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거史청산이 國情院‘본업’이라도 되나

  • 입력 2005년 6월 2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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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구 국가정보원장이 1일 사임할 뜻을 밝혔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과거사 규명작업에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 원장이 지난해부터 사의를 표명했지만 국정원의 과거사 규명작업 때문에 미뤄왔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사 규명작업이 국정원장의 유임이나 사임의 주요 이유가 된다는 설명을 납득할 수 없다. 국정원의 본업(本業)은 국가 정보를 총괄 관리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쓴다. 나라를 둘러싼 안보 및 경제 상황 등은 국정원이 본업에만 충실해도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간다. 그런 판에 과거사 규명을 국정원장의 임면(任免)에 결정적 변수로 내세우는 데 대해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정원장이 이 같은 이유로 퇴진하면 한시적이고 지엽적인 일을 본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본말전도(本末顚倒)를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사 규명작업에 가시적 성과가 나왔다”는 말도 억지다. 지난주 국정원이 발표한 김형욱 실종사건 중간조사 결과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의혹만 더 키웠다. 국정원이 서둘러 허점투성이 발표를 한 것을 놓고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가 이를 ‘가시적 성과’라고 자찬(自讚)하며 국정원장을 교체하면 또 다른 ‘정치적 의문’을 키울 수 있다.

고 원장이 과거사 규명을 둘러싼 시민단체의 정치적 압력과 국정원 내부의 반발 사이에 끼게 된 것이 그의 실의(失意)를 키웠다는 얘기까지 일각에서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더 문제다. 국정원 본연의 역할도 아닌 과거사 문제가 조직을 흔든 셈이기 때문이다.

차제에 정부는 쟁점 사안에 대해 설명하는 방법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 사안의 본질은 제쳐놓고 ‘곁가지’를 중심인 양 포장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더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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