2, 3개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유럽 대표들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불리한 처지였다. 그래서 박 회장은 자신의 ‘인재풀’을 총동원한 ‘드림팀’을 급조했다. 스페인어 통역을 위해 퇴직한 옛 두산그룹 직원까지 불러들였고 완벽한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하려고 미국 교포도 합류시켰다.

얼마 전 2012년 올림픽 유치전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국가원수까지 나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한국은 당장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국가적 과제다.

하지만 국제경기단체장 개인과 유치 희망 지방자치단체의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제 스포츠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 육성은 이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지금 시작해도 이미 때가 늦었다.<카이로에서>

정재윤 스포츠레저부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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