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수형/진실에 이르는 저급한 지름길

  • 입력 2005년 8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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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영역에서 ‘실체적 진실’과 ‘적법 절차’는 때로 격한 파열음을 내며 충돌한다. 미국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던 마사이아(Massiah) 사건은 그 충돌을 잘 보여준다.

1958년 연방 경찰은 뉴욕에 정박 중이던 산타마리아호가 마약을 밀수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배를 급습했다. 경찰은 배에서 다량의 코카인을 발견하고 선원 마사이아와 콜슨을 체포했다.

그러나 이들은 혐의를 부인했다. 자신들은 고용된 선원에 불과할 뿐 마약 밀수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곧 보석으로 석방됐다.

수사를 계속하던 경찰은 콜슨에게 수사에 협조하면 선처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콜슨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무선송신기를 차고 마사이아를 만났다. 경찰은 근처에 차를 세워 놓고 콜슨의 송신기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를 수신했다. 대화 내용은 둘이 범행 상황을 점검하면서 대책을 논의하는 것. 범죄의 생생한 자백이었다. 경찰은 이 자백 기록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이 사건은 ‘마약 범죄 규명’이라는 진실 추구와 ‘도청을 통해 얻은 자백’이라는 적법 절차 위반 문제가 정면으로 충돌한 사례다.

1964년 연방대법원은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고 얻어 낸 자백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적법 절차와 실체적 진실 사이에서 적법 절차의 우위를 선언한 것이다.

옛 국가안전기획부가 만든 도청 테이프 274개의 공개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진실’과 ‘적법’이 맞서는 전선(戰線)의 한가운데에 있다. 일부 시민단체, 심지어 법조인들조차 ‘정경 유착과 부패의 규명’을 위해 내용을 공개하고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은 절차를 무시한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소홀히 여기는 것이다. 과거 고문과 가혹 행위를 통해 얻어 낸 자백 가운데 일부는 ‘진실’이었을 수 있다. 적어도 고문을 한 사람들은 자신이 얻은 자백이 진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자백이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지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 야만을 추방하는 데 성공한 것은 그 자백을 어떠한 경우에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그래서 위험하다. 진실 발견이라는 목적을 위해 적법 절차라는 수단을 무시해도 좋다는 위험한 생각이다.

호주 대법원은 1978년 버닝(Bunning) 사건 판결에서 “너무 강하게 추구하는 진실은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 절차의 문제(불법 수집 증거) 때문에 희생하는 진실(정경 유착 규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법이 기꺼이 감수하려는 희생이다. 마치 한 명의 억울한 피의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것처럼.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고 최초로 선언한 1964년의 맵(Mapp) 사건 판결에서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위법 수집 증거’에 대해 이렇게 선언했다. “진실에 이르는 저급한 지름길(Ignoble shortcut)”이라고.

이수형 사회부 차장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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