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병철]돈을 위해 살진 않습니까

  • 입력 2005년 7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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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열풍이 뜨겁다. 돈이 될 만한 곳이면 어디든 뭉칫돈이 몰려다닌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고, 공기업의 지방 이전으로 1주일 사이에 땅값이 2배나 오른 곳도 있다. 주식 공모에 있어서도 인기 있는 기업엔 무려 2조 원의 자금이 몰렸다고 한다. 세상이 온통 재테크로 들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재테크라고 해서 무조건 백안시할 일만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겠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은 한 개인은 물론이고 나라 경제와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또한 지금의 경제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돈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게 한다. 경제의 저성장 구조와 산업 각 분야의 혁신으로 실업과 조기 퇴직의 위험은 높아지고 있는 반면, 평균수명은 갈수록 늘어나 미리미리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여기에 금리 수준이 물가상승률과 비슷한 연 3∼4%에 지나지 않으니 다소의 위험이 있더라도 보다 나은 투자나 자금 운용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재테크에 뛰어들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면 크게 걱정할 것이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의 위험성을 간과한 채 위험 자산에 몽땅 투자했다가 실패해서 경제적 반신불수가 되거나 심지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일가족이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일들마저 자주 생겨난다. 금융상품이나 투자에 대해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 가운데서도 주식이나 부동산에 ‘다걸기(올인)’하기를 되풀이하다가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예도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재테크 열풍이 남기고 간 비극들은 경제와 시장에 대한 지식의 부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도대체 이들에게 돈은 무엇이었기에 스스로를 이러한 상황으로 몰아넣었을까. 돈과 삶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는 개인마다 평생을 관통하는 재무계획(파이낸셜 플래닝)을 세우기를 권한다. ‘당신이 벌고 싶은 돈’의 액수를 설정하는 일부터 하지는 말라. 먼저 어떤 삶, 어떤 인생, 어떤 행복을 목표로 하는지부터 구체화하라. 그 후에 기대 수입과 지출, 장래의 목표 등을 고려해 종합적인 자산운용계획을 짜고 실행하라. 무작정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인생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재무환경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국내의 은행 보험 증권사도 ‘프라이빗 뱅킹’ ‘웰스 매니지먼트’ 등의 이름을 붙여 이 같은 서비스를 앞 다퉈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부유층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이런 서비스가 확대되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 국가에서는 30여 년 전부터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에게 ‘공인종합재무설계사(CFP)’ 자격을 주어 왔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꿈꾸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자격제도이다.

또 정부나 금융회사는 물론 사회 각계가 협력하여 ‘돈 바로 알기 운동’ 등 건전한 투자자 교육을 벌여 나갈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는 금융상품에 내포된 위험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고 금융 종사자들은 높은 윤리기준을 설정하여 이를 지켜 나가도록 한다면, 시장의 신뢰는 높아지고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도 크게 강화될 것이다. 나아가 돈과 삶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확립을 위한 노력은 돈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상대적 박탈감이나 갈등을 해소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들 한다. 그러나 돈은 어디까지나 삶의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40여 년을 남의 돈 심부름하는 은행원으로 살아온 필자에게 “돈은 사람을 편리하게 할 수는 있지만 결코 행복하게 하지는 못 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짧지만 강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무작정 재테크에 뛰어들기 전에, 진정 내가 꿈꾸는 인생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윤병철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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