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아내의 첫 연애편지

  • 입력 2005년 7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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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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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장병 아저씨께.’ 육군 병장시절 지금의 아내에게서 처음 받은 편지의 머리말이다. 당시 대학 졸업반이던 아내는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내게 ‘나라를 지키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냐. 그 덕분에 잘 지낸다’는 내용의 글을 보내 왔다.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받아 보았을 전형적인 위문편지였다. 이게 과연 연애편지인지 헷갈렸지만 그래도 군복무의 고충을 헤아려 주는 것이 내심 고마웠다. 나는 후방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으면서도 ‘안보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안심하고 공부하라’고 큰소리치는 답장을 썼다.

무안함을 무릅쓰고 사적인 이야기를 꺼낸 것은 군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요즘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지난달 경기 연천군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이후 장성한 자식을 둔 일부 부모 사이에선 “아들을 군대에 보내기가 겁이 난다”는 말이 나온다.

힘들고 위험한 군대에 선뜻 자식을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가 얼마나 되겠는가. 국민의 의무를 다하느라 걱정을 하면서도 보내는 것일게다. 당사자들도 그런 생각으로 군복을 입는다. 하지만 무난히 군복무를 마친 남자에 대해선 세상사의 어지간한 어려움은 이겨 낼 것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예비 장모들은 “사윗감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런 이중적인 인식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다만 군대를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할 곳’에서 ‘힘 있으면 안 가도 되는 곳’ ‘가면 인생에서 큰 손해를 보는 곳’으로 여기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은 걱정이다.

과거 군사독재가 남긴 군의 어두운 이미지와 사회지도층의 병역 기피, 낙후된 병영문화, 안보의식의 이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우리의 아들, 형제들에게 돌아간다.

총기난사 사건 이후 정부와 정치권에선 병영문화 선진화, 군복무제도 개선, 사병 봉급 인상 등의 각종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보다 더 필요한 것은 군을 진심으로 아끼고, 고맙게 생각하는 사회 풍토일 것이다. 우리가 군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군인들에게 목숨을 바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얼마 전 해병대 1000기 시대가 열렸다. 군기가 세고, 훈련이 고되기로 소문이 난 해병대에 지원자가 넘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무리 힘들더라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얻는 게 있다면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이다.

사병이든, 직업군인이든 국가를 위해 청춘을 바치는 그들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게 만드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평시에도 전쟁의 가능성을 제어하는 그들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궂고 험한 3D 업종의 일을 외국인 근로자에게 떠맡기듯 병역을 외국인 용병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을 때 어떤 환란을 겪었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금 중학생인 아들도 언젠가는 군대에 가게 될 것이다.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아내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에게도 따뜻한 격려의 편지를 쓸 것 같다. 어쩌면 아들은 여자 친구의 위문편지를 더 기다릴지도 모르지만.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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