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사설 전문

  • 입력 2005년 7월 25일 14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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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뼈를 깎는 자기반성 하겠습니다

'안기부 X파일'이라는 문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오늘, 중앙일보는 참담한 심정으로 국민과 독자 앞에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앙일보는 정치, 경제, 사회권력의 감시를 통해 밝고 정의로운 사회의 실현에 동참해 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문건에 홍석현 전 사장이 지난 한 시대의 정치적인 악습에 관련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중앙일보는 이 문건의 사실 여부에 대한 당국의 조사에 앞서 국민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뼈를 깎는 반성을 다짐합니다.

홍 전 사장은 올 2월 주미대사로 임명되면서 중앙일보 회장직을 사퇴했습니다. 그렇다고 중앙일보가 이 문제와 전혀 상관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1997년 대선 때의 문제로 중앙일보가 겪어야 했던 고초는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정권은 중앙일보를 압박해 왔고, 그 결과 홍 전 회장은 1999년 탈세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말이 '보광 탈세' 사건이지 사실은 선거에서 상대 진영을 도왔다는 괘씸죄였습니다.

이번에 불거진 파일의 내용과 연관이 된 것입니다. 홍 전 회장 본인도 그때 공개적인 사과와 반성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 감옥까지 갔습니다. 그렇다면 일사부재리 원칙이 있듯이 대가는 이미 치렀다고 보아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당사자는 끝없는 반성과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존폐의 위기를 맞았던 중앙일보는 시련을 견뎌냈습니다. 상처를 견디며 한발 더 성숙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관행처럼 여겨졌던 정.언 유착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참다운 언론으로 바로 설 수 없다는 엄숙한 교훈도 체험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일보는 2002년 대선에서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보도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도, 패배한 후보도 중앙일보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는 인정했습니다. 제2 창간 10년을 맞은 2004년 3월 22일에는 중앙일보가 과거 정파적 이해에 끼어들었던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불편부당과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의 고유업무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기부 X파일의 내용이 마치 '지금의 중앙일보'의 모습인 것처럼 폄하하는 일부의 움직임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습니다. 과거의 잣대로 현재의 중앙일보를 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도청 테이프 중 유독 특정 정치인과 기업, 그리고 중앙일보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문제를 삼고 있는 현 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많습니다. 특히 도청 당사자들은 중앙일보를 매도하고 있는 일부 방송.신문사들을 거명하며 "그들도 떳떳하지 못하다. 자기들은 정도를 걸어온 것처럼 하는데 정말 역겹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불법도청 자체는 물론 도청 테이프에 담긴 모든 내용이 함께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앙일보 임직원은 다시 한번 깊은 성찰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더 바르고, 더 공정하고, 더 열린 신문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특정 정파나 세력에 기울지 않고 중립성을 지키면서 권력에 대한 비판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중앙일보를 의도적으로 매도하고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기도에 대해서는 결연히 맞서 싸울 것입니다. 아울러 정.경.언 유착이나 도청과 같은 잘못된 관행이 다시는 재연되지 않도록 한 시대를 청산하는 시대적 과업이라는 차원에서 진상 파악에 주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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