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40년 英작가 토머스 하디 출생

  • 입력 2005년 6월 2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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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은 우울하다. 흡사 습기 가득한 영국 날씨를 옮겨놓은 듯 침침하다.

대표작 ‘테스’(1891년)만 해도 그렇다. 남녀간의 사랑이 주된 테마일진대 ‘연애소설’이 아니다. 순결을 잃고, 배신당하고, 죽이고, 죽고….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작가 토머스 하디의 세계관 자체가 비관적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고통은 있어 왔고 지금도 존재한다. 자연에서 새로 발견한 어떤 종류의 윤리도 과거로부터 고통을 제거할 수 없으며, 정확한 평가자인 고통을 가진 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기쁨으로 만들게 할 수 없다.’

하디는 1840년 6월 2일 영국 도싯 주에서 석공(石工)의 아들로 태어났다.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잣대가 사회를 옥죄던 시절이었다. 결혼과 성(性), 여성에 대한 편견은 깨뜨리기 어려운 벽이었다.

여성은 둘 중의 하나였다. ‘순결한 여인’이거나 ‘타락한 여인’이거나. 성적 욕망이 없는 희생적 존재여야 했고 처녀성은 목숨과 맞바꿔야 하는 강박이었다.

왜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하고 이별하는 방식은 윤리와 도덕의 벽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왜 인간의 의지는 운명에 의해 비극적으로 짓밟혀 뭉개지는가.

그는 이런 화두를 던졌다. 사회가 제시한 이상적인 결혼, 이상적인 여성상을 거부했다. 당대의 어느 작가도 감히 못했던 일이었다.

당연히 반발이 거셌다.

지금은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비교되는 ‘테스’도 발표 당시엔 뭇매를 맞았다.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당했다. 원고를 수정해가며 잡지에 연재가 시작됐지만 ‘혐오스럽고 저급하며 사악한 소설’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미천한 사람 주드’(1895년)는 더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거의 신성 모독적인 공격을 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점에선 책이 안 보이게 종이 가방에 넣어 팔아야 했고 일부 성직자는 책을 불태웠다.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었다. ‘미천한 사람 주드’가 소설로는 마지막이었다. 그리곤 시(詩)에 매달렸다.

하디는 죽으면 고향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1928년 1월 11일 그가 죽자 영국 사회는 문호에 대한 예우를 해야 한다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했다. 그의 심장만 고향의 부인 무덤 곁에 묻힐 수 있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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