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추락하는 경제관료

  • 입력 2005년 9월 7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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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전성시대다. 경쟁에 치이면서도 퇴출 불안이 일상화된 민간부문과 달리 행정부는 비대해져만 간다. 고위직과 중간 간부가 늘면서 한결 인사 숨통도 트였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중시하는 뿌리 깊은 풍토에다 ‘큰 정부’를 내놓고 공언하기까지 하니 이런 꽃놀이패가 없다. 젊은이들이 공(公)자 붙은 시험이라면 직급 불문하고 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공직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규모가 커진 만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아니면 관료 수와 업무량은 무관하다는 ‘파킨슨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을까. 그도 아니면 몸집만 불었지, 해야 할 일에는 소홀하고 쓸데없는 일에 바쁜 비효율이 더 두드러질까.

경제부처 관료들은 상대적으로 외풍(外風)을 덜 타고 자질도 우수한 편이다. 현 정부 초기에는 청와대와 여당에 찍혀 마음고생을 했다. 그런 가운데도 제대로 된 정책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진 것 같다.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는 팔 걷고 ‘코드 맞추기’에 나섰다. 분양가 규제와 급격한 보유세 인상, 종합부동산세의 가구별 합산이 낳을 수 있는 후유증을 소리 높여 지적하던 사람들이 180도 돌아서서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부동산을 때려잡자’는 목소리만 있지, 전체 경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소신은 찾기 어렵다.

부동산 대책이 모두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정책이든 빛과 그늘이 있다는 점, 정책은 선택의 문제며 그 성패(成敗)는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도 안다. 하지만 자부심 강한 엘리트 관료들이 너무 눈치를 보면서 쉽게 말을 바꾸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뒷맛이 씁쓸하기는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다. ‘건전재정’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기획예산처에선 “균형재정에 집착할 때는 지났다”는 말이 나온다. 정보통신부는 휴대전화 도·감청 문제로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조직 축소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는 오히려 권한 확대에 열을 올린다.

한 고위 공무원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실력자’들이 관료들을 무시하면서도 신경은 좀 쓰는 듯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출세를 위해 경쟁적으로 줄 서는 걸 보곤 더 우습게 알더군요.” 그는 ‘같은 호수에서 헤엄도 치고 스케이트도 탈 수 있다’는 식의 엇박자 정책이 속출한 것도 공직자들의 ‘자발적 투항(投降)’과 연결 지어 해석했다.

인사는 어떨까. 과거에도 업무외적 정실(情實)인사가 있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 자리를 맡을 만하다는 중량감 있는 간부도 꽤 많았다. 특히 경제부처는 그랬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무게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나만 그런가 싶어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물어 보면 같은 반응이다. 권력에 줄을 대 선거 출마를 준비했다가 여의치 못해 공직에 주저앉았거나, 실력과 소신보다는 눈치 빠른 보신(保身)주의가 몸에 밴 일부 공직자가 승승장구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경제관료들의 추락’을 보면서 계석명(戒石銘)을 떠올린다. 중국 송나라 2대 황제인 태종 조광의가 관리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관청의 양쪽에 세워 놓게 한 비(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그대들의 봉록(俸祿)은 백성의 피며 살이다. 백성을 학대할 수는 있어도 하늘은 속이지 못한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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